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베드로 고백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마 14:28-33)

기혼샘 2021. 6. 2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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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베드로 고백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라면 자신을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건너가다가 바람을 보고 물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손을 잡으면서 왜 의심했느냐고 말합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해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랍비라는 선생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해야 합니다.

베드로 고백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마 14:28-33)

 

28절 아포크리데이스 데 아우토 호 페트로스 에이펜 퀴리에 에이 쉬 에이 켈류손 메 프로스 세 엘데인 에피 타 휘다타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14:28

베드로가 - 물 위를 걸은 기록은 이곳에서만 나온다. 이 부분은 14-17장 가운데서 베드로가 예수께 특별한 취급을 받는 세 경우(16:13-23; 17:24-27) 중의 하나로서, 노이트(Benoit)는 이 기사에서 이미 베드로가 수석 제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주시어든(에이 쉬 에이) - 앞에 '에이'는 접속사이며, 뒤에 '에이''...이다, 있다'의 뜻인 '에이미' 동사의 2인칭 단수 현재 직설법 형태이다. 그런데 접속사 '에이'는 가정적 조건문에서는 '...인지, 아닌지'의 뜻을 갖지만, 본문의 경우와 같이 결론이 확실한 내용에서 도출(導出)되어 직설법 동사와 연합되는 경우에는(직설법) 토론적으로 사용되어 '과연 주님이시므로'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만일 주시어든'이라는 말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는 사람이 주님이신가 아닌가를 시험하기 위한 의도에서 한 말이 아니라 예수께서 지금 물 위로 걸어오신다고 하는 사실과 주님의 명령과 그 능력에 의해 그 자신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직설적이고 열정적인 베드로의 일면을 보여준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 베드로가 '나로 하여금 물 위로 걷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예수의 '명령'에 초점을 맞춘 것은 그분 자신의 말씀보다 그분의 초자연적 능력을 더 신뢰하는 오류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친지를 창조하셨으며, 말씀(로고스)이신 예수께서 육신이 되셔서 그 말씀으로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천국 비밀을 선포해 주심과 같이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 한 마디에 의해 자신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물 위를 걸으라고 하는 허락과 능력이 주어지기를 요구하는 베드로의 행동은 비록 순간적이기는 했지만 주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그분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29절 호 데 에이펜 엘데 카이 카타바스 아포 투 플로이우 호 페트로스 페리에파테센 에피 타 휘다타 엘데인 프로스 톤 이에순

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14:29

오라 하시니...배에서 내려 - 예수의 '오라'는 명령에는 이미 당신을 믿고 오는 자에 대해 보호와 안전을 마련해 두고 계신 권위에 찬 명령이다. 한편 신앙이란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의 전인격을 복종시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험과 같다. 아브라함도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오라' 부르시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이스라엘 사람들도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11:29).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믿음으로 알지 못하는 세계(풍랑이 휘몰아치는 바다)로 나아갔.

30절 블레폰 데 톤 아네몬 이스퀴론 에포베데 카이 아륵사메노스 카타폰티제스다이 에크락센 레곤 퀴리에 소손 메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14:30

바람을 보고 - 충동적인 성격의 베드로가 예수에게로 나아가는 동안 관심의 대상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믿음'의 고갈(枯渴) 상태를 의미하기보다는 예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었지만 폭풍의 위험에도 침착히 인내할 수 있을 만큼의 더 큰 믿음이 없었다는, 즉 믿음의 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정녕 그는 예수()만 바라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삼킬 듯이 달려드는 풍랑에 대해 두려워하게 되었다. 정녕 온전한 믿음의 눈은 결코 두 개의 초점 (예수와 세상의 풍파)을 가질 수 없다.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 베드로는 예수와 그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앙하는 믿음의 빛을 잃었을 때, 그 즉시 예수의 보호권에서 벗어나 중력에 의해 빠져드는 자연현상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실로 신앙 세계에는 중간 지대가 없다. 물 위(완전한 믿음)아니면 물아래(완전한 의심), 둘 중 하나에만 머무르는 것이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퀴리에 소손 메) - '구원하소'의 뜻인 '소손''구원하다'란 의미인 '소조'(* )의 부정 과거 명령형으, 그때의 상황이 매우 긴박했음을 시사해준다. 물론 본문에서의 이 말은 물에 빠지게 된 베드로 자신의 몸을 구원해 달라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종종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영혼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났던 죄인이 그 죄악의 구덩이에서 헤어 나오기를 원할 때 부르짖는 소리이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한계를 깨닫고 절망 가운데서 비로소 주님께 돌아설 때 하는 첫마디에 해당한.

31절 유데오스 데 호 이에수스 에크테이나스 텐 케이라 에펠라베토 아우투 카이 레게이 아우토 올리고피스테 에이스 티 에디스타사스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14:31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 주님의 신속한 구원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물에 빠지는 그를 건지기 위해서는 단 한 마디의 명령으로 충분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히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붙잡으셨다고 하는 이 말은 특별히 주의 '붙잡으시는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로 거친 죄악의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즉시 붙잡아 주시는 주 손님에 의해 우리의 신앙생활은 보존, 유시 될 수 있을 뿐이다.

믿음이 적은 자(올리고피스테) - 이 표현은 신약성경에 모두 다섯 번 나오는데(6:30; 8:26; 16:8; 눅 12:28), 항상 제자들에게 말할 때 사용되었다. 이는 가장 믿음이 깊어야 할 그들이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예수로 하여금 그들을 책망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마태는 막 4:30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는 표현을 '믿음이 적은 자'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마태가 제자들이 이미 예수의 제자가 된 사실 자체가 어느 정도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본문에서 베드로는 비록 충동적이나마 그리스도와 그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소유했던 터였다(28). 한편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원했던 것은 '오라' 하신 당신의 말씀을 끝까지 전적으로 신뢰하는 참 믿음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책망은 믿음의 양(적다, 많다)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 중에도 그리스도께 대한 영속적 신앙을 간직하는 것, 곧 그 믿음의 질적 측면을 강조한 말이다.

왜 의심하였느냐(에이스 티 에디스타사스). ''라는 말은 히브리어 '레마'에 상당하는 말로 대개의 일반적인 표현인 '디아 티'와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디아 티''무엇 때문에'(because of what)라는 의미의 ''이며 '에이스 티''무엇을 위하며'(in order to wher)라는 의미의 ''이다. '에이스 티''디아 티'의 물음에 비해 보다 호의적인 의도에서의 물음이다.

즉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왜(because of what) 의심하였는지 그 의심의 원인을 알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무슨 목적으로', '무엇을 위하여'(to what end) 의심하였는가를 물으신 것이다. 예수가 손을 내밀면 잡을 듯한 가까운 거리까지 도달한 베드로는 무엇을 의심하였는가(Turner)? 한편 여기서 '의심하였느냐'란 말의 원뜻은 '이중적으로 하다'는 의미로서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뉘어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다혈질적인 베드로의 심히 당황해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표현이다.

32절 카이 엠반톤 아우톤 에이스 토 플로이온 에코파센 호 아네모스

마 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14:32

바람이 그치는지라 -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이 풍랑 중의 첫 번째 기적이라면 배에 오르자마자 즉시 바람이 그친 것은 두 번째 기적이다. '수고', '고통', '피곤'의미하는 '코포스'에서 나온 '그치다'라고 하는 동사는 바람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 고통 속에서 헤어 나와 잠잠케 되고 평온함을 찾은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막 4:41"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라고 표현하였다. 정녕 예수는 모든 만물을 지배하시는 만유의 주이신 동시에 모든 혼란과 두려움을 잠재우시는 질서와 평화의 왕이시다(14:27). 그가 거하시는 장소, 그가 머무시는 인격에는 영원한 샬롬만이 있을 것이다.

33절 호이 데 엔 토 플로이오 엘돈테스 프로세큐네산 아우토 레곤테스 알레도스 데우 휘오스 에이

마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14:33

절하며(프로스퀴네오) - 헬라어의 이 말은 제자들이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경배하였다고 하는 말로, 이번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깨달아 앎으로써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전적인 신앙 고백(16:16)의 준비가 마련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 이는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칭호에 상당하는 용어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완전한 칭호로 예수를 불렀던 첫 번째 경우이다(16:16; 26:63; 27:40, 43, 54). 물론 이 칭호는 3:17에 나타난 하늘의 성에서 계시된 바 있고, 광야 시험 중 사단도 이 칭호를 사용한 적이 있다(4:3, 6). 또한 예수 자신이 스스로를 '아들'라 부른 경우도 있다(11:25-27). 실로 예수께서는 하늘과 흑암의 세력과 또한 땅의 무리들 및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시는 완전한 구주요 메시아이셨던 것이다.

우상을 섬기지 맙시다(출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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