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주기도문 예수님 말씀] 하나님 아버지(마 6:9-13, 롬 8:14-15, 호 11:1-4)

기혼샘 2021. 9. 3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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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통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제    목: “하나님 아버지 God Our Father”

 

설교자 :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마 6:9-13, 롬 8:14-15, 호 11:1-4

요    절: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주     제: 하나님의 양자가 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항상 예배하고 순종하자 

 

지난 주일까지 산상보훈의 팔복을 하나씩 묵상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부터 8주간을 산상보훈에 나오는 주기도문(Lord’s Prayer)을 묵상하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9~13절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문을 바탕으로 살피겠습니다. 누가복음 11:1~4절에 나오는 주기도문은 개혁자들이 사용한 성경에는 마태복음과 거의 같고 송영 부분은 없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주기도문은 2006년에 바뀐 새로운 번역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이전에는 개역성경에 있는대로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개혁자들이 사용한 성경대로 영어계 나라에서는 암송합니다.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눅 11:1-4에서는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as in heaven, so in earth.

Give us day by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sins; for we also forgive every one that is indebted to u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복음서에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잘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막 1:35에 보니 한적한 곳에 가서 새벽기도를 하셨습니다. 이 장소에서 오병이어 기적 후 기도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장소가 타브가(Tabgha: ‘일곱 우물’이란 아람어)인데 오병이어 기념교회, 베드로 수임권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제자를 선택하실 때도 밤새 기도하셨고,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신 후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기도하셨고, 은밀하게도 기도하셨고, 성전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실 때도 기도하셨고, 절기 때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성만찬을 제정하시고는 이곳에서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로 기도하셨고, 십자가 상에서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표적인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으로 이를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살필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초대교회(주후 2세기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하루 3번씩은 꼭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방 종교의 주문처럼 외우지 말고, 진심으로 주기도문적 기도를 드려 봅시다.

저는 개인적으로 철야 기도할 때 주기도를 확장하여 기도합니다. 가령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간절히 몇 번씩 부르면서 나와 아버지의 관계, 아들로서 살지 못한 죄를 회개, 그저 외롭고 답답하고 괴로울 때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자체만도 위로를 받고 힘을 얻게 됩니다. 이런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한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그다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리기 위해 성결된 생활을 하게 해 달라고, 입술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 오용(misuse), 도용(theft), 남용(abuse)한 죄를 회개하면 이 구절 기도도 한 시간 훌쩍 지나갑니다. 이렇게 주기도문 기도를 하면 밤새 기도해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도 이런 기도를 하면 몇 시간 동안 졸리지 않고 은혜 충만히 받습니다.

오늘 그 첫 시간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를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영어에 보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동사가 현재 2인칭 단수형(art=are의 16세기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기도할 때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3인칭 is) 바로 가까이 계셔서 나와 대화를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2인칭 단수로 바꿉니다. 시편 23:1-3에 보면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하면서 3인칭 단수(leads, makes, is)로 사용하다가 시 23:4-5에서는 2인칭 단수로 기도합니다(thou, thy, thee, thine 등. 본래 영어는 2인칭 단수 시 t로 시작되는 인칭대명사를 사용, 복수 시 y로 시작하는 인칭대명사 ye, you, your, yours). 주기도문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모두 2인칭 단수 인칭대명사로 사용합니다(thy, thine).

기도의 첫 마디는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막 14:36을 보면 예수님은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하나님을 '아바(아람 발언으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바는 아람어로 어린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기도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런데 주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지상 사역을 하심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까? 요한복음 1: 9-13에 보니 

 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주셨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됩니다. 롬 8:14-17을 찾아 함께 읽읍시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친밀하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부르고 찾는 자에게만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듯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창 1:27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조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사람은 ‘살아있는 혼’(a living soul)이 되었습니다. 아들의 영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은 아들이 주는, 아들로부터 오는 성령 곧 하나님의 숨결을 받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갈 4:6은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우리의 자녀 됨을 말씀합니다. 

또 갈 4:4-5를 보면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맏아들이신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는 사람은 더 이상 저주와 형벌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를 속량 하셨으니 그것을 믿을 때에 아들이라 불립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증거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는 사실입니다. 천주교처럼 마리아(요 2:5)나 성인을 통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까지 유대나라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아있는, 전해 내려오는 모든 문서를 다 뒤지고 연구를 해도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른 사례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나님을 아버지하고 부른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죄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자마자 처음부터 항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느니라.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을 120번 이상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상당한 비판과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신약시대가 시작될 때 세례 요한은 회개운동을 일으키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7-9) 함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공격했습니다.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함'(God can raise up children for Abraham out ouf stones.)는 말씀 속에서 말씀 전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의 의미가 없음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가르치시니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진 유대인들이 반발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요 8:33)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주님의 진리의 말씀의 전수자가 되지 못하면 참으로 자유함을 받지 못함을 가르치셨다(요 8:36-37)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요 8:39-41상)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말씀의 전수자로서 사명을 다했지만, 이 음란한 세대는 말씀을 제대로 전수하지 않아 완악하고 패역한 세대가 되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때 저희들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 8:41하) 아직도 저들은 깨닫지 못하고 계속 반발을 하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요 8: 42-48)

이에 유대인들은 대답하기를"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마귀에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라고 공격하니(요 8:4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마귀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 8:49-51) 고 복음을 가르치시나 완악한 세대는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않고 계속 자기들의 고집을 내세웁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마귀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도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대언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요 8:52-53)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저희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분명히 가르치시기를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4-56) 고 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북방 왕을 이기고 사로잡힌 조카 롯과 가족을 데리고 돌아올 때 살렘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의의 왕인 멜기세덱을 만났습니다(창 14:18-20). 그는 바로 예수님의 그림자(모형)였습니다 (시 110:4, 히 7:1-3) 이에 유대인들이 반발하면서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요 8:57) 하니,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하시니 저희들이 돌을 들어 치려했습니다. 신성모독 죄(blasphemy)로 몰고 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며, 아브라함의 주로 선언하시니 저희들이 더욱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진리인 복음을 전수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의 호칭은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하나님은 영어의 God를 우리말로 번역한 단어인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신을 가리킵니다. 보통 이름은 다른 존재와 구별해주는 어떤 특성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도 강조하는 바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하나님의 호칭은 엘로힘과 여호와(야훼)입니다. 엘로힘은 기념 칭호(Memorial, 호 12:5) 강한 자라는 뜻을 가진 엘의 복수형으로 절대적인 경외의 대상인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엘로힘 앞에 다른 신들은 무능한 거짓 신에 불과하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출 3:14)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토록 계신 분(무궁하신 현존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은 주체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내며, 자존성, 거룩성, 불변성이 강조됩니다. 아버지는 엘로힘과 여호와처럼 고유한 이름은 아니고 관계를 보여주는 호칭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근원, 기원, 시작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흐는 그전의 음악을 집대성하고 오늘날 우리가 듣는 거의 모든 서양음악의 뼈대인 평균율을 본격적으로 보급하고 발전시켰기 대문에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른답니다. 평균율이란 옥타브를 똑같은 비율로 나눈 음률을 말하는데, 서양음악은 대부분은 옥타브를 12개의 반음정으로 나눈 12 평균율이 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창조주 시라는 관점에서 처음부터 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짓고 죄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아들로서 법적 지위를 잃어버리고 사단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지배 아래 지옥 가야 할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겨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죄 용서받고 자녀의 자격을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무조건 다 하나님 자녀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만 회복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렇게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제자들이 자녀의 자격을 회복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죄를 짓고 사탄의 종노릇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도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먼저 성령님으로 거듭나 아들의 자격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17절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 올라간다고 제자들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하늘에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다”는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내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수 믿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이제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아버지와 자녀는 영속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부도 이혼하면 남남이 되고 말지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어떤 것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천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도 이젠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죽음도 마귀의 공격도 세상의 어떤 권세도 자녀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롬 8:38-39). 그러니 부족한 것 너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아버지의 훈육과 징계를 달게 받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 때로 책망하고 매를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고 불순종하자 오래 참다가 마침내는 바벨론에 사로잡혀가는 고난을 받게 해서 뉘우쳐 돌이키게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말했습니다(렘 29:11). 여러분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도와주시는 능력을 굳게 믿고 믿음으로 이겨내기 바랍니다. 환란과 역경을 당했을 때 믿음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뉴스 영상을 보니 집들이 대부분 무너졌는데 어떤 건물은 멀쩡했습니다. 최근에 내진설계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신앙생활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닌 내진 설계로 반석 위에 지은 집,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 바랍니다.

사랑을 베푸는 수고는 아버지의 몫이지만, 아버지가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자녀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실망하신 것은 다름 아닌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사는 것이 복 받고 잘되는 길입니다. 지금은 예수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보고 하라고 하신 것은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남긴 유지는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에게 복음 전해 예수 믿고 구원 얻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라면 아버지가 기뻐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곧 하나님 아버지입니다(눅15장). 집 나간 아들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매일 기다립니다.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마다 뛰어나가 맞이하고 온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잃어버린 자녀가 돌아올 때 제일 좋아하십니다. 전도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립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늘 하나님을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를 시작합시다. 또 이 호칭은 기도 그 자체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라고 부를 때 ‘내 아들아, 내 딸아’고 응답하면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이 그저 통해 버립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기도를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할 것을 미리 아십니다. 이런 기도에 힘쓰기 바랍니다.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불러도 또 부르고 싶고 더 다아가고 싶은 아버지의 품에 안기기를 원합니다. 괴롭고 힘들 때도 나의 아버지라 부르며, 좋은 일을 만날 때도 아버지라 부르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 원합니다. 부족한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양자로 삼아 주심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 효자, 효녀가 되게 하시고 좋은 자녀로 살아가게 계속 함께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 지명 설교말씀] 감람산 감람산 강화-종말 신앙의 지혜(마 2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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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감람산 강화를 통해서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루살렘이 주후 70년에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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