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요한복음 7장 예수님의 말씀] 생수의 강을 주심(요 7:1-53)

기혼샘 2021. 12. 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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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초막절에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초막절에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문화적 배경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초막절은 건기 막바지이기 때문에 마실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초막 절기를 지내면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면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마른 자는 자기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영적인 갈증이 있을 때 예수님께 나와서 생수의 강을 마셔야 합니다.

 

생수의 강을 주심(요 7:1-53)

 

1-13, 인간의 무지와 불신앙

[1-2]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했던 것은 5장에 기록된 대로 유대인의 명절 때 예루살렘에서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신 일로 인한 것이었다. 그때 이후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고 그 사실을 아신 예수께서는 유대에서 다니기를 꺼려하셨다.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들을 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웠다. 요한복음에 유대인의 유월절’(2:13; 11:55) 혹은 유대인의 명절’(5:1; 6:4; 7:2)이라는 표현은 이 책이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음을 보인다. 본장은 6장의 사건보다 6개월 후의 일들을 쓰고 있다. 앞장의 떡 기적 사건은 유월절이 가까운 때의 일이었다(6:4). 유월절은 유대 달력으로 114일이고 초막절은 715일부터 한 주간 동안이므로 6개월 간의 간격이 있다. 요한복음은 그 6개월 간의 예수님의 말씀들과 일들을 생략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복음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생애 가운데서 매우 제한된 내용들만 선택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3-5]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는 동생들이 있으셨다.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이었다(13:55; 6:3). 그들이 예수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고 말한 것은 그 형제들이라도 그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그와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로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적 영광이나 그의 메시아 사명을 알지 못하였고 그가 마치 자기를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자로 잘못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없다. 그의 동생들이라도 그를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단순히 성도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것이 예수님을 믿게 하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사람은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있다. 그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셔야 사람이 그에게로 나올 수 있다(6:44, 65).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3에서 말하기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을 수 있다.

[6-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그를 미워한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그들의 행위를 악하다고 증거하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유대 지도자들을 악하다고 말하지 않으셨다면, 그들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려고 그릇되이 칭찬하지 않으셨다. 그는 공의로 말씀하셨다. 그는 선과 악을 구별하셨고 선을 선이라고, 악을 악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것들, 즉 돈과 명예와 육신적 쾌락을 사랑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유대 지도자들은 겉으로는 경건하고 선하게 보였으나, 속에는 온갖 탐욕과 미움이 가득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위선적 언행을 책망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 한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설교했을 때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였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고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였다. 예레미야는 말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이는]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20:7-8). 그러나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의 죄악됨을 깨달아야 하고 거기에서 돌이켜야만 한다.

[10-13]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견해가 가능할까? 그러나 진리에 대해서는 항상 이런 현상이 있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들은 경건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이라고 인정을 받았으나 불경건한 대중들에게는 배척과 핍박을 받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도 무리들 가운데는 그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주의 귀한 종이라고 인정했으나 다른 이들은 그를 교인들을 속여서 자기 사람이나 만들고 그들에게서 이득이나 얻으려 하는 자라고 비방하고 핍박하였다(고후 12:16-17). 그래서 그는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에 대해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라고 증거했다(고후 6:8).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이런 잘못된 견해는 사람들의 영적 무지(無知)와 완고함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본문은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태도를 증거한다. 예수님의 동생들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워했다.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를 무리를 미혹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의롭고 선한 분이신 예수님에 대해 이런 잘못된 견해가 가능한 것은 사람들의 무지와 완고함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도무지 알지 못하고 찾지도 못한다. 그래서 로마서 3:11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예수님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그 말씀을 깨닫고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이 참된 회개와 믿음을 가지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사도행전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그는 자신의 마음의 어두움과 무지와 완고함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또 우리가 다른 이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를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를 부르시며 그를 예수님 앞으로 이끌지 아니하시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14-24, 예수님의 교훈

[14-16]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초막절은 7일간 지킨다(23:34). 연중 3대 절기인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에는 모든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경배하여야 했다(23:17).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 초막절 중간에 성전에 들어가셨다. 여기에서 성전은 성전의 뜰을 가리킨다. 일반 사람들은 성전 뜰에서 하나님께 경배하였고, 성소 안에는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유대인들은 그에 대해 기이히 여기며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말했다.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13:55) 혹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6:3)로 불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나 회당에서 배운 것 외에 따로 배우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가르칠 능력은 누가 주시는가?(4:11-12)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안다면 그의 지혜로운 가르치심에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하나님의 지혜와 힘으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의 교훈은 곧 하나님의 교훈이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계시 중 특별계시이다(히 1:1-2). 그의 말씀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의 말씀들보다 더욱 권위를 가진다. 그는 자신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여러 번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28,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한복음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요한복음 14: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한복음 14:24,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7-18]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교훈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 사람의 본성의 무지와 죄악 때문에, 사람이 자기 뜻대로 살면 죄악되고 허무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뜻 즉 경건과 의와 선을 구하면 자신의 죄악되고 허무함을 깨닫게 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교훈이 하나님의 교훈인 줄 알고 그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간절히 구하고(2:4-6) 자기 속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의()가 없음을 깨닫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할 때(5:3-6)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되고 그를 알고 그를 믿고 확신하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거짓 교사와 참된 교사를 분간할 방법을 알려 주셨다. 그것은 말하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가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지 않고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신의 영광만 구할 것이다. 거짓 교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교사이시다. 그는 그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며 그 속에 불의한 것이 없으시다. 여기에 참 제자의 모습도 있다. 참 제자는 자신을 부정하고 주 예수님을 따른다(눅 9:23).

[19-20]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은 모세가 기록하였다(31:24; 1:7). 우리는 모세오경을 비롯하여 모든 성경의 진실성을 믿는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다. 불경건과 부도덕은 사람을 영적 무지와 흑암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그를 핍박하고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귀신은 악한 영이며 사람으로 악을 생각하고 악을 말하고 악을 행하게 만든다. 악은 불경건하고 쾌락적이고 음란하고 거짓되고 남을 해치는 것이다. 예수님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경건하시고 진실하시고 남에게 유익을 주시는 선한 자이시다. 유대인들이 그가 귀신이 들렸다고 비방하는 것은 그가 그들을 악하다고 책망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죄를 책망하시는 것은 선한 일이다. 죄의 책망이 사람을 회개시키고 하나님께로 오게 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실상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고(5:16, 18) 마침내 그를 죽였다.

[2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행하신 한가지 일이란 여러 달 전 명절 때 안식일에 예루살렘 양문 곁 베데스다 연못의 한 행각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그 일 때문에 그를 이상하게 여겼고 그를 배척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배척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의 선한 행위는 오히려 그의 교훈의 진리성을 확증하였다.

할례는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표이었지만, 모세 때에 율법으로 규정되었다. 레위기 12:3에는,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8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같다(2:11-12). 그것은 죄씻음으로 말미암는 거듭남을 상징한다. 할례 시 남자 아기 고추의 살가죽 끝을 자르는 것은 인간의 죄성을 잘라버리는 뜻이 있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38년된 병자의 전신, 즉 영육을 포함한 사람 전체를 건전케 하셨다. 그의 병고치심과 구원은 할례보다도 더 나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며 큰 죄악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해야 했다. 그들이 병고침과 구원의 선한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비방하고 죽이려는 것은 심히 악한 일이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님의 교훈은 하나님의 교훈이다. 그의 교훈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며 영생의 말씀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자는 예수님의 교훈의 참됨을 깨닫는다. 기독교는 단순히 이론의 종교가 아니다. 사람은 실제로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이 그렇게 하려고 할 때 그는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철저히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교훈 즉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믿고 구원을 얻고 그를 따르게 된다.

셋째로, 예수님의 병고치신 일들은 그의 교훈이 참되고 믿을 만한 선한 일임을 보인다. 사람은 예수님의 기적 행하신 일들을 통해 그를 믿고 그의 모든 교훈을 믿고 구원받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25-53, 내게로 와서 마시라

[25-27]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루살렘 사람들 중 일부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악한 자들의 악한 계획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다 드러난다. 또 사람들이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고 말한 것은 그의 육신적 출생과 자란 배경을 두고 한 말이다. 그들은 예수가 갈릴리 나사렛 동네 출신이며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하였다.

[28-30]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육신의 출생과 배경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을 어느 정도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심으로 왔으며 자신이 그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를 잡고자 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가 있다. 그때가 아니면, 사람의 악한 계획이라도 실행되지 않을 것이다.

[31]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그의 행하신 표적들과 기적들은 복음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상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만큼 기적을 행한 자는 없었다. 석가모니도 마호멧도 공자도 아니었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충분히 증거하였다.

[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아마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우려하여 그를 잡으러 하속들을 보내었다. 예수님은 전도사역 초부터 죽음의 위협을 당하셨다. 나사렛 회당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이 그를 동네 밖 산낭떠러지까지 끌고가서 그를 밀쳐 내리치고자 하였었고(눅 4:28-29), 1년쯤 지난 때부터는 그를 죽이려는 움직임이 더욱 드러났고(5:16-18), 또 그가 죽으시기 6개월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그를 죽이려는 음모가 있었다.

[33-3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씀은 그의 승천을 가리켰다. 그가 승천하시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또 회개치 않는 자들은 그가 계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고 그의 승천과 천국에 들어가심을 상상하지 못하였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말씀은 초막절 끝날 곧 거룩한 대회로 모이는(23:36) 큰 날에 예수께서 사람들을 향해 하신 복된 초청이었다. 그의 초청에는 제한성이 없었다. 목마른 자는 누구든지 주께로 나오라고 초청되었다. 이 목마름은 정신적, 종교적, 도덕적 갈증을 가리켰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며 세상에는 왜 불행한 일들이 많은가? 인간은 왜 죄를 극복하지 못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실상, 이런 질문들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 예수께서는 단순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셨다.

[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인간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그를 믿으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는다는 뜻이다. 성경은 구원을 물에 비유하였다(12:3; 35:6-7; 41:18; 44:3; 55:1). 이사야 44: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구원은 갈한 영혼에 시원한 물과 같다.

사도 요한은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예수 믿는 자들의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린다는 말씀은 그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킨 것이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이후에는 성령께서 모든 신자들 속에 계셔서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신약교회는 성령의 내주(內住)하시는 복을 누리고 있다. 이것은 신자들 속에 메마름이 없는 풍성한 은혜이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영원히 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필요한 영적 은혜를 날마다 공급하신다.

[40-44]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그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또는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미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의 심령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믿음의 문 앞에 서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했다. 무리 중에서 예수님을 인해서 논쟁이 일어났다. 심지어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손을 대는 자는 없었다.

[45-46]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서 왔고 자기를 믿는 자는 목마름을 해소할 것이며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했다. 유대의 역사 속에 그렇게 말한 자는 없었다. 인류의 역사에도 없었다. 물론 거짓되고 부도덕한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은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르지만, 양심적인 인격자들 중에는 그런 말을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불교의 석가모니는 인생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 욕심이며 그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가르쳤다. 이슬람교의 모하멧은 여섯 명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으로 추앙될 뿐이다. 유교의 공자는 자기 자신과 가정을 다스리며 국가와 세계를 사랑과 정의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쳤을 뿐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조로아스터는 단지 자신을 예언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이 세상의 유일한 구주라고 주장하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한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47-49]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미혹되었다는 말은 속임을 당하였다는 뜻인데, 예수님이 무리를 속이는 자이셨는가? 그들이 예수님을 반대한 이유는 타당성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 될 수 없다. 또 그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을 정죄하는 것이 성경적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께서는 성경으로 자신을 증거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언들과 예표들을 제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셨다(24:27).

[50-53]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유대 지도자들이 성경대로 판단하기를 원한다면, 그를 판단하기 전에 그의 말에 어떤 거짓이나 잘못이 있는지, 또 그의 행한 바들에 어떤 도덕적 악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성경적 판결을 하는 자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들이나 행동들에는 정죄받을 악이 없었다. 단지 그들에게는 갈릴리 지방에 대해 멸시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정당하지 않았다. 요나는 갈릴리 출신이었고(왕하 14:25; 19:13) 나훔도 그러한 것 같다. 확실히,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무지했든지, 의도적으로 성경을 왜곡하였다.

25절로 53절까지의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유대 땅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자라셨지만, 실상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자이시며 그의 근본은 영원 전부터이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곧 하나님이시다. 그는 참된 신성을 가지신 자이시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곧 신성(神性)을 가지신 자이심을 아는 것을 말한다.

둘째로, 구원은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심과 같다. 예수께서는 목마른 자마다 그에게 나아와 생명수를 마셔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구원을 받으라고 초청하셨다. 이것이 구원이다. 주께서 말씀하신 목마름이란 인간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죄와, 고통과 불행과 허무, 그리고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의 문제들로 고민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생의 영적 목마름을 단번에 해소하시는 구주이시며, 또 그는 그를 믿는 자가 성령을 받음으로 영원한 위로와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자이시다. 구원은 죄인들의 마음에 있는 갈증을 참으로 해소시키는 것이며 참된 평안과 기쁨을 주는 일이다.

셋째로, 인류 역사상 예수님처럼 말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모든 죄와 불행과 죽음의 문제의 해결자라고 말한 자는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거짓되고 부도덕한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은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르나, 양심적인 인격자들 중에는 그런 말을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석가모니도 모하멧도 공자도 조로아스터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이 주장하신 바로 그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참된 신성(神性)을 가진 자이시며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실 유일한 구주이시다.

[누가복음 7장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이 기적들을 행하심(눅 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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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백부장의 종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또한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려 주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시몬의 집에서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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