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추수 감사절 주일 설교말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로마서 2:1~29)

기혼샘 2021. 11. 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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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은 추수감사절 주간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로마서 2장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죄를 지으면 심판받을 수밖에 없음을 말씀합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심판받을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대속하셨기 때문에 나의 죄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 믿음으로 주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면제받아야 합니다.

 

제목: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롬 2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로마서 2:1~29

 

요절: “그러나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롬 2:2)

주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진리를 깨닫자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드립니다. 감사는 드리는 것입니다(Thanks+giving). 시 107:1, 시 136:1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분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무궁하기 때문이라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히브리어로 “호두 라도나이 hodu l’Adonay”의 동사 야다(yâdâh)의 뜻은 “인정하다, 고백하다 confess”인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무궁하다는 것을 인정하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 감사의 본질입니다. 이 ‘호다’의 명사가 ‘토다’인데 대단히 감사합니다(Todah Ravah)라고 합니다. 이 단어가 구약성경에서 114회 나옵니다. ‘토다 todah’와 함께 나오는 단어가 ‘찬양 tehillâh’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예배의 키워드(key word)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 100:4) 감사가 넘치면 찬양이 나오고, 찬양의 주제는 감사가 핵심입니다. 예배하러 올 때도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 후 나갈 때도 감사와 찬양을 합시다. 1620년 대서양을 건너 미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신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1년 후 이들은 원주민들과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이 현대 감사절의 기원합니다. 이번 주 목요일 11월 25일은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로 지킵니다. 감사를 서로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올해 한해 동안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 지내왔어도 더욱 성숙하고 겸손하고 정직한 자세로 돌아왔다면 이런 고난과 환난도 감사할 뿐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J.A. Hultman, 문정선목사 번역)로 찬양드립시다.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론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 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가마,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 가사도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찬송가 593장(통합 312장) Father, I Stretch My Hands to Thee

 

1) 아름다운 하늘과 묘한 세상 주시고 많은 사랑 베풀어 우리 길러 주시니

(후렴) 우리 주님 예수께 감사 찬송합니다

2) 산과 들의 초목을 울창하게 하시고 달과 별의 광채를 밤에 보여 주시니

3) 눈과 귀를 밝히사 맘과 뜻이 합하고 신기하게 움직여 묘한 조화 이루니

4) 부모 자녀 애정과 형제자매 우애와 친구들의 사랑을 나누도록 하시니

5) 거룩한 손 가지고 봉사하는 교회가 순결한 그 사랑을 나타내게 하시니

6) 주는 인류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사 땅에 평화 이루고 하늘 기쁨 주시니

아멘

 

오늘은 로마서 2장을 강해합니다. 1장 18-32장에 언급한 인간의 여러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심(롬 2:1-16)

 

(1) 그러므로, 오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누구이든 변명할 수 없나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들을 행하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서 네 자신을 정죄하기 때문이라. (2) 그러나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3) 오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들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6)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7) 참고 꾸준히 잘 행함으로 영광과 존귀와 죽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고 (8) 논쟁하기 좋아하며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로 갚으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 위에 환난과 곤고가 닥치리니 먼저는 유대인의 혼 위에요 또한 이방인의 혼 위에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화평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로다. (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 (12) 율법 밖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또한 율법 밖에서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니 (13)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아니하고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14)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16) 이런 심판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이루어지리라.

 

1-3절. 은혜받는 사람의 특징은 “주님, 이 죄인이 왔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의 자세를 가지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의 용서의 은총을 기다리는 사람은 결국 은혜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남의 죄를 비난하며 판단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도 악하면서 남의 악함을 판단하기 잘합니다. 이유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고유 특권인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을 훔친 아담과 하와의 후예이기 때문입니다. 이 판단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려야 합니다. 자기에게 의로운 판단력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 그를 옳은 자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남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판단한다고 해서 그가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이 판단의 행위에서 그는 자신을 정죄하는 셈이 됩니다. 그 자신이 동일한 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양심은 자신도 정죄받아야 할 자임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그대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악인이든지 그를 판단하는 자든지 혹은 그를 심문하고 벌을 주는 재판관이든지 하나님의 공의롭고 진실한 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합시다: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판단하지 말라. 너희가 무슨 판단으로 판단하든 그것대로 판단을 받고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네가 어찌 네 형제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눈에서 티를 빼 주겠노라, 하려느냐? 너 위선자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 (마 7:1-5)

 

4-5절. 남의 죄를 판단하면서 자신은 회개치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더 큰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다른 죄인보다 더 악합니다. 장차 하나님의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고 미래의 한 사건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죄인이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 두 가지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의 필요성을 증거합니다.

6-7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습니다.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행한 대로 심판하시는 것은 인류 역사 시초로부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원리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해서 선을 행하고 자기가 원해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적 결단으로 선이나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가 행한 대로 그리고 자기가 행한 만큼 하나님의 보응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무궁한 생명으로 보응하십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한두 번 선을 행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계속 선을 행하는 것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은 참으로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영생의 천국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참고 선을 행함으로써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는 복된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에 이를 것입니다. 사람은 율법에 계시된 선한 말씀들을 온전히 행할 때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에 계시된 공의의 원리입니다. 신명기 4:1은,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고 하십니다. 우리의 행위는 여전히 부족하고 오직 예수님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우리는 참고 선을 행하며 천국과 부활을 사모하다가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8절. 악인들 속에는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적인 욕심과 야망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존귀성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세상의 헛된 것만을 더 가지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리에 복종치 않고 당을 지어 진리와 다투며 불의를 좇고 온갖 악을 행합니다. ‘당을 지어’라는 말은 ‘당파심으로, 다투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노와 분으로 보응하실 것입니다.

 

9-10절. ‘곤고’라는 말(스테노코리아 stenocoria)은 ‘곤경, 심한 고생’이라는 뜻입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 환난과 심한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육신에도 그러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그의 영과 혼에 고통이 따르며, 악인은 죽은 후에도 그 영과 혼이 지옥에서 고통 가운데 있게 됩니다(눅 16:23-25). 죄의 대가는 사망이요 지옥입니다. 악에 대한 이러한 보응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행복도 의인의 심신(心身)에 다 적용되며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다 적용됩니다.

 

11절. 하나님의 심판은 보편적이며 세계적입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된 대로,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다 적용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역사와 전통과 특권 때문에 그들을 차별되게 취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가문이나 재산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직업이나 학력 등 외적 조건을 보고 편벽되이[차별되게] 그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공평의 하나님이십니다.

 

12-13절. “율법 밖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또한 율법 밖에서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니”(12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는 증거는,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 사실에 있습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나 다 행한 대로 공의롭고 공평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3절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앞에서 더 나은 조건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율법을 아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율법을 지켰느냐가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의하면, 율법을 지킨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신 6:25).

 

14-15절. 이방인들은 그들에게 율법이 없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서 면제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 없는 이방인들도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며 그 양심으로 옳고 그름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양심, 즉 도덕적 분별력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기록해 두신 율법과 같습니다.

 

16절.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라는 말씀은 바울이 증거한 복음의 내용 속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진리가 있음을 말합니다(히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리의 기초 원리들을 떠나 완전함으로 나아가서 죽은 행위들로부터의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세례[침례]들에 관한 교리와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심판의 진리는 두려운 진리이지만, 복음의 기본적 내용으로 밝히 증거되어야 할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심판주가 되심을 보입니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주이십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철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신 판단’이며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심판이라는 사실이 5절과 6절에서 이미 증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드러난 행위들에 대해서만이 아니고 은밀한 행위들에 대해서도 그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공의롭고 철저할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1-16절을 요약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 앞에서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함의 강퍅을 부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며 사람들의 은밀한 행위들까지 다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께로 나와야 합니다. 또 우리는 말씀을 아는 자만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일 1:9)

 

2. 유대인의 잘못(롬 2:17-26)

 

(17) 보라, 네가 유대인이라 불리며 율법 안에 안주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에서 가르침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알고 훨씬 더 뛰어난 것들을 입증하며 (19) 또 너 스스로 눈먼 자들의 안내자요,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의 틀과 진리의 틀을 갖춘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의 스승이요, 아기들의 교사라고 확신하는도다. (21) 그런즉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사람이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사람이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들을 몹시 싫어하는 네가 신전 물건을 몰래 취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말미암아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도다, 함과 같으니라. (25) 네가 율법을 지키면 할례가 참으로 유익하나 네가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되면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나니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의를 지키면 그의 무할례를 할례로 여겨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이행하면 율법 자구와 할례를 통해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하지 아니하겠느냐?

 

17-24절. 유대인들 중에 한 지도적인 인물을 가상적으로 들어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대인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이런 사람은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깁니다. 그는 율법 지식과 진리의 형식 혹은 내용을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神社=신전)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바울은 남을 가르치는 유대인이 도적질하거나 간음하여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과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악을 행하는 그 유대인으로 인해 그의 하나님을 욕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형식적 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교인이라는 이름, 더욱이 직분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악을 행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다운 인격과 삶이 없이 교인이라는 이름이나 교회의 직분을 자랑하지 맙시다. 직분보다 중요한 것이 선한 인격과 삶임을 깨닫고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25-27절. 할례를 받은 것은 율법을 행할 때 가치가 있지, 율법을 범할 때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은 무할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무할례자인 이방인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유대인들을 판단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할례와 무할례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3. 내면적인 유대인(롬 2:28-29)

 

(28)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29)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율법 자구(儀文)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구약도 마음의 할례를 가르칩니다(신 10:16; 렘 4:4). 그것은 마음의 모든 불결과 강퍅함을 베어 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령의 거룩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 곧 중생(重生)을 가리킵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마음과 내면성의 복음이며, 변화된 심령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마음의 변화, 즉 모든 죄악된 마음의 상태로부터 새로워지고 깨끗해짐을 가져옵니다. 참된 경건은 마음이 새로워져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가 진정한 내면적 유대인(inwardly Jew)입니다. 우리는 형식적 교회 생활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구원이란 마음의 할례, 즉 마음의 거룩한 변화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깨닫고 심령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은 자존심과 고집이 세어서 회개를 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들은 성민이다 선민이다하며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동족 유대인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주며 심판을 피하지 못함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이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불평과 원망을 한 생활과 습관을 회개해야 합니다. 영어의 thank는 think에서 나왔다는데 생각에서부터 감사가 늘 있어야 합니다. 생각과 생활이 일치되는 것이 내면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골 3:17).

 

[오늘의 기도]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범사에 감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코로나 재앙 가운데서 올해를 지나는데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때로 병마로 어려움을 당한 때도 감사, 건강해서 감사, 가난할 때도 감사, 형통할 때는 더욱 감사하게 하옵소서. 오늘 로마서 2장을 통해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영적인 교만으로 눈이 어두워져 여러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감사의 마음으로 모든 죄악의 마음을 씻어내고 의의 길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일 대표 기도문] 추수 감사 주일 예배 대표 기도문

 

[주일 대표 기도문] 추수 감사 주일 예배 대표 기도문

11월 셋째 주일은 기독교의 절기인 추수 감사절입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림으로 영광스러운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삶을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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