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4장에서는 목회자가 가져야 할 도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들은 이단을 경계하게 해야 합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면 안 되고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목사의 자기 훈련(딤전 4:1-16)
1-5절, 귀신의 가르침
[1절]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 . . .
바울은 말한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경건의 비밀과 반대되는 것은 배교(背敎) 곧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을 받아 그의 뜻을 전한 자들이었다. 사도들의 교훈은 성령의 교훈이다. 사도시대 말기에 이미 배교의 징조가 나타났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고 하였다(요일 2:18).
배교자들이 따르는 교훈은 ‘미혹케 하는 영들과 귀신들의 가르침들’이다. 세상에는 항상 악령들의 활동이 있어왔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하여 아담을 넘어지게 한 자는 바로 사탄이었다.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은 사탄이다(엡 2:2). 지금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자가 사탄이다(고후 4:4). 이단은 미혹의 영들의 활동이다. 사람들의 잘못된 사상과 철학과 종교는 실상 귀신들의 교훈이다. 어떤 이들이 귀신들의 가르침들을 좇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직 성경말씀만 믿고 따라야 한다. 우리는 심지어 기적을 의존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성경말씀에 근거한 신앙이어야 한다.
[2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바울은 또 말한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성도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1:5, 19) 범사에 양심대로 행해야 한다. 양심이 화인 맞는다는 것은 양심이 마비되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양심이 더러워지는 것보다 더 심한 상태이다. 이런 자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치 못하고,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분간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이단자들은 양심이 마비되어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양심의 마비된 자는 외식하며 거짓말한다. 외식은 이중적인 것을 말한다.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하는 것, 미워하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것,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순종하는 척하는 것, 하나님 없는 세속적 삶을 살면서 경건한 척하는 것, 돈과 쾌락을 크게 여기면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척하는 것, 진리를 대항하면서 겉으로 진리 안에 거하는 척하는 것이 외식이다. 외식자들은 귀신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성령의 가르침을 저버린 자들이다. 그렇지만 선한 양심을 가진 자는 진실하며 진실한 말을 할 것이다. 성령은 사람이 양심으로 진실하게 믿어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지만, 악령은 사람을 거짓되고 불신앙적이게 만들어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3-5절]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 . . .
바울은 말한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바울은 귀신들의 가르침의 한 예로서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는 가르침을 들었다. 이것은 금욕주의이다. 그러나 결혼하는 것이나 음식을 먹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 들어 있고 그것들은 결코 죄가 아니다. 먹는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창 1:31). 율법 아래서는 정결, 부정결의 음식이 구별되었으나 복음 아래서는 그 구별이 제거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음식물은 진리를 믿는 자들과 아는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므로 다 거룩해지고 먹을 만한 것이 된다.
금욕주의는 잘못된 교훈이다. 그것은 구원의 길도, 성화의 길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대되는 불건전한 자기 학대에 불과하다. 절제는 좋은 덕이지만, 금욕주의는 잘못된 사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감사함으로 먹고 마시며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루어지고, 우리의 성화도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극기와 금욕은 죄악성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골 2:21-23).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제압할 수 있다(갈 5:16).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아무도 영적으로 자라지도 못하고 또 남을 자라게 하지도 못한다. 성도의 영적 성장과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성경 교훈 안에서 신앙생활을 힘써야 한다.
이 세상에는 귀신들의 가르침들이 항상 있어 왔다. 말세에 배교의 시대에는 그것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것들은 성경 진리에서 떠났거나 성경 진리와 다른 잘못된 사상과 철학과 종교들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책인 성경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감치 말고 오직 성경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오직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1절부터 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경계하자. 우리는 바른 믿음만을 지키자. 둘째로, 우리는 양심에 화인 맞아 외식하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조심하자. 셋째로, 우리는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는 금욕주의를 경계하자.
6-10절, 경건 훈련
[6절]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 . . .
바울은 말한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믿음과 선한 교훈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리라].” 디모데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는 가르침이 귀신의 가르침이라는 분별력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는 지식으로 가르친다면, 믿음과 선한 교훈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것이다. 성경은 믿음과 선한 교훈의 말씀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7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바울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말한다. ‘망령된’이라는 말(베벨로스)은 ‘속된, 세상적인’이라는 뜻이다. ‘허탄한’이라는 원어(그라오데스)는 ‘나이 많은 여자들이 말하는’이라는 뜻을 가진다. ‘신화’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이다. 기독교는 사실들에 근거하고 있다. 성경의 사건들은 신화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속되고 어리석은 신화적 이야기들은, 비록 그것이 육신의 재미와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일지라도, 다 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신앙에 아무 유익이 없다.
그 대신, 우리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한다. ‘경건’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믿고 그를 섬기는 것이다. 경건은 곧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다. 우리는 경건의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한다’는 원어(귐나죠)는 ‘훈련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경건의 훈련이 필요하다. 경건생활은 성도에게 당연한 생활이며 또 진실한 성도라면 다 그렇게 알고 있겠지만, 그것이 훈련되지 않으면 성도가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없다. 아무리 성도라 하더라도, 경건의 훈련을 힘쓰지 않으면 세상 사람처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성경 읽기, 기도 생활, 가정예배,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예배 시간에 늦지 않는 것, 십일조 생활, 수요일 밤이나 금요일 밤 기도회 또는 새벽기도회에 참석, 권찰이나 교사나 찬양대 봉사, 전도하기 등은 다 훈련을 통해 더 잘 하게 되는 것이다.
[8절]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빨리 걷기나 달리기나 등산 등을 한다. 신체적 훈련은 유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삶에 국한되고 그것조차도 때로는 보장되지 못한다. 건강 관리를 잘 하던 사람도 때로는 예기치 못한 무서운 질병에 침입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내생의 약속은 영생 복락을 가리킨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다(벧전 1:9). 우리가 경건 생활에 힘쓰면 미래의 구원은 확실해진다. 베드로후서 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금생의 약속은 건강과 물질적 안정과 사회적 평안 등을 가리킨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 사업의 복, 건강의 복, 사회적 안정의 복을 약속하였다. 잠언 3:7-8,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건강, 치료]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의식주의 필요]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9절]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바울은 또 말한다.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전적으로] 받을 만하도다.” 이것은 1:15에도 나왔던 표현이다. 그 뜻은, “미쁘다, 이 말이여, 전적으로 받을 만하도다”이다. 경건이 중요하고 복되다는 말은 전적으로 받을 만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다.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영생이요 행복이다. 하나님은 생명과 복의 원천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근본적인 진리를 의심치 말고 더디 믿지 말고 전적으로 받아서 경건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경건 훈련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훈련이다.
[10절] [이는]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는]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모욕을 당하는](전통본문)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이를 위하여’는 ‘경건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믿고 그를 섬기도록 하는 이 일을 위해 수고하고 모욕도 당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소망을 돈이나 육신의 쾌락 같은 세상의 것에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두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셨고 양육하신다.
6절부터 10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경건 훈련을 힘쓰자. 둘째로, 우리는 경건이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음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돈이나 육신의 쾌락 같은 이 세상의 것들에 두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구주 하나님께만 두자.
11-16절, 자기 훈련
[11절]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바울은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고 말한다. ‘이것들’은 본 서신의 앞에서 가르친 내용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들은 특히 바로 앞에서 말한 금욕주의의 미혹을 받지 말고 참된 경건 훈련에 힘쓰라는 교훈을 포함한다. 본 서신에 주신 하나님의 교훈들은 디모데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디모데는 그 진리들을 또 다른 이들에게 명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이며 성경의 목적이다.
특히 ‘명하라’는 말은 이 진리가 신적 권위를 가진 것임을 잘 보인다. 사도의 가르침이 인간적 권위를 가진 말이라면 명령할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처럼 사람들이 자기의 주관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는 시대에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명령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명확한 뜻이며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요구하시는 바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명령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주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이며,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12절]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전통사본)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젊은이는 지식과 인격에 부족이 없지 않겠지만, 말씀 사역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한다. 말씀사역자편에서 자기 훈련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로, 말씀 사역자는 말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말은 사람이 가장 실수가 많은 영역이다. 그래서 야고보서 3:1-2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교역자는 말에 본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말씀 사역자는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말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생명은 삶이다. 참된 신앙은 의롭고 선한 행위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했다(약 2:17, 26).
셋째로, 말씀 사역자는 사랑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이다. 십계명은 사랑으로 요약된다. 즉 그것은, 하나님을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주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며 말씀 사역자는 이 일에 본을 보여야 한다.
넷째로, 말씀 사역자는 심령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심령’이라는 말은 생각을 가리킨다고 본다. 사람의 생각은 그의 인격으로 나타난다. 말씀 사역자는 생각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말씀 사역자는 믿음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성도의 기본적 덕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 믿음은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해 강해진다. 말씀 사역자는 믿음이 견고한 자이어야 한다.
여섯째로, 말씀 사역자는 정절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정절’이라는 말은 순결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특히 이성 관계에 있어서 단정함을 뜻한다. 말씀 사역자는 이 점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말씀 사역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순결함에 있어서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그들이 그를 통해 받는 모든 교훈에 신임성을 두고 그것을 믿고 그를 따를 것이다.
[13절]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 . . .
바울은 말한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착념하다’는 말은 ‘집중하다, 전념하다’는 뜻이다. 디모데는 아직 지식과 인격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지 않을지라도 그의 현재의 상태에서 말씀 사역에 집중하고 전념해야 했다.
우선, 그는 성경을 읽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뿐 아니라 공적으로 읽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성경을 읽는 것은 자신을 위해 또 교인들을 위해 유익한 일이다. 또 그는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그것을 권하고 가르쳐야 한다. ‘권하는 것’은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하는 것’을 가리킨다. ‘가르치는 것’은 성경말씀을 해석하며 그 중요한 교훈을 설명하고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14절]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 . . .
바울은 또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소홀히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 ‘장로의 회’는 오늘날의 노회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디모데가 말씀 사역자로 안수를 받을 때 특별한 은사를 그에게 주셨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에게는 해외선교의 은사를, 해외선교도 어떤 이에게는 이슬람 지역의 사명을, 어떤 이에게는 구 공산권 지역의 사명을, 어떤 이에게는 국내의 농어촌 사역이나 장애인 사역이나 군인교회 사역 등을 각각 주신다. 말씀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사명을 따라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15절]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 모든 일’은 앞에서 말한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순결함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것과, 성경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말씀 사역에 전념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말씀 사역자는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자신의 진보, 즉 지식의 진보, 분별력의 진보, 인격의 진보, 사역의 열매에 있어서의 진보 등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어야 한다. 참된 일꾼은 결코 후퇴하거나 제자리 걸음을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16절]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 . .
바울은 또 말한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네 자신을 삼가라’는 것은 말씀 사역자의 자기 훈련을 말한다. 이것은 넓게는 모든 성도의 자기 훈련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늘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또 ‘가르침을 삼가라’는 것은 말씀 사역자에게 중요한 것이 그의 가르침임을 보인다. 가르침도 단순히 가르침의 방법보다 가르침의 내용이 중요하다. ‘이 일을 계속하라’는 것은 앞에서 한 교훈들이 한 번 실천하고 중단될 것이 아니고 계속 실천되어야 할 것임을 보인다.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는 말씀은 말씀 사역자의 자기 훈련이 자기 영혼의 구원을 확실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의 구원을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뜻이다. 잠언 14: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느니라.” 말씀사역의 결실은 결국 사역자의 자기 훈련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역자의 자기 훈련이 없다면 영혼 구원의 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1절부터 16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말씀 사역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순결함에 있어서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말씀 사역자는 개인적으로 또 공적으로 성경 읽기와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 셋째로, 말씀 사역자는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자신의 진보, 즉 지식과 분별력과 인격과 사역의 열매에 있어서의 진보를 다른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내어야 한다.
[느헤미야 7장 성경 좋은 말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의 수(느 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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