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레위기 6장 설교말씀] 번제(Burnt Offering)(레 6:8-13)

기혼샘 2021. 2. 1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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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레위기 6장 설교말씀 중에서 번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상징합니다. 주님께서는 선택받은 자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통당함으로 번제와 같이 하나님께 흠향되는 제물이 되었습니다. 화목 제물이 되어주셔서 내가 하나님과 멀어져서 죽었던 것을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번제를 통해서 고통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번제(Burnt Offering)(레 6:8-13)

 

레 6: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 6:9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레 6:10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레 6:11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레 6:12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레 6:13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들어가는 말 //다른 제사와의 차이점

 

1) 번제는 향기로운 냄새를 발하는 제사입니다.(9)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심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9) 향기로운 냄새를 발하는 제사! 이것은 속죄 제물과 다릅니다. 속죄 제물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없습니다.

 

2) 번제는 제주가 열납 되기 위한 제사입니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 하시도록 드릴지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3, 4)

번제의 핵심은 제주(祭主)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열납 되기 위해서 드려지던 제사라는 데 있습니다. 제물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제사를 드리고 있는 내가 하나님 앞에 열납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헌금을 받으시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받아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께서 나를 받으실 수 없다면 내가 바치는 그 재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 앞에 바치는 어떤 제물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 앞에 열납 될 수 있는가'라는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속죄제(續罪祭)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보다 속죄의 제물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열납 되는 것을 강조한 제사입니다.

 

3) 번제는 생명 있는 제물이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번제에 쓰여지는 그 재물은 반드시 생명 있는 제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소제와 구별되는 번제의 특징입니다. 소제에서는 고운 가루와 기름과 유향이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번제는 각종 동물들이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4) 번제는 제물의 전체가 태워지는 제사입니다.

다른 제사와 뚜렸이 구별되는 번제의 가장 큰 특징은 드려진 제물의 전체가 다 태워지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화목제에도 제물을 태우는 것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태웁니다. 그러나 번제는 제물의 전부를 태웠습니다.

 

본 론

1. 번제의 제물

 

번제에 사용되는 제물을 우리는 대략 3 종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소가 등장하고, 둘째로, 양과 염소, 세째로,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제물의 특징은

1) 제물은 다 사람들과 가깝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동물들입니다.

야생 동물이 하나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 이 제사는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물도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제물은 다 온순한 동물들입니다.

, 양과 염소, 비둘기 새끼들에게서 느껴지는 대표적인 느낌이 있다면, 그것은 `온순하다'는 것입니다. 또 평화와 순종의 느낌도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고 있는 제물은 구속사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도 하나님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았습니다. 

 

2. 제물 선택에 관한 이유

 

1) 경제적인 이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들 제물을 바치는 일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소가 100마리 이상 되는 집에서 소 한 마리를 바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소가 한 마리밖에 없는 집에서 소 한 마리를 바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양이나 염소를 바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있었으며 더 사정이 나쁜 사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를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우리는 여기서 경제적인 형편에 의해서 순서대로 제물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라도 자기의 형편에 알맞게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모두가 다 소를 바치도록 했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둘기를 바쳐도 된다고 하셨으므로 그들은 비둘기를 정성껏 준비해서 제물로 바쳤습니다.

 

2) 상징적인 이유

우리는 소에서 힘, 순종, 온유함, 평화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대의 한 문서에서 소는 `힘과 근면'의 상징으로, 양은 `순종'의 동물로,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가 없는 염소는 왜 제물로 허락되었을까요? 염소는 무엇보다도 어떤 제물 대신으로 드려졌습니다. 그래서 제물로서의 염소에는 `대신한다'는 의미가 아주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대신 희생이 되는 것, 이것은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 중 하나와 부합되는 모습일 것입니다. 각 제물들은 어느 면에 있어서든 우리를 위하여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다양성을 가르치고 있다고 보입니다. 능력 있는 그분, 온유하신 그분, 평화로우신 그분, 순결하신 그분,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드리고 순종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이 제물들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3) 예배적인 이유

예배적인 이유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주목할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소유한 것 가운데서 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없는 것을 억지로 꾸어서, 무리하게 빛을 내어서라도 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헌금의 정신과는 부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서 아무것이나 하나님께 드려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흠이 없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새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소유한 것 가운데서 받기를 원하신다고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천박한 것을 드린다면, 그것은 영광스러우신 하나님께 결코 합당한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헌금할 때 단상에서 교인들의 표정을 보면 아주 가지각색입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가 헌금 바구니가 오니까 갑자기 당황해서 지갑을 뒤적이는 태도는 한 마디로 가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가르친 헌금의 정신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미리 준비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계획하고 쓰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드릴 것을 예배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헌금의 정신입니까?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3:9, 10)

첫째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도록 결심하십시오. 수입이 있으면 맨 처음에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부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서 최선의 것을 그리고 처음 것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 사실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물을 바치던 정신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본문에서 제일 크게 강조하는 것은 `흠이 없는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구속의 제물로 드려지신 흠 없고 점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생생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어떤 흠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주님을 증언할 때 그분의 원수들까지도, 그분을 못 박은 백부장까지도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그분을 재판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준 빌라도까지도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눅 23:14)라고 고백하는, 완벽하게 흠이 없고 점이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7:26)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분의 완전성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이 얼마나 완벽하게 우리 주님의 죄 없는 완전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까? 그분은 완벽한 거룩성을 소유하신 완전한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인류의 속죄를 위한 합당하고 유일한 제물이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의 유일성이 있으며, 구원의 유일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 밖에는 없습니다.

 

3. 번제의 특성

 

1) 번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제물을 드릴지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 하시도록 드릴지니라"(2, 3)

번제의 제물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가 해결되어야 할 궁극적인 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이 자기의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궁극적인 대상은 다른 분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신부나 목사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2) 번제는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의 특징은 `스스로 자원(自源)해서 드리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러나 성경 원문의 2, 3절을 보면 이것은 스스로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 번제는 강요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드려지는 제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십자가로 가셨습니까? 십자가는 그분이 환경과 상황에서 피할 수 없으셔서 어쩔 수 없이 지신 마지막 결과가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그분이 자원해서 취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십자가를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아니고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죄 문제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향해서 스스롤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분의 목숨을 취한 것이 아닙니다. 빌라도가, 로마의 군병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그분에게서 목숨을 취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이것은 오늘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원해서 목숨을 드리셨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자원해서 주님을 섬겨야 할 때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누가 말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목숨을 스스로 버리신 그분의 거룩한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자원해서 나를 드리는 경건한 응답이 나타나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3) 번제는 안수가 있는 제사입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4)

제물로 드려진 소나 양을 잡기 전에 그 머리에 안수를 합니다.

 

*안수의 의미// 제물을 잡기 전에 그 머리에 안수하는 것의 3가지 의미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16:21).

안수를 하면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제물임을 인식하는 것

소나 양이 죽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가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죄를 짊어진 재물이 죽는 것은 그 죄를 지은 내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제물이 자신의 죄를 가지고 간다는 것

이것을 가리켜 `전가의 교리'라고 합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함으로써 자기의 죄가 제물에게 옮기어지는 것입니다. 안수의 행동에는 이와 같은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안수의 행동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우리 대신 짊어지시고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수는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모습을 부각시켜 주는 상징적인 실제의 몸짓이었습니다.

 

번제는 죽음과 피를 강조한 제사입니다.

번제에서 제일 중요하게 강조된 것은 죽음과 피입니다. 제물은 반드시 죽어야 하며, 그 피는 뿌려져야 합니다.

 

제물의 죽음// 왜 제물은 꼭 죽어야 했을까요?

그것은 모든 죄는 죽음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6:24, 약 1:15, 겔 18:4) 이렇듯 모든 범죄는 죽음을 요구합니다. 저와 당신의 범죄가 죽음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께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제물의 피 뿌림// 제물이 죽은 다음에는 그 피가 뿌려져야 합니다. 피는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피 뿌림의 행위는 그 제물이 나를 대신해서 완전히 죽음의 자리로 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명이 생명을 구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5) 번제는 정갱이와 내장을 강조한 제사입니다.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9)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13)

여기에서 정갱이는 다리를, 내장은 깊은 내면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생각건대, 내장은 우리의 마음과 관련된 부분일 것이고, 정갱이는 우리의 걸어 다니는, 즉 인간의 행위를 대표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정갱이와 내장을 물로 씻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우리의 내면과 외면을 물로 씻어야만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6) 번제의 제물은 완전히 불살라졌습니다.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9)

드려진 제물은 그 전부를 불로 태웠습니다. 제주가 자기를 위해서 유보하고 남겨둔 것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바쳐지는 제물이 번제였습니다. 제물의 전부를 불사른다는 것은 완전한 바쳐짐을 의미합니다. 번제는 완전한 바쳐짐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 우리는 어떻게 헌신합니까? "주님께 저의 시간도 생명도 다 바칩니다. 그러나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일만큼은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 번제물로 드려진 제물은 남겨 놓은 부분이 하나도 없이 모두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당신의 생활에서 드리지 못하고 남겨놓은 부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헌신은 문자 그대로 전폭적으로 자기를 모두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인정하신 이 말씀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 10:27, 28)

주님은 우리의 전 존재를 주께 바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12:1)

 

4. 제사의 의미들

 

1) "산 제사"

 

제물은 각이 뜨여지고 뿌려진 이 제물에 불을 사릅니다. 그러면 제물은 완전히 없어집니다. 그것을 보면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을까요? 목이 비틀리며 다리가 끊기며 죽어가는 이 비참한 제물을 보면서 제주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해서 죽는 저 제물' 그러나 마침내 그 제물이 번제단 위에서 완전히 태워져 그 자취를 감추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은 완전히 바쳐졌습니다. 나를 위해서 남겨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절대 헌신을 확인하며 번제단을 떠났던 것입니다.

 

2) 불의 의미

 

번제에서 재물을 태우는 불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죄는 마땅히 처벌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죄가 전가된 제물을 태우는 불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불 그것입니다. 불에 태워지고 있는 제물의 모습은 나의 모든 죄가 완전히 심판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생생하게 십자가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당신과 저의 죄는 심판되고 처형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번제단 위에 타고 있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자기들의 죄가 심판당하고 있는 광경을 본 것과 같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가 심판당하는 광경을 봅니다. 십자가에서 주께서는 나의 죄를 완전하게 해결해 놓으신 것입니다.

불이 제물의 마지막 부분을 완전히 살라버렸을 때에 하늘에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을 것입니다. "제사는 끝났다!"

하나님은 이제 완전히 해결해 놓으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19:30).

이 세상에는 두 가지의 종교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하라]의 종교이며, 다른 하나는 `이루어졌다'의 종교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놓으신 것입니다. 모든 도덕들은, 모든 윤리들은, 모든 종교들은 큰 소리로 "네 힘으로 네 문제를 해결하라"라고 말합니다만, 십자가는 "예수께서 다 이루셨다"라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물이 모두 불타버린 다음에, 그들은 제물을 받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며 그 제단에서 떠나갑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께 위임되어 심판된 이 사실을 보셨습니까? 그 위에서 내 죄는 완전히 심판되었으며, 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사함을 받는 거짓입니다. 당신의 삶의 자취에는 이 용서 받음을 감격하며 자리를 일어서는 감사가 있었습니까?? 우리 모두 죄 사함 받은 것을 감사하며 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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