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벧엘 산 설교문] 벧엘 산 הר בית אל(하르 베이트 엘)

기혼샘 2020. 12. 2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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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벧엘 산 설교문 중에서 하르 베이트 엘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벧엘 산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보호함을 받을 수 있는 산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산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모형을 발견해 볼 수 있습니다. 

벧엘 산 הר בית אל(하르 베이트 엘)

 

명제: 벧엘 산은 하나님의 집이며 보호함을 받을 수 있는 안식처를 의미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의 집에 안식을 누리게 된다.

 

 

벧엘 산은 야곱과 사울이 연관이 있는 산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눈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쳤을 때에 도망하다가 도착한 곳이 옛 이름은 루스라는 곳이며 이곳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벧엘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창28:18-19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눈을 피하여 도망을 칠 때의 나이가 76세 정도입니다. 에서는 이미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의 나이 40세입니다. 이 결혼 때문에 이삭과 리브가는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만큼은 가나안 땅의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축복 문제 때문에 에서는 화가 나서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것을 리브가가 알고 이삭과 의논하여 야곱을 밧단아람의 자신의 오빠 집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날 때의 나이가 76세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창28:1-2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이삭은 장자인 에서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불러 축복하고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밧단아람의 라반의 집으로 가서 그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늙은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벧엘입니다.

 

창28:10-1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한 곳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해가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하루를 묵기 위하여 한 돌을 가지고 와서 베개로 삼아 거기서 누워 자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현재 야곱은 에서의 눈을 피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에서가 화가 났기 때문에 야곱을 반드시 죽이려고 쫓아왔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에는 사막지대이고 광야이기 때문에 교통수단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도보로 여행을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사람들이 하루 온종일 쉬지 않고 열심히 걸어가면 20Km를 걸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모리아까지 삼일 길이라고 했습니다.

 

창22:3-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하여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걸어서 모리아 산에 도착했을 때에 삼일이 걸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삼일 길은 어느 정도의 거리입니까? 60Km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벧엘이라는 지역을 하루 길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벧엘은 모리아 산보다 하루 길을 더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80Km라는 결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거리를 76세의 노인이 에서의 눈을 피하여 하루 만에 왔다는 것은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숨을 쉴 수조차 없는 촌각을 다투면서 도망을 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절대 상상이 되지 않는 길을 하루 만에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이 정도로 에서를 두려워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곳에서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앞으로의 길에 염려하지 말라고 야곱에게 힘을 주시고 사닥다리를 통하여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겠다는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밧단아람으로 가서 늙은 나이에도 라반의 집에서 충성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안식을 주시고 쉼을 얻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벧엘은 사울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울이 왕에 오를 때가 40세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장소가 어디입니까? 길갈이라는 장소입니다.

 

삼상11:14-1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사무엘이 백성들을 길갈로 불러 모아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하나님 앞에서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하자’ חדש(하다쉬 2318 동사, 피엘, 미완료, 공성, 1인칭, 복수) 새롭게 하다, 갱생하다, 재건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인간으로는 처음으로 왕이 되는 순간입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세상의 왕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들도 눈으로 보이는 왕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마음은 사사시대에 많은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이제부터 사울만큼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으로 갱생하고 재건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길갈로 올라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왕을 뽑자는 것은 잃어버렸던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완전하게 뿌리 뽑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의 신앙으로 돌아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길갈로 백성들을 모은 것입니다. 또한 이번 한 번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신앙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원하는 왕을 처음으로 세우고 있으니 계속해서 가나안 땅에 살면서 후손들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전수하여 새롭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피엘형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 שאול(샤울 7586) 사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אל(샤알 7592) 요구하다, 간청하다, 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이름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인간들이 하나님께 간청하여 세상의 왕과 같은 자들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여 세워진 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통치하는 왕이 아닌 인간이 통치하는 왕을 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인간이 나를 통치하는 삶을 살면 반드시 고난이 있고 괴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지 않고 세상의 재물 앞에 통치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재물 때문에 괴롭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명예에 통치받는 자들은 명예 때문에 인생이 고단 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한다는 것은 바로 복음의 십자가 말씀이 내 안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이 원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겸손한 자였지만 왕이 된 후에는 교만하여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버림받게 되는 것이 벧엘이라는 산에서 블레셋 민족들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번제를 드리는 죄를 짓게 됨으로 왕에서 쫓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면서 철저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사울 왕은 인간들이 요구하여 세워서 실패한 왕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전파하는 그릇으로 세웠던 베냐민 지파의 사울은 주님의 요구에 의하여 세워진 사람입니다.

 

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눈이 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사울에 관하여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직접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울은 주님의 요구에 의하여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어로 이 사울도 같은 שאול(샤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베냐민 지파입니다. 인간의 요구에 의하여 실패했던 것들을 주님은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선택하셔서 복음의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요구하는 일들은 반드시 실패하지만 주님이 요구하는 그릇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요구한 사역자이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길도 사역의 길도 내가 좋아서 가는 길은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에 힘들면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사역의 길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세운 사역의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아서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주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주님이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을 위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주님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육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물질의 어려움에 봉착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주님이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포기할 수 있지만 주님은 이럴 때에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주님이 요구한 사역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간에 어려움 때문에 포기한다면 이것은 내가 좋아서 온 것입니다. 주님이 요구하는 것은 인간 이상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이것을 못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울 왕이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세워진 곳이 길갈입니다. 왜 길갈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마지막 진을 친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길갈’ גלגל(길갈 1537) 길갈,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לל(갈랄 1556) 옮기다, 떠나가다, 맡기다, 의탁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갈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것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겼던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백성들을 옮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백성들의 거짓된 우상을 완전히 심령에서 제거하여 떠나가게 하고 심령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뜻을 위해 살라는 부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인 너부터 이와 같이 실천에 옮기라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수치가 너에게 굴러오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따라가거나 불순종의 삶을 살 때에는 너에게 수치가 굴러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제사를 단독으로 드려 수치가 굴러 들어왔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길갈에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의 말씀은 귓전에도 듣지 않는 이런 신앙생활을 한다면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수치를 당할 것이며 사람들로부터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수치를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굴려주셨습니다. 더 이상 죄악의 수치도 없을뿐더러 세상에서도 수치를 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왜 내가 수치를 당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모든 수치를 담당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된 지 이 년에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군대들을 소집했습니다.

 

삼상13:1-2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선택하여 그중에서 이천 명은 믹마스와 벧엘 산에 머무르게 하고 일천 명은 자신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머무르게 한 후에 남은 백성들은 각자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믹마스’ מכמס(미크마스 4363) 믹마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כמס(카마스 3647) 보관하다, 저장하다, 쌓여있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믹마스에 머무르게 한 의도는 이곳에서 블레셋과 싸우기를 원한 것입니다. 믹마스는 숨겨진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장소입니다. 사울의 의도는 믹마스에 군대들을 물건을 저장하여 쌓아 놓듯이 숨겨두어 블레셋 민족들과 싸우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벧엘 산에 군대들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벧엘’ בית אל(베트엘 1008) 벧엘,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בית(바이트 1004) 집, 가정, 이라는 뜻과 אל(엘 410) 하나님, 이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장소입니다. 벧엘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장소입니다. 야곱이 두렵고 떨림으로 에서의 눈을 피해 도망을 칠 때에 안식을 주시고 마음에 평강을 주셨던 장소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자신의 군대들을 벧엘 산에 모아놓고 안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대들을 보고 안식을 얻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통하여 마음에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은 온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면 절대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을 믿고 군대의 힘을 믿으면 벧엘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블레셋 민족들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이 현재 벧엘의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있으면서 쉼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블레셋 민족들의 숫자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큰 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벧엘의 장소에 있으면서도 전능하시고 권능이 출중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사탄의 세력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지만 남의 집에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집이지만 내 집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합니다. 주인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라고 하지만 내 집에 있는 것보다는 불편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신앙이 이렇지는 않습니까? 주님과의 교제가 어색하고 주님은 편안하게 있기를 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집에 손님으로 들어와 모든 것이 낯설지는 않습니까? 이런 자들은 절대 마음에 평안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들은 다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마음껏 쓰고 먹고 즐기고 돌아다니면서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허락을 받지 않고 써도 마음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이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것이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의 신앙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울 왕이 벧엘의 하나님의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민족들을 두려워한 것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숫자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삼상13: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 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전차가 삼 만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마병이 육천 명입니다. 이 광경을 벧엘의 산에서 사울이 쳐다보니 해변의 모래와 같이 보였습니다. 사울 왕은 육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블레셋 군대들은 신식 철제무기와 강력한 전차로 무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자신의 군대들의 무장을 보면 너무나 초라한 것입니다.

삼상13:19-22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 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이스라엘 땅에는 철공들이 없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볼 때에 히브리인들이 칼이나 창을 만들어 블레셋 민족들을 공격할까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군대들은 농사를 짓는 도구로 전쟁을 해야 합니다.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가지고 전쟁에 나온 것입니다. 전쟁에 칼과 창이 얼마나 없었는지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 싸우는 날에 칼과 창은 사울 왕과 요나단 외에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사울의 군대는 군대도 아닙니다. 오합지졸에 불과한 군대입니다. 이런 자들이 블레셋의 최신식 무기와 싸운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한 것입니다. 사울은 이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상황 가운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벧엘의 하나님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외형적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가 너무나 커서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손을 쓸 수가 없는 문제가 나에게 당면하게 된 것입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 민족과 싸워야 하는데 백성들도 턱없이 부족하고 무기도 부족한 상황과 같은 것입니다. 이럴 때에 과연 나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잡고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인간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거주하면서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으니 죽어도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아도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따라가면서 주님이 행하실 일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럼 사울은 어떠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까? 블레셋 군대들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엄청난 혼란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삼상13:6-7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에 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은 나올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상황입니다.

 

‘숨으며’ חבא(하바 2244 와우계속, 동사, 히트파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숨다, 숨어있다, 자신을 숨기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민족들을 보고 자신의 몸을 각자 숨기기에 바빠졌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즉시로 블레셋 민족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자신들의 몸을 낮추어 바위 뒤에나 동굴이나 웅덩이에 숨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몸을 숨긴 자들은 살았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숨기지 못한 자들은 블레셋 민족들에 의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사울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블레셋 민족들에게 자신의 백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 떨면서 자신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볼 때에 사울은 안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삼상13:8-9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 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신이 적들과 싸워 승리하게 해 달라는 의도입니다. 사울도 블레셋 군대와 싸워야 하는데 사무엘이 정한 기한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사울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승리를 약속받아야 하는데 제사를 드려야 할 제사장은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더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길갈로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백성들이 사울에서 흩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사울에게서 멀어지면 전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어쩔 수없이 하나님 앞에서 번제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레 동안’ שבע(쎄바 7651) 일곱, 칠,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בע(샤바 7650) 맹약하다, 서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과 서원을 하고 약속하였습니다. 이 약속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간을 7일로 정한 것입니다. 7일째가 되면 사무엘이 와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사울이 전쟁에 나가 승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서원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어떠한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사무엘이 오기 전에는 자신이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이미 서로 약속한 것이고 서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렸으나’ יחל(야할 3176 와우계속,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기다리다, 의지하다, 예상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과 약속한 7일을 열심히 기다리면서 자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하나님께 제사만 드리면 반드시 블레셋 민족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 왕은 약속한 기간 동안에 사무엘을 기다리면서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소망이며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과 약속한 날부터 즉시로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기다리는데 시간은 잘 가지를 않습니다. 하루가 천년과 같은 시간을 사울은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시간을 세면서 보내고 있는데 문제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울 왕의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이 오지 않으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의지했던 사무엘마저 자신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울 왕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때에 사울은 인간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 앞에서 번제를 드리자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제사장 외에는 드릴 수 없는 제사를 왕의 집도하에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울의 행동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현재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세워진 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생각과 방법이 우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혹시 내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열심히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내가 하나님의 집에 있다면 맡겨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인간을 바라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게 되면 반드시 사울 왕처럼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무엘과 서원했다면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인 사무엘이 늦게 오는 것도 하나님의 의도가 있을 거야라는 것을 깨닫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오직 주님의 뜻을 바라보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기다리는 신앙이 될 때에 단단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삼상13:10-11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사울에게 문제는 지금부터 터지고 있습니다. 번제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울은 신이 나서 사무엘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와 약조한 서원을 왜 왕이라고 어겼느냐는 것입니다. 왕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고 사무엘은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이때에 사울은 사무엘에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당신이 시간 안에 오지 않아서 내가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믹마스에 구름같이 모였고 백성들은 흩어지는데 어떻게 번제를 드리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사무엘에게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항상 하나님의 탓을 하고 남의 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울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늦게 온 사무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조급하면 실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조급해지면 판단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마음이 조급해지니 모든 일을 빨리 처리하려고 합니다.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눈에 보이는 것만 처리했던 것입니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잘못 때문에 사울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조급하여 실수하면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삼상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왕이 행동한 제사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망령되이 행동한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에게 내린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망령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의 자리에서 영원히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סכל(사칼 5528 동사, 닢알, 완료, 남성, 2인칭, 단수) 어리석게 처신하다, 미련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며 바보짓을 한 것입니다. 자신은 당당하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어리석은 방법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미련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교회에서 자신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교회에서 휘두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미련하고 망령된 짓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환경 자체가 사울의 마음을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하지 않으려고 해도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닢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민족들이 바로 코앞에 쳐들어오는 상황이 연출이 되고 백성들은 자신에게서 떠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사울은 끝까지 기다리고 싶어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구원받지 못하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선택받은 백성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끝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닥쳐와도 끝까지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어떤 기간이 끝났을 때에 하나님은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내하면서 기다리면 반드시 블레셋과 같은 문제는 풀어지기 때문입니다.

 

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인데 그 이유가 왕이 하나님 앞에 망령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백성들의 왕으로 삼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구하여’ בקש(바카쉬 1245 동사, 피엘,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추구하다, 찾다, 수색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이 죄를 범하여 불순종하자 이스라엘의 왕을 삼을 자를 찾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검증하고 심령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를 수색하여 물건을 찾듯이 수색하시고 마음에 합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작업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왕을 찾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전역에서 모든 사람들을 샅샅이 이 잡듯이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띄지 않을 자가 없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찾아낸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피엘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겸손한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교만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였고 실망만 시켜드리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세워질 다윗 왕은 많은 고난과 훈련을 받아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순종하는 왕이 되는 것입니다.

 

‘삼으셨느니라’ צוה(차바 6680 와우계속,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허락하다, 작정하다, 부탁하다, 다스리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명령을 어기자 즉시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을 세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으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볼 때는 사울이 현재 왕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이미 다윗이 왕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다윗이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왕으로 즉시 선택하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왕으로 세워진 것은 하나님이 직접 세운 왕이 다윗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에는 히필형 동사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요구하여 자신들 스스로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세운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자 하나님은 사울을 즉시로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왕으로 삼을 때에는 피엘형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셨고 어떠한 상황이 와도 다윗은 절대 하나님께서 왕위 자리를 폐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벧엘의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들은 세상의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눈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집에 있는 자들이 먹을 것 때문에 고민하고 세상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사울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의 문제에 정신이 팔려 능력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와 같았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의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문제에 두려워하여 능력의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현재 나에게 있는 문제가 너무 커서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블레셋 민족들과 같은 최신식 무기를 가지고 나를 위협하니 두려움이 내 심령에 가득 찼습니까? 이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안에 함께 하고 계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물리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안식처가 되어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이제부터 세상의 문제에 빠져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 때문에 경거망동하여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함으로 더 큰 것을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탄은 우리에게 이런 문제를 주고 두려워 떨게 만들어 영적 분별력을 잃게 만들어 놓은 후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편안하게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추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이것이 벧엘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시편 34편 PPT 성경말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라(시편34:8)

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34편 PPT 성경말씀 중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시편 34편은 다윗이 기록한 알파벳 시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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