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욥기 39장 성경 좋은 말씀] 동물 세계가 주의 손 안에 있음(욥 39:1-30)

기혼샘 2022. 6. 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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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9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이 세상의 가축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땅에 동물을 창조하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들짐승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조를 어리석게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말에게 힘과 용맹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매와 독수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 세상 동물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분이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물 세계가 주의 손안에 있음(욥 39:1-30)

 

[1-4] 산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 . . .

하나님께서는 또 욥에게 말씀하신다. “산(山)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滿朔)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산염소’라는 원어(야알레-살라)바위의 영양(羚羊)’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네가 산염소의 새끼 낳는 때를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아느냐, 또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이 되는지 아느냐라고 물으신다. 산염소 같은 짐승은 다른 동물이 접근하기 어려운 험준한 바위와 바위 사이 또는 동굴에 두 마리 내지 다섯 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런 산염소나 산양, 암사슴 같은 짐승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사람이 그런 짐승들에 대해 아는 것이란 지극히 조금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아 그 괴로움을 지내어 버리며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들에서 길리우다가 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그 괴로움을 지내어 버리며라는 구절은 그 고통(산고 産苦)을 던져버리며라는 뜻이다.

산염소나 사슴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고 그 출산의 고통을 던져버리며 그 새끼들은 강해지고 들판에서 자라다가 어미를 떠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암사슴 같은 짐승은 새끼를 낳은 후 1년 정도 키우지만, 그 후 어린 사슴은 어미를 떠나 독립해 나간다고 한다.

[5-12]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 . . .

하나님께서는 또 욥에게 말씀하신다.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내가 들로 그 집을, 짠 땅으로 그 사는 처소를 삼았느니라. 들나귀는 성읍의 지꺼리는 것[요란한 것]을 업신여기니 어거하는 자의 지르는 소리가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초장이 된 산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것을 찾느니라.” 들나귀는 집에서 기르는 나귀와 그 성질이 다르다. 들나귀는 들이나 척박한 벌판을 거처로 삼고 자유로이 산다. 그것은 성읍 사람들의 요란한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것을 제어하려고 소리를 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또 그것은 초장을 찾아 산을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먹을 만한 푸른 것을 찾아다닌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써레=논이나 밭의 흙을 고르게 하는 도구]를 끌겠느냐? 그것의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집에서 키우는 소는 순하게 길들여져서 외양간에 매어두기도 하고 논이나 밭을 갈게도 하고 써레를 끌게도 하지만, 들소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람에게 복종치 않기 때문에 외양간에 머물게 할 수도 없으며 밭이나 논의 일을 위해 사용할 수도 없다. 비록 그것이 힘이 많아도, 사람은 그것을 의지할 수 없고 자신의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길 수 없다. 사람은 그것에게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는 일이나 타작마당에 곡식을 모으는 일을 맡길 수 없다.

[13-18]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욥에게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고 말씀하신다. 영어성경들은 본절을 다양하게 번역했다. KJV, 네가 공작들에게 멋있는 날개를 주었느냐? 또는 타조들에게 날개와 깃털을 주었느냐?” NASB, 타조들의 날개들은 사랑스런 날개와 깃털을 가지고 즐거이 퍼드덕거리도다.” NIV, 타조의 날개들은 즐거이 퍼드덕거리나 황새의 날개와 깃털에 비교할 수 없도다”(‘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구절은 임의로 첨가됨). NASB의 번역이 언어적으로 또 문맥적으로 가장 나은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구로(劬勞)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괘념치[마음에 두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 내가 지혜를 품부하지[주지] 아니하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니라. 그러나 그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 암타조는 6-8개의 알을 모래 위의 오목한 곳에 낳고 40일 가량 버려두어 부화시키는데, 발에 깨어지거나 다른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않고 마치 자기 새끼가 아닌 것처럼 그것에 대해 무정하고 그것이 깨어져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조가 뛰어갈 때는 말 탄 자를 무시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을 태운 경주마는 시속 약 72킬로미터로 달리지만, 타조는 보통 시속 64킬로미터, 최고 145킬로미터로까지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25]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욥에게 말씀하신다.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그것이 골짜기에서 허위고 힘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하며 칼을 당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19절의 갈기는 말의 목덜미에 난 긴 털을 가리키고, 21절에 허위다라고 번역된 원어(카파르)앞발로 친다는 뜻이다.

말은 힘이 좋은 짐승이다.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는 그 힘의 상징이다. 옛시대에 말은 전쟁의 필수적 도구이었다. 말은 또한 겁이 없는 짐승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협해도 움츠리지 않는다. 그의 위엄스러운 콧소리는 두렵다. 말은 골짜기에서 앞발로 치며 달리고 자기 힘을 과시하고 앞으로 전진하며 적군들을 맞아 싸운다. 그것은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않으며 칼을 만나도 물러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 위에서는 전동과 빛난 작은 창과 큰 창이 쟁쟁하며 땅을 삼킬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를 들으면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나팔 소리 나는 대로 소소히[쓸쓸히]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장관의 호령과 떠드는 소리를 듣느니라.” 23절의 전동(箭筒)’(‘전통이라고도 발음함)화살통을 가리킨다. 25절 전반절은 나팔 소리 가운데 힝힝하고 울며라고 번역할 수 있다.

말은 그 위에서 화살통과 빛난 큰 창과 작은 창들이 쟁쟁하는 소리를 내며 땅을 삼킬 듯 맹렬히 성내고 나팔 소리를 들어도 머물러 서지 않으며 나팔 소리 가운데 힝힝’[혹은 , ’] 하고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장관의 호령과 떠드는 소리를 듣는다.

[26-30]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 . . .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매와 독수리에 대해 말씀하신다.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

그는 욥에게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며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고 물으신다. 매는 작은 것은 25cm 정도이지만, 큰 것은 66cm 정도나 되며 날개를 펴면 날개폭이 119cm나 되는 것도 있으며, 독수리는 매보다 좀더 커서 크기가 보통 80-90cm가 되고 날개폭은 약 2m가 된다고 한다. 또 독수리는 부리가 약 5cm나 되고 끝이 2.5cm 정도 아래로 굽어져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지혜로 이런 새들을 만드셨고 섭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거하며 거기서 움킬 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독수리는 높은 나무 위나 높은 산 절벽이나 바위 끝에 둥지를 만든다고 한다. 독수리와 매는 동물들 중에서 시력이 가장 좋은데, 매의 시력은 사람보다 약 8배나 더 좋아 하늘에서도 쥐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그것들은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으며 짐승의 시체도 먹는다. 예수께서도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그는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도 있다고 말씀하셨다(24:28; 눅 17:37).

사람은 어떤 동물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적고 모르는 것이 많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친히 만드셨고 그것들의 구조와 생리를 잘 아신다. 그는 다른 동물이 접근하기 어려운 험준한 바위들 사이나 동굴에 무리 지어 생활하는 산염소나 암사슴을 만드셨고, 들이나 척박한 벌판을 거처로 삼고 자유로이 사는 들나귀와 들소를 만드셨다. 그는 자기 낳은 알에 대해 무정하지만 경주마보다 빠른 타조를 지으셨고 그 성질과 생리를 잘 아신다. 그는 힘있고 겁 없는 말을 만드셨다. 그는 낭떠러지에 집을 짓는 매와 독수리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창조하셨고 섭리하신다. 온 세상이 창조주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창조자시며 주권적 섭리자이신 하나님 앞에 사람이 지식과 능력이 지극히 제한적인 피조물이며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히 엎드려 우리의 무지와 무능과 부족을 고백하고 오직 그를 경배하고 섬겨야 하며 또 감히 그와 변론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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