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아라랏 산 하나님 말씀] 아라랏 산 הר אררט(하르 아라라트)

기혼샘 2020. 11. 2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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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라랏 산 하나님 말씀 중에서 아라랏 산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 나오는 아라랏 산을 통해서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아라랏 산과 신약의 골고다가 일치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아라랏 산을 연구하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아라랏 산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모형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라랏 산 הר אררט(하르 아라라트)

 

명제: 모든 저주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산이다.

목적: 아라랏 산에서 모든 저주가 끝나고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여 타락의 길로 들어감으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인데 부정한 죄인들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기쁘고 즐겁게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다시는 인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화염검으로 막아버렸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스스로는 절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지 않는 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에덴동산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이고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에덴동산인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신들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창6:1-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사람들이 세상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죄인들에게서 딸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들을 아내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생각하지 않고 육체의 아름다움만 보고 여자들을 아내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된 것입니다.

 

‘시작할 때에’ חלל(할랄 2490 동사, 히필형,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수치를 당하다, 더럽히다, 부정하게 되다, 범하다, 시작하다, 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수치를 당한 자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고통과 고난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의 삶은 부정해지고 더러운 죄악만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땅 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도 이런 세상의 딸들을 보고 추악하며 부정한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땅위에서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죄악으로 가득 채워진 것은 자신들의 소견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히필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에 감동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완료 시제를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이 맞으며 조금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완벽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번성되어 갔습니다. 이때에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딸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딸들이 나니’ ילד(얄라드 3205 동사, 푸알형,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해산하다, 출산하다, 태어나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죄로 물든 자들이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들은 절대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푸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으로부터 죄인이 탄생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조금의 의로움은 찾아볼 수 없는 상태로 이 땅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고 세상의 유기된 자들은 땅으로부터 탄생되는 것입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혈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에 세상의 딸들은 하늘로부터 거듭난 자들이 아니라 땅으로부터 나온 자들입니다. 죄를 그대로 물려받아 탄생된 자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딸은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늘로부터 거듭난 백성들이 세상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는 것이 문제입니다. 죄인들과 함께하니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도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בחר(바하르 977 동사, 칼형,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좋아하다, 택하다, 즐거워하다, 기뻐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딸들의 외모만을 보고 좋아하면서 기뻐하고 세상의 유익만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세상의 탐욕과 육체의 정욕에만 관심을 두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딸들이 가지고 있는 죄악들을 고스란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답습하게 된 것입니다. 이세벨과 아합이 결혼함으로 북이스라엘을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으로 물들어 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인 하나님과 벨리알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의 탐욕의 우상을 선택한 것입니다.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하지 말며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함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당시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세상의 딸들을 아내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것과 함께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노아 당시의 사람들처럼 믿지 않는 자들을 아내로 삼아 함께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내로 삼는지라’ לקח(라카흐 3947 와우계속, 동사, 칼형,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취하다, 데려가다, 장가 들다, 영접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딸들을 취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아 장가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의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 같은 비 복음을 영접하여 함께 사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자신들이 스스로 즉시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보고 미혹이 되어 넘어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세상적 유익과 육체의 쾌락만을 선택하여 세상의 딸들을 아내로 삼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점점 하나님과는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복음을 찾아보기가 싶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선포했지만 인간들은 비 복음의 율법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많은 영혼들은 죽어가고 인간의 의만 나타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지금의 시대도 노아의 시대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을 쓸어버리시고 다시 시작하시기를 마음먹으셨습니다.

 

창 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이 한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진멸하게 하시고 이것을 믿는 자들은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탄하사’ נחם(나함 5162 와우계속, 동사, 닢알형,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슬퍼하다, 애도하다, 뜻을 돌이키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시고 한탄하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보시고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세상의 딸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니 마음에 슬퍼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백성들을 위하여 뜻을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심판을 통하여 이들을 새롭게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도록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방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을 아내로 삼을 때에 즉시로 마음에 괴로워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지 않으려고 해도 인간의 죄악 때문에 아프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닢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이 이렇게 아픈 것입니다. 마음에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내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빛과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의 탐욕을 따라가는 것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버리고 인간을 높이는 율법을 주장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있어야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주장할 때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픈 것입니다.

 

‘근심하시고’ עצב(아차브 6087 와우계속, 동사, 히트파엘형,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슬픔에 잠기다, 섭섭하게 하다, 상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생각들이 악한 것을 보시고 마음에 근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근심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서 섭섭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딸들을 선택하여 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섭섭하게 한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럴 때에 하나님의 마음은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만 마음이 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상하여 슬픔에 감기게 되는 것입니다.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도 인간처럼 뼈를 상하게 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르게 하느니라’ יבש(야베쉬 3001 동사, 피엘형,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시들다, 말리다, 말라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마음에 근심하는 것은 육체의 골격인 뼈를 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도 완전하게 골수를 말려버려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죄악들을 보시면서 인간의 골수가 마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도 이렇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뼈를 마르게 했다는 것은 비유로 바싹 마른 뼈를 다시 건조기에 집어넣어 물기가 하나도 없이 마르게 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피엘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미완료 시제를 쓰면서 계속해서 말려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이런 고통의 짐을 짊어드려서는 안 됩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 안에 살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탐욕에 눈이 멀어 세상의 우상을 따라가게 되면 하나님의 심령은 타들어가고 메말라간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을 하시고 노아를 선택하셨습니다. 노아에게는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바로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선택받은 백성들에게는 살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신 것은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바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짓지 않으면 노아도 홍수 심판에서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현재 나의 방주는 잘 지어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날 이 방주 안에 들어가야 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고페르’ גפר(고페르 1613 명사, 남성, 단수) 달래다, 속죄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명령하시기를 반드시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페르 나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고페르 나무를 고집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고페르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페르의 뜻에는 모든 죄를 속죄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인간들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는 화가 있었습니다. 한탄하여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노아에게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를 속죄하시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가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이렇게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지었더니 하나님의 마음이 잔잔해진 것입니다. 진노했던 마음이 풀어진 것입니다.

 

우리들도 방주를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방주를 지어야 합니다. 고페르 나무는 단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무와 섞어서 함께 방주를 지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율법의 의와 십자가 복음의 의로 함께 섞어서 방주를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고페르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방주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주’ תבה(테바 8392 명사, 여성, 단수) 방주, 갈 상자,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했던 방주는 하나의 상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스스로 나갈 수 있는 돛과 노는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방법으로 방주가 앞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은 만들지 말라는 의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운행하시겠다는 의지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페르는 남성으로 되어있고 방주는 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고페르는 방주를 짓는 근원이 되며 근본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방주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방주를 교회로 예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방주를 여성으로 쓰고 있는 것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엡 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아내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페르 나무에서 방주가 나온 것처럼 이 세상의 유형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이 없다면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온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도 교회를 세워 자신들만의 교회라고 주장을 합니다. 이런 교회는 주님이 함께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간을 높이는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고페르 나무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몸값으로 나온 교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대로 홍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40일을 주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40일을 비가 쏟아지게 하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숫자로 풀어보겠습니다. 40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시련, 훈련, 응징, 결단, 기다림,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인간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셨지만 인간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의지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최후의 방법으로 홍수 심판이라는 응징을 내리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이 땅에 숨을 쉬고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가 고통을 당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지은 노아는 홍수 심판이 와도 살아났습니다. 방주는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호흡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누구든지 원죄가 있는 자들은 숨을 쉬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를 짓고 그 안에 들어감으로 비가 내려도 숨을 쉬면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큰 원죄가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숨을 쉬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고페르 나무로 지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가 있습니까? 그러면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계속해서 비가 내리자 방주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주는 자신 스스로는 갈 수 없는 배입니다. 동력장치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상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 방주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 들어왔다면 내 힘으로 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면 되는데 이것을 참지 못하고 방주 안에서 자신의 힘으로 방주를 움직여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힘만 빠지고 방주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방주가 때가 되어 머무른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아라랏 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많은 산 중에 아라랏 산을 선택하셔서 방주를 이곳에 갔다 놨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아무런 의미 없이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산 중에 아라랏 산을 지명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창 8: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성경은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일곱째 달 십칠일이라고 날짜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은 영원한 안식을 인간에게 주시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산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살 수 없게 되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타나는 산이 아라랏 산입니다. 이 산은 모든 홍수의 심판이 끝이 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산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산입니다. 죄가 사라지고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천년왕국을 예표하고 있는 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라랏’ אררט(아라라트 780) 아라랏,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רר(아라르 779) 저주하다, 저주받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라랏 산은 하나님의 의도에 의하여 방주가 멈춘 곳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방주는 고페르 나무로 지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방주입니다. 이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춰서 아라랏 산에 뜻이 나오는 것처럼 저주를 받은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저주를 받고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의 가족 8명이 구원을 받은 것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홍수 심판으로 인해 숨 쉬는 모든 존재들은 물에 의하여 죽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 안에 들어와 생명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추게 되었습니다.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무르면서 홍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홍수 심판으로 인해 모든 세상이 진노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라랏 산을 기점으로 홍수가 줄어들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저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셔서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도 나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홍수 심판당하기 전의 죄악들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억되거나’ זכר(자카르 2142 동사, 닢알형, 미완료, 여성, 3인칭, 복수) 기억하다, 상기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으면 절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 살았던 죄악 된 일들은 전혀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시며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영원히 죄악과 심판의 진노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 있으면 더 이상 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나지 않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라랏 산에 멈춘 방주가 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방주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면 아라랏 산의 방주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머물렀으며’ נוח(누아흐 5117 와우계속, 동사, 칼형,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평안함을 얻다, 동맹하다, 안식하다, 예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추게 되었는데 노아의 가족들은 더 이상 심판의 공포에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아라랏 산의 예수 그리스도의 저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라랏 산의 독생자의 피 값을 통하여 노아의 가족들을 심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평안과 안식이 없었지만 이제는 영원한 안식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구원받은 우리도 같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라랏 산의 뜻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시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나의 모든 죄악의 저주를 예수님께서 짊어지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은 나는 이제부터 영원한 안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죄악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속죄의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것이 만세전에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나는 하나님과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중보자가 되어 연결시켜 주신 것입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내가 자 범죄를 짓는다고 해서 영원한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짓고 회개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방주 안에 들어오게 됨으로 다시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인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영원히 나를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라랏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인생과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에는 방주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홍수로 심판을 받는 것처럼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율법 아래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항상 고민하고 괴롭고 죄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깨닫고 나서는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죄의 고통과 번민이 사라졌습니다. 아라랏 산은 나의 모든 삶이 예수그리스도의 저주를 통하여 새로운 인생이 열리고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아라랏 산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아라랏 산에 올라가면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산이 보일 것입니다.

 

 

[성경 산 이름 하나님 말씀] 에덴동산 בגן עדן(베간 에덴)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산 이름 하나님 말씀 중에서 에덴동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산이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은 기쁨의 동산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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