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성탄절 주일 복음 설교말씀] 성탄절 메시지(누가복음 2:10-14, 사 62:1-12)

기혼샘 2021. 12. 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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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주님이 이 땅에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여 드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인데 죄인과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없는 분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성령에 잉태되어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번 성탄절을 통해서 주님이 나를 위해 탄생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제 목: 성탄절 메시지

 

설 교 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누가복음 2:10-14, 사 62:1-12

 

요    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 사람들에게는 선한 뜻이로다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good will toward men.”  (눅 2:14)

주    제:  최초의 성탄 메시지인 평화의 소식을 온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하자

오늘은 구세주 강림절(Advent=coming) 넷째 주일과 동시에 성탄주일로 지킵니다. 강림절 첫째 주일은 희망(Hope)을 뜻하는 보라색 초[초림 예언의 초]를 켰습니다. 둘째 주일은 평화(Peace)의 연보라색 초[베들레헴의 초]를 켰습니다. 지난 주일은 기쁨(Joy)의 분홍색 초[목자들의 초]를 켰습니다. 오늘은 사랑(Love)의 흰색 초[천사들의 초]를 켜며, 내일 성탄절에는 그리스도의 촛불(가운데 흰색)을 켭니다. 이사야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 촛불을 은총의 상징으로 밝힙니다. 평강의 왕으로 찾아오시는 우리 주님을 영혼의 등불을 켜고 깨끗한 마음으로 맞아들이게 하옵소서, 곧 오소서 임마누엘!”

 

Happy Birthday to Jesus! (축 탄일)  어떤 학생은 기쁘다 방학되었네! 노래하지만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Joy to the world the Lord is come) 찬송하며 성탄절을 축하합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강림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날입니다. 올해 뜻깊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심령 위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기원합니다.

 

성탄절을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기독교계에서도 이제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성탄절의 기원이 로마교의 동짓날 태양의 생일이라느니 바벨론 종교와 연관되었다느니 가톨릭의 그리스도를 위한 미사(Christ+Mass=Christmas) 이느니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내에서도 성탄절을 지키는 분위기가 과거와는 매우 한산해졌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실, 선물, 장식, 캐럴, 연극, 행사, 나눔과 봉사 등 성탄절 분위기가 한국에서 너무 죽어버렸습니다. 오히려 부처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불교가 사월초파일을 더욱 성대 하게 지키며 선전합니다. 불교의 정신은 자신이 해탈하여 열반 세계에 들어감으로 부처가 되겠다는 것인데, 오늘날 불교는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를 예불하고 그를 교주로 모시는 불교는 본래 정신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사건 기록이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나오고 300번 이상 구약에서 약속하신 초림의 예언을 중요하게 여기며,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을 축하하는 좋은 전통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12월 25일은 325년 니케아 교회회의에서 정한 절기로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9월 말이나 10월 초 창조절 전후에 태어나실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을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가 로마의 세계를 자랑하기 위해 병력, 조세, 행정을 위해 인구 센세스를 명하여(눅 2:1-2) 로마와 그 속국들의 모든 백성들이 호적을 한 것이 로마 기록에도 나옵니다.

 

요셉과 약혼녀 마리아가 베들레헴을 찾은 것이 가을이나 겨울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처음에는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켰고(동방교회에서는 지금도 이날을 성탄절로 지킴) 니케아 회의 결정 후 지난 1700년을 성탄절을 지켜온 것을 굳이 그만 지키자고 할 필요가 있나요? 개인 생일잔치, 지교회 설립기념일을 지키면서 성탄절을 축하할 필요가 없다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도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은 성탄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성탄절이 연말과 함께 있고, 성탄절 후 8일 만에 아기 예수님께서 할례 받으신 날이 1월 1일 세상 달력으로 한해의 출발된 결정을 존중합니다. BC=Before Christ(주님께서 오시기 전=주전), AD=Anno Domini(주님께서 오신 후=주후)를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산국가 이든 무신론자든 이슬람 국교든 불교국가 든 모든 방송언론에서 모두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전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아시면서 굳이 성탄절 지키는 것이 잘못된 것 같이 운운하시면 전도와 선교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태중에 계시는 메시아의 해산일이 임박했습니다. 그러나 머물 호텔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짐승들의 우리로 사용한 자연 동굴에서 출산을 해서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세상에 가장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들녘에서 밤새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 게 천사들이 나타날 때 주님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목자들이 크게 무서워했습니다(눅 2:4-9)

 

천사가 말하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0-12) 최초의 복음을 천사가 전합니다. 구세주께서 강림한 소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the best tidings of great joy)인데 당시 좋은 소식이란 왕의 가문에 왕자가 태어난 소식,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 왕이 마을에 방문한다는 소식인데 하나님께서 지구 땅에 심방하신 일은 최고의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일어나신 부활의 소식과 더불어 성탄의 소식은 기쁘고 기쁘도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입니다.

 

최초의 캐럴은 천군 천사들의 합창입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요, 사람들에게는 선한 뜻이로다 하니라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good will toward men” (눅 2:13-14) 우리말에 天地人(하늘, 땅, 사람)과 같은 온 우주에 예수님의 탄생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사람에게는 선한 뜻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캐럴이며 복음입니다.

 

성탄절에는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탄생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동방박사들도 헤롯 궁전에서 나와 별빛을 다시 보는 순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잃었다가 다시 찾을 때의 기쁨과 같습니다.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들이 전하여준 기쁜 복음의 소식을 듣고 말구유로 찾아가 그 되어진 일을 보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내가 선물을 줄 때 기쁩니다. 더 기쁜 것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 그 선물로 인하여 행복한 모습을 보면 더 기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최대의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그 선물을 받고 기뻐 날뛰는 모습을 보시면 더욱 기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62장에 나오는 대로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헵시바(나의 기쁨이 네게 있도다)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에 우리가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로다" 말씀대로 기쁨 가운데 지내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기쁨을 앗아가는 스트레스, 연말의 쌓인 고지서들(bills), 새해 계획 중 생기는 이견들, 우울하게 하는 사건들로부터 벗어나 오늘은 그야말로 Merry Christmas로 맞이합시다.

 

구약은 예수님의 초림을 예언하는 책입니다. 300여 군데 이상에서 메시아의 강림을 예언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미가서 5:2에서 가장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 5:2) 이 베들레헴이란 곳은 다윗 왕의 고향입니다. 다윗이 어릴 때 양 떼를 돌보며 지낸 곳이 바로 베들레헴 들녘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새로운 다윗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곳에서 다윗은 저 유명한 시편 23편을 지어 부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히브리어로 ‘로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돌보는 목자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정복한 분이며 천하무적의 대제국을 건설한 왕이며 특히 하나님의 눈에 선하게 나라를 통치한 분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다윗은 이상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주님의 족보를 기록한 마태복음에 보아도 왕이라고 칭호를 붙인 사람은 다윗밖에 없습니다.(마 1:6)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나 사실은 다윗이 주로 칭한 바 있는 다윗의 뿌리입니다. 시편 110편은 다윗의 시로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네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 110:1)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주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저들이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느뇨’ 하면서 시편 110:1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마 22:41-44).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고 하시니 바리새인들이 한 말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6에서 주님은 선언하시기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Bright Morning Star)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주님은 '광명한 새벽별'로 시간의 세계에 탄생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칭호가 여러 가지입니다. 선하신 목자, 선생(랍비), 병 고치는 분, 친구, 주님, 다윗의 자손 등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칭호는 구세주이십니다. 예수 이름 자체가 구원이란 말입니다. 다윗의 후손 요셉에게 꿈속에서 주의 사자가 현몽(現夢) 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0-23)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의 몸으로 강림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만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말씀이 성육신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 이하에 보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5-17) 고 하셨습니다. 네덜란드에 가보니 풍차와 반 고호(Van Gogh)를 자랑합니다. 그는 전도사 출신의 화가입니다.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서 여러 편의 자화상이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제 얼굴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결국 만족한 형상이 없어 37세에 자살을 하고 말았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 닮으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탄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날이 되어야겠습니다.

 

성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 세속 안에 계시며 인간과 온전한 사귐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세속과 신성 사이의 담이 무너지고 성속(聖俗)이 하나가 된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 속에 회복된 것입니다. 종교라는 담이 무너졌습니다.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평화와 기쁨이 완성되었습니다. 복음의 세 가지 내용은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것은 셋이 아니라 하나요, 하나이면서 셋입니다. 따라서 하나 속에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며, 전체에서 비로소 하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삼즉일(三卽一)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 땅, 사람이 함께 어울려 영광, 평화, 선한 뜻이 성탄 메시지입니다. 성육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시었다는 사실입니다 (요 1:14, 빌 2:6-7).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이제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심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이 되었으며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것이 곧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요  화해자요 그런 뜻에서 구세주이십니다. 그는 자기를 비어 없이 하시고 종의 형상인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자기부정을 매개로 인간과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이로써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 1:1)고 선언합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희생입니다.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곳에 오셔서 모든 것을 주신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왕자 (The Happy Prince)”라는 동화를 다 아실 것입니다. 어느 도시 한가운데 왕자 동상이 하나 우뚝 서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죽은 왕자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동상입니다. 이 동산의 온몸은 엷은 금으로 입혔고 두 눈동자는 사파이어, 그리고 허리에 찬 칼자루엔 커다란 루비가 박혀 있어 빛나고 있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 이 왕자의 동상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늦가을 밤 , 작은 제비 한 마리가 이 도시에 날아왔습니다. 뒤늦게 남쪽나라로 날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제비는 높은 축대 위에 서있는 행복한 왕자의 동상을 보자 그 아래서 하루 밤을 지나기로 하고 동상이 서 있는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밤중에 왕자의 두발 사이에 내려앉아서 쉬고 있을 때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쳐다보았더니 행복한 왕자의 두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왕자님이 울고 있었답니다.

 

제비가 묻기를 ‘왕자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왕자님이라고 그러시는데 왜 눈물을 흘리셔요?’ 왕자는 대답하기를 ‘내가 궁전 안에 살았을 적에는 눈물이란 걸 통 몰랐단다. 그런데 내가 죽어 사람들이 나를 동상으로 만들어 여기에 세워놓으니 나는 거리를 환히 다 굽어볼 수 있게 되었단다. 거리에는 불쌍한 일이 너무 많이 나는 밤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단다’ 하면서 저만치 멀리 한 가난한 집 한 채가 있고 그 집에 어린 소년이 심한 병을 앓고 있는데 의원에게 가보지도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데 제비더러 칼자루에 박혀 있는 루비를 뽑아다가 그 집에 전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제비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제비는 왕자님께 작별인사를 하려고 가니 하루 밤만 더 머물러 줄 것을 간청하여 제비는 그다음 날 밤도 왕자님과 지냈습니다. 그날 저녁은 눈동자에 박혀있는 사파이어를 떼어다가 변두리 거리 다락방에 며칠째 굶주리고 있는 화가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하루 밤 더 머물러 달라는 왕자님의 간청에 또 못 이겨 지낼 때 이번에는 다른 눈에 박혀 있던 사파이어를 떼다가 성냥을 못 팔아 야단맞을까 봐 울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에 전해 주었습니다.

 

그다음 날도 제비는 강남으로 떠나지 못했습니다. 왕자님의 간청에 자기 몸에 입힌 금 조각을 떼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다 나누어주라고 해서 그렇게 하다 보니 여러 날이 지나게 되고 이 거리에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왕자님의 동상은 앙상한 쇠 조각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제비는 왕자님께 작별인사를 하니 ‘이제야 떠나는구나,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갈 가거라’고 하니 제비는 ‘왕자님, 남쪽나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곧 죽는 거예요. 정말 죽는다는 것 마치 잘 자는 것 같아요’하며 제비는 왕자의 볼에 키스를 하고는 그 밑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왕자의 몸속에서도 무엇인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것은 납으로 만들어진 왕자의 심장이 두 조각으로 깨어져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천상의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왕자의 깨어진 납 심장과 죽은 제비를 하늘나라로 가져오도록 하였습니다. ‘저 제비를 하늘나라 뜰에서 언제까지나 노래를 부르게 하고, 행복한 왕자는 하늘나라 거리에게 언제까지나 나를 찬송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영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1900) 쓴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님은 지상에 오셔서 가장 낮고 천한 자로 사시면서 그의 모든 것을 인류를 위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주셨습니다. 소박하고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기쁘게 영접하시면서 우리도 여기 나오는 제비처럼 주님의 사랑을 부지런히 이웃에게 전달하여 마침내 주님과 더불어 낙원에서 영생을 누리십시다.

 

구약성경은 어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했고 신약성경은 한 아기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창세기에 아기의 탄생은 없고 갑자기 어른 둘이 등장하여 결혼부터 합니다. 복음서에는 강보에 싸여 누워 있는 귀여운 아기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구약은 어른들의 교만과 욕심, 배반과 실낙원의 비극으로 전개되지만 신약은 평화를 노해하는 천사들의 자장가를 들으며 구유에 누워 있는 순진하고 욕심 없는 평화스러운 한 아기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오늘 구주 탄생을 축하하는 우리들 마음도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 순진하고 평화스러운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막 10:15)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표준적 인간상이 어린아이입니다.  이사야 11:6-9에 보니 “젖먹이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는 말을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가리킵니다. 사자와 살찐 짐승, 즉 강한 자와 큰 자가 어린아이에게 끌려가리라“는 말씀은 메시아가 수립하는 새 세계는 힘으로서 순위가 정해지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은 진실함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놀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노는 세계는 평화의 나라를 말합니다.

베들레헴 외양간에서 강보에 싸여 누웠던 아기의 순진함도 곧 사랑의 탄생이었고 그 사랑은 온 인류의 구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사랑의 왕’ 칸타타의 가사처럼 ‘사랑의 왕 성탄의 구주 높은 하늘에서 이 땅위에....놀라운 소식’ 성탄의 소식은 놀라운 소식입니다. 위대한 찬양입니다. 베들레헴 들녘에서 들려온 천군 천사들은 밤새 양 떼를 치던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 소식에 대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평화의 탄생이었습니다. 복잡한 여관방이 아니라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만이 가끔 들리는 외양간은 평화의 왕이 탄생되는 더 어울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이 아기가 내 마음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평화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대 설교가 스펄전 목사가 신학교에서 특강을 하였습니다. 설교자의 표정에 대하여 말하기를 천국 이야기를 할 때는 약간 위를 쳐다보며 가장 밝은 표정을 지으라고 하자 짓궂은 학생이 묻기를 지옥 이야기를 할 때는 어떤 표정이 좋습니까?  스펄전은 조용히 말하기를 ‘자네의 평소의 표정이 적당할 걸세’

 

평화로운 마음이 아기 예수로부터 받는 천국 시민의 마음입니다.  평화를 깨는 것이 욕심입니다.

사랑의 종소리, 평화의 종소리, 영광의 종소리가 저 멀리까지 저 깊이까지 울려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1.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린다  저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2.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고린도전서 1장 헬라어 원문 강해] 고린도 교회 분쟁에 대한 바울의 책망(고전 1:10-17)

 

[고린도전서 1장 헬라어 원문강해] 고린도 교회 분쟁에 대한 바울의 책망(고전 1:10-17)

고린도전서 1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듣고 책망하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각파로 나누어져 싸우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당파는 만들면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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