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레바논 산 하나님 말씀 중에서 레바논 산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레바논 산은 영적으로 성숙시켜주는 산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세상에서 영적 훈련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레바논 산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더 성숙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레바논 산 הר לבנון(하르 레바논)
♣명제: 레바논 산은 영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한 산을 상징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혼탁한 세상에서 영적으로 성숙되어 가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도로 배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됩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고 사울 왕이 등극하기까지의 기간인 340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죽고 장로들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신앙이 이방민족들을 따라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적인 스승이 없어지니 영적으로 올바르게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삿2:11-12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가나안의 농업의 신인 바알들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주었지만 조상들이 섬기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토착민들이 섬기고 있는 다른 신들에게 절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כעס(카아스 3707 와우계속,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격노하게 하다, 격분시키다, 기분이 언짢아지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영적 스승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이방의 신들인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불편해지고 언짢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경고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회개는커녕 우상 앞에 더 절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은 격분하셔서 끝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겼던 이방신들의 민족들을 통하여 고통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죽자 마음에 즉시로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념으로 바알이 자신들의 농사를 잘 짓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와우계속법과 히필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나의 신념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줄 알고 내 안에 탐욕의 우상과 정욕의 우상으로 가득 채워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화를 유발하는 신앙생활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이방 민족들을 쫓아내지 않는 것입니다.
삿2:20-2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사가 죽고 난 후에는 곧바로 우상을 섬기고 그들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시는’ יסף(야샤프 3254 동사, 히필,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더하다, 첨가하다, 넘어가다, 많아지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밖에 없는 것을 더 많이 주어서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니까 고통이 더 배가가 되고 없는 저주도 더 첨가하여 이방 백성들로부터 고역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어가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백성들로부터 모든 곡식도 빼앗기게 되고 평야는 잃고 산으로 올라가 살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있는 이방 백성들을 다시는 쫓아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쫓아버리지 않는데 중요한 것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쫓아버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히필형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하려 함이라’ נסה(나사 5254 동사, 피엘, 부정사연계형) 시험하다, 밟아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는데 이방 민족들을 통하여 잠시 밟아보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짓밟혀도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계속해서 이들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하시는 시험입니다. 이미 마음에 시험하시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이 시험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하나님을 깨닫고 섬기기 위해서 하시는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들을 위해서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ל(라메드) ~을 위하여,라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피엘형을 사용하여 완전하게 이 시험을 통과하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시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님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일이 잘되어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일이 더 크게 느껴져서 주의 일은 하찮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나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주님의 일을 무시하고 주일을 무시하고 세상의 일이 더 잘되고 있다면 생각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것을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환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이방 민족들을 남겨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큰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훈을 위하여 남겨두신 것입니다. 어려움이 없이 자란 세대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잘나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도 이런 것입니다. 전쟁을 모르고 산 세대들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는데 쉽게 된 줄 알고 있으며 이렇게 잘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전쟁의 고통을 겪고 이룬 경제적 발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교훈하시기 위하여 고통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삿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고 사는 세대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가르치기 위하여 이방 민족들을 남겨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르쳐’ למד(라마드 3925 동사, 피엘, 부정사연계형) 훈련시키다, 숙달시키다, 교훈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알지 못하고 고생도 없이 자란 세대들에게 훈련을 시킬 목적으로 이방 민족들을 쫓아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다음 세대들은 몸에 숙달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절대 먹고살 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교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단어 앞에 ל(라메드) ~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현재 내가 아무 고통도 없이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고 건강도 좋고 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은 교만함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어려움을 모두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하나씩 남겨두시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라도 문제를 남겨두시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영적으로 타락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고 세상을 따라갈 수 있으며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남겨둔 족속들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무엇일까요?
삿3: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하나님은 강력한 철제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레바논 산에 거주하고 있는 히위 족속들을 남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보면 하나의 문제일 수가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까지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블레셋 족속’ פלשתי(펠리쉬티 6430) 블레셋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לש(팔라쉬 6428) 구르다, 뒹굴다, 통곡하다, 애곡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민족들을 남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우상들에게 절하면 블레셋 민족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삶이 고통을 당하고 기막힌 웅덩이에 떨어지는 억울함을 당하여 땅을 구르면서 애통할 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블레셋 민족은 철제 무기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고 삼손은 블레셋 민족들에게 눈이 뽑히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들도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한다면 상상하지 못하는 억울함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막힌 사연에 연루가 되어 결국은 땅을 치면서 후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영적으로 더 성숙한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으면 이런 블레셋과 같은 존재들은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 כנעני(케나아니 3669) 가나안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כנע(카나 3665) 낮아지다, 항복하다, 뉘우치다, 엎드러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고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 우쭐대며 자만하는 자들은 가나안 족속들과 같은 자들을 통하여 교만을 낮추시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게 만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과 같은 문제가 임하게 되면 하나님께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납작 엎드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께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교만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자신이 서있다고 하다가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미리 가나안 족속들과 같은 문제들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서 엎드려 낮아진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백기를 드는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나의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시돈 족속’ צידני(치도니 6722) 시돈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צוד(추드 6679) 함정을 놓다, 사냥하다, 엿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돈 족속들을 남겨두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음의 의를 따르지 않으면 이렇게 세상의 사냥꾼과 같은 자들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니므롯과 에서는 사냥꾼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힘만 믿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좇아가는 자들이 바로 사냥꾼의 올무에 걸려 죽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감각이 무뎌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이단들이 쳐 놓은 함정에 걸려 영적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영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혼의 사냥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들도 지옥의 불 못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시돈 족속들을 바라보면서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무딘 영적 감각들을 깨워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이런 사냥꾼들이 쳐 놓은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위 족속’ חוי(히비 2340) 히위 족속,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וה(하바 2331) 숨을 쉬다, 선언하다, 보여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위 족속들을 가나안 땅에 남겨두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방신에게 절을 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호흡이 단절된 자들에게 숨을 쉴 수 있도록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못하도록 히위 족속들을 통하여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히위 족속들의 고통을 통하여 다시는 영적으로 타락하지 못하도록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하여 히위 족속들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교회를 떠나 세상과 연합하고 있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것입니다. 육으로는 숨을 쉬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한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잘 풀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적으로는 무엇인지 모르게 답답한 것입니다. 이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숨을 쉬지 못해 답답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빨리 주님의 품 안으로 회개하여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도 돌아오지 않으면 히위 족속들과 같은 문제들이 나의 영혼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레바논 산에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이방 민족들을 남겨두셨고 레바논 산을 통하여 영적으로 신앙을 성숙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레바논’ לבנון(레바논 3844) 레바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לבן(라반 3835) 하얗게 되다, 제거하다, 순결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레바논 산은 사시사철 눈으로 덮여 있는 산입니다. 이 눈이 녹아서 갈릴리 바다로 흐르고 요단강을 흘러 사해까지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레바논 산에 유명한 것은 백향목입니다. 이 백향목은 나무들 중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목재입니다. 이것을 솔로몬은 성전을 지을 때에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레바논 산은 영적으로 죄를 지었던 자들을 다시 말씀으로 회복시키는 산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산의 이름 속에 이미 하얗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바논 산은 영적으로 죽었던 자들을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이 순결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가나안 땅에 남겨둔 족속들을 통하여 영적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얗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우상들을 따라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이방 족속들을 통하여 훈련시키시고 가르쳐서 죄악의 길로 갔던 것들을 제거하시고 올바른 의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결한 신부로서 신랑을 기다리는 자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레바논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레바논 산은 항상 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깨끗한 생수를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나의 죄악이 사라지고 깨끗해져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레바논 산은 아름다운 백향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속죄받고 순결해졌다면 하나님의 교회에서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매일 같이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방해꾼만 되어서는 안 됩니다. 훌륭한 백향목을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 안에서 받은 물질들을 교회에서 꼭 필요한 곳에 제공하여 교회가 든든하게 서 갈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합니다. 꼭 물질만이 아니라 나의 달란트를 교회에서 사용하여 봉사하는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진짜 레바논 산에서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죄가 씻김 받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말로만 할 때가 있습니다. 말로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몸으로 실천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에 진짜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레바논 산을 통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더 깨끗해지고 속죄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께 충성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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