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이사야 6장 설교말씀]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사 6:1-13)

기혼샘 2023. 6. 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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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서 사명을 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이사야 선지자처럼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받았다. 우리는 세상에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받았다.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사 6:1-13)

 

하나님 발견 (1-4)

6:1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웃시야는 유다의 제 10대 왕으로 주전 787년에 왕이 되어 주전 735년에 죽었다. 그는 선하고 훌륭한 왕이었으며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 선지자가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그가 하나님을 구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여 유다를 심히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대하 26:5). 그가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입어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방면이 심히 강성하여졌고, 그의 명성이 원방(遠方)에까지 널리 퍼졌다(대하 26:8, 15). 그러나 나라가 부요하고 강해지자 웃시야왕이 마음이 교만하여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께 분향하는 일을 자기가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를 받아 문둥병이 들었고, 죽는 날까지 별궁에 거했다(대하 26:16-23).

웃시야왕의 교만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교만이거나 자기가 높아지겠다는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자 한 데서 나온 교만이었다. 이는 그가 하나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분향한 것이 증명한다(대하26:16).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은 왕이요, 유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이름을 열방에 떨치고 모든 이방이 두려워하던 웃시야왕이 죽었으니 그가 죽던 해는 실로 중대한 해였다. 그러므로 이 때에 유다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염려를 누구나 하게 되었고, 선지자 이사야는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유다의 장래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날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호소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만일 사람의 지혜나 수단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바른 해결이 안 된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높으시고 영적으로 높은 신령한 보좌에 계신다. 하나님은 의와 진실과 사랑과 거룩이 높으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시다. 이사야가 기도하는 가운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발견했다.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하나님께서 성전에 충만하게 임재하여 계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성전에 충만히 계셔서 역사하신다.

6: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기도하는 이사야에게 이것을 보여 주신 것은 하나님이 모든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일을 실천해 나가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염려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스랍은 천사의 일종이다. 스랍은 하나님 보좌 주위에서 하나님께 수종 들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천사이다. 또 이 스랍들은 사람과 하나님을 화목시키는 일을 한다.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스랍이 여섯 날개 중에 둘로는 얼굴을 가린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엄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히 자기 얼굴을 내어 놓을 수가 없고 하나님을 쳐다볼 수 없으므로 얼굴을 가린 것이다.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이것은 겸손함과 자기를 부인하는 태도이다.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내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발을 가리운 것이다. 그 둘로는 날며 이것은 신속히 순종하는 태도이다. 스랍들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순종한다.

우리는 스랍들을 통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한다. 신명기 4:10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고 하였다. 완전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6:9). 다음에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기를 점점 발견해서 부인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더욱 큰 은혜를 받는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없다면 성경을 배우는 것만큼 교만하게 되고, 교만하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 우리가 날마다 자신을 부인할 때에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다. 잠언 22: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하였고, 잠언 18:12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다니엘 4:30-31에 보면 바벨론을 건설한 느부갓네살왕도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하며 소리 세 번 한다가 망했다. 그러므로 언제나 라는 자체가 교만인 줄 알고 항상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또 스랍들이 두 날개로 날아가는 것처럼 민속(敏速)히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성도는 순종을 배우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웃사람에게도 순종해야 한다.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거룩하다는 말을 세 번 한 것은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시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심을 찬송하는 것이다. 성도들도 하나님을 지극히 거룩하신 분으로 알고 그 분을 경외하고 그분 앞에서 벌벌 떠는 자가 되어야 한다.

거룩하다의 원어 (카도쉬)신성한”, “청결한”, “구별된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죄와 구별되어 계시고 피조물과 완전히 구별되어 계신다. 그 분은 영원자존자이시며 선하신 분이시며 창조자이시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군은 천군(天軍) 천사(天使)의 많은 수를 가리키며 여호와는 언약대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는 크신 능력으로 택한 백성을 계약대로 구원해 주시고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세력들은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리듯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시편 19: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하고 하였다(43:7). 하나님의 영광은 우주에 충만하여 어디서나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언약의 말씀대로 반드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그 영광을 나타내신다.

6: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하나님의 임재와 위엄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임재할 때에는 진동하는 일도 있고 또 연기가 충만하게 되는 일도 있다. 모세 때에도 시내 산에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에 연기가 충만하고 진동한 일이 있었다(19:18). 이런 현상들은 하나님께서 그 곳에 임하신 증거로써 나타내 보여 주는 징표들이다.

자기 발견 (5-7)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또 자기를 발견하였다. 하나님을 발견한 다음에는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그 밝은 빛 가운데 자신을 비추어 보면 자기가 너무 부정하다는 것이 발견된다.

입술이 부정한 사람 입술만 더럽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 전체가 다 부정한다는 뜻이다. 이는 속에 있는 것이 입술을 통해(말을 통해)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7: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했다. 우리 인간은 다 전적 부패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자기의 악하고 더러운 것이 발견된다. 로마서 7: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했다.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나님은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인은 그 앞에 감히 설 수가 없다. 공의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6:6-7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단에서 취한 바 핀 숯 제단의 불은 제물을 태우는 불이다. 그러므로 그 불은 제물까지 포함된다. 마태복음23:20에 “그러므로 제 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하고 했다. 제단의 불로 정켤케 했다는 것은 제물로 정결케 했다는 의미이며, 제단의 제물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재물로 정결케 했다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는 소나 양을 잡아 제단에서 태워서 제사를 드렸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그림자로 실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의 제사, 구속의 제사를 가리킨다.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를 이사야에게 적용시킨 것을 가리킨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제사로 죄가 사함 받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제사가 아니면 죄가 사하여질 수 없고, 악이 제하여질 수가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에게 적용될 때(입술에 댈 때) 죄사함 받고 악에서 정결케 된다.

사명 발견 (8-10)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께서 일할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의 정신만 가지고 나아갈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한다. 예수님을 중심한 교회가 우리이며 전세계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모두 우리이다. 우리의 구원 운동을 위하여 희생의 정신을 가지고 나가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주기도문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것은 우리의 세계에 들어가야 아버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 앞에서 혼자 있는 이사야에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겠느냐고 하나님께서 안타까운 중에 물으시는데 이사야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 앞에 자기밖에 없는데 그 말씀을 듣고도 가만있다고 하면 얼마나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이 되겠는가? 그때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대답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사야가 하나님의 사역은 크고 자기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은 하였겠으나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 안 갈 수 없었다. 하나님의 일이 너무 크며 자기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만 생각하고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이요 거역하는 죄가 된다. 비록 자기는 부족하나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친히 하실 것을 믿고 또 하나님이 같이 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에 가야 한다. 예레미야 1:6-7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한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했다. 자기는 아이와 같아서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 하나님만 믿고 나가는 것이 순종이고 믿음이다.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 순종하면 일이 아무리 크고 자기는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여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가겠다고 나서는 것도 잘못이요 인본주의이다.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하겠다는 것도 안 된다. 또 자기 생활 문제 해결을 위해 직업적으로 복음 사역에 나서는 자도 삯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가는 길은 많은 고난과 환난이 있어서 생명까지 내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요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대이므로 돌에 맞아 죽을지 어떤 핍박이 올지 알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주의 구속으로 자기가 정결케 되고 죄에서 자유와 해방을 받아 생명을 얻어 나가는 것을 생각할 때 너무 감격에 넘쳐서 주를 위해서 일하지 아니할 수 없다. 누가 가겠느냐고 할 때 이사야가 단 마음으로 나섰기 때문에 이사야를 통해서 그 시대에 하나님이 해야 될 일을 해 나가셨다.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믿지 않는 자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눈으로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믿어야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알게 된다.

6: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이사야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마음은 점점 둔해지고, 듣는 귀는 점점 막히고, 하나님의 사역을 보는 눈은 점점 감기게 된다는 것이다. 믿지 않고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점점 마음이 둔해지고, 귀가 점점 막히고, 눈이 점점 감기게 되어 더욱 완악해지고 하나님이 점점 멀어집니다.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그들이 고침을 받을 가망성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죄악과 불순종이 너무 커서 회개할 가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작정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작정된 이상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환난 각지(患難覺知) (11-13)

6:11-12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주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까지 불순종하겠습니까 하는 질문이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심판을 받아 성읍들이 다 황폐하여지고 가옥에는 사람이 없이 될 때까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끝까지 불순종하다가 마침내 다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다 백성은 그 후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성읍들이 황폐해지고, 사람이 많이 죽고 포로로 잡혀갔다.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해 줄 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순종치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야 만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불순종하므로 예수님이 심판을 예고하셨는데(23:37-39), 그들이 끝까지 회개치 않고 불순종하다가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게 예루살렘 성이 황폐해졌다. 노아 시대와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음란 방탕으로 기울어져 회개치 않는 이 시대도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야 말 것이다.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십분의 일 역사적으로는 바벨론 군이 유다를 침략하여 모든 유력한 자를 포로로 잡아가고 유다 땅에는 미약한 자만 남게 될 것을 가리킨다. 영적으로는 십분의 일은 십일조인데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하나님의 백성도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1-187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하고 했다. 환난 시대에는 성도들도 많이 죽게 된다. 요한계시록 13:7-10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고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했다(11:33; 10:16-21).

밤나무, 상수리나무는 믿는 성도 중 유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환난 때에는 목사와 장로들을 많이 잡아다가 죽이다. 에스겔 9:6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고 했다. 늙은 자들로부터 죽인다는 것은 장로들로부터 죽인다는 것이다. 환난 때는 이와 같이 택한 백성도 심판을 받아 그 존재가 보이지 않고 다 없어진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거룩한 씨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중생한 성도의 영을 가리킨다(눅 8:11 참조). 대환난 때는 교회도 모이지 못하고 교역자도 다 없어질 날이 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진 영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죽지도 아니하고, 쇠약해지는 것도 없다. 육신의 목숨은 죽일 수 있지만 말씀대로 만들어진 영은 죽일 수 없다. 성도의 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영존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 나가고 말씀대로 자기 영이 자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육체도 다 가고 없어지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대로 자기가 만들어진 것은 영원히 남는다.

[에스라 2장 하나님 설교말씀] 바벨론 1차 포로 귀환 명단(스 2:1-70)

 

[에스라 2장 하나님 설교말씀] 바벨론 1차 포로 귀환 명단(스 2:1-70)

에스라 2장에서는 바벨론에 1차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이다. 구속사 관점에서 보면 스룹바벨과 같은 예수님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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