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헬라어성경 마태복음] 산상수훈 기도에 대한 예수님 말씀(마 6:5-8)

기혼샘 2022. 4. 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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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가르침으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회당과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이미 듣고 알고 보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산상수훈 기도에 대한 예수님 말씀(마 6:5-8)

 

5절 카이 호탄 프로세유크세 우크 에세 호스페르 호이 휘포크리타이 호티 필루신 엔 타이스 쉬나고가이스 카이 엔 타이스 고니아이스 톤 플라테이온 헤스토테스 프로슈케스다이 호포스 안 파노신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아멘 레고 휘민 호티 아페쿠신 톤 미스돈 아우톤

성 경: [마6:5]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기도에 대하여]

󰃨 기도할 때에 -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직접 아뢰는 것으로서 인간으로서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따라서 이는 구제보다 더 즉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때에'(호탄)란 말이 가정법 현재 시상과 더불어 사용됨으로써 규칙적인 기도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넌지시 비추고 있다(Lenski).

󰃨 외식하는 자 - 외식하는 자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1) 악하면서도 선을 가장(pretence)하는 유형, 이런 사람은 자신이 남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22:15-18). (2) 자기만족에 도취하여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속이면서 또 타인을 속이는 유형, 이런 유형의 외식자들은 보통 스스로 경건한 체하지만, 타인을 속이지는 못하고 곧 발각된다(9:1-5). 아마 예수의 책망을 들었던 이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이 유형에 속했던 것 같다. (3) 외식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스스로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유형, 이는 가장 완벽한 위선자이다. 따라서 이들은 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그 행위를 보는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다.

󰃨 되지 말라 - 이는 제자들의 기도를 전제한 표현이다. 즉 예수는 제자들이 의식적인 기도에 빠지지 않도록 여기서 그 허황된 위선에 대해 경계하신 것이다. 특별히 이 '되지 말라'는 말은 강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미래 시상의 어구로서 이 경고를 받은 이후부터 절대 그 같은 잘못을 범치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 회당과 큰 거리 어귀 - 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서 1차적으로 외식자들이 자신의 경건 생활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수단으로써 이 장소를 택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비난한 내용이다. 대개의 경우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회당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눅 18:9-14;3:1;10:9). 만약 외출 중에 기도 시간을 맞게 되면 길가에 서서라도 기도하는 열성을 보였다(M.Taanith 2:1, 2). 이렇듯 그들 행위의 처음 의도는 순수했으나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식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즉 기도 시간에 일부러 외출하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오직 하나님과 자아와의 순결한 만남의 장()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교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명성을 얻고자 하는 것은 금을 주고 돌을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며 나아가 창조자의 순결한 사랑을 인간의 음흉한 위선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된다(눅 18:1-4). 이처럼 예수께서는 기도의 장소나 자세 등을 문제 삼아 그들을 책망하였다기보다는 그들이 기도한 동기와 목적이 불순(impurity)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기도를 통해 진실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경건하다는 칭찬을 듣고자 외식적 태도로 장황하게 기도했던 것이다.

󰃨 서서 기도하기를 - 성경에는 기도의 자세가 몇 가지 언급되고 있다. 즉 기도는 엎드려서(16:22;8:17;11:16), 또는 무릎을 꿇고(대하 6:13;눅 22:41;9:40), 또는 앉아서(삼하 7:18) 또는 서서(삼상 1:26;11:25)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도의 자세가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 한 그들의 헛된 동기(motive)인 것이다.

󰃨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외식자들은 관례에 따라기도 시간(오전 9, 정오, 오후 3)에 맞추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나아가 수려하고 장엄한 언어로 기도한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영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여지(margin)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예수의 가르침을 오해한 사람들 중에는 아예 공적(公的) 기도를 폐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분명 예수는 모든 공적 기도를 금하지 않았으며 초대 교회는 그것을 오해하지도 않았다(18:19, 20;1:24;4:24-30). 실로 공적인 기도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공적인 기도와 사적인 기도의 구분이 기도하는 사람의 동기를 판단하는 좋은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의 칭찬에 더 관심 있는 사람, 곧 경건보다 경건으로 인한 명성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 사적인 기도는 무시한 채 공적인 기도만을 추구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식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다음에 이어지는 '골방 기도'이다.

6절 쉬 데 호탄 프로슈케 에이셀데 에이스 토 타미에이온 수 카이 클레이사스 텐 뒤란 수 프로슈유크사이 토 파트리 수 토 엔 토 크륍토 카이 호 파테르 수 호 블레폰 엔 토 크륍토 아포도세이 소이 엔 토 파네로

성 경: [마6:6]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기도에 대하여]

󰃨 네 골방에 들어가 - 골방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리던 장소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엘리사의 침실과 비슷한 곳이었던 것 같다(왕하 4:33). 여기서 골방은 바리새인들이 기도의 장소로 선택하였던 '회당과 큰 거리 어귀'와 뚜렷이 대조되고 있다. 한편 '골방'의 원어 '타메이온'은 '자르다'는 뜻의 '템노'와 '청지기'란 뜻의 '타미아스'의 합성어로서 세상 모든 것과 단절하고 오직 하나님과만 내밀(內密)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단어는 저장실(store room), 내실(inner room), 침실(bed room, 26:20)등을 가지고 있다.

󰃨 문을 닫고 - 26:20에는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란 말씀이 있는데, 본문은 분명히 이 예언의 말씀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사야가 이 예언을 베풀 때는 분명 마지막 심판 날의 무서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아마 제자들이 이런 심판 날을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기도하되, 이를 관습화 하기 원하셨던 것 같다. 여하튼 자신의 방문을 닫는다는 것은 잠시나마, 오직 자신과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제삼자의 개입을 불허(不許)한다는 뜻인 동시에 순결한 영혼의 교제만이 있을 뿐임을 시사한다.

󰃨 은밀한 중에...기도하라...갚으시리라 -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 앞에 아무런 숨김없이 간구하는 자에게 그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셔서, 모든 것을 듣고 계셨던 그 하나님께서 모두 '갚으실'(4)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품성을 온전히 반영한 약속이다.

7절 프로슈코메노이 데 메 바트톨로게아에테 호스페르 호이 에드니코이 도쿠신 가르 호티 엔 테 풀륄로기아 아우톤 에이사쿠스데손타이

성 경: [마6:7]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기도에 대하여]

󰃨 이방인과 같이 - 산상수훈에는 이방인이 세 번 언급되고 있는데(5:47;6:32), 본문의 이방인은 두 번째의 언급이다. 갈릴리 지방은 이방 지역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이방인들의 출입이 잦았고 심지어 그들과 섞여 살기도 했다. 따라서 갈릴리 사람들은 이방의 관습에 익숙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예수는 자연적으로 앞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적 행동을 비난함과 아울러 바른 신앙생활을 가르치셨던 것같이 이들 이방인들의 잘못된 종교 관행을 빌어 참된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신 것이다. 물론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앞에서는 기도의 장소와 그 동기적 측면이 강조된 것이라면, 본문은 주로 기도의 내용적 측면이 강조되었다 하겠다.

󰃨 중언 부언 - 이 말의 원어는 '밭타로게세테'로서 신약성경에서는 이곳을 제외하고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어원 역시 분명치 않다. 어떤 학자는 말더듬이인 '바투스'란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며(Erasmus), 또 어떤 이는 장황하고 반복적인 시()를 읊는 사람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이 말이 정확하지도, 그렇다고 명쾌하지도 않은 일종의 의성어(onomatopoeic word)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중언부언'이란 말은 잡다할 정도로 말을 길게 끌거나 아무 의미 없는 말을 거듭 반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이방인들은 이와 같은 주문(呪文)과도 같은 내용을 지겹고도 공허하게 계속 반복함으로써 그들의 신()을 질리게 만들었다(왕상 18:26, 28)

󰃨 말을 많이 하여야 - 이는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방법이다. 그렇다고 기도를 언제나 짧고 간단하게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께서도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온 밤을 지새우며 오랫동안 기도하셨다. 따라서 본문은 장황하고 긴 기도가 믿음의 순수한 표현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실로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는 기도의 길이에 관계없이, 그분이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또한 기쁘게 응답해 주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간구하는 것이다(65:24;11:6)

8절 메 운 호모이오데테 아우토이스 오이덴 가르 호 파테르 휘몬 혼 크레이안 에케테 프로 투 휘마스 아이테사이 아우톤

성 경: [마6:8]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기도에 대하여]

󰃨 본받지 말라 - 기도를 길게 하거나 반복하게 되면 기도의 효력이 강화(强化)되어 쉽게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미신적인 생각을 가진 이방인들의 어리석은 신앙관(왕상 18:26-28)에 미혹되어 신앙의 본질을 망각치 말라는 당부이다.

󰃨 구하기 전에...아시느니라 - 이는 기도에 앞서 가져야 할 신앙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며, 전지전능하시므로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더 잘 아시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특히 여기서 '이시느니라'(오이덴)는 말은 긴밀한 관계성 속에서 이뤄지는 직관적 인식을 뜻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이전부터 그 간구하는 자의 삶에 깊이 개입(介入) 해 오신 분으로서 그 필요(necessity)를 익히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필요를 모두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오해하여 전혀 간구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과의 인격적 대화를 원하시며 또한 그들이 당신께 대한 깊은 신뢰감을 지니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 필요를 구하기를 원하신다(Hill). 그렇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러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기도와 많은 노력을 통해 신에게서 탈취하듯 복()과 소원을 앗아옴으로써 그 간구한 바를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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