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심산 Mount of Gerizim-영원하고 참된 예배처
요4: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요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한 전도자가 할머니에게 교회에 나오면 구원을 얻는다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교회에 출석하였고 예배가 끝나자 전도자에게 이렇게 항의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구 원을 준다고 하더니 왜 일 원도 주지 않는 겁니까?" 지식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참된 진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예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어리석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처럼 영원하고 참된 예배처에 대한 의미는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맹목적인 종교성을 추구하는 곳이 아닙니다
1) 조상들의 무속 신앙을 버려야 함
신명기 11장에 보면 모세가 에발 산에는 저주를, 그리고 그리심산에는 축복을 말하였는데 그 연유로 그리심 산은 축복의 산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후 사마리아인들은 이 산을 성역화하였고, 모든 사마리아인들처럼 우물가에 있던 여인도 '조상들'(20절)이 예배하던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축복 때문에 종교를 가지는 것은 기복 성을 추구하는 무속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도 돼지 머리를 올려 놓고 빌어야 사고가 없을 것 같고, 고목나무 앞에서 빌어야 소원이 성취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사람들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보고 길흉화복을 점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 점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통탄할 일입니다. 설사 재미로 보는 경우라도 철저하게 금지하는 것이 좋으며, 조금이라도 어리석은 미신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됩니다.
2) 성경에 어긋나는 신앙을 버려야 함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예배드릴 특정한 장소로 예루살렘을 택하였다고 주장하였고(대하 7:12; 사 56:7),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이 축복받은 산이라는 것을 의식하여 그리심 산을 예배의 장소로 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22절)을 섬겼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씀보다는 자신들의 전통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에는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은 잘못된 전통을 따르고, 심지어는 그러한 전통을 만드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신앙을 위해서는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다가 병원에 가지 못해 목숨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무지는 때로 심각한 경우를 초래하거나 신앙에 지장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며, 항상 매사를 말씀에 비추어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 율법적인 전통만을 고수하는 곳도 아닙니다
1) 예배시에 지나치게 상징을 추구해서는 안됨
율법은 복음을 위해서 존재했던 것처럼 상징은 참된 진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인하여 모든 상징들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자랑하던 '예루살렘'(20절)은 사라지고 참된 예루살렘과 지성소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예배 시에도 정도에 벗어나게 음악과 예복 등에 신경을 쓰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예배는 거룩하고 진지하고 우아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할 수 있다면 정성을 다해 진지하게 예배를 드려야겠지만 지나치게 형식과 의식을 고집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하게 자유를 누리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2) 예배 장소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함
본문에서 예배 장소에 대하여 변론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예배 드리는 장소에 관해서는 '이 산'이라고, 또는 '예루살렘'(21절)이라고 주장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교훈처럼 예배는 장소에 상관없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아버지'(21절)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에서나 골방에서나 감옥에서나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3.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입니다
1) 신령으로 예배해야 함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24절). 여기에서 '신령'이라는 말은 원어상으로 '영'을 의미하기 때문에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이신 하나님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서 경배하곤 하였습니다(롬 1:23). 우람한 산이나 거대한 고목나무, 웅장한 돌신상, 상에 올린 돼지머리 등은 영으로 예배하는 데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예배는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영'(롬 8:9) 이 존재하는 사람이 드리는 예배입니다. 또한 영적인 예배에 있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수적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으로 기도'(유 20)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23절)께 예배하는 것이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2) 진정으로 예배해야 함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는 것'(2절)을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방 종교인들이나 전통적이 무속 종교인들은 사마리아인들처럼 율법과 선지자를 무시한 채 무조건 자신들의 안전과 축복을 위하여 빌곤 합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는 성경을 알기 때문에 말씀에 근거하고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예배를 드립니다. 또한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25절)의 출현을 고대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에 힘입을 때만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을 수가 있으며(히 10:19),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영원하고 참된 예배처에 대한 교훈은 영적인 각성과 부흥이 필요한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가르치심을 좇아 우리 가운데에 만연되어 있는 맹목적인 종교성이나 불필요한 전통을 버리고, 참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영적인 각성과 부흥 운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편 92편 주일설교말씀] 진정으로 감사하는 성도(시 9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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