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디모데후서 2장 강해설교말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딤후 2:1-26)

기혼샘 2021. 10. 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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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사역자들이 주님 안에서 충성된 일꾼으로서의 군사가 되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서 농부가 열심히 추수하듯이 영혼을 추수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목: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 (딤후 2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디모데후서 2:1-26

 

요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3)

주제: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님께 복종하고 순종하여 좋은 군사가 되자

 

디모데 후서 2장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주님의 좋은 군인, 좋은 농부, 훌륭한 운동선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집안의 여러 그릇들을 비유하면서 항상 깨끗하고 쓰임 받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딤후 2:1-13)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좋은 군인으로 고난을 받으라. 4 군인으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인으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님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1-2절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1절 시작의 ‘그러므로’(οὖν)라는 말은, 딤후 1장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복음 사역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나 많은 사람이 바른 진리의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고 진실한 일꾼들이 부족하므로’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디모데는 더욱 굳게 서서 말씀 증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해서 강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안에 강하고 be strong in the grace that is in Christ Jesus’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의 은혜 안에 강하라고 격려합니다. 그 은혜 속에서 강하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의(義)를 굳세게 믿고 의지하고 모든 죄를 버리고 마귀의 권세를 담대히 물리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2절에서 또 디모데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바울에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울에게 들은 바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 복음을 말하는데 즉 그분의 탄생, 그분의 기적들,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 그분의 부활, 그분의 승천과 재림에 관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복음이 ‘많은 증인 앞에서 among many witnesses,’ 확증된 것들이고, 세상 끝 날까지 선포해야 할 내용입니다. 코로나 재앙이든 태풍이나 폭우나 폭염이나 폭설이든 우리는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는 일에 중단이 없어야 합니다. 기독교 진리는 많은 증인들에 의해 확증된 역사적 사실들입니다. 기독교는 꾸며낸 이야기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은 소설이나 신화가 아니고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타 종교나 자유 신학자나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꾸며진 인물이 아닙니다. 만일 그분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지 않으셨고 기적들을 행하지 않으셨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지 않으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거짓말이 아니었고 많은 증인들의 증언들에 의해 증거 되고 확증된 진리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가르쳐라”라고 합니다. 디모데의 사명은 자기가 받은 복음을 충성된 자들에게 전수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복음 진리가 후시대에 전달되며 계승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참된 제자 훈련이며 신학 교육입니다. 주님의 교회에는 복음 진리를 받고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만한 충성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날도 복음 사역을 위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성경 말씀을 진실하게 믿고 실천하는 자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믿을 만한 충성된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3-4절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인으로 고난을 받으라. 군인으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인으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는 충성된 일꾼으로서 본을 보여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인으로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바울이 많은 고난 중에서 고전분투하며 전도의 일을 하였듯이, 디모데도 고난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전도는 전쟁터에, 그리고 전도자는 군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전도 사역을 방해하며 전도인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교회 사역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각오하며 수행해야 할 일입니다. 전도자들은 군인 정신으로 일해야 합니다. 군인들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훈련이 있으면 언제나 참여해야 하고 비상이 걸리면 언제나 출동해야 합니다. 군인은 언제나 출전할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군인은 몸이 피곤하다거나 가정에 무슨 일이 있다고 싸움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군인은 그를 부른 국가를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그들의 충성된 행위와 수고 때문에 국민들은 평안히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일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들을 부르시고 세우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물론 전도자들이 자기 집을 내버리고 자기 가족들에 대해 무관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 집을 돌보는 것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나 주님의 종들은 무엇보다 복음 전하는 것이 첫째 사명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인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마땅히 자기 개인의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5-6절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두 번째로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을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에 비유합니다. 운동선수들은 규칙들을 지키며 경기를 해야 합니다. 모든 스포츠는 규칙과 원칙이 있습니다. 법대로 경기를 해야 합니다. 달리기 선수들은 출발신호부터 골인지점까지 규정을 지켜야 하고 트랙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축구 선수들은 공을 손으로 치거나 상대방 선수를 발로 차는 등의 반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경기에서 이기려면, 선수들은 반드시 규칙들을 잘 지켜야 합니다.

 

세 번째로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을 농부들에 비교합니다. 농사는 부지런함과 땀 흘리는 수고가 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땅을 일구어 고르게 하고 그 위에 씨를 뿌리고 적당하게 물을 공급해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병충해를 막아내고 마침내 잘 익은 곡식들을 추수하기까지 부지런하게 수고하고 뙤약볕에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 농사일입니다.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자라기를 기다리며 자라는 과정 속에서 돌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라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씨를 뿌렸는데 내일 수확을 하겠다는 기대를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도 이런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씨 뿌리는 자가 자라는데 도움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이를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으시는 주님이 가장 귀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6-7)

 

7-9절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님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인이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을 첫째로 생각해야 하고, 자기 생각과 뜻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해주신 규칙대로 행동해야 하고, 또 부지런함과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 계시로 받은 복음에서 증거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도 증거 된 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육신적으로 가 아니고 오직 법적으로이지만,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참된 인성을 소유하셨고 그분의 죄 없으신 인성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고난 받는 그분의 모든 제자들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10절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고난 중에도 모든 것을 참은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기 위해서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 the salvation which is in Christ Jesus’이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다 이루셔서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구원’입니다. 죄인들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과 함께 with eternal glory’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영원한 영광’을 동반하는 구원임을 뜻합니다. 구원은 영광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구원은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거하게 될 세계는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며(벧후 3:13), 현재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 8:18).

 

11-13절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믿을 만하지만 이 말씀은 더욱 믿을 만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으면 또한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왕 노릇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님을 부인한다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십니다(마 10:32-33). 우리의 믿음은 보잘 것 없고 우리의 마음은 약하지만, 주님은 항상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인들로서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고난을 각오하고 맡은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2. 진리의 말씀과 헛된 말(딤후 2:14-19)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주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14-15절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주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4절에 개역이나 개역개정에서 ‘하나님’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전통사본에서 ‘주님 the Lord’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일꾼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각오하고 자기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수고하며 인내할 것을 기억해야 하고 또 말다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의 일꾼들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자라도록 해야 하는 자들인데, 말다툼은 전혀 그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말다툼은 도리어 듣는 자들에게 큰 싸움이라도 있는 것처럼 오해를 주어 그들로 시험에 빠지게 하고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15절의 ‘진리의 말씀’은 딤후 1:13에 말한 ‘바른말’ 곧 건전하고 유익한 말을 가리키며, 2:2에 언급한 ‘내게 들은 바’이며, 2:8에 말한 ‘나의 복음’이며, 2:9에 언급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 해야 합니다. ‘옳게 분변 한다 rightly dividing’는 원어 (오르도토메오 ὀρθοτομεω orthotomeo)는 ‘정확하게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이 동사는 하나님의 진리의 바른 전달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바른 해석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우선 성경 본문의 각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하고, 각 문장의 뜻을 바르게 해석해야 하며, 또 앞뒤의 문맥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또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성경의 어떤 불명확한 부분들은 명확한 다른 부분들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합니다. 모든 복음 사역자들과 성도들은 성경책을 열심히 읽고 들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해설함으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야 했습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은 자기 임무를 다 하는 일꾼입니다. ‘인정된’이라는 원어(도키몬 δόκιμον dokimon)는 ‘시험된, 증명된’이라는 뜻인데, 복음 사역자는 설교할 때나 말씀을 가르칠 때 그의 말을 듣는 자들에게서 그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힘쓰라’는 말은 바른 말씀의 봉사자가 되는데도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입니다.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해설하는 것입니다.

 

16-17절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6절에 ‘망령되고’이라는 원어(베벨로스 βεβήλος bebelos)는 ‘속된, 불경건한, 가치 없는’이라는 뜻이며, ‘헛된 말’이라는 원어(케노포니아κενοφωνία kenophonia)는 ‘헛된 변론’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고 때때로 교회 안에도 망령되고 헛된 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경건하고 가치 없고 헛된 논쟁들이 그러합니다. 주님의 종들은 진리의 말씀을 보수하고 바르게 해석하며 속되고 헛된 말들, 불경건하고 무가치한 논쟁들은 피하고 끊어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더 경건치 아니함에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경건과 믿음에 유익한 말씀이지만, 헛된 말들은 점점 더 불경건과 불신앙으로 나아가게 할 뿐입니다. 불경건하고 헛된 말들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습니다. ‘독한 창질’이라는 원어(강그라이나 γάγγραινα gaggraina)는 몸의 한 부분이 썩어 다른 부분들까지 썩게 하고 마침내 뼈들까지 썩게 하는 무서운 병을 가리킵니다. 당뇨 환자들이 발에 상처가 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불경건하고 헛된 말들은 바로 이러한 무서운 병과 같습니다. 그것을 조기에 발견하여 조치하지 않으면 마침내 온몸을 버리게 됩니다. 교회가 이단에 대해 진지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마침내 온 교회가 부패하고 썩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단자들의 이름(후메내오 Hymenaeus와 빌레도 Philetus)을 언급합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부패시키는 이단자들의 이름을 분명히 들어 진실한 종들과 성도들로 하여금 조심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8절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불경건하고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문제는 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진실게임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백한 진리를 왜곡시키는 오류입니다. 만일 그들의 말이 옳다면, 우리가 장차 부활할 것을 믿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헛될 것입니다. 과연 어떤 이들은 그들의 말에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부활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허물어졌습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이와 비슷하게 성경 진리를 부정하는 사이비이단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신화’(saga) 혹은 ‘전설’(legend)로 간주되고 묘사하는 것은 사이비 이단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오늘날의 후메내오와 빌레도입니다.

 

19절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이 세상에는 이와 같이 불경건하고 헛된 말들 그리고 이단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습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 the foundation of God’는 복음 진리 곧 성경의 근본적 진리들을 말합니다. 히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여기에 열거한 진리들은 성경의 기본적 진리들이며 이런 진리들은 다시 닦여져서는 안 됩니다. 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터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터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이 분명합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주신 그 택하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6:39). 이단 사설들이 많은 세상에서라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바른 진리를 믿고 그 믿음에 굳게 설 것이며 마침내 다 영광스러운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진심으로 부르는 모든 성도들은 불의에서 떠나야 합니다. 불의에서 떠나지 않는 자는 참 성도의 표를 가지지 못한 자입니다. 불의는 도덕적 악뿐 아니라, 비진리와 사이비 이단을 포함합니다.

 

3. 귀히 쓰는 그릇 (딤후 2:20-26)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님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20-21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부잣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습니다. 주인 밥상에 놓이는 밥그릇이나 국그릇은 좋은 그릇일 것입니다. 귀한 손님이 오면 사용하려고 보관해 놓은 더 좋은 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쓰레기통이나 오물통 등으로 쓰이는 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주의 종들이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말과 같은 불신앙적 이단 사설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무엇보다 신앙적으로 윤리적으로 신학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모든 이단 사설들에 조금이라도 물들지 않고 성경적 바른 신앙 사상, 바른 교리 사상을 가져야 주님의 일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은 바른 말씀, 순수한 말씀으로 준비된 자들입니다. 그런 종은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될 것입니다.

 

22-24절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주님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 22절에서 주의 종들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신앙적으로 윤리적으로도 깨끗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음란의 죄는 매우 치명적 죄악이기에 정욕의 시험은 피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남녀 관계에서 오는 시험은 가까이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책입니다. 성경에서 요셉은 그것에 대한 좋은 예입니다. 창 39:10, 12,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비록 집주인은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범죄치 않으려 애쓴 경건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와 그의 하는 일에 복을 주셨다(창 39:21-22).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라는 말은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깨끗한 마음 a pure heart’은 모든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진실하게 믿는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모든 미움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며 자신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며 또 다른 이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는 자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이 모인 곳이 참된 교회입니다. 참된 교회는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가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의는 모든 죄와 불의와 악에 반대되는 말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말합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행위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성경말씀을 통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함으로써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윤리적 선을 포함하는 가장 고상한 덕이며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성품입니다. 천국에서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입니다. 또 우리는 화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 속에는 미움이나 교만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해야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려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은 교리적으로, 사상적으로 깨끗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인격적으로도 깨끗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23-24절에 주님의 종들이 소유해야 할 덕들이 있고 반대로 버려야 할 악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종들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다툼이 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란 용어나 명칭이나 표현상 문제로 다투는 말다툼이나 불경건한 변론들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일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온유하고 다투지 않는 성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이런 성품이 없고 사사건건 사람들과 다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의 훌륭한 지도자 모세는 매우 온유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 했습니다. 민수기 12:3에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종들은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는 자이어야 합니다. 자녀 교육에서와 비슷하게, 영혼들을 양육하는 일에는 많은 고통과 눈물과 더불어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25-26절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 뜻을 따랐던 그들로 깨어 그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실까 함이라” 목회자들은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해야 합니다. ‘징계한다’는 말은 ‘교훈한다, 교정한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혹시 회개함을 주셔서 진리를 알게 하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돌아오게 하신다면 그들도 회개하여 복음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26절에서 우리는 다 과거에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 뜻을 따랐습니다. 엡 2:2,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거역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면 그들이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좋은 군인, 농부, 운동 경기자처럼 인내하고 충성하며 법을 잘 준수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겠습니다. 이단 사설에 빠지지 말고 진리의 군사가 되어 대장되시는 주님만을 따라갑시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혼탁할수록 진리의 말씀은 더욱 빛이 납니다. 목숨까지 바치고 영적 싸움터에 나갈 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복음을 땅끝까지 전합시다. 그리고 늘 깨끗하고 주님의 쓰시기에 준비된 그릇이 되어 주님께서 언제나 부르실 때 대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로 하여금 주님의 귀한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바른 일군이 되도록 모든 정욕과 욕심과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의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거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언제든지 사용하시도록 준비되게 하옵소서. 이 가을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거룩성을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장 성경말씀] 오직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고전 1:1~31)

 

[고린도전서 1장 성경말씀] 오직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고전 1:1~31)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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