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9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 앞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서기관들은 속으로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신성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인간이 죄를 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사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육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중풍병자의 육적인 질병도 고쳐주시고 영적인 죄도 사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며 인간이십니다. 나의 질병과 원죄를 모두 치료할 수 있는 분입니다. 이런 주님을 믿고 열심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제목: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 9:1-8
요 절: “군중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 9:8)
주 제: 사람의 최고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자
마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마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마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해야 합니다. 바른 예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을 정확하게 지은 후 구름이 회막(=성막)에 덮이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여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출 40:34-35).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헤롯 성전은 로마군에 의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고 파괴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교회냐 그렇지 아니한가 가 중요합니다. 많은 부속건물이나 지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천막이든 초라한 곳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찬송가 438장(통495장) 3절에 있는 대로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천군 천사들의 찬양의 주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대언자의 소명을 받을 때 성전에서 보고 들은 천사들의 찬송이 “서로 소리 질러 말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님,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3)였습니다. 에스겔도 그발(Chebar) 강가에서 본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주님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겔 1:28) 예수님의 나심을 전하는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Glory to God in the highest)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예배의 모습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 말입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여 수석 입학하거나 상을 받으면 그를 키운 부모님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부모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자식은 효자, 효녀입니다. 반대로 부모에게 욕을 끼치는 자녀는 불효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은 자녀인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예수님께서 욕을 먹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우리에게 모범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100% 드러내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영생수를 공급하셨는데 연회장은 이를 가장 좋은 포도주로 알았습니다.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요 2:11). 이처럼 예수님의 모든 기적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병자를 고치신 목적도,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목적도,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목적도. 말씀을 전하신 목적도, 말씀을 가르치신 목적도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셨습니다.
나면서 소경이 된 자를 두고 제자들이 묻기를 ‘누구의 죄 때문에 이렇게 나면서부터 실명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도 불교의 윤회설처럼 전생에 죄를 지어 현생에 벌을 받고 있다는 사상과 비슷한 내용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주님의 대답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3) 참으로 깊이 있는 명답입니다. 나사로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 누이동생들이 급하게 주님의 심방을 요청했을 때 주님께서는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요 11:4) 하시고 죽은 지 나흘째 되던 날 나사로를 살려주심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입니다.
두 번째 주기도문(Second Lord’s Prayer)으로 알려진 요한복음 17장을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기도”라고 별명을 붙입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강화를 하신 후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4 I have glorified thee on the earth: I have finished the work which thou gavest me to do. 5 And now, O Father, glorify thou me with thine own self with the glory which I had with thee before the world was.” (요 17:1-5) 여기서 4-5절 말씀에 보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세와 태도 및 방법이 다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다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일을 다 이루는데 완벽하게 훌륭하게 이루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칭찬을 받을 때 좋다고 자만할 것이 아니라 “무익한 종은 하여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We are unprofitable servants: we have done that which was our duty to do.”(눅 17: 10) 하며 그 칭찬과 영광을 주인에게 돌려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국 예배를 보여주는 계시록 4장에 보니까, 주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봉사한 24 장로들이 천국에서도 주님의 보좌 둘레에서 섬기고 있는데 이들은 흰 옷을 입고, 주님으로부터 받은 상급인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있습니다.
네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앉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하고 생물(천사)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영영토록 사시는 분에게 돌릴 때, 너무 감격한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분에게 경배(예배)하고 자기들이 상급으로 받은 금 면류관을 벗어 보좌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 4: 4-11)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입니다. 바울 사도은 고린도 교회에서 음식 문제로 질문을 해 올 때에 정신이 중요함을 상기시키면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Whether therefore ye eat, or drink, or whatsoever ye do, do all to the glory of God, 고전 10:31)고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가버나움(그분 자신의 도시 his own city)에 도착하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마비병 palsy)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Thy sins be forgiven thee. 마 9:2) 이 자리에 있던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This man blasphemeth 신성모독.) 서기관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선지자나 랍비 정도로 생각하는데, 죄를 사죄한다고 하니 이는 신성모독이라고 간주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서기관을 주목하시면서 “너희가 어찌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마 9:6) 만약 이 이야기가 여기서만 끝난다면 서기관의 생각이 옳다고 사람들이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당시의 불치병으로 알려진 중풍병에서 나음을 얻고 일어나 침상을 메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먼저 자신이 놀랐을 것이고, 또한 침상을 메고 온 친구들이 놀랐을 것이고 물론 그 서기관도 놀라 할 말을 잃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던 군중들이 이 일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marvelled) 여기서 두려워했다는 표현은 실은 너무나 놀라운 나머지 주님의 신성에 대한 경외감을 나타냈다는 말입니다. 그의 죄를 먼저 사해주시고 그의 육신의 병을 고쳐주신 일은 모두들에게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이런 권세 즉 죄를 사해 주시고 불치병을 고쳐주신 권세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태도는 이런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받을 때도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가 치유함을 받았는데 오직 이방인 사마리아인만이 주님께 다시 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영광의 예배입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주님으로부터 열병을 치유함을 받고 봉사하며 섬겼다고 했습니다. 영광의 예배입니다. 가버나움에서 한 여인이 주님의 뒤로 와서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린 것이 바로 영광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영광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매일 매주간 매월 매년을 반성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동을 한 것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보기 싫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말씀보다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이런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서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되었습니다. 가인도 하나님의 권면을 무시하고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If thou doest well, shalt thou not be accep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unto thee shall be his desire, and thou shalt rule over him.)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아니했습니다. 죄의 소원대로 행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물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일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찬송을 드리기를 즐겨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자기 영광에 도취된 자였습니다. 초대 왕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왕위를 계승하려고 방해되는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부리시는 악신에 빠져 정신병자로 살아갔습니다. 결국 블레셋에게 쫓겨 길보아 산에서 비참하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리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언행을 절대 삼가며 살아가십시다. 이 중풍병자는 죄 용서함 받기 전에 죄의 고백이 선행되었습니다. 회개하는 자를 주님께서는 용서하십니다. 주님 앞에 나아올 때 이 병자는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인정했습니다. 또한 이 병자의 친구들도 늘 중보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들은 병자의 침상을 함께 들고 오면서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만 오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서기관 외에는 주님께서 사죄 선언을 하실 때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그 중풍병자를 치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늘 구걸하던 40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믿음으로 걷게 되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먼저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영광의 예배를 먼저 드린 것처럼 우리도 항상 중요한 때,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첫 시간에 주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립시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 관리도 그러합니다. 유대인의 성인 때에 중요한 선물이 손목시계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잘 쓰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1) 입에서 나간 말인데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2) 화살입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3) 흘러간 세월인데 흘러간 세월은 흐르는 물 같아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이 70 평생을 산다면 가정한다면 잠자는데 20년, 일하는데 20년, 먹는데 6년, 노하는데 7년, 치장하는데 5년, 전화 거는데 1년, 누워서 쉬는데 2년 반, 사람을 기다리는데 5년을 소비한다고 합니다. 인터넷 하는 시간, 스포츠를 시청하는 시간, 잡담하는 시간, 남을 비방하는데 쓰는 시간, 죄짓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합니까? 그러나 이제부터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시간으로 사용합시다. 성경 읽고 쓰는 시간, 암송하고 묵상하는 시간, 말씀을 실천하느라 바쁜 삶,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입술, 생각, 마음가짐 등 주님을 기쁘게 하고 감동시키는데 온전히 총력을 기울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를 주님께 고백하고 주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은혜를 입은 후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올해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라면 절대 하지 맙시다. 이것이 승리하는 일입니다. “인생의 최고 목적이 무엇이뇨?” “인생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평생토록 그를 즐겁게 하는 일입니다” 소요리문답 1문과 답을 늘 기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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