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열왕기하 22장 성경 좋은 말씀] 요시야의 율법책 발견(왕하 22:1-20)

기혼샘 2023. 2. 1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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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2장에서는 유다 왕 요시야가 율법책을 발견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말하여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요시야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고 자기의 옷을 찢었다. 왕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 자복했다. 우리가 복음 말씀을 들을 때 회개하게 된다.

 

요시야의 율법책 발견(왕하 22:1-20)

 

[1-2]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8세라. 예루살렘에서 . . . .

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8세이었다. 예루살렘에서 31년을 치리하였다. 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이며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었다. 본문은,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였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 사람들 보기에는 정직한 것 같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안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정직히라는 원어(핫야솨르)올바른 것이라는 뜻이며 와 동의어이다. 또 요시야는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였다. 다윗은 열왕들의 모범이 되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말은 율법의 교훈대로 온전하게 행하였다는 뜻이다.

부친 아몬과 조부 므낫세가 심히 악한 우상숭배자들인데, 어떻게 경건하고 정직한 아들이 나올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그러나 그의 모친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외할아버지의 이름은 아다야이며 여호와께서 단장하셨다는 뜻이고, 그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이며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 요시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후원하신다는 뜻이다. 요시야의 외가(外家) 쪽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모친은 비록 악한 왕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 자녀를 믿음으로 바르게 키웠던 것 같다. 자녀에게는 어머니의 역할이 크다.

[3-7] 요시야 왕 18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 . . .

요시야 왕 18년에 왕은,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내며 말하였다.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전(殿)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工匠)에게 주어 전(殿)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요시야의 경건함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수리할 부분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전 수리를 지시하였다. 그러나 성전 수리를 맡은 일꾼들, 즉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의 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하는 것이 진실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왕에게 의롭고 충성된 신하들을 주셨다.

[8-11]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 . . .

그런데 대제사장 힐기야는 서기관 사반에게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하고 말하며 그 책을 사반에게 주자 사반이 읽었다. 서기관 사반은 왕에게 돌아가서 왕의 신복들이 전(殿)에 있던 돈을 쏟아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였나이다하고 또 왕에게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하고 왕의 앞에서 읽었다. 왕은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었다. 그것은 통회하는 마음의 표시이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두려움으로 받았다.

[12-13]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 . . .

왕은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하였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요시야는 그 읽은 율법의 내용을 이해하였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큼을 느꼈다.

[14-17]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 . . .

그래서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는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갔다.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이었다.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다. 옛날 사사시대에 여선지 드보라를 일으켜 사용하셨듯이(4:4), 심히 우상숭배적이고 배교적이었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한 여자를 선지자로 세우셨다. 그가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 훌다이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은 제사장직이나 선지자직에 남자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것이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적이었다. 신약시대도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은 여성을 목사나 장로로 세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4:34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교훈하고, 디모데전서 2: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조용]할지니라고 말한다.

왕이 보낸 자들이 여선지 훌다와 더불어 말할 때, 훌다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의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행한 바로 나의 노를 일으켰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이곳을 향하여 발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그들의 죄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 것이었다. 그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증거된 공의는 불변적이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와 심판은 무섭고 엄격하다.

[18-20]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 . . .

여선지 훌다는 또 그들을 보낸 유다 왕 요시야에 대해 말하였다.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은 왕에게 그 말을 전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요시야에게는 유다에 내리시는 재앙을 보지 않는 은혜를 베푸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하게만 살자. 성경의 결론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요시야처럼 성경에 교훈하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자.

둘째로, 우리가 배교와 혼동의 시대에 바른 길 가려면 성경책을 가까이 하는 길밖에 없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힘써 읽고 듣고 연구하고 배우고 묵상해야 한다. 또 교회는 성경을 성실히 강론하여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밝히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재앙을 받지 않고 이 땅에서도 평강과 형통을 누릴 수 있고 또 영광스런 영생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죄악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어긴 죄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심히 불경건하고 죄악되고 음란한 세상과, 또 성경의 바른 교훈들을 많이 이탈하고 멀리 떠난 교회들을 바라보며 요시야처럼 옷을 찢듯이 탄식하며 통회하고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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