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요한복음 헬라어성경 주석강해] 베드로와 안드레 예수님 제자(요 1:35-42)

기혼샘 2022. 3. 17. 11:30
반응형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따르게 된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게바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는 이름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예수님 제자(요 1:35-42)

 

35절 테 에파우리온 팔린 헤이스테케이 호 이오안네스 카이 에크 톤 마데톤 아우투 뒤오

성 경: [요1:35]

주제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주제2: [첫번째 제사들]

요한의 증거 바로 뒤에 이어지는 본절 이하에서는 예수와 첫 제자들 간의 대면이 소개된다. 예수의 첫 제자들은 주로 세례 요한의 증거를 토대로 예수를 따랐던 자들이다. 저자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예수를 증거 했던 사건과 예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는 사건 전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계속되는 일련의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그 첫 부분에서는 세례 요한의 예비 진술에 관해 다루고(19-34) 둘째 부분에서는 예수와 제자들과의 초기 만남에 관해 다루었으며(35-51) 셋째 부분에서는 예수의 능력을 보여주고 동시에 제자들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 준 이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2:1-11).

󰃨 자기 제자 중 두 사람 - 여기서 한 사람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다(40). 그러면 익명의 한 제자는 누구인가? 19-34절의 생생한 필치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당시 세례 요한의 제자로서 세례 요한과 사두개인들과의 논쟁과 세례 요한의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 증언을 목격한 자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본서가 사도 요한의 저작임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기입하기에 인색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 익명의 제자는 바로 사도 요한 자신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례 요한의 주요 메시지가 하나님의 어린양을 증거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의 전() 관심은 예수께 집중되었을 것이다.

36절 카이 엠블렙사스 토 이에수 페리파툰티 레게이 이데 호 암노스 투 데우

성 경: [요1:36]

주제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주제2: [첫번째 제자들]

󰃨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바로 하루 전의 증언을 반복함으로써(29) 세례 요한은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확인시킨다. 제자들 역시 어제 일어났던 제반 상황과 요한의 증언을 상기했을 것이다. 요한이 그의 두 제자에게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한 것은 그들을 예수에게로 보내고자 함이었다. 이는 그리스도 앞에서 겸손해진 세례 요한의 신앙 자세를 잘 나타낸다(3:30).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해서는 29절 주석을 보라.

37절 카이 에쿠산 아우투 호이 뒤오 마데타이 랄룬토스 카이 에콜루데산 토 에에수

성 경: [요1:37]

주제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주제2: [첫번째 제자들]

󰃨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 '듣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쿠산'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다는 뜻이다(4:24;요일 1:1). 그리스도의 말씀(복음)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임이며, 구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러한 '들음'은 수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까지 내포하고 있다(롬1:5;10:17;살전 2:13). 따라서 '에쿠산'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증언을 듣고 곧 그 말에 순종하여 예수를 따랐다는 뜻이다.

󰃨 예수를 좇거늘 - 말씀을 들음은 곧 순종을 동반했다. '좇거늘'의 헬라어 '에콜루데산'은 원래 지적, 종교적, 도덕적인 입장을 받아들이고 추종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이 용어는 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1:43;8:19;19:27, 28;6:1;8:34 ). 그리스도를 '좇음'은 바로 그리스도를 향한 전적인 헌신을 동반한다. 따라서 제자가 된다는 것은 구원(8:12;10:17) 뿐만 아니라 고난(12:24;8:34)에 까지도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본문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잠정적인 탐색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예수와 운명을 같이하기 위해 결단의 주사위를 던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 장면에서 진리의 실체이신 예수께로 자신의 제자들을 흔쾌히 인도하는 세례 요한의 거인적(巨人的) 면모를 엿볼 수 있다.

38절 스트라페이스 데 호 이에수스 카이 데아사메노스 아우투스 아콜루둔타스 레게이 아우토이스 티 제테이테 호이 데 에이폰 아우토 랍비 호 레게타이 에르메뉴오메논 디다스칼레 푸 메네이스

성 경: [요1:38]

주제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주제2: [첫번째 제자들]

󰃨 무엇을 구하느냐 - 여기에서 '구하느냐'의 헬라어 '제테이테''찾아다니다', '구하다'라는 뜻이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 구해야 할 것을 의미하는 동사로서(17:27;고전 1:22),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구원에 연관되어 사용되었다(마 18:12;눅19:10). 따라서 예수의 질문은 '너희가 궁극적으로 찾아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뜻이다. 이는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를 따르는 동기를 확고히 상기시키는 말씀이다. 본서에서 예수의 말씀으로서는 최초로 나오는 이 문장은 죄악 된 세상이 참으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궁극적인 가치와 숨겨진 보화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요일 2:16).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의 소중함을 깨닫는 자들은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 보화를 살 것이다(13:44).

󰃨 랍비여 - '랍비''나의 존경하는 분'이란 뜻을 지닌 아람어이다. 초기 유대교에서부터 이 용어는 (1)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상급자를 지칭하거나 (2) 제자들이 선생을 칭할 때 사용되었다. 그 후 B.C. 2세기경부터 이 용어는 제자들이 선생을 공손히 부를 때에만 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이 용어는 복음서에만 나온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서기관들을 비난하기 위해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반해서(23:7), 마가복음에서는 베드로나 유다가 예수를 부르는 칭호로 사용되었다(9:5;11:21;14:45). 본문에서 이 칭호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단호한 결단과 아울러 그들의 영적 제한성(制限性)을 함께 시사한다. (1) 먼저 이 칭호는 그들이 예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어디든지 따르겠노라고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37절 주석 참조). (2)그러나 그들은 아직 예수의 신분이나 행하고자 하시는 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이다. 바로 앞에서 이 두 사람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34)이시라는 말을 들었지만, 진정 그들의 마음속에 신앙 고백적 차원의 깨달음이 없었기 때문에 스승을 일컫는 정중한 어투인 '랍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어디 계시오니이까 - 헬라어 '푸 메네이스'란 문구는 '랍비'라는 호칭과 함께 사용되었던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 교사들에게 대화를 요청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두 제자의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며 또한 겸손하게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 번역하면 - '번역하다', '해석하다'라는 뜻의 동사 '레프메누오'의 현재 수동태 분사가 사용되었다. 특히 이 용어는 그리스의 신들 중에서 변론(辯論)과 전령(傳令)의 신인 '헤르메스'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또는 신약성경은 같은 의미인 '메데르메뉴오'라는 표현도 사용하며, 개역 성경에서는 이 두 용어를 모두 '번역하면' 또는 '번역한즉'이라고 옮겼다. 이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 1(1:23), 마가복음에 3(5:41;15:22, 34), 요한복음에 4(본절, 41, 42;9:7), 사도행전에 3(4:36;9:36;13:8), 히브리서에 1(히 7:2) 쓰였다. 이러한 표현이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이유는 예수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용된 히브리적 용어나 아람어를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특히 저자 사도 요한은 당시의 상황을 현장감 있게 재현하기 위하여 아람어를 사용했으며, 이 용어들이 헬라인들에게 이해될 수 있도록 번역을 첨부한 것이다.

39절 레게이 아우토이스 에르케스데 카이 이데테 엘돈 카이 에이돈 푸 메네이 카이 파르 아우토 에메이난 텐 헤메란 에케이넨 호라 데 엔 호스 데카테

성 경: [요1:39]

주제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주제2: [첫번째 제자들]

󰃨 와 보라 - 이 말은 원어상 '오다'(에르코마이)의 현재 명령형과 '보다'(호라오)의 미래 직설법, 그리고 접속사 '카이'로 구성되어 있는 짤막한 문장이다. 여기서 '오라'는 말은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오라는 초청의 말씀이며, '보라'는 말은 제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을 확정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는 자들을 향한 초대(超待)와 구원의 보장(寶藏)이다. '와 보라'는 표현은 랍비들이 사용했던 권위 있는 초청 표현 형식으로서,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는 표현과 서로 상응한다. 즉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당시의 표현 어법을 재현하며,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초청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 '와 보라'는 표현이 명령형과 미래 중간태 직설법으로 표현된 데 반해 '가서...보고'는 두 동사 모두 부정 과거형을 사용함으로써, 제자들이 예수를 따른 것이 실제의 사실임을 명시한다. 또한 본문은 '와 보라'는 예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표현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계신 데'란 예수께서 가족과 함께 거처하시던 갈릴리 나사렛이 아니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베다니 근처의 어느 장소였을 것이다. 이처럼 구체적 장소를 명시하지 않고 단순히 '계신 곳'을 뜻하는 헬라어 관용구로써 예수의 거처를 처리해 버린 것은 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 어느 거처나 장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서, 그리스도 자신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타내려는 저자 요한의 의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 - 이 내용은 부가적 기록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시각이 명시되어 있는 것은 그 만남이 역사적(歷史的) 사실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십시'란 유대 시간 법을 따라 오후 네 시라는 견해도 있으나, (1) 본서의 저자가 바로 현장을 목격한 사도 요한이라는 점과 (2) 본서가 에베소에서 헬라인들을 위하여 기록된 점, (3) '번역하면'(38)이란 표현이 신약성경 중에서 본서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등을 고려한다면 로마식 표기법을 따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를 만난 시간은 오전 10시에 해당한다. 이 시간은 (1) 예수 그리스도와 본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 만난 시점으로 추정됨과 아울러 (2)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 '공동체'가 탄생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Westcott).

40절 엔 안드레아스 호 아델포스 시모노스 페트루 헤이스 에크 톤 뒤오 톤 아쿠산톤 파라 이오안누 카이 아콜루데산톤 아우토

성 경: [요1:40]

주제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주제2: [첫번째 제자들]

󰃨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 안드레가 시몬 베드로의 형제라는 말로 지칭된 것은 주로 예수의 공생애 초기, 즉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였다(1:44;6:8;마 4:18;10:2;막 1:16, 29; 눅 6:14). 그러나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떠난 이후로 안드레는 베드로와 결부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지칭되었다(12:22; 13:3;1:13). 한편 안드레가 베드로의 형제로 묘사된 것은 당시 베드로가 예루살렘 12 사도의 수반(首班)으로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초대 교인들이 잘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동시에 이 표현은 사도 요한이 공관 복음서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상 희미해져 가는 안드레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안드레가 사도 요한과 함께 예수의 첫 제자였으며, 자발적인 최초의 복음 전도자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사도 요한은 소상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41절 휴리스케이 후토스 프로토스 톤 아델폰 톤 이디온 시모나 카이 레게이 아우토 휴레카멘 톤 멧시안 호 에스틴 메데르메뉴오메논 호 크리스토스

성 경: [요1:41]

주제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주제2: [첫번째 제자들]

󰃨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 이름 좀 더 정확하게 옮기면 '우리가(찾던) 메시야를 발견했다'(We have found the Messiah;KJV, RSV, Living Bible)로 된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그토록 기다리던 대망의 메시야를 만나고서 그 놀라운 소식을 시몬에게 곧장 전하였던 것이다. '우리'란 구체적으로 안드레와 사도 요한 두 사람을 가리키는 듯하며, 이는 재판정에서 증인의 최소 구성 인원인 2인을 상기시킨다(19:15). 이 두 사람의 동시적 증언(testimony)은 이를 듣는 시몬에게도 놀랍고도 확실한 소식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 그리스도 - '기름을 붓다', '기름을 바르다'라는 뜻의 헬라어 '크리오'(*)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본래 '크리스토스''기름을 발리워진'이라는 뜻의 형용사이며, 이 용어가 명사형인 '토크리스톤'으로 쓰일 경우에는 '의료용 연료'를 가리켰다. 그러나 '크리오'는 헬라적 관점에서 보다는 동양(근동)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규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종교적, 정치적 의미보다는 일상생활의 편의나 용도를 위함이었다. 그러나 근동에서는 '기름'을 붓는 것'이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특히 구약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들이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대표자이며 책임자임을 명백히 하였다(29:7-9;삼상 10:1;16:13;왕상 19:15, 16). 그런데 왕정 후기로 내려 오면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곧 '메시야'임을 의미하게 되었다(61:1;9:24). 그 후 바벨론 유수(幽囚) 이후에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이민족들의 침략 하에 시달렸으며, 그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할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사상이 점점 더 고조되었다. 특히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주(屬州)로 전락되고, 에돔 족속인 헤롯 왕가가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장악하여 무자비한 권력을 행사하자 메시야 사상은 급진적 혁명 운동을 위한 신앙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메시야 사상은 결국 성전 파괴와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한 요인이 되었다. 신약성경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칭한다. 이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에서 명백히 제시되었으며(10:38),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예수께서 구약의 완성자요 새 언약의 중보자(the Mediator)라는 신앙에 기인한다. 즉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란 '기름부음 받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지칭했듯이, 예수는 이 세 가지 직분을 한 몸에 지니시고 죄에 빠진 인류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도들의 머리가 되신다. 한편 메시야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막 8:27-38 주제 강해 '메시야 사상의 전개'와 막 10:35-45 주제 강해 '메시야 예언의 양대 조류'를 참조하라.

42절 카이 에가겐 아우톤 프로스 톤 이에순 엠블렙사스 데 아우토 호 이에수스 에이펜 쉬 에이 시몬 호 휘오스 이오나 쉬 클레데세 케파스 호 헤르메뉴에타이 페트로스

성 경: [요1:42]

주제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주제2: [첫번째 제자들]

󰃨 보시고 가라사대 - 원문은 '엠블렙사스 아우토... 에이펜'이다. 여기에서 '엠블렙사스'는 '주목하다', '눈여겨 보다'라는 뜻의 헬라어 '엠블레포'의 부정 과거 분사로서 예수께서 베드로의 성격이나 사람됨을 통찰하셨음을 시사한다. 즉 예수와 베드로의 첫 만남은 비록 단시간이었음에도 직접적이고도 진지한 만남이었다.

󰃨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 여기에서 '시몬'(Simon)'게바'(Cephas)가 서로 대조를 이룬다. '시몬'이란 베드로의 다른 이름으로서 이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자연적 성품을 꿰뚫고 계심을 나타낸다. '요한의 아들'이란 표현에서 예수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상태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시몬''시므온'(쉬메온)이라고도 불리었다(15:14). 그렇다면 '시몬' 이란 구약의 12지파 중 시므온 지파의 조상인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LXX)과 동일한 명칭이다. 시므온이 과격하고 성미가 급한 인물이었듯이(34:25-31). 변화되기 이전의 시몬 베드로도 충동적이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다(18:10, 25-27;26:31-35;8:32, 33;14:27-31;눅 22:31-33). 이러한 시몬의 성격을 간파하신 예수는 시몬이 장차 '게바'로 불리울 것을 예언하신다. '게바'(케파)'반석'이란 뜻의 아람어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의 베드로의 성격을 잘 반영한다. '게바'라는 이름은 베드로가 교회를 위한 사도적인 터전을 구축(構築)한 여러 요긴한 반석 중의 하나가 된 사실을 상기케한다. 예수 공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 중에 베드로는 예수를 세 차례나 거듭 부인하는 나약함을 보였고(26:34), 2:11에서도 우리는 베드로의 흔들리는 모습과 오히려 사도 바울의 견고한 반석 같은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인간적 약점들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극복하고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감당하였다(1:15-25). 후에 베드로에게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 고백으로 인해 '베드로'라는 칭호가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마 16:16-19). 이는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처럼(창 32:24-30), 요한의 자녀'인 시몬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중생하여 '하나님의 아들'인 게바(베드로)로 되었음을 시사한다.

󰃨 번역하면 - 헬라어 '헤르메뉴에타이'는 '헤르메뉴오'의 현재 직설법 수동태로서 자세한 것은 38절 주석을 참조하라.

[욥기 18장 주석 성경 좋은 말씀] 빌닷-악인의 빛은 꺼진다(욥 18:1-21)

 

[욥기 18장 주석 성경 좋은 말씀] 빌닷-악인의 빛은 꺼진다(욥 18:1-21)

욥기 18장에서는 욥의 대답으로 빌닷이 인과응보적인 해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재앙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의 결백에 대해서 빌닷이

kihonsam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