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성경식물 성경공부] ‘보리’ שערה(세오라), κριθη(크리데), ‘밀’ חטה(히타), σιτος(시토스)

기혼샘 2020. 11. 9. 12:32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식물 성경공부 중에서 보리와 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보리와 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주식이었습니다. 보통 밀을 먹었는데 가뭄이 들어 흉년이 되면 보리를 먹었습니다. 성경에서 보리와 밀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양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가뭄이 들면 굶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에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먹어야 합니다. 보리와 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의미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보리’ שערה(세오라 8184), κριθη(크리데 2915), ‘밀’ חטה(히타 2406), σιτος(시토스 4621)

 

명제: 보리와 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을 상징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고대 유대인들에게 매일같이 먹는 주식은 보리와 밀입니다. 그중에서도 밀이 주식이며 가뭄이 들면 보리를 먹게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했을 때에 하나님이 땅에 기근을 보내셔서 굶주리게 만드셨습니다. 보통 보리 추수는 유월절 기간에 하게 되고 밀은 오순절 기간에 추수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리와 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밀과 보리의 주식입니다. 영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입니다. 하루라도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복음의 말씀을 매일 먹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룻1: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모압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잘 살아보려고 했지만 모압의 세상으로 들어간 엘리멜렉 가족들은 불행이 찾아오게 됩니다. 모압으로 간 엘리멜렉은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말론과 기룐의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삶은 결국 불행해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와도 예수 그리스도의 떡집에 있을 때에 영적인 사람들은 살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들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온다고 해서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갔더니 결국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 더 크게 오게 됩니다. 나오미는 10년 동안 고생을 하고 나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자신이 정리하고 갔던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때에 풍년이 들어 추수를 하는데 보리추수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보리를 추수하는 기간은 3~4월에 시작이 됩니다. 이 기간은 유월절 기간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보면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이 가득 채워진 것입니다. 유월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채워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눅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몸이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셔서 죽으시고 선택받은 백성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가뭄이 있던 베들레헴에 이제는 풍년이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흉년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양식을 채워주시는 예수님이 유월절의 보리추수처럼 베들레헴에 탄생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월절에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서 선택받은 백성들의 원죄를 해결해 주시고 나에게 영원한 양식을 주신 것입니다.

 

삼상12:17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선포하는 말씀 중에 나온 본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 불순종한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너희에게 보여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징조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라고 말씀합니다. 밀을 벨 때는 오순절기입니다. 이때는 건기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비나 우레가 올 수 없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셔서 인간이 왕을 구한 일과 여호와의 목전에서 죄를 범한 일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자면 밀 베는 때는 오순절이기 때문에 성령의 강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우레와 비를 내렸다는 것은 절대 내릴 수 없는 중에 기적을 베푸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성령이 하늘로부터 내린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에 모든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이 성령님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면서 우레처럼 각 사람들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건기에 비가 올 수 없고 번개가 칠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강림도 그와 같이 일어난 것입니다.

보리와 밀은 타작마당과 연관이 있습니다.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게 되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초막절입니다.

 

신16:13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7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타작마당은 높은 산 위에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보리나 밀을 추수 하여 산 위에 타작마당을 만들어 소를 통하여 타작을 하고 그것을 바람에 날려 알곡을 골라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시간이 흘러가면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추수를 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알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호9: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서 뛰고 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의 음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타작마당에다 바알의 신전을 만들어 추수를 하고 난 후에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음행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가 있어야 합니다. 건기가 되면 물이 부족하여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알의 신은 농사의 신입니다.

 

바알의 신이 농사의 신이기 때문에 비를 내려야 하는데 6개월의 건기 동안에 바알 신은 죽음의 신인 ‘מות(모트)’와 싸우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바알의 신이 살아 돌아와야 만이 비가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싸우지만 바알 신은 ‘모트’ 신에게 죽어서 6개월 동안 건기의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바알의 부인인 아세라 신이 죽었던 바알을 살려내게 됩니다. 이때가 우기의 기간에 들어가는 때입니다. 이 비가 바알의 정자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생명을 내려주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알 신전에는 성창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타작마당에서 추수가 끝나면 바알 신이 생명을 주었기 때문에 무사히 추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여 바알 신전에다 제사를 드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성창들과 성적 행위를 통하여 생명을 받음으로 제사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 신전에는 이런 성창들이 많이 있었고 성적 타락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백성들이 우상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타락하면 결국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 타작마당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나의 모든 수확의 타작마당에서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상21:18 여호와의 천사가 갓을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말하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적으로도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다 여호와의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여부스 사람’은 יבוסי(예부시 2983)입니다. 어근은 בוס(부스 947) 밟다, 싫어하다, 유린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의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의 신전에 제사를 드린 것은 하나님은 너무나 싫어하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발로 밟아 유린하여 다시는 바알의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현재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산에 예수 그리스도가 세워지심으로 바알과 같은 우상들을 모두 발로 밟아 버렸습니다.

 

‘오르난’은 ארנן(오르난 771)입니다. 어근은 רנן(라난 7442) 노래하다, 찬양하다, 즐거워하다, 기뻐하다, 라는 뜻입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으라는 것은 지금까지 바알의 신전 때문에 하나님께 찬양하고 노래하며 영광을 돌리지 못했던 장소를 기쁨과 즐거움의 장소로 바꾸라는 의미입니다. 이곳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세우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알의 신전 때문에 죽었던 영혼들을 주님이 성전 산의 골고다에서 죽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을 말씀합니다. 영원한 성전이신 예수님이 골고다에 세워짐으로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고 기뻐하면서 뛰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이 회복된 사람들은 타작마당이 바뀌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한 해의 추수를 마치고 오직 예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게 됩니다. 나의 심령의 타작마당에는 어떤 제단이 세워져 있습니까? 주님을 섬기는 제단입니까? 바알을 섬기는 제단입니까? 영원하신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시기를 바랍니다.

 

보리와 밀은 현숙한 여인과 연관이 있습니다. 고대 근동 여인들은 가정사를 모두 도맡아 일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끼니를 책임진 사람도 여인들입니다.

룻3: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기업을 물어줄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보아스는 룻이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안다고 말합니다. 그럼 현숙한 여인은 무엇을 지칭하는 말일까요? 우리의 개념은 조숙하고 얌전한 사람이 현숙한 여인으로서 맏며느리 감으로 최고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חיל(하일 2428) 힘, 능력, 이라는 뜻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집안일을 열심히 하여 팔이 굵은 사람을 지칭합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인들은 날마다 끼니를 책임지기 때문에 집안에 있는 맷돌을 가지고 밀을 갈아서 빵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인이 하루 끼니를 위해 맷돌을 갈면 한 시간에 800g 정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 명이 하루에 먹는 끼니의 양이 500g이었습니다. 이렇게 먹고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맷돌질을 해야 합니다. 또한 천막을 치는 일도 여자의 몫입니다. 야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인의 팔뚝은 자연스럽게 굵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숙한 여인은 힘이 세고 능력이 있고 집안일을 잘하는 사람이 현숙한 여인인 것입니다.

 

고대근동에서 집안에 맷돌소리가 끊어진다는 것은 저주가 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먹을 양식인 보리나 밀이 없기 때문에 맷돌소리가 끊어진 것입니다. 맷돌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렘25:10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으니 이들 중에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안과 안락의 생활이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원수에게 집안에 맷돌 소리와 등불이 꺼져가기를 소원했습니다. 이것은 그 집에 저주가 임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맷돌 소리가 없다는 것을 먹을 양식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집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이 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영혼은 곤핍해지게 됩니다. 배고픔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진리의 빛이 사라지면 집안은 암흑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의 삶은 고통과 괴로움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럼 우리는 영혼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제자들도 배가 고파서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마12: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예수님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 때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복음חלל(할랄 2490) 꿰뚫다, 꿰찌르다, 수치를 당하다, 더럽힘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었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먹은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 히브리어 원문에는 시장하여 앞에 복음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꿰뚫어지시고 수치를 당하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은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먹었지만 영적으로는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수치를 당하셔서 더럽힘 받은 예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양식인 주님의 살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보리나 밀을 주식으로 먹었듯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만이 살 수가 있습니다. 이 양식을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생명의 떡입니다. 이 떡을 먹으면 결코 주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생명이 되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마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예수님께서도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은 חקה(훅카 2708) 규정, 법령, 법규,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것은 육적인 양식을 구하는 것도 맞지만 날마다 영적인 하나님의 법의 말씀을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육은 살 수가 있지만 영은 죽게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구하여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리나 밀을 통해서 깨달은 영적 진리가 무엇입니까? 보리나 밀이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맷돌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맷돌에 갈려서 고운 가루가 되어야 만이 비로소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맷돌과 같은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고운 가루로 갈리시는 것처럼 고통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고난을 통하여 나에게는 생명의 양식으로 고운 가루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 나에게는 영원한 양식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구원받지도 못하고 영혼이 곤핍한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보리와 밀처럼 영혼의 양식이 되어주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식물 성경공부] ‘쥐엄나무’ חרוב(하루브), κερατιον(케라티온) 눅15:13-16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식물 성경공부 중에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쥐엄나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둘째 아들이 먹었던 쥐엄 열매는 가난과 궁핍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탕자가 먹었던 쥐엄

kihonsam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