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열왕기하 4장 강해설교말씀] 선지자 엘리사의 5가지 이적(왕하 4:1-44)

기혼샘 2023. 6. 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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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장에서는 선지자 엘리사가 5가지의 기적을 베풀게 된다. 생도의 과부에게 기적을 베풀었고 수넴 여인에게 자녀가 생길 것을 예언했으며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살려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이적을 베푸셨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여 죄인이 구원받고 하나님께로 오게 했다.

 

선지자 엘리사의 5가지 이적(왕하 4:1-44)

 

기름 한 병이 많은 그릇에 넘침(1-7)

4:1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선지자의 생도는 선지자의 후보생으로 양육받는 자인데, 금일의 신학생이나 전도사와 같은 자이다.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한 선지자의 생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앙을 잘 지키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선지자의 생도는 아합왕의 핍박으로 인하여 순교당한 것 같다. 그때 그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 딱한 사정을 호소했다. 그녀의 사정은 채주가 이르러 두 아이를 취하여 종을 삼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빚을 못 갚으면 그 대신 그 자녀를 종으로 끌어가는 풍습이 있는 때이다. 이 과부는 두 아들을 종으로 내어 줄 만큼 빚이 많은데, 과부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호소하여 딱한 사정을 해결 받으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영의 법에서도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8:34). 하나님의 법은 엄격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반드시 종살이하게 된다. 갈라디아서 4:24-25에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율법의 종이라고 했다. 또 히브리서 2:15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한다고 했다. 그 종노릇하는데서 해방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그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4:2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과부가 당한 문제의 해결 방침을 가르쳐 주었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신다. 하나님을 순종하여 자기에게 있는 것을 전적으로 쏟아부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모든 어려운 일이 다 해결된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쏟아붓지도 아니하고 거저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 과부는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과부는 솔직하게 자기에게 있는 그대로 고백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기름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있으니 그것이 적다고 무시하고 다른 것을 달라고 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모든 것 즉 마음과 정성과 물질과 노력과 몸 전체를 다 쏟아부어서 하나님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되어 나가도록 하여 주신다.

4:3-6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과부가 엘리사의 시키는 대로 이웃에 가서 그릇을 여러 개 빌려다 놓고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자기 집에 있는 한 병 기름을 그 그릇에 부었다. 그 병에서 기름이 계속 나와 많은 그릇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채울 그릇이 없다고 할 때에 기름이 그쳤다. 하나님의 크신 이적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 많은 그릇을 빌려다 놓았을 때는 그 그릇들에 어떻게 기름을 채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였겠지만, 그릇에 기름이 다 채워진 후에는 그릇을 좀 더 빌려다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했을 것이다. 엘리야 때에 사르밧 과부에게도 이같은 이적이 나타났다(왕상 17:12-16).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다 바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 가득하게 채워 주셨다. 그릇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그릇이 크면 클수록 좋다. 그 기름은 그릇의 수대로 가득하게 나온다. 붓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을 순종해서 쏟아 붓는 사람에게 계속하여 충만하게 주신다. 작은 그릇을 가져오면 작은 그릇에 가득 채워지고, 큰그릇을 가져오면 큰 그릇에 가득 채워진다. 하나님은 그릇대로 채워 주시고 그릇이 있는 대로 쓰신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일할 것이 없으면 은사(기름)도 끊어진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지만, 일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고 얻을 것도 없다. 하나님을 위해 계속해서 순종하고 계속해서 역사해야만 하나님이 계속해서 필요한 것을 주신다. 하나님의 일을 쉬면 은사도 끊어진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시키는 일에 전폭을 쏟아 충성하면 하늘의 은사가 계속 내려오고 영적 역사가 계속 넘치게 된다. 그러면 자기도 부요해지고 자손도 잘되고 다 잘된다.

4: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그릇에 기름이 다 찬 때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보고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둘째,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그것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가족이 생활하라고 하였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다시 순종하려고 할 때에 어려운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생활 문제까지 핍절함이 없도록 잘되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전폭을 쏟아붓는 자에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고 부족함이 없도 록 하여 주신다.

수넴 여인의 신앙(8-37)

4:8-9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수넴 지방에 한 귀한 여인이 있었는데, 엘리사가 그곳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알고 음식을 대접하였다. 엘리사가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그 여인이 간권(懇勸)하므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 여인은 그 이후에도 엘리사가 수넴 지방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대접하였다. 엘리사는 보통 사람 차림으로 지나다녔으나 그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알아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엘리사에게서 어느 정도 거룩한 태도와 덕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말을 하지 않아도 선지자인 것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이 만들어져서 말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거룩한 덕이 나타나야 한다.

4: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음식을 대접할 뿐 아니라 자기 집에서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서 자기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 자기 집 담 위에 방을 준비하고 그 방에 침상과 촛대와 의자와 책상을 준비했다. 수넴 여인은 어떻게 하든지 선지자를 도와주려는 생각이 간절했고, 그 일을 위하여 쓰는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일하시는데 그를 도와주면 얼마나 하나님의 일이 잘되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여인은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는 데 있고 그 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 봉사하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지날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 쉬며 성경을 보며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4:11-13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하루는 엘리사가 그 방에 들어가 쉴 때에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 여인에게 축복해 주려고 사환을 시켜 그 여인을 불러다가 사환과 함께 세워놓고 말했다. 이것은 경건(敬虔)과 건덕(建德)을 세우며 말하는 것이다. 생각이 주밀하도다 이 말은 배려(配慮)가 깊다는 말이다.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종을 세심히 대접했다.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그때에 엘리사가 왕이나 군대 장관에게 말하면 무슨 청이라도 들어줄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 이유는 나라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엘리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 말해 주고 왕은 그대로 하여 어려운 일을 해결 받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것을 구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 여인은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구하여 나라의 높은 지위를 얻어 권세를 부리는 것보다 백성 중에 겸손히 거하며 고요히 믿음 지키는 것을 최상의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들이 없어도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있으므로 아들을 요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히브리서 11:24-25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모신 것을 최상으로 여기고 살며 그 이상 높은 지위를 바라보지 않았다. 허영심이나 명예 영광심이 없었다. 그는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감사하고 만족하였다.

그 여인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아는 것부터 하나님의 은혜이다.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해 나가는 것을 깨닫고 떨며 조심하며 그를 도와주는 자체가 이미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은 증거이다. 마태복음 10:41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했다. 이 수넴 여인은 선지자를 영접하고 대접했으니 벌써 선지자의 상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제일 좋은 상급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두 번째 것, 즉 세상의 것과 육신의 것을 주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신령한 상급을 받은 자에게 세상의 것과 육신의 것도 주시는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그것을 원치 않았으며 그대로 돌아갔다.

4:14-16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엘리사는 하나님의 일에 협조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충성한 수넴 여인에게 어떤 좋은 축복을 해주려고 애쓴 것이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아들이 없고 남편은 늙었으므로 아들을 낳을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게하시의 말을 듣고 엘리사는 다시 수넴 여인을 불러다 세워놓고 명년에 아들을 안게 되리라고 축복해 주었다. 계집종 엘리사의 앞에서 수넴 여인은 종의 위치에 서 있다. 자기가 집주인이지만 하나님의 대행자인 하나님의 사람 앞에는 계집종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속이지 마옵소서 이 말은 엘리사의 말을 불신한 말이 아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여인이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을 것이 분명하다. 또 한나가 아이를 낳은 것이나, 사라가 90세에 아이를 낳은 것도 다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낳지 못할 것을 낳는다고 하여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첫째, 사람이나 물질에는 언제나 마귀가 붙어 다니면서 그것을 미끼로 하여 사람을 속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으면 마귀가 그 아들을 미끼로 나를 속이고 내 신앙을 빼앗아 가지 않겠습니까하는 뜻이다.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바치기 힘들고, 또 마귀가 그 여인의 마음을 아이에게 빼앗기도록 속일 가능성이 많다.

둘째, 자기의 약한 것을 붙들고 자랑하는 말이다. 즉 자기는 약하여 아들을 낳으면 마귀에게 속지 않을 만한 실력이 없으므로,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12: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셋째, 환경이 변할 때에 그 환경에 속아 신앙을 지키지 못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기 때문이다. 아들이 없으면 아들이 없는 것으로 족한 줄 알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4:17-20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돌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수넴 여인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을 멀리했다. 수넴 여인은 그 아이에게 마음과 시간과 정력을 다 빼앗긴 것이다. 이것이 속은 것이다. 믿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나면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성도가 환경에 얽매여 믿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수넴 여인이 아이 낳기 전에는 믿음이 좋았고 하나님을 위해 일을 많이 했는데 아이 낳은 다음에는 마음과 시간과 정력을 아이에게 빼앗겼다. 참으로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세상 것과 육신의 것 때문에 믿는 일을 못하는 것은 분명히 속는 일이다. 세상 권세나 좋은 직장이나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그 일 때문에 믿음이 떨어지고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마태복음 24:19에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했다. 마귀에게 속아서 믿는 일 못하고 다 빼앗기면 화가 있다. 그러므로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

4:21-25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수넴 여인이 그 죽은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에 누인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맡기는 심정이요 하나님께 은혜받기를 갈망하는 태도이다. 수넴 여인은 즉시로 하나님의 사람이 계신 갈멜산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그 여인이 안식일과 매월 초하룻날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갈멜산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 같다. 그런데 초하루도, 안식일도 아닌데 왜 가려느냐고 물은 것이다. 아직 남편에게 아이 죽은 것을 알리지 않았다.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이것은 남편을 속이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자기가 바로 서면 그 아들이 다시 살 것을 믿고 한 말이다. 수넴 여인은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나았기 때문에 어려서 데려가지(죽지) 않을 것을 믿었고 또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면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다(11:19). 그리하여 그 여인은 나귀를 타고 급히 갈멜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갔다.

4:25-26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엘리사가 멀리서 수넴 여인이 급히 오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사환을 시켜 마중 나가 안부를 물으라고 했다.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아이를 다시 살려 평안하게 될 것을 믿고 한 말이다.

4:27-28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아이를 낳겠다고 말할 때에 한 말이다(16). 수넴 여인은 그 아들을 낳고 마귀에게 속아서 그 아이에게 마음을 다 빼앗기고 믿는 일을 못했다. 그러므로 징계로 아들이 죽게 된 것을 한탄하는 말이요 회개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것을 복으로 주셨을 때 성도가 그것 때문에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시 빼앗아 간다. 솔로몬왕에게 하나님이 신령한 은혜도 주고 세상의 지혜와 재산과 부요도 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속아서 믿음이 떨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것이 많든지 적든지 여전히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고 믿음의 길을 잘 걸어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신앙이 중요하다(4:12).

4: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지팡이는 능력을 가리킨다.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이것은 하나님과 교통 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데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인사할 때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고 산심(散心)과 방심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아이에게 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4:30-31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수넴 여인의 간청대로 엘리사가 그 집까지 갔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이 하나님을 위해서 협력한 것과 또 하나님의 사람인 자기를 위해 여러 가지로 마음 써 준 것을 생각하여 같이 갈멜산에서 내려갔다.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4:3). 게하시는 먼저 가서 엘리사의 명한 대로 아이 얼굴에 지팡이를 놓았으나 아이가 살아나지 않았다. 엘리사가 시킨 대로 했는데 왜 아이가 깨어나지 않았을까? 그것은 수넴 여인 때문이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할 때 수넴 여인이 믿고 게하시를 따라갔으면 그 아이가 깨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수넴 여인이 게하시를 따라가지 않고 엘리사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아이가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아이가 깨어나려면 삼합(三合)이 맞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고자 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셋째, 본인이 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게하시가 엘리사의 명을 받고 갈 때에 아이의 어머니가 따라가서 하나님께 전심전력을 기울여 기도하며 그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놓았더라면 아이가 살아나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면과 하나님의 사람의 역사는 있었으나 그 여인이 믿음을 쓰지 않았다. 받는 사람이 믿음을 쓰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주려고 해도 안 되고 또 하나님의 사람에게 아무리 큰 능력이 있어도 안 된다.

4:32-33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침상에 눕혔는지라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가 아이 때문에 속아서 믿음이 떨어진 것을 깨닫고 다시 그 믿음을 회복하려고 죽은 아이를 엘리사의 침상에 눕혀 놓았다. 즉 그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침상을 만들 때의 신앙, 즉 아이 낳기 전의 신앙을 다시 찾으려고 애를 쓴 것이다. 문을 닫으니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은밀한 기도를 하기 위함이었다. 두 사람뿐이라 죽은 아이와 엘리사 두 사람을 가리킨다.

4:34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아이 위에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아이 입에 자기의 눈을 그 아이의 눈에, 자기 손을 그 아이 손에 댄 것은 그 아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함이요, 자기가 죽인 것같이 생각하고 책임을 자기가 진 것이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자기가 잘 인도하지 못해서 그 아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여 책임을 졌고 수넴 여인도 자기가 책임을 지고 회개했다. 엘리사가 그 아이 죽은 것을 체휼하면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

4:35 엘리사가 내려서 집안에서 한 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집안에서 이리저리 돈 것도 기도하는 태도이다. 그때 아이가 살아났다. 아이가 살아난 것은 첫째, 엘리사의 기도였다. 둘째, 그 아이의 어머니의 회개와 믿음 때문이다.

4:36-37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불러다가 살아난 아들을 취하라고 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갔다. 수넴 여인은 진정으로 회개했고 아이를 살려준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했고 엘리사를 더욱 존경하며 진정으로 사례했다.

가루를 쳐서 국에 있는 독을 제거함(38-41)

4:38-41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 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엘리사가 길갈에 다시 가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엘리사가 굶주린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솥을 걸고 국을 끓여 먹이려 했다. 어떤 사람이 들외를 따다가 국솥에 넣었는데 그것에 사망의 독()이 있었으므로 먹지 못하게 되었다. 가루를 가져오라 가루는 영적으로 신앙을 가진 유대인의 조상들을 가리킨다. 로마서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면 사망의 골짜기가 생명의 골짜기가 된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사망의 독이 없어지고 생명의 세계가 전개된다. 독이 있는 들외, 돌감람나무, 들포도 같은 이방인과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구속의 생명의 역사가 들어가면 사망의 독이 없어지고 생명과 유익을 준다.

그러므로 사망의 독이 있는 세상에 가루를 갖다가 넣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해 주는 생명 있는 전도자가 있어야 이 세상에 사망의 독이 빠져나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사망의 독이 빠져나가고 좋은 사람이 된다.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를 백 명이 먹음(42-44)

4:42-44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 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흉년 때에 어떤 사람이 보리떡 20개와 한 자루의 채소를 엘리사에게 드렸다. 그 사람은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공궤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돕는 자였다. 흉년에 떡 20개와 한 자루의 채소는 참으로 귀한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의 모든 힘을 다 기울여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하여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셔서 백 명이 먹고 남게 하였다. 하나님은 그 적은 것을 가지고 크게 역사하여 많은 무리를 먹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하신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정성과 힘을 다해 바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살리신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 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것과 같다. 그 아이는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있는 소유 전체를 바쳤고,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역사하셔서 오 천명이 먹고도 남게 하셨다. 적은 것이라도 정성과 힘을 다해서 바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셔서 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음이 있게 하신다.

[구원론 성경공부]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의 체험

 

[구원론 성경공부]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의 체험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거듭나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은 인생에서 두 번 태어나야 한다. 한 번은 육체로 태어나고 한 번은 하늘로부터 영적으로 태어나야 한다. 쉽게는 속사람인 영혼이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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