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마태복음 산상수훈 헬라어 성경말씀] 눈은 몸의 등불이라(마 6:22-24)

기혼샘 2022. 4. 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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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이 산상수훈 말씀에서 재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합니다. 눈이 보는 데로 사람의 마음이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거룩한 것을 보아야 합니다. 두 주인을 섬기면 안 됩니다.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습니다. 종말로 가면서 돈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 팽배해졌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마 6:22-24)

 

22절 호 뤼크노스 투 소마토스 에스틴 호 오프달모스 에안 운 호 오프달모스 수 호플루스 에 홀론 토 소마 수 포테이논 에스타이

성 경: [마6:22]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재물에 대하여]

󰃨 눈은 몸의 등불 - 눈을 통해 몸이 갈길을 찾고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눈은 '몸의 등불'이 된다. 물론 본문에서는 이 ''이 은유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지칭하는 것임이 분명하다(Philo). 그러나 이 ''을 단지 상징적 의미로서 뿐 아니라 실제적인 육체의 눈 그 자체의 역할에 대해서도 간과(onerlooking)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육체의 ''이 보는 바는 '마음'이 보는 바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육체의 눈이 세상의 것에 심취한다면 그 마음 역시 타락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며, 반면 육체의 눈이 하늘의 것을 바란다면 그 마음은 신령한 것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 성하면(하프루스) - 이 말은 원래 '주름 없는'이란 뜻으로서 일차적으로는 '건강한', 이차적으로는 '진실한'(고후 11:3), '단일한', '풍부한', '관대한'(1:5) 등의 복합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하튼 이 말은 빛을 받아들이는 ''의 상태를 지칭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눈과 마음은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하면'이란 적어도 육체와 마음에 궁극적으로 유익을 얻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건전하다'(is sound, RSV)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두 개의 물체(땅의 보물과 하늘의 보물)를 동시에 바라보는 혼란하고 난시안적인 상태가 아니라 오직 한 방향으로 '단일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진실하고 성실한 상태를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 온몸이 밝을 것이요 - 건전하고 진실한 눈을 통하여 얻어진 밝은 빛으로 인하여 몸은 바른 판단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유익을 얻게 하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실로 밝은 빛 되신 하나님의 신령한 진리를 굴절 없이, 혼선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는 참으로 신령한 것과 속된 것을 바로 구분할 뿐 아니라 그 빛 안에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진리 그대로 분별하고 평가하며, 또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혜가 아니겠는가?

23절 에안 데 호 오프달모스 수 포네로스 에 홀론 토 소마 수 스코테이논 에스타이 에이 운 토 포스 토 엔 소이 스코토스 에스틴 토 스코토스 포손

성 경: [마6:23]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재물에 대하여]

󰃨 나쁘면(포네로스) - 이 말은 분명 22절의 '성하면'과 대조되는 표현으로서 흔히 '악한'의 뜻을 가진다. 그리고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에서 '악한 눈'은 이기적이고 인색(吝嗇)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런 의미에서 '눈이 나쁘다'는 어구는 문맥상 하나님과 재물 양자에다 관심을 나누어서 하나님의 뜻과 영적인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온몸 - 앞 구절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빛을 받아들이는 물질적 몸을 가리킴과 동시에 도덕적 차원의 전 인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 어두울 것이니(스코테이노스) - 어둡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빛이 없는 암흑 속에서 대상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함을 가리킨다. 즉 세상 재물에 현혹(眩惑)되어 영적 세계와 참된 진리를 보지 못하는 눈은 온몸에 진리의 세계를 전달해 주는 기능이 마비되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온몸으로 상징되는 그의 전 인격과 영혼은 아무것도 분간치 못하는 흑암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 네게 있는 빛 - 여기서 ''은 헬라어로 '토 포스'로서 태양 빛과 같은 일반적인 빛(light)을 가리키지만 문맥상 이는 22절의 등불로 번역된 '호 뤼크노스'와 동일한 뜻의 빛(lamp)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따라서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영적인 진리의 세계를 밝혀주는 마음의 등불이 어두우면 진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 여기서 '어두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쁜' 눈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실로 본래의 기능이 밝은 빛을 받아들여야 하는 눈이 어두움만을 받아들인다면 그 온몸의 상태는 얼마나 치명적이며 절망적이겠는가! 진정 '성한' 눈을 통해 진리의 세계를 분간하지 못하는 자는 이방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죄와 악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24절 우데이스 뒤나타이 뒤시 퀴리오이스 둘류에인 에 가르 톤 에나 미세세이 카이 톤 헤테론 아가페세이 에 헤노스 안덱세타이 카이 투 헤테루 카타프로네세이 우 뒤나스데 데오 둘류에인 카이 마모나

성 경: [마6:24]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재물에 대하여]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 예수께서는 앞에서 우리가 과연 어디에다 보물을 쌓아야 할 것인지 또는 우리의 눈을 그 무엇에 고정(fixation)시켜야 할 것인지 하는 선택적 문제를 제시하였다(J. Stott, Sermon on the mount, p. 158).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누구를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선택의 문제를 제시한다.

󰃨 섬기지 못할 것이니 - 누가는 불의(injustice)한 청지기 비유를 설명한 다음 이와 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싣고 있다(눅 16:13). 이는 우리의 마음이 단순해야 하고 또 목적이 분명해야 함을 가리킨 내용이다. 사실 ''이란 오직 한 주인에게 전적으로 매인바 되어 그 주인의 명령에 자신의 전 의지를 동원해 순종해야 한다(Tasker). 따라서 그 종이 진실하다면 결단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게 된다. 만약 그가 두 주인을 섬긴다고 한다면 그는 그들을 자신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얻는 한 수단으로써 그 주인들을 섬긴 것이 된다.

󰃨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 한 주인을 섬기게 되면 다른 사람을 섬길 수가 없다. 즉 두 주인을 섬기려 하는 것은 한 주인도 섬기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미움''사랑'은 인간이 지닌 본성적 감정을 뜻하기보다 어떤 구체적인 목적성을 지닌 마음의 현상을 뜻한다. 어찌 되었든 이 양자는 엄밀히 말해 겸비(兼備)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우리가 죄의 종이 되어 사망에 이르든지 또는 순종의 종이 되어 의에 이르든지 하게 된다고 말한다(6:16).

󰃨 이를 중히 여기며(에 헤노스 안덱세타이) - '중히 여기다'란 말은 그에 대해 변함없이 성실하다란 뜻이다. 그리고 본 어구에서는 둘 중에 하나인 '이를'이란 말이 강조되고 있다.

󰃨 재물(맘모나) - 이는 나쁜 의미로서의 재물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서 특정한 부()나 재산을 뜻하는 아람어 '마노나'에서 유래하였다. 유대 문학에는 재물과 돈을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본문에서 이 재물은 하나님과 병기(倂記)되어 의인화되고 있으며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이 재물 역시 종의 주인으로 묘사되었다.

󰃨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여기서 '겸하여'(카이)란 원어상 '대등하다'는 뜻의 접속사로서 친지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그분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물질과 동등한 위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전적인 헌신을 받으시거나 또는 아예 섬김을 받지 않으시거나 둘 중에 하나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며 양자 모두에 헌신하고자 하는 것은 주를 따르는 제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며, 또한 이러한 행위는 부분적 죄악이 아니라 근본(根本)적인 죄악으로서 그 원인은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여기서 재산 소유를 정죄한 것은 분명 아니다. 사실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에서 살아갈 때 재산을 모을 수 있으나 이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거나 그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당하게 모은 재산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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