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송구영신 주일설교말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소원(요한3서 1: 2)

기혼샘 2021. 8. 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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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송구영신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소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소원(요한 3서 1: 2)

 

모든 것은 뒤로 물러 납니다. 버스를 타고 차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밖의 세계가 자꾸만 뒤로 물러 납니다. 그러나 뒤로 물러가는 것만 생각하면 사람은 항상 허탈한 심정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뒤로 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믿는 자들의 표현입니다. 이제 또다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새해가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수많은 시간들이 또 주어진 것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 년의 도화지 위에 여러분은 무엇을 그려 넣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그려 넣은 그림들이 마음에 쏙 드신 분들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지울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실망할 필요는 없죠. 우리 주님은 좋으신 분이라서 항상 이렇게 새로운 도화지를 주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받아 든 것은 새해라는 도화지가 하얗게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도화지에 여러분은 무엇을 그려 넣기를 소원하십니까? 아마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그림을 그려 넣기를 소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우리의 원대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산이 삐뚤어지고 나무가 형편없는 색깔이 되고 말죠. 길은 이상한 색깔이 돼서 황토물이 흐르는 강인지 길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동안 우리가 그려온 그림들입니다. 이제 또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아무 탓도 하지 아니하시고 새로운 하얀 도화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소원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분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분에게서 우리가 그리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붓을 잡은 손을 붙잡아 주셔서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좋은 삶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우리 주님은 주시기를 소원하시는데 그것은

 

첫째로,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돼야 산도 바다도 집도 들도 잘 그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원래 하나님과의 활발한 교통이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풍족했고 원하는 것은 모두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그들의 영이 죽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고 그와 동시에 인간에게 궁핍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후로는 하나님 앞에 설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는 완전히 다른 불순종의 죄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죄와 바꾸어 버린 것이죠.

 

만물을 누가 지으셨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만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다. 사람의 삶도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삶을 그릴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통한 범죄였습니다. 인간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인간 스스로가 스스로의 삶을 주관할 수 있다. 하나님처럼 만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고, 능숙하게 그 어떤 그림도 그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죠.

 

그러나 여러분!

인간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자기 마음껏 삶을 그려본 사람이 있습니까? 자기가 원하는 삶을 그릴 수 있었던 사람은 인류 역사상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질질 끌려가는 삶이었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삶을 그려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얘깁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시행착오를 했고 얻은 것은 죄뿐이었습니다. 그 죄는 그나마 삶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차단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이 죽고 말았으니 영영 하나님과는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처량한 신세가 돼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상실해 버리고 질병과 고난 중에서 고통을 당하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도록 길을 막아버린 죄를 치우시기 위해서 죄의 삯을 지불하셨습니다. 6: 23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다]고 했습니다. 그 삯은 바로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큰 사망입니다. 육신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영혼의 죽음, 살 소망이 전혀 없는 영원한 고통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가장 큰 사망입니다.

 

그런데 고후 1: 10에서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 큰 일을 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였습니다. 죽어버린 우리의 영을 살리시기 위해서, 인간의 가장 큰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일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을 마음속으로 모셔들이기만 하면 우리의 영은 살아납니다. 죽은 자에게 가장 좋은 일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절된 하나님과의 교제를 다시 나누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 공간을 채우지 못한 인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질로도 채울 수 없고, 명예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고독하기 때문에 그 고독을 없애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인간은 그래도 고독합니다. 애를 쓰면 쓸수록 고독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인간을 파괴합니다. 고독한 인간은 삶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홀로 된 인간은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꾸어도 그것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사람 삭개오를 생각해 봅니다.

 

그의 영혼은 극심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영혼이 병들었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인하여 삶의 기쁨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돈은 많이 있습니다. 로마 정부에서 준 권세도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돈으로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었지만 그와 같은 사실이 조금도 즐겁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병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의 영혼의 병은 치유가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리려 했지만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던 삭개오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삶을 그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기쁨이 넘치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주님이 그를 위해 예비하신 소제와 물감과 붓을 받아 들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화폭에 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시 교제하는 인생이 돼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요. 그리고 우리의 꿈을 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재개하는 것, 그것은 바로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고 에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는 그림을 그려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은 어떤 그림을 그리셨습니까? 좋은 그림을 그리고자 꿈을 꾸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까? 이제 새해에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첫째 조건은 바로,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를 통하여 여러분의 삶을 그리는 능력을 전수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병들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의 영혼이 잘 돼야 합니다. 육신이 잘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음식을 제공해 줍니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영혼의 양식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이 세상에 말씀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 말씀은 생명의 떡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생명의 물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떡과 생명의 물을 섭취하는데 끼니를 거르지 마십시오.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하는 것, 순종하고, 섬기고, 기도하고, 전하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은 건강하고 살찌게 될 것이요 영혼이 건강하면 하나님의 모든 풍요를 받을 수 있음을 여러분 잊지 마시고 올 한 해는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범사가 잘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이 삶을 그리는 기초적인 능력이라면 이제 범사가 잘 되는 것은 능숙하게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에게 삶을 마음대로 그릴 수 없는 저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풍요롭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곳에서는 무엇이든지 풍족했습니다. 삶을 잘 그리기 위해서 애쓰지 않아도 척척 잘 그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붓을 들고 그리는 인간의 손목을 붙잡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는 저주와 궁핍이 없는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만족과 기쁨이 넘치는 곳, 바로 우리 인간이 꿈꾸어온 것들이 그곳에 모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은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온 인류가 죄의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인류를 속박하는 율법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그 후로 인간은 율법의 저주를 머리에 이고 눈물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실패하는 인간, 좌절하는 인간, 병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인간, 가난과 궁핍으로 항상 고뇌하는 인간, 만족할 수 없으므로 탐욕의 종이 되어 죽을 때까지 불쌍하리만큼 긁어모으기에 여념이 없다가 결국 쓸쓸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 인간, 남을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기에 칼을 들고 상대방을 찌르는 것으로 이해를 대신하는 불쌍하고 악한 인간, 모두 저주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저주를 머리에 이고 사는 인간이 결코 삶을 아름답게 그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는 잘되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아래 모든 죄의 저주를 쏟아버리고 우리를 위해 속량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거하는 자는 잘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1장에서 [복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러분! 정말 복 있는 자가 되십시오. 복 있는 자는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한시도 잊지 않고 생각하고 사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삶을 그려 나갈 때에 좋은 소재를 주시고, 아름다운 색깔의 물감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붓을 주셔서 여러분이 그림을 그려 나갈 때에 여러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을 인생의 화폭에 그려 넣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그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이 병들지 않고, 항상 건강하고, 활기가 넘치고,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를 나누실 때에 여러분의 꿈은 화폭에 그대로 담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이라는 꿈의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화려한 꿈을 꾸었습니다. 모든 형제들과 부모까지도 자기를 섬기는 꿈을 꾸었고 그는 한시도 그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철저하게 인생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집니다. 그래도 그는 그 꿈을 주신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 대신 그의 삶을 그려 주셨습니다. 그가 겪었던 험난한 세월은 오히려 불후의 명작을 만드는 하나의 재료로 하나님은 삼으셨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이 그리고 계신 그림을 이해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그 그림은 형편없는 졸작 같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마지막 붓을 내릴 때 참으로 화려하게 변해버린 화폭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한낱 노예에 불과했던 불행한 한 청년이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는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항상 교제를 나누었던 요셉의 삶을 그가 연약할 때 하나님이 대신 그려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와 같은 복된 사람이 다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5:7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누구나가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을 잘 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주를 떠나서는 제 아무리 능한 화가라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저주 아래 거하고 있는 한 절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그릴 수가 없습니다. 그릴 수 있는 물감도 없고 제대로 된 붓도 없고, 그리고 소재도 없습니다. 기껏 있어봐야 염려와 근심과 질병의 소재뿐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를 받으신바 되사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하셨다고 갈라디아서 3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우리가 거하면 저주와 궁핍이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범사가 잘 되는 축복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새해는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강건하기를 소원하십니다. 건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화가는 좋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몸이 건강해야 인생의 모든 것을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 앞에 진수성찬을 차려본들 오히려 짜증만 날 뿐입니다. 아름다운 자연도, 세상의 명예도 부귀와 존귀도 건강치 못하면 누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귀찮을 뿐입니다. 항상 인자하게 손자들을 안아주시던 할머니가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손자들과 붙어 있어도 마냥 사랑스러워서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할머니였는데, 그만 병이 나신 것입니다. 걱정이 된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할머니 어디가 아파, 많이 아파?. 내가 약 사 올게, 할머니 배 아파? 머리 아파? 다리 아파?” 평소 같으면 참을성 있게 다 대답해 주시던 분이었는데 그날따라 얼굴이 아주 싫은 기색입니다. 아이구구구구, 아이구구구, 귀찮게 하.....말고 저리들.....가아평소의 할머니가 아니셨습니다.

몸이 아프면 아무리 좋은 것도 귀찮아집니다. 그러니 삶인들 제대로 그릴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살든지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그만한 복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예수만 믿고 구원받으면 됐다고 하지 않십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가 잘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즐거워하며, 보람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건강해야 됩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마 8:17에서는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건강하기를 소원하십니다. 로마 군병의 억센 팔로 내려치는 아홉 가닥의 채찍에 맞으시면서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만큼은 아프지 않고, 피 흘리지 않고 건강해 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건강해야 활력이 넘치는 삶을 그릴 수가 있죠. 우리가 그림을 감상할 때 왠지 죽어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그림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림 속에 활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솔거라고 하는 화가가 그린 소나무 그림을 보고 많은 새들이 진짜 소나무로 알고 날아 내리다가 부딪혀 부상을 당하거나 죽었다는 일화를 잘 알고 있죠. 활력이 넘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삶을 그려 나가는데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건강해야 활기 있는 그림을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강건하게 되었음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절대 주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 하나 고쳐주시기 위해 피를 흘리신 우리 주님의 은택을 여러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시간 수많은 세상 사람들은 세상일을 잊기 위해 송년회를 한다고 마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송년회를 한다고 해서 인간의 고통이 잊어질 리가 있겠습니까? 현란한 불빛 아래서 몸을 흔들어 댄다고 해서 잊힐 리도 없습니다.

 

그들은 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를 믿게 되는 그 순간 우리들의 괴로웠던 과거는 사라져 버립니다. 모든 염려 근심 질병이 물러 갑니다. 여러분 우리는 잊지 마십시다. 주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주님의 은혜임을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올 한 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얀 도화지 같은 새로운 한 해를 주께서 주셨는데 여러분의 힘으로 그리지 마십시오. 먼저 영혼이 잘되기 위해 십자가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소재와 물감과 붓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범사가 잘되는 복을 받아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나가십시오. 그리고 강건하여 활력이 넘치는 그림을 그리십시오.

 

그래서 그 아름다운 인생의 화폭을 바라보면서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아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제 한 해가 다시 왔습니다. 올해는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여러분의 범사가 잘 되며, 여러분이 강건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가서 4장 히브리어 강해] 솔로몬의 술람미 신부 찬가(아 4:1-6)

 

[아가서 4장 히브리어 강해] 솔로몬의 술람미 신부 찬가(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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