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룻기 1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나오미 룻 오르바가 베들레헴으로 귀향(룻 1:6-14)

기혼샘 2021. 10. 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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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가 모압에서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10년쯤 되어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나오미의 마음에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귀향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갑자기 두 며느리에게 너희들은 다시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나는 자식도 없고 베들레헴에 가도 너희는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르바는 나오미를 떠나 다시 모압으로 돌아갔고 룻은 끝까지 나오미와 함께 가겠다고 말합니다. 

 

나오미 룻 오르바가 베들레헴으로 귀향(룻 1:6-14)

 

6절 바타콤 히 베칼로테이하 바타솨브 미세데 모아브 키 솨므아 비세데 모아브 키 파카드 아도나이 에트 암모 라테트 라헴 라헴

성 경: [룻1:6]

주제1: [나오미와 룻의 신앙]

주제2: [나오미와 두 며느리]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 여기서 '권고(勸顧)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는 '방문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계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목자가 양 떼를 보살피기 위해 찾아가 양들을 계수하며 모든 환경을 주의 깊게 돌아보는 상태를 일컫는다(4:31; 23:2). 한편, 본서의 저자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사사시대의 형편을 암시해 준다. 즉 사사 시대는 일반적으로 암흑의 시기로 이야기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중 우상 숭배가 극심했으며, 도덕적으로 매우 부패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때에는 반드시 그 백성을 돌보기 위해 찾아가셨다. 즉 이방의 침략 하에 고통하며 당신을 향해 부르짖을 때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돌아보사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절에 언급된 나오미 시대의 이 흉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지만(1절의 주석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을 기억하사 그 백성을 찾아가심으로써 그 기근은 해결되었다(6). 이와 같은 역사는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원리에 입각해서 끊임없이 적용되었다.

󰃨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기근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지난날을 뉘우침과 동시에 이방 족속의 땅, 곧 우상 그모스의 땅을 떠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며,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조차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한 상태에 빠진 나오미가 이전에는 유지 가문으로 지냈던(2절 주석 참조) 고향으로 다시금 돌아가려고 결정한 것은 매우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며 뉘우친 신앙의 결단이기도 했다.

7절 바테체 민 하마콤 아쎄르 하예타 솨마 우쉐테 칼로테이하 임마흐 바텔라케나 바데레크 라슈브 엘 에레츠 예후다

성 경: [룻1:7]

주제1: [나오미와 룻의 신앙]

주제2: [나오미와 두 며느리]

󰃨 두 자부도...길을 행하다가 - 두 자부(子婦)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모()를 단순히 배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모와 함께 시모의 고향으로 갈 결심으로 같이 동행했던 것 같다. 이로 보아 평소 나오미와 두 자부 사이의 관계는 퍽 애정이 깊었던 것 같다. 특별히 나오미의 신앙 인격이 두 자부에게 깊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아마도 길을 행하는 도중 나오미는 한두 번 돌아갈 것을 권면했겠지만, 두 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따라온 것 같고, 마침내는 모압에서부터 낯익은 유다의 고향 땅으로 통하는 대로(大路)에 이르자, 시모 나오미는 젊은 두 자부의 장래를 위해서 그들 역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낼 결심을 굳힌 것 같다.

8절 바토메르 나오미 리쉐테 칼로테이하 레케나 쇼브나 이솨 레베이트 임마흐 야아세 아도나이 임마켐 헤세드 카아쎄르 아시템 임 하메팀 베임마디

성 경: [룻1:8]

주제1: [나오미와 룻의 신앙]

주제2: [나오미와 두 며느리]

󰃨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 나오미에게 있어 이 말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두 며느리조차 떠나버리면 나오미는 그야말로 의지 할 데 없는 홀홀 단신 과부가 되기 때문이다. 노년에 의지할 데가 전혀 없는 과부처럼 비참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기들의 고향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말속에는 나오미 자신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으니, 고향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가정을 가지고 평안히 살아가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9-12). 뿐만 아니라 향후 닥칠 모든 고통을 나오미 자신이 혼자 짊어지겠다는 자부(子婦)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담겨 있다.

󰃨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 하시기를 원하며 - '선대'(善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언약적인 사랑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15:13;20:6). 특별히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성호(聖號) 중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여호와'가 사용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비록 자기 곁을 떠나 그들의 고향 땅에 갈지라도 모압의 국가 신인 '그모스'를 섬기지 않고, 여호와만 섬기며 그분의 축복 가운데 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즉 나오미는 이별의 순간에 여호와만이 축복의 근원이시며 참되시고 유일한 신이심을 주지(主旨)시켜 주었다. 이것은 비록 나오미가 언약의 땅은 떠났지만 언약의 하나님은 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동시에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비단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의 모든 국가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9절 이텐 아도나이 라켐 우메체난 메누하 이솨 베이트 이솨흐 바티샤크 라헨 바티세나 콜란 바티브케이나

성 경: [룻1:9]

주제1: [나오미와 룻의 신앙]

주제2: [나오미와 두 며느리]

󰃨 여호와께서 - 본장에서 하나님의 성호가 '여호와'(Jehovah)로 가장 많이 사용된 점에 유의해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호가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각 문맥에서 특징 지워지는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적절히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여기서 나오미가 '여호와'라는 성호를 사용한 용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언약의 하나님을 상기시킬 때(6, 8, 9): 6절에는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 곧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찾아가셨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8절과 9절에서는 비록 이방 여인이지만 언약 백성 가운데 포함된 자들에게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복주시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2) 언약을 파기한 백성에 대하여 징계할 때(13,17,21):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언약을 맺는 과정에서 짐승을 잡아 각을 뜨고 피를 사방에 뿌린다. 그것은 그 언약을 범한 자도 반드시 그 같이 될 것이라는 표식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경우에 반드시 '여호와'라는 성호가 사용되었던 것이다(4:27,31,40; 1:9; 암 3:2). 한편, 또한 본장에는 '전능자'(솨다이)란 말이 여호와란 말과 연관되어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20,21). 그런데 '솨다이'라는 하나님의 성호는 족장 시대 이후부터 여호와의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시 68:14;91:1;겔 1:24;10:5). 그 이유는 언약을 실행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여호와'라는 성호는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남편의 집에서 - 전통적으로 과부는 고아와 나그네와 함께 가장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보호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그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하셨다(22:22,23). 특별히 과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짐을 덜어 줄 것을 가르치셨다(14:29;24:19,20;27: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부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학대와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1:23; 겔 22:7; 말 3:5). 나오미는 이러한 당시 사회 형편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며느리들이 자기와 함께 가는 것을 극구 막고자 했던 것이다. 대신 두 자부가 아직 젊기 때문에, 재혼(再婚)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가지라고 권유했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과부가 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 평안함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누하''안식처', '안식', '안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종합적으로 '메누하'는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안식처(安息處)를 찾아 안정을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속에는 기거하는 집은 있으나, 보호받을 남편이 없어 진정한 안식 없이 슬픔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는 과부의 고통이 역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재혼하여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안식을 누리라고 권면했던 것이다.

󰃨 소리를 높여 울며 - '목 놓아 엉엉 울었다'란 의미인데, 어려운 처지에서 10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시모 나오미가 강력히 이별을 권하자, 두 자부가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일시에 터뜨리는 장면이다. 진정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의 장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외로움을 떨치고 극구 보내려 하고, 며느리들은 며느리대로 홀로 남게 될 시모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극구 함께 가겠다고 하면서, 서로 껴안고 목놓아 우는 이 장면은 물론 처량하기도 하거니와 반면 아름다운 고부(姑婦)의 관계를 보여 준다.

10절 바토마르나 라흐 키 이타크 나슈브 레암메크

성 경: [룻1:10]

주제1: [나오미와 룻의 신앙]

주제2: [나오미와 두 며느리]

󰃨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 본절은 문맥상 약간 이상한 표현이다. 즉 오르바와 룻은 모압 출신이며 모압에서 자라 그곳에서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겠다'(go)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가겠다'(return)고 고집했다. 그래서 이것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단순히 나오미가 돌아가는 길을 자기들이 동행한다는 의미에서 '돌아가겠다'라고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 (2) 나오미와 자신들이 비록 출신은 다르나 같이 와서 함께 돌아간다는 공동체적 입장에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시모 나오미의 간곡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와 헤어지기 싫어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두 번째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분명히 그들은 나오미와 함께 모압 땅에 왔던 것처럼 표현하여, 그와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갈 당위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11절 바토메르 나오미 쇼브나 베노타이 라마 텔라케나 임미 하오드 리 바님 베메아이 베하이우 라켐 라아나쉼

성 경: [룻1:11]

주제1: [나오미와 룻의 신앙]

주제2: [나오미와 두 며느리]

󰃨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 본절은 나오미가 신 25:5,6에 나타난 바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의 규례를 고려하여 한 말이다. 즉 남편이 죽고 자식은 없을 때 그 미망인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남편의 대(代)를 이을 수 있다는 율법의 계대 결혼법(繼代結婚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신 25:5-10 부분 주석 참조). 따라서 본절은 죽은 아들들을 대신하여 대()를 이어 줄 자식이 이제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오미의 이 말과 관련하여 학자들 간에는 다음 몇 가지 해석이 따른다. (1) 나오미가 재혼하더라도 그녀의 아들들이 엘리멜렉의 자녀가 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말론과 기룐의 진짜 형제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오미가 계대 결혼의 의미를 완전히 곡해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있다(J.B.Carpzov). (2) 이와 반대로 어떤 학자들은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형제와 결혼하게 되면 계대 결혼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Keil). (3) 본절이 계대 결혼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정신은 나오미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David Atkinson). 결론적으로 우리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견해에 의거하여 본절을 해석할 수 있는데, 곧 나오미는 계대 결혼을 할 수는 있으나 이미 그는 늙었으므로(12) 자식을 가질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나오미가 계대 결혼을 염두에 둔 것만은 사실이다. 근본적인 의미는 자기가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과부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데 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 의미는 이하 언급되는 12,13절에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강조한 사실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1:6-18 강해, 계대 결혼의 성경적 의미>.

12절 쇼브나 베노타이 레케난 키 자카느티 미헤요트 레이쉬 키 아마르티 예쉬 티크바 감 하이티 하라옐라 레이쉬 베감 얄라드티 바님

13절 할라헨 테사베르나 아드 아쎄르 이게달루 할라헨 테아게나 레빌티 헤요트 레이쉬 알 베노타이 키 마르 리 메오드 미켐 키 야체아 비 야드 아도나이 

성 경: [룻1:12,13]

주제1: [나오미와 룻의 신앙]

주제2: [나오미와 두 며느리]

󰃨 말한다든지...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기다리겠느냐 - 나오미는 자부들이 만일 자신과 함께 가면 끝내 과부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점층적인 표현으로서 설득하고 있다. (1) 자신의 나이나 처지를 감안할 때 전혀 재혼(계대 결혼)의 가망이나 의사가 없지만, 만일 재혼을 하여 남편이 있다손 치더라도 (2) 자신은 늙었으므로 도저히 자식의 잉태를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백보 가정하여 아이를 낳았다손 치더라도 (3) 그 아이가 계대 결혼법을 이해하고 지킬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2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터인데..., 그것이 어찌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냐란 의미를 강력히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당시 나오미는 이들이 모압 여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비록 이들이 이스라엘로 간다고 할지라도 계대 결혼 이외에는 도저히 재혼이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을 한 것 같다.

󰃨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 그녀가 며느리들을 설득시키는 마당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치신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오르바가 돌아간 후 나오미가 룻을 설득할 때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15)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보아, 분명코 나오미는 며느리들의 여호와 신앙을 확실히 확인하고자 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풍습과 언어가 다른 먼 나라로 간다는 것은,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 섬기던 신을 떠나 여호와의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로 간다는 것은 단순한 애정이나 의지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오미는 자신이 당한 고난과 슬픔의 원인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였다. 만일 나오미가 자기의 가정에 닥친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자연적인 일로 생각했다면, 비록 유다 땅에 흉년이 그쳤다는 소문을 들었을지라도(6) 돌아갈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9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도 그 재앙의 원인을 바로 깨닫지 못했던 애굽 왕 바로와는 좋은 대조가 된다.

14절 바티세나 콜란 바티브케이나 오드 바티샤크 오르파 라하모타흐 베루트 도브카 바흐

성 경: [룻1:14]

주제1: [나오미와 룻의 신앙]

주제2: [나오미와 두 며느리]

󰃨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 고대 근동의 관습상 입맞춤의 포옹은 기쁜 상봉의 순간(33:4;45:15;18:7)이나 아쉬운 이별의 순간(31:55;20:37)에 주로 행하던 풍습이었다. 물론 여기서는 어쩌면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모를 그 아쉬움 때문에 입맞춤한 것이다.

󰃨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여기서 '붙좇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크''굳게 결합하다'(cleave). 또는 '붙들고 늘어지다'(cling)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주로 사용된 '다바크'란 동산의 용례를 살펴보면, 남녀의 결혼 관계에서(창 2:24), 그리고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되었다(63:8). 뿐만 아니라 이 동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구속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의 언약 백성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실 때 역시 사용되었다(10:20). 이를 통해 볼 때 '다바크'란 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에 사용되었으며, 은총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 때도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룻이 그의 시어머니를 좇아간 것은 북받치는 애정과 충실한 마음으로 결코 이별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에 의해서였다. 아울러 나오미로부터 주로 영향받았을 여호와 신앙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 의해서였다(Driver, Briggs).

[전도서 3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세상의 낙은 하나님의 선물(전 3:9-15)

 

[전도서 3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세상의 낙은 하나님의 선물(전 3:9-15)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앞 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앞 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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