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장에서는 남 유다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배신하여 부패하므로 하나님이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대가는 혹독했다. 바벨론 민족을 통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당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유다의 심판(렘 2:1-19)
이스라엘이 처음 사랑을 버림(1-3)
• 2:1-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쫓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그것을 기억하게 하셨다. 네 소년 때의 우의(友誼)와 네 결 흔 때의 사랑 소년 때와 결혼 때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고, 특히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으며 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하나님이 반석에서 내신 물을 마신 때를 가리킨다. 그 때는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 가운데서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만 의뢰하였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처음 사랑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랑을 다 잃어버렸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으므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다.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다시 찾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다(계2:1-7).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영권과 생명의 역사를 거두어 간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면 교회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형식과 의식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처음에 은혜받고 감격에 넘쳐 주를 인해 몸 바치려고 작정했던 그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한다. 처음 은혜 받았을 때에 어떻게 기도 생활을 했으며, 어떻게 성경을 읽었으며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하였던가를 기억하고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사 안수받았을 때의 처음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 찾으라고 하였다(딤후1:6).
초대 교회 성도들은 처음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믿는 일만 전문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소유를 팔아 사도의 발 앞에 두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고 전혀 기도에 힘쓰며 핍박을 달게 받고 항상 하나님을 찬미하는 생활을 하였다(행2:42-47). 그들의 처음 사랑은 ①물질을 초월했으며(행2:44-45), ②고난과 수고를 초월했으며(골1:24), ③생명까지 초월한 신앙이었다(살전2:8). 이러한 처음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 2: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광야를 통과하던 때, 즉 처음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던 때는 하나님의 성물(聖物)이었고 처음 익은 열매였다. 처음 열매는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출23:19).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 제일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인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으므로 복된 자리를 떠났다.
처음 사랑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책망하심(4-12)
• 2:4-7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 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과 광야에서 특별한 이적과 사랑으로 인도하여 아름다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기름진 것을 먹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무슨 불의함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허탄한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 2: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쫓았느니라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찾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타락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아니하였다. 법 잡은 자들은 모세의 율법(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판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공의대로 재판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유익을 따라 그릇된 재판을 하였다(미3:11). 성도가 자기의 유익이나 욕심을 따라 행동하면 안 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공의대로 처리해야 된다.
관리들은 히브리 원어로 (라야)로 목자를 뜻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인도자요 통치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을 인도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아갔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할 터인데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아갔다.
• 2:9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도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 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그들과 다투시며, 회개하지 않으면 징계하신다.
• 2: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 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깃딤 섬들은 지중해 연안의 섬들과 소아시아 연안의 해안 지방을 말한다. 이처럼 먼 나라에까지 가서 알아보라는 뜻이다.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깃딤과 게달같은 이방 나라들도 자기가 섬기던 신을 내어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적부터 섬기던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무익한 것과 바꾸는 망령된 일을 하였다. 그 일은 모든 만물이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러므로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라고 하였다. 여기 하늘은 천체만상(天體萬象)을 가리킨다.
두 가지 악과 거기에 대한 징계(13-19)
•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했다. 첫째,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요 생수를 주시는 분이시다. 요한복음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되 형식적으로 섬겼다. 이사야 29:13에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났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면 그 심령이 메말라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성도는 언제나 자기의 심령 속에 생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먼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고 그 생명의 역사와 하나님의 감동의 역사가 속에서 넘쳐흘러 자기 심령이 날마다 소생해 올라와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생수의 역사가 흘러 나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감동이 없고 속에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떠난 줄 알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는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그 생명의 역사가 자기 속에 흘러넘치고 다른 사람에게 흘러 나가서 생명을 살려 내여야 한다. 에스겔47:1-9에 물이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와 큰 강이 되었고, 그 강물이 흘러들어 가는 곳마다 생물과 고기들이 소성하고 번성하였다고 하였다. 그 물은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온 생명강이다.
둘째,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다.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수를 버리고 자기 스스로가 살길과 행복을 찾으려고 무엇을 만들어 놓은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떠나서 만들어 놓은 재산이나 사업이나 단체나 우상이나 세력 등은 다 터진 웅덩이이다. 돈을 붙들고 살려는 자는 돈 웅덩이를 판 것이고, 사업을 붙들고 살려는 자는 사업의 웅덩이를 판 것이고, 세상의 권세를 의지하고 살려는 자는 권세의 웅덩이를 판 것이다.
학개1:4-6에 “이 전(殿)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板壁)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所爲)를 살펴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부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 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끓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전은 황무하였으나 그대로 버려두고 자기들의 판벽한 집을 지어 거기서 행복을 누려보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었고, 많이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했고, 많이 마셔도 흡족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행복을 찾지 못하며 그 수고는 헛수고가 될 뿐이다.
• 2:14-17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이스라엘(유다)이 죄로 인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종살이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씨종은 종의 자손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본래 자유로운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나 앞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을 가리킨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팠기 때문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종의 위치를 떠나 그 멍에를 벗고 자기 자유대로 나아가면 죄의 종, 세상의 종, 사람의 종이 되어 그들이 끄는 대로 끌려간다.
어린 사자는 힘있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침략군 앗수르나 바벨론을 의미한다. 앗수르 군대가 어린 사자처럼 부르짖으며 이스라엘을 침략했다(주전 721년). 놉과 다바네스는 애굽에 있는 도시들로 애굽을 상징하며 애굽도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이스라엘의 정수리(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인도하심을 떠나면 반드시 함정(陷穽)에 빠지고 재앙을 만나게 된다.
• 2: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시홀은 나일강을 가리키며(사23:3), 애굽을 상징한다. 하수는 유브라데강을 가리키며, 앗수르를 상징한다. 이는 애굽의 문화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앗수르나 바벨론의 문화는 유브라데 강을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애굽 길과 앗수르 길에 있음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한 것이요, 하나님보다 그것들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에 세상의 풍부한 것을 얻어 보려고 그리로 간 것이다.
• 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누구나 여호와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그것이 악이요 고통이 된다. 그 이유는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고, 또 하나님은 악을 징계하시고 거역하는 자를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면 그 마음에 고통이 들어오고 사막의 떨기나무 같이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17:6 참조).
[느헤미야 5장 하나님 말씀] 생활고로 힘들어 하는 백성들의 원망(느 5:1-19)
'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수아 7장 설교 말씀] 아간의 범죄로 아이성 공략 실패(수 7:1-26) (0) | 2023.07.18 |
---|---|
[출애굽기 4장 설교말씀] 모세의 대언자로 아론을 세우시는 하나님(출 4:1-17) (0) | 2023.07.07 |
[새벽예배 10분 설교문] 족장과 평민을 위한 속죄제 규례(레 4:13-35) (0) | 2023.06.30 |
[이사야 6장 설교말씀]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사 6:1-13) (0) | 2023.06.28 |
[예레미야 애가 1장 설교말씀] 예레미야의 정의를 위한 호소(애 1:12-22) (0) | 2023.06.25 |
[예레미야 1장 하나님 말씀] 예레미야의 소명과 하나님의 격려(렘 1:1-19) (0) | 2023.06.24 |
[이사야 4장 복음 설교말씀] 남은 자의 회복과 시온에 임할 영광(사 4:1-6) (0) | 2023.06.23 |
[잠언서 1장 성경 좋은 말씀] 솔로몬 잠언의 목적(잠 1:1-33) (0) | 2023.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