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로마서 14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을 위해 삽시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헌신해 주셨습니다. 주신의 몸을 영원히 죽어야 할 나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으니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나를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마지막 날에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으니 나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날을 소망하면서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제목: “예수님을 위해 삽시다”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롬 14:7-9, 렘 20:7-9
요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주제: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나도 주님을 위해 순교까지도 각오하자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삽니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종은 주인을 위해 삽니다. 주인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을 하거나 죽기도 합니다. 일본 사무라이 정신은 자기의 오야봉을 위해 자살을 합니다.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할 때 많은 군인들이 할복자살을 했습니다. 충실한 직장인은 자기 직장을 위해 살기도 합니다. 모든 일을 포기하고 직장 일에 모든 것을 걸기도 합니다. 일본인들도 그렇게 하는데 나는 예수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베드로는 큰소리치며 주님을 위해 죽겠다고 했으나(마 26:33, 막 14:29, 눅 22:33) 주님께서 체포되어 대제사장 감옥에 계실 때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비겁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을 살게 됩니다. 이전에는 예수님과 멀고 예수님의 존재가 내게 적었지만, 기도와 말씀으로 중생하게 되면 예수님이 내게 모든 것이 됩니다(Jesus is everything for me. I have none but Jesus.)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지 않지만, 매일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 번째 제자들을 만나신 곳은 갈릴리 호수가에서 였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아 지친 일곱 제자들에게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게 하신 후 준비하신 조반을 함께 드신 후, 베드로에게 세 번씩 사랑을 확인하시면서(쉐마의 사랑,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사명을 맡기신 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요 21:18-19) 결국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고 그 후의 삶은 예수님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에 순교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의 생명은 예수님께서 지켜주시고 받아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산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 18:1-3)이 고백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당할 때 어려움을 하나님의 힘으로 극복하고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쉐마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
오늘 본문 말씀 로마서 14장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용납하되 그들이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속하는 삶을 산다면 판단도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으나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시장에서 파는 대부분 고기는 우상에게 제물을 바친 후 파는 것이었습니다. 바울도 이런 고기를 양심을 묻지 않고 먹을 수 있으나(고전 8:4-8), 믿음이 약한 자는 이런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불결하다고. 그래서 성도들은 우상을 인정하지 않기에 우상에 바쳐진 고기를 보통 고기로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분들을 위해 그런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네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전 8:12-13)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절기나 특정한 날에 대한 문제입니다.
롬 14:5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유대교에서는 유월절, 초막절, 불교에서는 사월초파일, 유교에서는 제삿날, 이슬람에서는 라마단 등 각각 종교마다 절기와 특별한 날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국경일이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에서 특별한 날을 지킵니다. 이런 문제도 절대 기준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예수님에게 공통분모를 가지며 기준을 잡으면 됩니다.
롬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모든 기준을 예수님께 두면 감사할 뿐입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하여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먹어도 예수님을 위해 먹고, 마셔도 예수님을 위해 마시고, 이 날을 중하게 지켜도 예수님을 위해 지키고, 공부를 해도 예수님을 위해하고, 돈을 벌어도 예수님을 위해 벌고, 하루를 살아도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 때문에 형제를 사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매를 사랑합니다. 예수 위해 살고, 예수위해 죽고 예수위해 살고 예수위해 죽고 예수님 때문에” (복음송가)
우리는 아무도 자기를 위해 태어나고 죽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데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For whether we live, we live unto the Lord; and whether we die, we die unto the Lord: whether we live therefore, or die, we are the Lord's.) 이를 일사각오의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께서 신사 참배 반대하시다가 투옥되실 때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셨습니다. 주님께 맡긴 몸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롬 14:7-9절은 주기철목사님께서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 반대하시다가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신 후 마지막 설교를 하신 말씀의 본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특별히 다섯 가지 종목을 들어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5 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도합시다.
"오,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번에야말로 순교의 영광을 허락하시는가 싶더니 또 풀어주시어 이렇게 강단에 다시 서게 되었나이다. 아직까지 제가 받은 핍박과 고난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분량에 이르지 못한 걸 알고 있사오나, 할 수만 있다면 이 고통스러운 육신을 떠나 하루라도 빨리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옵나이다.
사랑하옵는 주님이시여!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 간악한 마귀의 흑암 권세로부터 지켜 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주님의 강하신 손으로 붙잡아 주시옵소서!
빛되신 주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저 어두움의 사망 권세를 물리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 불쌍한 어린양들을 천국 가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이제 이 종이 선포하는 주님의 말씀에 은혜받고 힘을 얻어서 주님의 뒤를 따르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이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5 종목의 나의 기원!
첫 번째 저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을 욕되게 마옵소서! 주님은 영원토록 찬양받으실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다만 일사각오(一死覺悟)가 있을 뿐이올시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나도 부활하리로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르고 백합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 요한은 33세, 스데반도 청장년에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나의 두 번째 기원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가지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고문이 끈질긴 만큼 나는 더욱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웬만한 믿음 가지고는 오래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을 참기 어렵습니다.
예수께서는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마24:14)고 신신부탁하셨습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직면하자 그 받으실 고난을 인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고 십자가상에서 그 혹독한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질 때, 그 고통이 어떠하였으리요!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고통의 소리를 우주도 감당하지 못하여 태양도 빛을 잃고 그 고통의 핏방울은 땅도 감당할 수 없어, 지축이 흔들리어 지진이 터졌던 것입니다. 내 주 예수 날 위하여 이렇게 고난을 참으셨는데 내 당하는 고난이야 그 무엇이겠습니까? 십자가, 십자가 내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며, 우리 앞에는 천국가는 밝은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羞辱)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나의 세 번째 기원은 "노모(老母)와 처자(妻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입니다. 저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남의 아들로의 의무도 지중하고 남의 가장, 아비 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내 어머님은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키우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 맞아 상할 때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춘풍추우(春風秋雨)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에,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 들 때에 어머니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중한 고통받으실 때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예수님의 심정으로 저의 노모를 돌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어머님을 80 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내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인생을 내게 바치었거늘 나는 남편된 의무를 못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두고 잡혀 다니는 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 되는 어린 교회를 뒤에 두고 골고다로 나가시는 심경이 어떠하셨습니까? 병든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불초(不肖) 이 내 몸은 주님의 자취, 주님의 눈물의 자취를 따라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에 제 자식 돌보지 않는 자 어디 있으며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4명의 아들이 있어 어린 것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것을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한정 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의 역적으로 잡혀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거든 어린 자식을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내 마음 끝없이 처절합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자식 같은 제자들을 앞에 모으시고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어린 말씀이었고 교훈하시는 말씀 말씀이 피 끓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자식과 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의 마음 어떠하셨으리이까?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저의 자식도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저의 자식들도 주님 품에 부탁합니다.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시여! 저에게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 사랑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 내 양 떼를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의 이리떼 중에 내 양들을 두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맡기나이다. 대목자장이신 예수님 손에 이들을 맡기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재의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렵니다.
나의 네 번 째 기원은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臣民)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정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무너지는 한(漢)나라를 붙잡고 오장원(五丈原)에서 죽기까지 국궁진쇄(鞠躬盡鎖) 사이후이(死而後而), 즉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인간끼리의 의도 이럴진대,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주를 위하고 또 그 교회와 그 의를 붙들고 "국궁진쇄사이후이",죽도록 충성하여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앙의 대의를 지키느라 풀무불에도 뛰어들었고,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자굴 속에도 들어갔습니다. 이 모두가 오직 예수를 사랑하는 까닭에 믿음으로 행한 일들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니 용광로 같은 풀무불이 두려우랴! 예수를 사랑하니 굶주린 사자굴도 두렵지 않도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 되어 주님 향한 정절을 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사(우상)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부터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번 맹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 구구도생이 어찌 말이 됩니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 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여러분! 예수는 살아계십니다. 부디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십시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얻겠네./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죄 /눈 같이희겠네………
나의 다섯 번째 기원은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혹여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가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길을 걷게 하시옵고 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게 하사 영광의 존전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받아주소서! 받아주소서!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 주여, 영광 받으옵소서!!!
--이후 주 목사님은 신사 참배 거부로 인한 5번째 수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1944년 4월 21일 금요일 밤 9시 숱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주 목사님은 평양형무소의 한 귀퉁이에서 49세의 연세로 순교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내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붙잡으소서"하시고 웃으며 천국에 입성하셨다고 합니다.
찰스 프리데릭 위이글(Charles Frederic Weigele, 1871-1966)은 1871년에 미국 인디애나주의 독일계 이민 가정에서 2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12세 때 감리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큰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는 결혼한 후 노래하며 설교하는 순회 전도자가 됩니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이 집을 비우는 일이나 전도사역을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남편을 저주하고 딸을 데리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그는 실망과 좌절감에 빠져 번민하다가 바닷가 낭떠러지에 올라가 자살하려고 뛰어내리려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사랑하고 돌보아왔는데 네 앞날을 지켜 주지 않겠느냐" 그때 그는 외쳤습니다. "그렇다 주님께서 날 사랑하고 지켜주신다 이제 나는 주님만을 위해 살리라. 그때 받은 감동으로 찬송 시를 썼습니다. Living for Jesus (325장, 통 359장)
1.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2.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이름 증거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3. 이세상 친구 없어도 예수는 나의 친구니 불의한 일을 버릭 예수를 위해 삽시다
4. 주께서 심판하실 때 잘했다 칭찬하리니 이러한 상급 받도록 예수를 위해 삽시다
(후렴)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디모데는 신실하고 뛰어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어떤 역경과 고난이 불어닥친다 해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만큼 크고 확실한 믿음이었습니다. 어떤 시험도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진실로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위해 살려면
첫째로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딤후 1:5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영국속담에 부모들의 약점과 강점은 자녀들이 반드시 그 값을 지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 부모의 인격을 엿볼 수 있스니다. 신앙과 사랑과 온전한 인격의 사람들은 역시 신앙과 사랑과 온전한 인격의 자녀들을 생산해 냅니다. 열매는 나무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디모데는 거짓없는 믿음을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물려받았습니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진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거짓 없는 믿음이 디모데로 하여금 예수를 위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둘째로 소명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은 분명한 소명(calling)과 사명(mission)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불러 주신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그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소명적인 관계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소명적인 관계가 바로 될 때에 바른 믿음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감에 불타 자원하는 사람을 기다리시고 그런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셋째로 예수님 안에서 분명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 3:8-9)고 간증합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 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찬 94장, 통 102장)
사회학자 토니캄폴로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루지 못한 업적을 바라보며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 평생 예수님을 위해 살아갑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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