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마태복음 산상수훈 주일 설교문] 간음하지 말라(마 5:27-32, 요 8:1-12)

기혼샘 2021. 8. 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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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 주일 설교문 중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간음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신약에서 말씀을 더 강력합니다. 생각만으로도 간음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도 간음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님보다 우상을 섬긴다면 그것도 영적 간음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목: 간음하지 말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 5:27-32, 요 8:1-12

요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

주제: 성령의 전인 몸을 경건하게 관리하여 간음과 음란을 몰아내자

 

산상수훈을 계속 묵상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십계명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 말씀을 통하여 (1)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한 자 (2) 욕설(라가)을 한 자 (3) 소송을 한 자 (4) 형제로부터 원망들을 자 (5) 자살하는 자 (6)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가 모두 살인죄에 해당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에서 해방하기 위해서는 (1)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며 (2)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3) 용서하며 화해하고 (4) 덕을 세우는 천국언어(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이해합니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등) (5) 자신속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회복되고 (6) 선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을 배우며 실천하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5장 27-32절을 통하여 “간음하지 말라” 말씀을 받습니다.

마태 5장 27절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고 말씀하십니다. 간음은 십계명 중 제 7계명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남 일녀로 가정을 만들어 주셔서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 형제를 해하지 말라" (살전 4:3-6)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가르치는 간음의 의미는 (1) 가정의 거룩함에 배치되는 부정한 것이며. (2) 자기의 아내를 존귀함으로 취할 줄 모르는 자들의 행실이며. (3)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본능적 처사이며 (4) 정욕의 정상적인 분수를 넘어 형제를 해치는 처사이며, (5) 사이비이단 종교에서 행하는 음란입니다. 또한 히브리 기자는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리라" (히 13:4).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가르치는 말씀은 (1) 혼인을 귀하게 여겨 침상을 깨끗하게 관리하라 (2) 음행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 (3)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신다고 하심으로 간음을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갈 5:19에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간음(adultery)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에 간음이 첫 번째 나오는데 우리말 성경 개역과 개역개정, 현대 영어역(NIV NASB RSV LB...)에서는 이를 삭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21)고 하십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간음에 대한 주석입니다. 마 5: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 말을 얼른 읽으면 남자에게 해당되는 말로, 이는 남자가 성적인 면에 있어서 공격적이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여성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해당하는 명령과 말씀은 대표적으로 남성형을 쓰고 있습니다. 가령 십계명의 모든 계명은 남성 단수를 쓰고 있지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지켜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28절을 다시 읽으면 여자나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나타나지 않은 마음의 범죄를 지적한 말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마음의 세계에서 비정상적으로 여자가 남자에 대하여, 남자가 여자에 대하여 음욕을 일으킬 때 이것이 곧 간음이라는 예수의 말씀입니다. 이유는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의 현상은 이미 마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당시 율법주의자들과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간음이론은 행동적이거나 결과론적인 간음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면에서 보이지 않는 죄악의 뿌리와 근원을 밝힘으로써 마음의 세계에서 죄악의 발생과 발달을 막아, 성결한 심령을 만들기 위함이지 외형적인 거룩을 좇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1-11절을 보니 초막절 절기 마지막 날에 감람산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신 주님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성전에 들어와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이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아침 기도회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앞에 여자를 가운데 세우고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을 어떻게 하겠습니까?”(요 8:4-5)하고 고소했습니다. 저들이 이 여인을 여기까지 끌고 온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1)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고 하면 ‘당신은 평소 사랑하라 용서하라 가르치는데 어찌 돌로 치라 하니 가르침과 위반되지 않소?’ 라고 할 것이요 (2) 돌로 치지 말고 용서해 주어라 하면 모세의 법을 위반하니 종교법으로 재판하겠다는 심보요 (3) 예수님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면 겁쟁이로 만들려는 저들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습니다. 침묵이 어느 정도 흐르고 있다가 저희가 계속 “이 여인을 어떻게 할까요? 돌로 칠까요 말까요?”라고 묻기를 계속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하실 때 나이가 지극히 든 바리새인의 눈을 직시하면서, 또 경건한 채 하던 서기관, 율법학사들, 돌을 든 이들을 한번 둘러보시면서 하셨을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너희들은 과연 돌을 칠 자격이 있는가?”는 물음이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이 저희들의 양심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심정을 괴롭게 했습니다. 간음의 죄 뿐만 아니라 어느 죄든지 없는 자가 먼저 돌을 쳐보라는 말씀에 자신있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땅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쓰십니다. 어떤 주석학자는 해석하기를 여기에 자신있게 돌을 들고 있는 자들의 과거 죄를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로 추정도 해 봅니다. 들키지 않아서 그렇지 저들 가운데 과거 은밀하게 죄를 지은 것을 폭로하며 공개하겠다면 얼마나 부끄러움을 당할까요?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하나씩 나가고 마지막으로 오직 예수님과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습니다. 아마 오늘 서울의 한 광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여인을 향하여 돌을 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양심의 가책도 없고,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입니다. 교계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노회나 총회에 가보면 흠이 많은 사람들이 더 크게 발언하고 남을 정죄합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들이 없느냐?” “주님, 아무도 제게 돌을 던지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셨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왜 이 여인만 끌려 나왔습니까? 그 상대 남자는 어디에 있고 왜 끌려 나오지 않았나요? 이 여인은 상습범입니까? 간음의 동기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 본문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지막 말씀이십니다.

 

(1) 너를 정죄하고 고소할 인간은 아무도 없느니라. 하나님만이 심판하시느니라

(2) 나도 너의 잘못을 용서하마. 너는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있으니 이번만 용서하마

(3) 너의 한 행위는 분명히 죄이니라.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런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요 8:12) 주님의 빛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 감히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부끄러운 모든 것이 주님 앞에 나아오면 밝혀집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숨김없이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받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면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계속 간음의 죄를 짓게 하는 지체가 있으면 차라리 제거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마 5:29-30절에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절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 두 절의 구조적 형태는 똑같습니다. 만일, 오른 눈/오른 손, 너로 실족케, 내 백체 중,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 유익, 이상의 것들이 모두 같은 형태의 용어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습니다. 눈을 빼어버리라(29절) 손은 찍어 버리라(30절)와 같은 것들은 다릅니다. 손과 눈은 소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29, 30절은 모두 동일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7절에서부터 간음에 관한 문제를 말하다가 갑자기 오른 눈과 오른 손을 빼고 찍어 없애라고 하는 급격하도록 과격한 말을 함과 동시에 지옥에 던져지는 종말론적인 말씀이 나온 까닭입니다.

 

마 5:29-30절이 27-28절과 무관한 말로 인식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31-32절에서 다시 음행과 간음에 대하여 계속 말함으로써 29-30절의 말씀이 음행이나 간음에 무관한 말이 아니라 큰 관계가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음란과 간음은 눈으로 봄으로써 시작됩니다. 즉 견물생심(見物生心)과 같습니다. 이성이 서로 눈으로 보는 가운데서 음란과 간음의 씨가 움틉니다.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아예 보지도 말아야 하는데 그런 마음으로 보니 보암직도 했고 먹음직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았다는 그 자체가 음란과 간음 자체가 아닙니다. 이성을 서로가 보았으나 절제와 근신, 성결과 구별됨에 의하여 거룩하게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할 때 음행과 간음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근신과 절제, 구별됨과 성결이 없는 음행과 간음으로 발전되지 못하도록 오른 눈을 빼라고 했습니다. '오른눈' 이라고 하는 '오른'의 의미는 힘과 강함으로 뜻합니다. 두 눈을 빼지 않도록 하게 하는 것은 경건과 근신입니다. 눈은 작은 것이로되 이 눈이 범죄의 길을 열어 줌으로써 전 인격과 생명이 지옥의 판결을 받게 된다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살전 5:22). 일단 보게 되면 뇌에서 욕심을 유발하여 죄를 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철저한 회개와 근신과 절제를 통해서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한 예수의 가르침이다. '오른손을 찍어버리라'함은, 손은 행동을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행동의 대표적 자체로 보았기 때문에 찍어라 했습니다. 즉 음행과 간음의 행동을 중지시킴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국의 어떤 이는 간음죄를 짓지 않기 위해 고자가 된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말을 들어보면 여전히 눈으로, 손으로 죄를 짓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음욕이 늘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겉옷을 벗어던지고 도망가듯이 말입니다. 이토록 예수께서는 종말론적인 신앙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회개의 결단을 촉구함으로써 죄악과 구별된 성결한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유대 랍비들(범죄의 행위와 결과 대하여 처벌받는 것을 가르치는 신앙의 지도자)과는 달리, 범죄의 발발이 되는 근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겪는 눈을 빼는 괴로움과 손을 찍는 고통을 단행함으로써 미래와 영원한 세상에서 지옥의 멸망에 들어가지 않도록 진리의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 5:31절에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이 말씀은 신명기 24:1-3을 근원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마태복음 19:7-8에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모세가 허락한 이혼의 허락은 상항적 편법이었음을 말함과 동시에 원천적인 면에 있어서는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라고 말함으로써 이혼은 결격 사유(간음의 증거)가 없이는 할 수 없음을 가르쳐 줌으로써 가정의 안정과, 평화의 질서를 강조하였고, 남여의 성의 질서와 순결을 유지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32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간음의 과오가 없는 여인과 이혼하는 것은, 간음의 세포분열과 같은 범죄의 번식이 일어나게 하고 혈통과 신앙정신을 혼탁하게 함으로써 사회와 가정의 성 질서가 무너져 거룩한 신앙행위와 의의 진리생활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간음에 대하여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는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랴,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서 죄를 범하느니라" (고전 6:15-18)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주장하는 음행의 이론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원 받은 자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고린도전서 3:16에서 “우리의 몸은 성령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했습니다. 이러한 구원받은 성도의 몸을 가지고 이혼한 여인에게 또는 이혼한 남자에게 부도덕하고 불경건하게 또는 창녀와 남창에게 결합한다면 이는 하나님에게 큰 죄인이 되며 또 결합하는 대로 그와 하나의 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2) 구원받은 성도의 몸이 타락한 자와 결합한다면 그와 한 영이 됩니다.

 

여기서 음행은 단순한 음행이 아니라 영적 세계의 행위를 말합니다. 즉, 창기와 결합할 때에 그와 한 영이 되고 이혼한 남자와 여자에게 결합할 때에도 그들과 한 영이 된다는 바울의 이론입니다. 성경에는 간음을 이야기할 때 영적인 간음인 우상숭배를 언급합니다. 호세야나 에스겔에 보면 이것이 나옵니다. 이것은 타락한 자의 영과 하나가 된다는 똑같이 회개해야 할 공범자가 됨을 말합니다.

 

(3) 음행의 죄는 몸 안에 있습니다.

음행의 죄가 몸 안에 있음은 음욕이 사람의 본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며 이 음욕이 음행으로 나타난다. 이 죄악의 근본은 본능적인 성적 작용이기 때문에 다른 범죄와 크게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구든지 음행한 뚜렷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라는 말과 같이 간음의 사실이 없는 여인과 이혼합니다. 이 여인의 영혼과 구원의 길을 외면하며 짓밟는 자가 된다. 그러므로 뚜렷한 범죄의 사실이 없이는 이혼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음행과 간음에 대한 가르침은 모세의 가르침에(마태복음 19:3-9) 대한 바른 해석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으며, 또 당시 바리새인들의 이혼에 대한 가르침이 바르지 못함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를 예수님께서는 ‘음란과 패역의 시대’라고 지적했습니다.(마 12:39, 막 8:38). 이러한 시대의 타락한 조류를 예수께서 지적하시면서, 가르치는 자들의 잘못을 책망하셨습니다.

 

찬송 320장(통 350장)에

 

1.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후렴>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고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

2. 내게 부어 주시려고 은혜 예비하신

    주의 은혜 채워 주사 능력 있게 하소서

3. 죄의 짐을 풀어주신 주의 능력 크도다

   나를 피로 사신 예수 내 맘속에 오소서

4.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사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간음죄, 음란죄를 깨끗하게 용서함 받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함을 받읍시다. 다시는 간음 생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부부간에 더욱 사랑하며 주님의 생명의 빛 가운데 살아가십시다. 사철에 봄바람이 부는 임마누엘의 가정으로 회복합시다. 다윗이 시편 51편에서 철저하게 간음 죄를 회개하며 용서받은 후 다시는 동일 범죄를 짓지 아니했습니다.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청산하고 주님 안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 가정에 사랑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아가페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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