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6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항변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을 하게 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주님이 죽으면 자신들은 모든 것이 헛된 수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육적으로 영광을 받아야 하는데 주님이 죽으면 그 모든 영광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적인 생각을 하는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 믿는 것일까요? 세상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믿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영적인 복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시민권자도 되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일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여 하나님께 칭찬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항변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 16:20-28
요절: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주제: 사순절 기간 자기 스스로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자!
사순절 기간입니다. 지난 주간에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닮는 생활을 실천하셨나요? 오늘도 계속 예수님의 품성을 본받는 말씀을 묵상하도록 합니다.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단 지파의 땅인 가이사랴 빌립보(오늘날 “반야스”)에 가셨습니다. 이 지역의 북쪽에 헐몬(헤르몬)산이 있는데 오늘날 시리아 땅입니다. 이 산은 이스라엘의 백두산으로 정상이 높아 눈이 늘 있습니다. 이 차가운 물이 지하로 내려와서 땅 위로 뿜어 올라오는 곳이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이곳에는 산림의 신(“Pan”신)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처럼 제자들과 쉬시면서 그들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Whom do men say that I the Son of man am?” 하시니 이들이 대답하되,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밥티스마[세례/침례] 요한이라 하며, 어떤 이들은 엘리야, 예레미야나, 혹 대언자 중의 한분이라 하나이다" 이에 주님께서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But whom say ye that I am?”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께서 바로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마 16:13-16) 만약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Whom sayest thou that I am?”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구세주이십니다. 위대하신 성인이십니다. 훌륭하신 선생님이십니다.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다정하신 친구이십니다. 존경받는 상담자이십니다 등 다양한 대답을 할 것입니다. 수가성에서 만난 그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을 그저 유대인의 청년으로 알았다가, 대화할수록 유대교 랍비, 대언자, 그리고 마침내 메시아(=그리스도)로 고백하며 믿을 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받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매일 매 순간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대답에 흡족해 하신 주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바요나[Barjona, 아람어로 ”요나의 아들“=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육체와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말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this rock)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장악하지(prevail)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7-19) 하셨습니다.
일찍이 주님께서 시몬을 처음 만나셨을 때 그의 별명을 ‘게바’(아람어로 ‘반석’)라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을 메시아로 고백한 신앙고백을 “반석”으로 불러 주시고 “주님께서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이 반석 위의 교회를 지옥의 문들이 결코 장악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반석 위에 있으면 천국 열쇠들(복수임, the keys)을 선물로 받게 되는데,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는 하늘과 땅을 잇는 천국 열쇠입니다. 땅에서 용서하지 못하면 하늘 문이 잠겨있으며, 땅에서 풀면 하늘 문도 열립니다.
마태복음 18:18-20에 보니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시면서 용서에 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 18:22)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이번 예루살렘 방문 때 일어날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을 권면하사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마 16:20-21)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꾸짖어(rebuke) 말하되, “주님, 절대 그리하시면 안됩니다.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offence)이로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2-23) 고 꾸짖으셨습니다. 조금 전에는 베드로가 하나님 이버지의 도우심으로 주님을 메시아로 고백하여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였는데,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만류하니 바로 사탄이 역사하여 이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늘 우리를 넘어뜨리며 주님을 대항하게 합니다.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다가도 언제든 사탄의 침투를 받아 복음사업에 방해하는 일에 나서기도 합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언급하실 때 사탄이 베드로의 마음에 찾아와 주님의 구원 사역을 저지하기 위해 충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늘 영적으로 깨어있지 아니하면 이런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런 대화가 있고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누구든지 그의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찾으리라 For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and whosoever will lose his life for my sake shall find it.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생명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 16:24-28)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이번 사순절 기간에 주님만 따라가는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라면 매일 자기 스스로를 부인하고,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 다른 목적을 따르지 말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341장
1.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갑니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세상에서 부귀영화 모두 잃어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복을 얻겠네
2. 주도 곤욕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세상 친구 간사하나 예수 진실합니다
예수 나를 사랑하사 빛난 얼굴 보이면
원수들이 미워해도 염려할 것 없겠네
3. 내가 핍박당할 때에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수록 많은 위로받겠네
주가 주신 기쁨 외에 기뻐할 것 무어냐
주가 나를 사랑하니 기뻐할 것뿐일세 아멘
찬송가 461장에서
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그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
3.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주께 네 영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4. 이런 일 다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바울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자기를 포기하고 부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예수님만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자기를 비우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 은그릇, 나무나 질그릇이 모두 있었습니다. 찬장을 채운 귀한 그릇들은 보암직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것은 금 그릇, 은그릇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라고 말씀합니다. 귀하게 쓸 그릇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질과 형태가 아닙니다. 깨끗이 비워졌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담기 위해 선행해야 할 일은 비우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비우는 데서 끝이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4~26절에서 빈 집의 위험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한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으려고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내가 전에 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르러 보니 집이 깨끗하게 청소돼 있고 말끔히 정돈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영은 나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들을 일곱이나 데리고 와 그곳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결국 그 사람의 마지막 상황은 처음보다 훨씬 더 나빠진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깨끗하게 비운 것만으로는 만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워진 곳을 좋은 것으로 채워 넣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다른 것이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비어진 자아 속에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채워 넣어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과 제자 간에 이런 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행하고자 하는 대로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두어라. 나는 너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너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네가 느끼는 것도 인간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제자의 제자: “주님, 주님의 말씀이 과연 옳습니다. 제가 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걱정보다도, 오히려 저에 대한 주님의 관심과 염려가 더욱 크신 것을 압니다.(마 6:30-32) 저 자신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 드리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도움을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벧전 5:7 ). 주님께서 제게 행하시는 모든 일은 다 저에게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은혜를 기다립니다
주님: “아들아]딸아], 나는 사람이 환란 가운데 처했을 때, 그를 환란에서 구해내주시는 하나님이다(나훔 1:7). 네가 괴로울 때는 언제든지 내게로 오너라. 네가 하늘의 위로를 빨리 받지 못하는 것은, 특히 네가 나에게 기도하기를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너는 세상 것들 속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참된 소망은 오직 나에게만 있음을 깨닫기 전에는, 이것들은 너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며 유익한 것도 없다. 내게 무슨 불가능한 것이 있으며, 내가 어찌 말만 하고 실행치 못하는 사람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너의 믿음은 어디 있느냐? 고난이 왔을 때 굳게 서서 대항하라. 인내로써 견디며 용감 하라. 때가 되면 하늘의 위로가 네게 이를 것이다. 기도하며 실망치 말고 기다리라. 내가 와서 너를 고쳐주고 고통 가운데서 구해주리라(마 8:7). 마귀의 유혹을 받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장차 올 일에 대하여 걱정을 하는 것은 너에게 근심만 더할 뿐 아무 유익이 없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 6:34). 있을지도 모르는 장래일로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익한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믿고 마음에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요 14:1,27). 내가 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그때에, 나는 네 옆에 아주 가까이 있음을 기억하라.
내가 네게 준 위로와 은혜는 다 내 것이요, 내가 그것을 도로 찾아가는 것도 네 것이 아니니, 각종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 (약 1:7)은 위로부터 나에게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네게 무슨 시험이나 고통을 준다 할지라도, 원망하거나 낙심하여 용기를 잃지 말라. 나는 순식간에 네게서 이 고통의 짐을 벗겨줄 수가 있고, 네가 근심하는 것을 기쁨과 환희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사 61:3)”
*자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름에 대한 말씀도 묵상합시다
주님: 아들아, 네가 너 자신을 포기하면 포기하는 그만큼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리라. 외적인 것을 탐하는 마음을 포기하면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내적으로 너 자신을 포기해야만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으리라. 네가 나의 뜻 안에서 아무런 반박이나 원망 없이 완전히 너를 포기할 줄 알기를 원하노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길이 없으면 다닐 수가 없고, 진리가 없으면 깨달아 알 수가 없고, 생명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느니라. 나는 네가 따라야 할 길이요, 네가 믿어야 할 진리요, 네가 소망해야 할 생명이니라. 나는 멸망하지 아니할 길이요, 그릇됨이 없는 진리요, 영원한 생명이니라. 나는 가장 바른 길이요, 가장 높은 진리요, 참된 생명이요, 행복스러운 생명이며, 지음 받지 아니한 생명이니라. 네가 만일 내 길에 머물러 행하면,“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를 자유 하게 할 것이니”(요 8:31-32), 영생을 얻게 되리라.
네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켜라(마 19:17). 네가 진리를 알기를 원하면 나를 믿어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마 19:21). 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면 자기를 부인해라. 축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면 현세의 삶을 천히 여겨라. 천국에서 높은 자리를 원하면 이 세상에서 너를 낮추어라. 나와 더불어 다스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면, 나와 더불어 십자가를 져라.. 십자가의 종이 된 자만이 축복의 길, 참 빛의 길을 걸으리라.“
찬송 458장
1.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주가 위로해 주시리라
아침해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후렴> 참 기쁜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2.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로써 갈한 심령에 힘을 얻고
주가 언약한 말씀을 기억하고 너 십자가 지고 가라
3. 네가 맡은 일 성실히 행할 때에 주님 앞에서 상 받으리
주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너 십자가 지고 가라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에 대해 묵상합니다
선생님의 말씀: 많은 사람들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는 이 말씀을 따르기 어려운 모진 말씀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십자가에는 구원이 있고, 십자가에는 생명이 있고, 십자가 에는 원수의 공격을 막는 병기가 있으며, 또 십자가에는 천국의 축복과 기쁨이 있다.
그런데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 십자가 지기를 왜 두려워하느냐? 십자가가 아니면 영혼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영생의 소망도 없다. 그러니 너는 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라. 그러면 영생의 길을 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몸에 십자가를 지시고 너를 앞서 나아가시어(요 19:17), 그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이는 너도 예수님과 같이 네 십자가를 지고, 그 위에서 네 생명을 기쁘게 바치라고 하신 것이다. 네가 주님과 더불어 죽으면, 주님과 더불어 살 것이다. 주님과 더불어 고난을 받으면, 주님의 영광에 너도 동참할 것이다. 보라, 거룩한 십자가의 길 밖에는, 생명으로 인도하고 참다운 마음의 평화로 인도하는 다른 길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네가 불평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면, 십자가가 너를 지고 네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리고 갈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지고 간다면, 네게 짐이 될 것이요, 또 너 자신을 괴롭게 할 것이다. 한 십자가를 내 버리면 의심 없이 다른 십자가를 만날 것이며, 아마 그것은 전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주님께서도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6) 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너는 어찌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 외에 다른 길을 찾느냐? 사람이 구원을 얻는데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고 좋은 것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말씀으로라도 가르쳐주시고 그렇게 사는 것을 보여 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 16:24)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이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 14:22).
150장(통 135장)
1.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후렴)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2. 멸시 천대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도다
귀한 어린양이 세상 죄를 지고 험한 십자가 지셨도다
3.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내 죄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이라
4. 주가 예비하신 나의 본향 집에 나를 부르실 그날에는
영광중에 계신 우리 주와 함께 내가 죽도록 충성하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 따라가기 위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법을 배워 실천합시다. 그다음은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배워 실천합시다.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십시다. 십자가의 고난 후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는 경건의 생활을 매일 매 순간 실천합시다. 아멘.
'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14장 성경말씀] 오직 예수님!(요 14:1-6) (0) | 2021.06.03 |
---|---|
[마태복음 산상수훈 설교] 화평하게 하는 사람의 복(마 5:3-12) (0) | 2021.06.02 |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주일강해설교] 온유한 사람(마 5:3-12) (0) | 2021.05.31 |
[요한복음 설교말씀] 베드로의 고백 주님을 사랑하나이다(요 21:15-17) (0) | 2021.05.28 |
[히브리서 12장 강해설교말씀] “예수님은 소망의 완성”(히 12:1-29) (0) | 2021.05.24 |
[요한계시록 14장 강해설교말씀] "하늘의 예배와 새 노래”(계 14:1-20) (0) | 2021.05.18 |
[요한삼서 강해설교말씀] "범사 형통과 강건 축복”(요삼 1:1~14) (0) | 2021.05.16 |
[성령강림 주일설교말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행 1:1-8) (0) | 2021.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