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발산 하나님 말씀 중에서 에발산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에발산은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를 받고 선택받은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해 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나의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가져갔습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저주를 받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에발산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저주 사건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발 산 הר עיבל(하르 에발)
♣명제: 에발 산은 저주를 선포하던 산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저주가 사라진 산이다.
♣목적: 에발 산의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받으신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과 저주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들도 축복의 근원도 하나님이며 저주의 근원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는 분이지만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어기면서 살면 저주를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면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의 모든 저주를 짊어지게 하시고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에발 산은 바로 모든 저주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11: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실 때에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에발’ עיבל(에발 5858) 에발,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בל(아발) 잎이 없다, 나뭇잎이 벗겨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발 산은 나무가 없는 황폐한 민둥산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저주를 받은 자들은 잎이 무성하지 못하고 황폐한 사람들입니다. 축복의 사람들은 잎이 무성하여 많은 열매를 맺지만 저주를 받은 자들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산이 황폐하여 민둥산이 되면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벌목 현장에 가보면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는 것을 볼 것입니다. 산에 많은 나무들이 베어짐을 당하고 나니 산이 볼품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멋있게 차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에게 풍겨 나는 인격이 없으면 민둥산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의 말을 통하여 나오는 소리들이 저주의 소리며 열매가 없는 말이라면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수치당하고 황폐하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수치를 당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에발 산처럼 나뭇잎도 없고 황폐하여 열매를 맺지 못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서 저주의 삶만 살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발 산에서 저주가 선포될 때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모든 저주를 주님에게 담당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에발 산에서 선포했던 모든 저주가 사라진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수치당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로운 삶으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그럼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했던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한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한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우상을 만드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다고 했는데 장색은 조각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각가의 손으로 깎은 형상이나 주물로 부어 만든 우상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니 이것을 만드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각하였거나’ פסל(페쎌 6459) 우상, 목상,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나무를 새겨서 형상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내 마음의 판에 우상을 새겨서 조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외에 다른 우상을 새겨 넣을 수가 있습니다. 비 복음을 새겨 넣거나 또는 물질을 신으로 섬길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새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나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어 내 마음에 우상을 새겼던 저주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부어 만든 우상은’ מסכה(마쎄카 4541) 부어 만든 우상, 맹약, 동맹,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נסך(나싸크 5258) 세우다, 부어주다, 드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우상을 만들기 위해 쇳물을 부어 우상의 형체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영적으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우상의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영을 무시하고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여 우상 앞에 술을 붓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상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이며 조상 앞에 술을 부어주는 것도 이와 같은 우상의 죄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우상과 동맹하여 언약을 맺은 자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에 조상들로부터 제사문화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조상을 섬긴다는 이유로 제사상을 차려놓고 그 앞에서 술을 부어주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부어 만든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상과 동맹을 맺었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상에게 술을 붓고 제사를 드렸던 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면 모든 저주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어 나는 이러한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조상의 죄 때문에 자신도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조상의 제사를 끊었기 때문에 일이 풀리지 않고 교회 나와도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러한 저주를 모두 담당하셔서 조상에게 술을 부어 우상을 섬겼던 죄를 사해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저주는 주님께서 모두 가져가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된다.
신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나를 낳아준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적인 부모도 경홀히 여기지 않아야 되고 영적인 부모인 하나님도 경홀히 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홀히 여기는 자는’ קלה(칼라 7034 동사, 히필, 분사능동) 천하게 여기다, 멸시하다, 치욕을 주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부모를 천하게 여기고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으며 멸시하는 자들은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들도 저주를 받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치욕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매일같이 똑같은 마음으로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았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늙었다고 무시하고 말을 함부로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죄가 하나님 앞에서는 저주를 받을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죄도 담당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제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늙은 부모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무시하지 않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죄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 외에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저주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셋째,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다른 사람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함부로 남의 재산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남의 재산을 빼앗는 짓을 하지 말고 사기 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계표’ גבול(게불 1366) 경계, 영토, 구역,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בל(가발 1379) 경계를 정하다, 경계를 짓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마다 경계를 정하여 땅을 분배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파 안에서도 족장들 마다 땅을 분배하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분배받은 땅을 구역별로 정해졌다면 다른 사람들의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경계석을 몰래 옮겨 자신의 재산처럼 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남몰래 땅을 빼앗거나 사기를 쳐서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도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크든지 작든지 이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토하여 저주를 담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남의 경계표를 옮긴 것이 생각나거든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넷째,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에게도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적인 맹인의 길을 잃게 하는 자도 맞지만 영적으로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을 비 복음을 전하여 죽음으로 인도하는 자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길을 잃게 하는 자’ שגה(샤가 7686 동사, 히필, 분사능동) 범죄 하다, 미혹되다, 유인하다, 길을 잃다, 라는 뜻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잘못된 길을 가르쳐서 손해를 당하게 하거나 상해를 입히면 이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는 자에게 죄를 짓게 하여 타락하면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 복음의 율법을 전하여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처럼 영적인 죽음으로 유인하여 길을 영적인 생명의 길을 잃게 만들었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스승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잘못 가르쳐서 이 사람이 타락의 길로 갔다면 하나님은 이 사람의 피 값을 영적 스승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말씀을 가르칠 때에 율법적인 것을 가르쳐서 생명을 죽일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영적 맹인을 잘 인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면 저주를 받는다.
신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하는 자는’ נטה(나타 5186 동사, 히필, 분사능동) 기울어지다, 피하다, 불공평하다, 부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객이나 고아나 과부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살 방법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재판에 들어갔는데 사회적 약자라고 함부로 대하여 억울하게 죄를 씌워버리는 것입니다. 돈이 많은 재력가들에게 불공평한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증인으로 출두하여 약자들의 편이 아니라 재물이 많은 자들의 편이 되어 부당하게 증언을 하고 한편으로 쏠려 기울어진 재판과 증언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죄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꼭 법원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일상생활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을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에서도 가난한 자나 과부와 같은 사람들의 말은 무시하고 잘못이 없는데도 그들의 말은 듣지 않으려고 귀를 닫아버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에 빠져나갈 사람들이 있습니까?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나의 이러한 죄를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여섯째, 계모와 불륜을 저지른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20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계모와 불륜을 저지른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사람은 빌하와 간통을 한 르우벤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많은 불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죄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침하는 자는’ שכב(샤카브 7901 동사, 칼, 분사능동) 동침하다, 강간하다, 행음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강제로 추행하여 강간하는 것을 말하고 있고 반면에 서로 합의하에 동침하여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말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음행 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불륜을 저지르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가만히 놔두면 죄를 짓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행음하는 자체가 불륜의 죄라고 말씀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행음의 생각만 가져도 음행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불륜의 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시면서 나의 불륜의 죄를 담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생각만으로도 지은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킨 것입니다.
일곱째,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21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짐승과 교합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율법이 내려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짐승과 교합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짐승과 교합하는’ שכב(샤카브 7901 동사, 칼, 분사능동) 동침하다, 행음하다, 눕히다, 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도 짐승과 교합하여 죄를 짓고 있었다면 현재도 짐승과 결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지 않고 동물을 키우면서 동물로부터 연민을 느끼고 있는 것도 이러한 죄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꼭 짐승과 교합해야 만이 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사람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동물에게 느끼고 있다면 이것 또한 짐승과 교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동성애 법이 통과되고 있는 실정에서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좋지만 여기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연민을 느끼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면 이것 또한 짐승과 교합하고 있는 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에서 우리는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면 이러한 집착에서 떠나고 동성애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받으면 짐승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는 것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시킨 것입니다.
여덟째, 친족과 불륜을 저지른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22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도 이혼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새로운 가정을 맺었을 때에 어머니 쪽의 딸이나 아버지 쪽의 딸과 동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매’ אחות(아호트 269) 누이, 자매, 동생,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새로운 가정이 만들어졌을 때에 누나나 또는 동생이 있을 때에 이러한 자와 강간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제로 추행할 수도 있지만 서로 눈이 맞아 동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적인 문제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연에 방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매와 동침한 자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께 이러한 죄를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아홉째, 장모와 불륜을 저지른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23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장모와 동침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를 짓지 말라고 하나님은 미연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장모’ חתן(하탄 2859) 장인, 장모, 사위,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사위와 장모가 동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적인 타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성적인 불륜의 타락은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율법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주가 떠나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열 번째, 이웃을 살인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24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은 이웃을 함부로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상기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암살하는 자’ נכה(나카 5221 동사, 히필, 분사능동, 남성, 단수) 때리다, 상하다, 죽이다. 암살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죽이고 은폐하려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칼로 죽이든지 망치로 죽이든지 상해를 입혀 죽인 자들은 하나님은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도 남을 죽이고 몰래 산에 묻는 사람들도 있고 트렁크 가방에 시신을 토막 내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잔인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경찰에 붙잡혀 법의 재판을 받아 실형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저주입니다. 자신들은 붙잡히지 않을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심판을 하셔서 형벌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열한 번째, 뇌물을 받는 자도 저주를 받는다.
신27:25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아무런 죄가 없는 자를 죽이기 위해 뇌물을 받는 사람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뇌물은 사람의 혀를 뻣뻣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뇌물’ שחד(샤하드 7810) 뇌물, 예물, 값,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חד(샤하드 7809) 선물로 달라고 하다, 선물을 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뇌물을 달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뇌물을 주는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았다가 공직에서 물러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많습니다. 옛날에 뇌물을 받은 것이 시간이 흘러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꼭 공직에 있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나 교회생활에서 남의 험담에 동참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면 이것 또한 뇌물의 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왕따 시키기 위하여 무리로 모여 함께 식사했다면 이것 또한 뇌물의 죄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내가 이러한 뇌물의 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의 모든 뇌물의 죄를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지었던 뇌물의 죄가 예수님을 통하여 깨끗하게 사라졌고 이제 우리는 회개함으로 주님 앞에 나가서 매일 죄 씻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열두 번째, 이 율법의 말씀을 행동에 옮기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신27: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행동에 옮기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선포한 이 말씀을 100% 실천에 옮기면서 매일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우리는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다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교만한 자이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은 백성으로서 죄를 씻김 받은 사람 둘 중의 한 명입니다. 우리는 이 율법의 말씀을 온전하게 다 지킬 수가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라고 했는데 그리심 산에는 제단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는데 이곳에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단은 동물이 죽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바로 에발 산에서 저주가 선포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제단에서 모든 저주를 담당하시고 이곳에 있는 자들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수8:30-31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에발 산에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제단을 쌓고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제단에서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새 돌로’ שלם(샬렘 8003) 완전한, 온전한, 가득 찬, 다듬은, 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에발 산에 새로운 돌로 제단을 쌓았는데 이것은 완전한 제단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제단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라면 여호수아는 복음의 대표입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 여호수아가 새로운 돌로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피의 언약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전가받아 선택한 백성들의 모든 죄가 사라지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이 제사는 영원한 제사이며 단번에 드려진 제사이며 더 이상 제사가 필요 없는 제사였습니다. 이것이 에발 산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저주가 선포되는 곳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통하여 율법의 죄악에 빠진 자들의 죄를 대속해주시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에발 산에 서서 저주를 선포했던 지파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신27: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에발 산의 저주를 선포하기 위하여 섰던 지파들은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 지파들입니다.
‘르우벤’ ראובן(레우벤 7205) 르우벤, 이라는 뜻입니다. 르우벤이라는 뜻은 이 아들을 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첫째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갔던 사람입니다.
창49: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의 복을 가지고 있지만 물을 끓음같이 성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여 빌하와 간통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죄로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르우벤과 같은 자들이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성적인 분노에서 누가 자유롭겠습니까? 주님께서 이 모든 죄를 에발 산의 제단에서 모두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성적인 죄가 사라졌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갓’ גד(가드 1410) 갓,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וד(구드 1464) 압력을 가하다, 공격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갓 지파는 힘이 있는 지파로서 공격을 받으나 도리어 자신의 힘으로 공격을 하여 빼앗는 지파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교만하고 남을 괴롭히는 자들은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가 있다고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여 남을 괴롭히는 자들은 반드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에발 산에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저주가 끊어졌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49: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지만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여 빼앗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얻은 권세도 하나님께서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
‘아셀’ אשר(아셰르 836) 아셀,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שר(아샤르 833) 똑바로 가다, 성공하다, 형통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셀 지파는 땅을 분배받았을 때에도 좋은 땅을 받게 됩니다. 지중해 해변 두로와 시돈을 포함한 땅을 받게 됩니다. 야곱은 아셀에게 예언할 때에 왕의 수라상을 차린다고 했습니다.
창49: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아셀은 땅에서 먹을 것이 나는데 기름진 것으로 먹게 되며 왕의 수라상을 차리는 준비의 지파가 됩니다. 이와 같이 아셀 지파에서 바누엘의 딸 안나가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선지자로서 왕의 수라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아셀 지파는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축복을 아무리 많이 받았다고 자만하여 교만 하여진 자들을 위하여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복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죄들을 위하여 주님은 에발 산에서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스불론’ זבולון(제불룬 2074) 스불론,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זבל(자발 2082) 높은 거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둘러싸다, 거주하다, 라는 뜻입니다. 스불론 땅은 산으로만 둘러싸인 갈릴리 지역의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이곳은 저주받은 땅으로 빛이 없는 곳을 상징합니다. 또한 높은 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는 바알의 신을 높은 산에 산당을 지어서 섬겼습니다. 영적으로 우상과 함께 하는 자이며 하나님을 버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은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9: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스불론 땅에는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빛이 없었기 때문에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변 길과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들어가심으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마4:13-14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예수님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에 들어가 사심으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스불론과 같이 우상을 섬기면서 흑암에 갇혀있던 자들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저주를 예수님께서 담당하신 것입니다.
‘단’ דן(단 1835) 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דין(딘 1777) 통치하다, 규정하다, 심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단 지파는 같은 동족을 심판하던 사람입니다. 단 지파에서 삼손이 나오게 됩니다.
창49:16-17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는 자입니다. 통제하고 심판하여 독사같이 말을 탄자를 떨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단 지파는 계시록에서도 이마에 인 맞은 지파에서도 빠져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버리고 북쪽 단으로 올라가 자신들의 우상을 섬기면서 영역을 만들었던 지파가 단 지파입니다. 이런 자들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인간을 우상화하여 섬겼던 자들의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납달리’ נפתלי(나프탈리 5321) 납달리, 라는 뜻입니다. פתל(파탈 6617) 교활하게 속이다, 간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납달리는 암사슴과 같으며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했습니다.
창49: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납달리가 의미하는 것은 교활하게 사람을 속여 사기를 치고 겉으로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서 속으로는 간교하여 사람을 사기 치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활하게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께 서원을 해놓고 지키지 않는 사람도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약속을 해놓고 약속을 어기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도 여기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재물만 훔쳤다고 도둑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약속을 쉽게 생각하여 지키지 않으면 이것도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까운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쉽게 생각하여 시간을 훔치는 사람은 회개하여 다시는 약속 시간에 꼭 참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에발 산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에발 산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율법을 어김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발 산에 새로운 언약을 세워 율법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과 새롭게 체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십자가 제단이 세워진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에발 산에서 수치를 당해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수치를 당하신 것이며 내가 율법을 어김으로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에발 산에 세워진 제단을 믿고 의지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모든 원죄와 자 범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주를 주님의 몸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에발 산에 서서 저주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에발 산에서 주시는 영적 교훈입니다. 산에 관한 책을 원하시는 분은 체데크바이블칼리지체데크서점에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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