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브라임 산 하나님 말씀 중에서 에브라임 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에브라임 산은 안식의 산을 의미합니다. 에브라임 산은 죽음과 연관이 있고 여호수아와 요셉과 엘르아살이 묻힌 곳입니다.
에브라임 산 הר אפרים(하르 에프라임)
♣명제: 에브라임 산은 평안히 잠든 안식의 산을 의미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도 때가 되매 천국에서 영원히 안식하게 된다.
에브라임 산은 죽음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여호수아와 요셉과 엘르아살이 묻힌 곳입니다. 에브라임 산은 이 세상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후에 평안하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안식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모두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으로 불러주셔서 영원히 안식을 누리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가나안 땅을 소망하면서 40일 정탐할 때에도 믿음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죽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신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모세는 광야 1세대들을 모압 평지까지 인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모세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120세의 나이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광야 2세대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모세로부터 안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안수를 통하여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지혜의 영을 충만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통하여 권능을 주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의 안수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가 모세로부터 안수를 받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자신의 권리를 여호수아에게 이양해 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영적 지도자로 인정해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 스스로 하나님께 응답받았다고 고집을 피우며 스스로 인정하는 이런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인간에게만 인정을 받았다고 우겨도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들에게 인정을 받는 지도자들이 되어 세상에 나가서도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에는 쉬운 땅이 아닙니다. 많은 정복 전쟁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 길갈에 도착을 하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지 못하도록 말씀을 제정하였습니다. 여호수아 말년에 세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가나안 땅에서는 절대 우상을 섬기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수24:20-21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여호수아는 광야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평했던 광야 1세대들이 광야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절대 이들만큼은 우상을 섬기지 못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이들의 신앙이 변질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을 너희에게 내리신 후에라도 우상을 섬기면 다시 재앙을 내리시고 멸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을 내리신’ יטב(야타브 3190 동사, 히필,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안전하다, 복을 누리다, 유익하다, 빛나다, 아름답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내려주셨는데 가나안 땅에서 모든 족속들이 보기에 빛나며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우상을 섬기고 이방 신을 각 가정에 두게 되면 하나님은 그 즉시 마음을 바꾸시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이방 족속들을 통해서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우쳐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간사하여 평안이 찾아오고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복을 내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않고 눈에 보이는 우상의 신을 찾게 마련입니다. 마음이 주님을 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쫓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사사시대를 살게 됩니다. 사사시대에는 계속해서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시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농사를 짓는 지역이기 때문에 광야의 삶과는 다릅니다. 이방 민족들은 농사의 신으로 바알을 섬겼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똑같이 바알 신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지금 하나님이 완벽하게 축복을 가나안 땅에서 주셨다 하더라도 다시 마음을 바꾸셔서 주셨던 축복을 모두 빼앗아 버리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히필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복을 주시고 빼앗을 권세가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생사화복의 주권자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교만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면 하나님은 주셨던 축복을 다시 거두시게 됩니다. 마음의 평강이 사라지고 안전하게 사업을 보호해 주셨던 것들에서 주님의 보호의 손길을 거두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꼼짝없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손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임하여 있기 때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너희를 멸하시리라’ כלה(칼라 3615 동사, 피엘,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결심하다, 결정하다, 멸망당하다, 깨어지다, 간절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신을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은 그냥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축복을 다시 거두시기로 결심하시고 결정하여 선고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이 완전하게 결정되었다면 이제는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결정하기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 이미 마음에 결정하시면 그대로 실행에 옮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심판당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섬겼던 우상들을 하나님은 모두 깨버리시고 이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간절히 섬겼던 것을 하루아침에 모두 꺾어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멸망시켜 버리시는 것입니까? 우상을 섬기면서 따라갔던 자들을 한 명도 용서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세웠던 모든 사업들과 가정들을 파괴시켜 버리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멸망에서 빠져나올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피엘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행위를 따라가는 자들은 반드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다시는 인간을 우상으로 섬기는 그런 교리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서 영광 받기 위하여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이방 민족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을 섬김으로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나를 선택하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배반하는 못된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배반하는 일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수24: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광야 2세대들을 모아놓고 이런 언약을 제정하고 있을까요? 세겜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하란 땅에 있을 때에 처음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여 들어간 곳이 세겜입니다.
창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의 세겜에서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세겜 땅은 이때부터 가나안 땅의 중심지가 되며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의 중심지가 되는 곳입니다. 여호수아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으로 불러놓고 절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언약을 세우는 것입니다.
‘세겜’ שכם(셰켐 7927) 세겜, 어깨,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כם(샤캄 7925) 부지런히, 일찍이,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세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겜에 온 것처럼 너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 어깨에 메고 항상 부지런히 새벽 일찍이 일어나 주님을 먼저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는 절대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상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어깨에 메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그것도 부지런히 일찍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더럽고 추악한 세상에서도 우상을 좇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있을 때에 세상에서도 우상에게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수24: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선포했던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소 옆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웠습니다. 여기에서 큰 돌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운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책에 기록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주시는 교훈입니다. 바로 나의 마음 판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새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큰 돌을 가지고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웠습니다. 성경에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증표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상수리나무’ אלה(알라 427) 상수리나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יל(아일 352) 우두머리, 기둥, 영웅, 용사,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큰 돌을 가지고 상수리나무 밑에 세운 것은 믿음의 우두머리가 되시며 세상의 모든 기초로서 기둥이 되시고 싸움에 능하신 분이 말씀대로 행하면 지키시고 보호하시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어 말씀대로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 심판을 감행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상수리나무는 하나님의 약속이면서 항상 상수리나무에서 나타나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항상 상수리나무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제단을 쌓을 때에도 상수리나무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권세 있으시며 싸움에 능하신 용사이시며 이 세상의 기둥이 되시고 하나님의 권세 위에 아무도 없으신 세상의 주관자이신 최고의 우두머리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분에게 돌을 세워 증거를 삼고 있는 것입니다.
수24: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돌이 자신들에게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돌이 말씀을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돌이 증거가 되어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인하지 못하도록’ כחש(카하쉬 3584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2인칭, 복수) 거절하다, 거짓말을 하다, 인정하지 않다, 속이다, 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운 돌이 증거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 말씀대로 살 것을 맹세하고 말씀을 들은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금방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주님을 부인하고 자신의 유익에 따라 주님을 속이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증거가 되어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일들이 마음 가운데 생각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 하나님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인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여 교묘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말씀을 자신의 유익에 맞추어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금 맹세한 이 말씀은 절대 부인할 수 없고 속이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살아갈 동안 계속해서 이렇게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피엘형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신앙의 안전장치는 무엇입니까? 돌입니다. 이 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이 돌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깨닫게 되고 기억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서원한 기도를 잊지 않게 하시고 꼭 지키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증거가 되리라’ עדה(에다 5713) 증거, 교훈, 증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회중, 교회,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는 반드시 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돌이 증언이 되고 증거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에 이 돌이 증거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섬기고 있는 회중이 모이는 교회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가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강단에 반드시 이 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돌이 많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주는 교훈이 되고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돌이 강단에서 사라진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타락하게 될 것이며 자신들의 소견대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강단에서 선포될 때에 이것이 바로 돌을 제대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난 후에 110세에 죽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할 일이 다 끝나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부르시는 것입니다.
수24: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을 고취시키고 난 후에 110세에 죽게 됩니다. 성경에는 에브라임 산지에 묻힌 여호수아와 요셉과 엘르아살이 있는데 여호수아와 요셉이 죽은 나이가 똑같습니다.
창50: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요셉도 애굽에서 110세를 살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장사 지내게 됩니다. 요셉은 자신이 죽으면 가나안 땅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요셉의 유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나와 세겜 땅에도 묻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요셉의 나이 110세에 불러 가신 것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00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0은 책임, 질서의 완전, 세상만수,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을 지키면서 책임 있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100세에 세상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원한 안식으로 초대되어 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것을 통하여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명을 책임감 있게 감당하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원한 쉼을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시기 위하여 천국으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과의 끈을 놓는 육적 죽음인 것입니다.
그럼 여호수아가 묻힌 곳이 어디입니까? 에브라임 산 딤낫 세라이며 이곳은 가아스 산 북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24:30 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이었더라
‘딤낫세라’ תמנת חרס(팀나트헤레스 8556) 딤낫세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מנה(마나 4487) 조사하다, 계수하다, 작정되다, 지정하다, 예비하다, 라는 뜻과 חרס(헤레스 2775) 태양, 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딤낫세라에 묻힌 것을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모든 일생을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 살아있을 동안에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잘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는 사람을 평가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딤낫세라에 묻게 하신 것은 이미 하나님의 작정이 있었고 장사할 장소를 예비하여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일들과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함락했던 일들을 조사하여 계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계수하시고 끝내셔서 평가하신 후에는 영원히 안식하는 천국에서 태양처럼 빛나게 상을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죽어서 하나님도 인정을 하였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에게도 인정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신앙생활을 하는 도중에는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마치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는 하나님은 나를 평가하게 됩니다. 나의 신앙의 일대기를 기억하시고 조사하시고 잘한 일과 못한 일을 계수하셔서 마지막 날에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면서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진리대로 오게 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가아스’ געש(가아쉬 1608) 가아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עש(가아쉬 1607) 진동하다, 떨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수아가 딤낫세라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나서 이곳은 가아스 산이라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아스 산을 통하여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수24: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수아가 죽어서 딤낫세라의 가아스 산에 묻혔지만 여호수아를 아는 살아있는 장로들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가 가아스에 묻힌 것은 여호수아의 육신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가 교훈했던 하나님의 말씀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떨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려고 해도 여호수아가 가르쳤던 복음의 말씀이 생각이 나고 가슴을 울리게 하여 죄를 짓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아스에 묻혔다는 것은 그의 영적인 힘은 아직도 남아서 영혼들을 진동시키고 죄를 짓는 자들은 두렵고 떨게 한다는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이 말씀했던 것들과 업적들은 후대들에게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어 배우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조상 중에 훌륭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조상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게 되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의 몸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셔서 새로운 몸으로 바뀌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말씀들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려고 하면 주님은 내 마음속에서 말씀으로 두렵고 떨게 만들어 죄악의 길로 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딤낫세라와 가아스 산이 있는 곳은 에브라임 산지입니다. 에브라임 산지는 요셉의 아들들의 몫이 되어 세겜은 그 중심지가 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אפרים(에프라임 669) 에브라임,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רה(파라 6509) 번성하다, 결실하다, 창대하다, 무성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에브라임산지에 묻힌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한 명이 죽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이 세상에서 많은 영혼들이 번성하여 결실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덤에 들어갔다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많은 무성한 가지들이 뻗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 한 사람인 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에브라임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삶이 끝날 때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세상의 것을 쫓아가고 있지만 이것도 헛된 것이라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한 평생을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광야의 고생스러운 생활을 모두 지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탄압도 받았습니다.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하여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련하고 멍청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부르시면서 에브라임 산지에 묻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모든 한 평생을 지켜보시고 있었으며 여호수아를 영원한 안식의 자리에 앉게 하시려고 때가 되매 부르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값진 인생을 살았습니까? 육신적으로는 고통의 연속이었을지는 몰라도 한 평생을 주를 위해 살았던 믿음의 조상 여호수아 이것은 바로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젊어서 그렇게 좋을 것 같던 물질과 명예를 쫓아다녔지만 늙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입니다. 썩을 것을 따르지 말고 영원한 복음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에 이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미련 없이 갈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에브라임 산은 나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는 산입니다. 열심히 세상의 명예와 재물과 헛된 욕망을 잡으려고 달리고 있다면 이제부터 에브라임 산에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천국을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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