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요한복음 13장 설교말씀] 서로 사랑하자(요 13:34-35, 아가서 1:2-7)

기혼샘 2021. 6. 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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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13장 설교말씀 중에서 서로 사랑하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새 계명을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나 직장이나 가정에서 서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으니 이제부터 서로 사랑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제 목: 서로 사랑하자

 

설 교 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요 13:34-35, 아가서 1:2-7

 

요    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주제: 교회를 사랑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사랑으로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자

 

믿음, 소망, 사랑(信望愛)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 왕국에 대한 소망,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생활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주님 오실 때까지 있어야 하며 이 중에 최고는 사랑입니다(고전 13:13). 마게도냐 지역에서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한 데살로니가 교회는 신망애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 work of faith와 사랑의 수고 labour of love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patience of hope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 1:3) 사랑에는 수고가 있습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신 기사를 시작하는 요한복음 13:1에 보니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라 he loved them unto the end” 예수님의 목회, 예수님의 지도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랑의 목회” “사랑의 리더싑 love leadership” “사랑의 상담학”이십니다. 예수님을 배반하여 감람원(겟세네마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곳까지 대제사장 군병들을 인도할 가룟유다도 끝까지 사랑해 주시사 그의 발을 씻어 주시고, 사랑하는 주님을 세 번씩이나 강하게 부인할 베드로의 발도 씻어 주시고, 주님 체포하는 순간 다 도망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우리도 이런 사랑을 배워야 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의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고 배신하고 멀리 떠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는 바로 그 사랑의 수고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자신의 독생자(only begotten Son)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셔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무궁한 생명(everlasting love)을 가지게 됩니다(요 3:16). 이번 사순절 기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실천합시다. 예수님에게 받은 사랑을 나와 이웃에게 풍성히 나눠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신 후 “너희가 나를 선생님이라 또는 주님이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들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들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3-15) 하시면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Ye love one another.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34-35)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에도 이웃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9:18, 19:34, 시 16:3, 18:1, 119:63)

 

Mat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Mat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Mat 22: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막 12:31-34, 눅 10:27-37, 요 15:12, 15:17, 17:21, 롬 12:10, 13:9, 고전 12:26-27, 13:4-7, 갈 5:6, 5:13-14, 5:22, 6:10, 엡 5:2, 빌 2:1-5, 골 1:4, 3:12-13, 살전 3:12, 4:9-10, 살후 1:3, 히 13:1, 약 2:8, 벧전 1:22, 3:8-9, 벧후 1:7, 요일 4:7-11, 4:21, 5:1)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2-14)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18-24)

 

아가서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거룩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 되는 교회를 사랑하여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아 4:10)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내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가리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아 1:2-4)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찬 208장, 통246장 1절)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사랑이 없으면 실패합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신령한 은사를 매우 열망하고 있었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바울 사도는 여러 가지 은사를 소개한 후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고 하시면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심령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무기인 사랑은 고쳐 주고, 인정해 주며, 온전케 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다시 하나로 이어 주는 완벽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무기를 손에 들고 모든 전투에서 그것을 사용할 때에 우리가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확증을 줍니다.  사랑은 최후 승리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7-39)고 하셨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롬 13:8)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갈 5:13)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엡 5: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라” (살전 3: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사랑의 수확을 거두기 전에 먼저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을 주면 사랑스러운 사람이 됩니다. 스몰 박사님(Dwight Small)은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가 결혼으로 하나가 될 때, 인간성은 온전하게 회복된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자랑하고, 여자는 그녀 없이는 남자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자랑한다. 여자는 그녀가 남자를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겸손해지며, 남자는 그녀 없이는 자신이 완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겸손해진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 4:9-12)

 

왜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독생자를 주시는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방언과 천사의 말은 시끄러운 소리밖에 되지 않으며, 사랑이 없는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는 구제나 순교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고전 13:1-3)  사랑의 종소리, 바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끝까지 갑니다.

주님의 사랑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공평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말없는 실천입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습니다.

 

죄의 본질은 사랑의 결핍에서 기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법을 초월합니다. 이 주제가 주님 안에서 거듭난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 Dostoevskii, 1821-1881)의 <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 1866)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독하게 살아가면서 하나의 논리를 추구했습니다.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이 비록 인간이 만든 법률과 도덕을 위배했어도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범죄를 했다면 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수 없는 전쟁을 일으키고도 영웅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대학생은 무가치한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무한히 증오했습니다. 이웃에 살고 있던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세상을 위하는 행위니까 당연히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 어느 술집에서 자칭 무식쟁이인 알콜 중독자(주정뱅이)를 만나는데, 그 사람의 딸 소오냐를 알게 됩니다. 계모와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춘부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더럽히지 아니했음을 알게 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마침내 노파를 살해하고, 빼앗은 돈의 일부를 소오냐에게 주고는 나머지 돈을 모두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이 마음에는 무서운 괴로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는데 양심의 가책이었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고 그의 생활은 한없이 우울해지며 깊은 고독감에 빠지게 됩니다. 노파의 살해사건을 수사하던 판사는 이 가난한 대학생이 저지른 일임을 마음속으로 확신하면서도 확증이 없습니다. 이러는 동안 술주정뱅이가 마차에 치여 죽게 되자 그는 불쌍한 이 집안을 도와줌으로 양심의 가책을 덜어보려고 하였습니다.  소오냐와 자주 만나는 중 그녀가 방임 상태에 있던 그에게 성경을 읽어 들려줍니다. 성서를 듣는 동안 소오냐의 청순한 마음에 움직여 마침내 노파살인을 고백하고야 맙니다. 소오냐의 권유로 자수를 하였고 마침내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소오냐도 자진해서 그를 따라 갔습니다. 소오냐의 깊은 애정에 흔들려 유배생활 동안 그의 참된 인간성이 살아났습니다. 이 순결한 애정이야말로 그이 이론이나 주장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임일 깨닫게 됩니다. 그로부터 그의 새 삶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문의 인(仁)이란 하늘과 땅(자연) 그리고 인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인자(仁慈)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고 했습니다.

 

1936년 여수 애양원(나환자 숙소 및 병원)에서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평양신학교 신학생 손양원 전도사가 내려와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별명이 ‘손 불덩어리’라고 불릴 만큼 능력이 많은 손전도사가 집회를 인도하러 애양원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외부인이 애양원에 들어가려면 수위실에서 철저하게 검사를 받고 흰 가운을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고약한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하고 눈만 내놓고 들어가야 하며, 예배당 안에도 유리 칸막이가 있어 환자들이 예배드리는 곳과 직원이 예배드리는 곳이 구분되어 있었답니다.

 

첫날 집회를 인도하면서 35세 된 손전도사는 마스크와 장갑을 벗어던지고는 환자 방으로 와서 유리창 안에 있던 흰 옷 입은 직원들에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잖소? 나환자를 구하려면 환자들 속으로 들어가야지 병이 무섭다고 마스크를 한다면 누가 마음의 문을 열겠소?’ 이 발언은 특히 흰 옷 입은 사람들과 괴리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환자들에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설교하는 손전도사의 설교가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았고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애양원교회에 새 바람이 불었는데 마스크를 벗는 직원들이 늘어났고 애양원 환자들도 그런 직원을 신뢰하게 되었답니다.  집회를 인도한 지 3년 후인 1939년 7월에 손양원 목사는 애양원교회에 부임하여 목회를 하던 중 신사 참배 거부로 수년간 옥중생활로 갖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습니다. 해방후 1948년 10월 여수에서 좌익이 중심된 ‘제4연대 항명사건’이 일어났고 이것이 여순 반란사건으로 이어져 여수와 순천지역이 1주일동안 좌익 세상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많은 우익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그 중에 순천에서 공부하고 있던 손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희생되었습니다.  주일예배 도중 이 비보를 듣고도 침착하게 끝까지 예배를 인도한 후 현장에 달려갔답니다. 두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후 아들을 살해하는데 동참했다가 체포된 좌익 학생 안재선의 석방을 주선하고 그를 ‘양자’로 삼겠다는 ‘폭탄적인 선언’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릅니다. 그때부터 안재선은 양아버지의 폭탄적 사랑의 증인으로 손 목사의 부흥회에 동행하였고, 손목사님께서 그를 소개할 때마다 성도들이 박수로 환영하였답니다.

 

위로의 말 한마디가 정신과 의사보다 낫습니다. 사랑의 눈동자와 미소 짓는 얼굴이 이혼장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 심장에 따뜻한 피가 넘치게 합시다. 그것만이 해결의 희망입니다. 따지기 전에 손목 잡고 얼굴을 붉히는 대신 대화를 합시다. 사철에 봄바람 부는 가정을 만듭시다. 사랑의 훈훈한 봄바람을 날립시다.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상한 과제물을 내어 주었습니다. 볼티모어의 슬럼에 사는 200여 명 정도의 청소년을 만나서 그들이 진정으로 소망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또 자신이 먼 훗날 어떤 처지에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지 등의 설문 조사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며칠 후 학생들은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고 대단히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슬럼의 청소년들 중 90%가 자신은 멋 훗날 교도소에 갇혀 있지 않겠느냐고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습니다. 다른 교수가 오래된 서류를 정리하다가 25년 전의 그 설문조사 자료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과 학생들에게 25년 전의 그 예견이 얼마나 들어맞았는지 확인해 보도록 한 결과 200명 중 180명을 찾아보니 4명만 교도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무슨 연유로 해서 그렇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밝혀 보기 위해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100명 이상이 그들 각자에게 도움을 주고,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었으며 깊은 인상을 심어준 한 고등학교 교사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학생들은 수소문 끝에 은퇴하여 양로원에 살고 있는 오로크 선생을 찾아냈습니다. 경유를 설명한 후 그녀는 미소를 띠며 과거에 자기가 가르쳤던 학생들을 회상하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 한 가지 있어요.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했다는 사실이에요. 정말로 그들을 사랑했어요”  그렇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변화시킵니다.

무엇을 하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가정, 교회, 사회, 인류가 사랑의 띠로 묶이는 화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신비한 띠입니다.

사랑은 서로의 수치를 가려주는 옷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화음입니다.

사랑은 천국의 시작이자 전부입니다.

사랑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묘약입니다.

사랑은 용기를 솟아나게 하는 보약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만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생각하며...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나는 이전에 몰랐던 기쁨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나는 행복이라고 부르는 높은 봉우리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나는 시간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나는 당신의 눈동자를 통하여 지금의 아름다움과 영원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나는 인내로써 기다리는 힘을 얻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셨기에

나는 삶도 죽음도 모두가 축복인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사랑의 빚을 집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8-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며 매 순간 새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실천하여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합시다. 우리 가정도 사랑의 가정을 만드시고, 우리 교회도 사랑의 교회로 만듭시다. 주님처럼 끝까지 형제, 이웃, 가족, 친척, 친구들을 사랑합시다. 아가페로 세상과 인생을 승리합시다.

 

 

[디도서 2장 강해설교말씀] 성도의 윤리에 관한 권면(딛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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