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욥기 34장 강해설교말씀]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심(욥 34:1-37)

기혼샘 2022. 5. 2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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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4장에서 엘리후는 욥의 악행에 대해서 책망하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불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정당합니다. 그런데 욥은 지금까지 자기의 의만 주장해 왔습니다.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았는데 왜 자기에게 이런 일들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엘리후는 이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모두가 옳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하시는 일인데 욥은 계속해서 자기의 의로움만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의 의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자만하거나 교만하여 공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심(욥 34:1-37)

 

1-15,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심

[1-4]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 . . .

엘리후는 또 말한다.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엘리후는 사람의 입이 식물의 맛을 분별하듯이 사람의 귀가 말을 분별하므로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을 택하고 선한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선과 악, 의와 불의가 섞여 있다. 어리석은 자는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말하고(12:18), 또 아무 말이나 다 믿지만(14:15), 지혜로운 자는 듣는 것을 분별하고 말하는 것도 조심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셨다(55:8-9).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다(16:23).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의롭고 선한 것을 분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교훈하였고(12:2),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교훈하였다(살전 5:21-22).

[5-9]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 . . .

엘리후는 또 말한다.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거짓말쟁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 어느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훼방하기[조롱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쟁이가 되었다는 원문은 내가 나의 의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랴?’라고 번역할 수 있다(KJV, NASB).

욥은 전에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거짓]을 발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27:2, 4). 욥은 또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어떤 죄를 짓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나 욥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조롱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고난 중에 한 말이라도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 욥이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말하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고 말했다면 그것도 잘못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한 자들과 더불어 살면서 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여러 가지 점에서 유익이 많다. 고난은 우리에게 교정의 유익뿐 아니라, 예방의 유익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아무 소용도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10-15]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 . .

엘리후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치 않으시고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 그는 각 사람을 그 행위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시고 보응하신다. 이것은 성경의 기본 진리이다(12:14; 2:6). 엘리후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그것은, 아마, 욥도 하나님의 엄격한 잣대로 보면 흠과 점이 없지 않으므로 그가 당한 고난이 하나님의 공의의 처분 안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엘리후는 또 말한다.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계를 정하였느냐? 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진대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 ‘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라는 원문은 그가 만일 자기의 결심대로(NASB) 혹은 자기의 의도하신 대로(NIV) 하시면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대로 자기 영과 자기 호흡을 거두신다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과 모든 사람들은 다 죽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은 세상 만물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가진 주권자이시다. 그러나 그는 그 권한을 다 사용치 않으시고 우리에게 많은 은혜와 선을 베푸셨고, 우리는 그의 선하신 섭리 속에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이다.

욥이 자신은 의롭고 정직하나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제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며 비방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과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 엄격한 잣대로 보면, 욥도 흠과 점이 없지 않으며 그의 당한 고난도 하나님의 공의의 처분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의로우심을 의심치 말고 그의 섭리를 조롱하거나 비방치 말자. 또 어떤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하자.

16-37, 하나님은 공의의 섭리자이심

[16-20] 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 . . .

엘리후는 또 말한다. “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치리하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자를 네가 정죄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미워하시는 자가 아니시고 의롭고 전능하신 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그의 섭리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말고 겸손히 또 잠잠히 순응해야 한다. 실상 우리는 죄악된 세상 속에 살면서 부족들과 실수들이 없지 않고 우리 속에는 죄성이 남아 있음을 안다.

엘리후는 또 말한다. “그는 왕에게라도 비루하다 하시며 귀인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신다. 그는 왕족이나 부자를 평민이나 가난한 사람보다 더 생각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 그의 손으로 지은 바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외적 영광과 아름다움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실상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밤중에 순식간에 죽어가며 심지어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이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한다.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군대가 유다를 공격했을 때 여호와의 사자는 나가서 하룻밤에 앗수르 진중에서 18만 5천명을 쳤다(37:36). 유다 왕 헤롯이 백성의 칭찬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을 때 주의 사자는 곧 그를 쳤고 그는 충이 먹어 죽었다(12:21-23).

[21-22]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 . . .

엘리후는 또,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모든 길, 즉 그들의 모든 행위를 주목하시고 감찰하신다. 또 그는 공의로 모든 일을 보응하신다. 특히 악을 행한 사람은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죽인 가인의 악행을 보셨고(4:9-10), 동생을 팔아넘긴 요셉의 형들의 악행을 보셨다(45:4-8).

시편 139편 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고 하였다(1-4, 7-8).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륙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다(9:1-4).

[23-25]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 . . .

엘리후는 또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사이에 엎으신즉 멸망하나니라고 한다.

세상의 재판은 확실한 증거들을 수집하고 확인하는 데 오랜 시간, 때로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고 심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때로 무엇을 바르게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변론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완전한 지혜와 지식으로 즉시 바른 판단을 하신다.

또 그는 그 바른 판단에 의거하여 그의 능력으로 권세자를 꺾으시고 그를 폐하시고 다른 사람을 세우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행위를 다 아시고 밤 사이에 그들을 엎으시고 멸망시키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시고 참으로 엄위하시다. 그러므로 다니엘 4장은 하나님을,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자라고 증거하였다(단 4:17, 25, 3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행하시는 일들의 완전함과 엄위함을 잊지 말고 그 앞에 잠잠하고 그의 섭리에 겸손히 순응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환난을 주실 때 우리는 그의 섭리를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혹시 생각나는 죄가 있으면 철저히 회개해야 하고 그런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잠잠히 참고 기다려야 한다.

[26-28]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 . . . .

엘리후는 또 말한다.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無關)히 여김이라.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케[이르게] 하며 환난받는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징벌하신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징벌하시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無關)히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은 그를 경외하지 않고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기본 의무를 저버렸다.

또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길을 무관히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나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명하신 모든 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악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고 말했다(5:12). 악인들은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도, 하나님의 계명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과 해를 당하고 호소할 곳이 없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된다. 야고보는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말했다(5:4).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잘 들으시고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동정하시고 악인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29-30]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 . . .

엘리후는 또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서 환난과 고통을 거두시고 평안을 주실 수 있다. ‘잘못하신다고 하다는 원어(야르쉬아)‘(악하다고) 정죄하다는 뜻이다(BDB, NASB).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때 아무도 그것을 정죄하지 못한다.

엘리후는 또 주께서 자기 얼굴을 가리우실 때에 누가 감히 뵈올 수 있으랴.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시니라고 말한다. ‘얼굴을 가리우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호의를 거두시고 환난에 버려두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로 뜻하시면 그의 은혜와 도우심을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 이것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일반이다.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었던 평양시는 많은 신자들과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흘린 공산 독재사회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 도시는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가결한 장로교 총회가 열렸던 도시이었다. 그 도시의 현재는 공의의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보인다.

엘리후는 또 이는 사특한 자로 권세를 잡아 백성을 함해(陷害)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사특한 자라는 원어(카네프)불경건한 자(BDB, NASB, NIV)라는 뜻이다. 불경건한 통치자는 자신이 백성 앞에서 의와 사랑을 실행하는 것처럼 처신하지만, 실상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므로 불법을 행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 악한 자이다. ‘함해한다는 원어는 올무에 걸린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그런 악한 자가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자기 백성들로 그들의 압제의 올무에 걸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31-37] 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 . . .

엘리후는 또 말한다. “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치[패역하게 행치] 아니하겠나이다.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사람은 자신의 죄와 패역함을 깨닫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혹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그에게 아뢰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엘리후는 또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 대로 말하라”고 말한다. 33절은 번역하기 어렵고 영어번역들도 다양하다. ‘싫어하다는 원어(마아스)거절하다, 멸시하다는 뜻이다. 본절 전반부는 아마, “네가 멸시하였기 때문에, 그가 네 판단대로 보응하시겠느냐?”일 것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판단대로 보응하지 않으심을 말하는 것 같다. 사람의 판단은 심히 불완전하고 부족하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을 내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엘리후는 또 말한다. “총명한 자와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 있는 자가 필연 내게 이르기를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지혜 없다 하리라.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엘리후는 욥이 지혜와 지식이 없이 자신의 죄 위에 하나님께 패역한 말을 더한다고 지적한다. 사람이 고난 중에서라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욥의 부족이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전능의 섭리를 확신하자.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즉각적 지식과 공의의 판단과 엄위한 보응을 깨닫고 그의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할 때라도 그의 지혜와 의로우심과 능력을 믿고 의심치 말자.

우리는 악한 자들처럼 살지 말자.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며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그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든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법을 힘써 지키며 그의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자.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처분에 순응하자. 우리는 고난 중에 겸손히 우리 자신을 살피며 혹시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 속에 악한 요소가 없었는지 반성해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하며, 모든 일을 오직 공의와 긍휼의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며 참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결코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말고 또 패역한 말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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