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역대하 27장 성경말씀] 남 유다 요담 왕의 통치와 죽음(대하 27:1-9)

기혼샘 2023. 4. 1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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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7장에서는 요담의 통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요담은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 통치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이다. 요담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했다. 요담이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걸었더니 점점 강성하여졌다. 성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 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

 

남 유다 요담 왕의 통치와 죽음(대하 27:1-9)

 

=====27:1

나이 이십 오 세라 - 그가 약 10년 정도를 그의 부친 웃시야와 함께 통치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는 35세 때부터 비로소 독자적인 통치를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십 육 년을 치리하니라 - 여기서 16년은 웃시야가 섭정한 기간도 포함하고 있다.

여루사 - 이 이름의 히브리어 표기는 '예루솨'인데 왕하 15:33에는 끝 자음이 알렙이어서, '예루솨'로 되어 있고(BHS), 몇몇 사본들에서는 역대기 본문과 일치한다(BHS Appartus).

사독의 딸이더라 - 이 사독이 대상 6:12에 기록된 대제사장 사독일 가능성이 있는(Curtis), 요담의 부친 웃시야가 제사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26:16-19) 정책적으로 사독의 딸과 결혼하였을 수도 있고, 반면에 제사장들의 간섭에 의해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였을 수도 있다(24:3).

=====27:2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정직히 행하였으나 - 요담이 통치하던 기간 중 상당히 오랫동안 웃시야가 살아 있었다. 요담의 부친 웃시야는 비록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거하였지만(26:21),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Leon Wood). 따라서 요담은 웃시야의 많은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웃시야는 자신이 당한 징계로 인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이고, 요담은 아버지의 모습을 접하면서 하나님께 대해 더욱 정직하게 행하였을 것이다.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 맛소라 본문(MT)에는 본 구절 앞에 '단지'(only)라는 뜻을 가진 부사, '라크'(* )가 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행하였)으나'로 번역된 이 접속사가 앞 문장과 대조를 이루게 하여 요담이 웃시야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행하였지만, 예외적으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범죄 하는 일만큼은 삼가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백성은 오히려 사악(邪惡)을 행하였더라 - 병행 구절인 왕하 15:35에서는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산당 제사를 '사악을 행하였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역대기 저자가 이에 대해 얼마나 엄격했는지 발견하게 된다.

=====27:3

전 윗문 - 이 문은 성전 마당의 북편 성벽에 있는 문으로서 '베냐민의 윗문'(렘 20:2)이라고도 불리워진다(Benzinger). 그리고 또 23:20에서 묘사한 것을 보면 이 문은 왕궁에서 성전 바깥뜰로 통할 때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문은 아마샤 왕 때 헐린 것으로 보여진다.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와 전쟁하던 아마샤가 사로잡히고, 예루살렘 성벽이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이 헐렸는데, 이때에 윗문도 무너졌을 것이다(25:23;왕하 14:13). 그리고 이때 무너진 성벽의 많은 부분은 요담의 부친 웃시야에 의해 거의 보수되었고(26:9), 요담도 웃시야의 건설 정책(26:9f.)을 이어받아 공사를 계속하였을 것이다.

오벨성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펠'의 원뜻은 언덕, 낮은 야산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모리아산(3:1) 남쪽 경사지를 그렇게 불렀다(33:14;3:26,27;11:21). 어떤 학자들은 이 성을 다윗성과 동일시하지만(G.A. Smith), 오벳성은 다윗성과는 분명히 다르며, 다윗성이 있는 언덕의 북동쪽 지점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은 후기 유다 왕들이 요새화하려 했던 곳이다.

=====27:4

유다 산중에 - 여기서 ''은 평지 또는 저지대를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써 요새화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성읍들은 산지나 산지의 숲 속에 세워졌다(2:15;8:14).

영채(營寨)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비라니요트'''(castle) 또는 ''(palace)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상 11:16'영채'(치브)나 삼하 11:11'영채'(숙코트)와는 달리 여기서는 '요새'라는 의미에 더욱 가깝다(Lange, Keil & Delitzsch). 따라서 이는, 상당히 큰 규모의 군대가 숙(宿營)할 수 있는 요새를 가리킨다. 수풀 가운데 견고하게 세워진 요새는 그만큼 위장이 잘 되어 있어서, 적의 공격이 있을 때는 언제라도 기습적으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망대 - 이것은 적의 침공을 사전에 발견하여 대비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적의 동태를 감시하여 대비하는 데 용이했다(14:7;26:9;8:9). 이와 같이 웃시야 때로부터 계속되어 온 건축 사업은 당시 북쪽에서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던 앗수르의 위협과,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27:5

암몬 자손의 왕으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 이 기록이 열왕기에는 없다. 부친 웃시야가 이루어 놓은 군사력과 명예를 배경으로 하여, 요담은 정복 사업을 계속 추진했다. 웃시야는 블레셋과 아라비아와 마온 등 요단 서편 지역을 주로 정복한 반면, 담은 반대편인 요단 동편 지역의 땅을 차지했다(Kittel). 한편 혹자는 요담이 암몬과 싸운 이유를 암몬 자손이 웃시야 때부터 바쳐오던 조공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Barker, Keil).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명백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요담이 분명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추진한 정복 사업의 결과로, 몬과 싸우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밀 일만 석과 보리 일만 석 - 요담이 암몬으로부터 이렇게 많은 양의 밀과 보리를 조공으로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암몬 족속의 주산물의 밀과 보리였으며 그 땅이 매우 비옥하였음을 입증해 준다(Barker). 3년 동안 계속해서 바쳐진 이 밀과 보리는 아마 군량미로 많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3년 뒤에는 더 이상 암몬 족속이 조공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들이 독립하였거나, 아니면 요담 말년에, 유다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암몬 족속이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Keil). 이 시기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하여 유다를 공격한 사실(왕하 15:37)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조공에 대해 거부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7:1-8:8). 한편 역대기 저자가 르신과 베가의 침략에 대해 전혀 언급지 않는 것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의아해한다. 그 이유는 베가와 르신의 침략이 요담과 아하스 때 두 번 있었던 것처럼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왕하 15:37;16:5). 그러나 왕하 15:37의 기록과 16:5의 기록이 각각 다른 사건을 가리키지 않으며 그 사건은 아하스 때에 있었음이 분명하다(사 8:6ff.). 그래서 역대기 저자는 아람. 이스라엘 동맹군의 침략과 요담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참고로 열왕기 저자가 같은 사건을 두 번에 걸쳐 반복하여 기록한 것은 요담과 아하스가 섭정 통치를 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더욱이 왕하 15:30에서는 '요담 이십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데 반해 본장에서는 '16년을 치리했다'(1절)고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섭정을 했다는 증거는 더욱 확실해진다. 따라서, 아람. 이스라엘 동맹군이 공격했던 시기는 요담과 아하스가 섭정을 하고 있던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아하스의 범죄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왕하 15:30 주석을 참조하라.

=====27:6

요담이...점점 강하여졌더라 - 본절은 역대기 저자가 특징적으로 보여 주는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실제적으로도 요담의 왕국이 강하여졌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었다. , 요담이 통치하던 시기에 유다의 관할 아래 있던 에시온게벨에서 그의 공식적인 인장(印章)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Payne).

=====27:7

모든 전쟁 - 역대기 저자는 본장에서 요담의 사적을 긍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편 웃시야가 말년에 문둥병으로 격리되어 있었으므로, 그가 만든 동맹군(26:11ff.)을 요담이 맡았을 것이다(26:21). 이는 요담이 그때부터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딜리(Thiele)는 앗수르의 연대기를 근거로 하여 B.C.743년경에 디글랏빌레셋 3세에 의해 유다가 패퇴되었다고 제안하는데(Payne),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패전 사실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한 어떠한 사실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 - 왕하 15:36에는 '유다 왕 역대 지략'이라고 기록되어 '이스라엘'이 생략되어 있으나, 본문은 역대기 기자의 규칙적인 관습에 의한 것이며(16:11, Williamson), 열왕기서의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것에 해당한다(Curtis).

=====27:8

본절은 1절의 되풀이이긴 하지만 글의 형식상 이러한 반복이 생긴 것 같다. , 1절은 통치 서론으로서, 8절은 통치의 결론으로서 기록된 것이다. 또한 28:1의 표현과 명확하게 대조하기 위해 반복한 것 같다.

예루살렘에서 치리한 지 십 육 년이라 - 딜리(Thiele)는 베가 17(B.C. 743)부터 요담이 그의 아들 아하스와 섭정하였고, 따라서 그의 통치 기간이 실제로는 20년 간이라고 한다. 이는 왕하 15:30에서 '요담 이십 년'이라고 언급한 것에 근거한 것이다. 요담 20년은 그의 아들 아하스가 24세 되던 때이다. 뿐만 아니라, 혹자는 웃시야 - 요담 - 아하스 시대 가운데 4년 동안은 그들이 모두 살아 있어서, 3대에 걸친 섭정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Wood).

=====27:9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8절의 논의가 타당한 것으로 볼 때, 본문은 아하스가 웃시야와 요담의 섭정을 함께 받았다가(Wood), 요담의 섭정을 거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독자적인 통치를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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