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다니엘 3장 하나님 말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단 3:19-28)

기혼샘 2020. 10. 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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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3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단 3:19-28)

 

시대가 가면 갈수록 현대인들의 마음은 쇠약해져 가고 불안해져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스트레스와 긴장과 압박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40대 남자들은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40대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주부는 주부데로, 학생은 학생대로, 노인은 노인데로, 직장인은 직장인 데로... 정신적인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시대입니다. 요즘 신문과 잡지를 보시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낙심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괜히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합니까? 하여튼 전체적으로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시대가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도 이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 아주 어둡고 위험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다시 어떤 역사를 일으키지 않는 한 이 시대 역사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신앙인은 이러한 시대 가운데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겠습니까? 영적인 사람은 오히려 이 시기를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한 축복된 추수의 기회로 깨닫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더 큰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생명을 걸고 전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렇습니다.

 

1세기 로마 시대 때 온통 고난과 불안과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 그 역사를 다시 구한 사람들은 바로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일으킨 영적 혁명은 로마의 부패한 사회를 무너뜨렸고, 부패한 사람들의 각성을 요구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위대한 믿음,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필요한 하나님의 때가 온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읽은 단 3:19-25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 다니엘, 이 젊은 네 사람이 직면한 상황은 엄청난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보다도 훨씬 더 불안하고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벨론 한가운데 포로 신세가 되어서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나라와 백성들은 나에게서 떨어졌지만 만군의 하나님의 역사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면서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이들 속에 나타났던 위대한 믿음의 역사가 이 땅에서도 일어나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럼 이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한국에 일천만이나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왕상 18장을 보면 그때 450:1로 외롭게 싸운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싸우면서 울부짖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여기 이 백성들로 하여금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들의 참 하나님이 되시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이들을 정말 구원하는 하나님이 되시고, 내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이들 속에 역사를 나타내는 하나님이 되심을 저들로 믿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은 교회를 몇 주 안 나가면 이상한 일이 생겨서 다시 나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초등 신앙입니다. 앉았다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리야가 어떻게 불을 떨어뜨렸습니까?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능히 나를 건져 내시리라. 죄악과 모든 문제에서 건져내시리라, 환난과 고난과 분노하고 억울한 데서 나를 건져 내시리라"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명령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주의 능력을 믿는 사람에게는 기쁨으로 능력을 행해 주셨습니다. 반대로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능력도 행치 않으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주권만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만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이었습니.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는 아니하겠나이" (단 3:18) 이것은 위대한 고백입니다. 이것은 영적 최고의 성숙 단계에 이른 믿음입니다. 금년에도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두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영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서, 절대로 넘어질 수 없다 하면서 달려 나가는 믿음이 위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여! 이것을 해주십시오. 하나님이여! 이것이 될 줄 믿습니다. " 이렇게 기도할 때에 응답받는 것보다 받지 못하는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어느 때는 지연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정확하고 확고한 증거가 나타날 때보다는 애매하고 알 수 없는 증거가 나타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위대한 믿음은 내가 기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끝없는 충성심으로 나가겠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제한된 눈으로 제한된 계산으로는 하나님의 계산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저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깊은 믿음이고 위대한 믿음이고 역사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적인 참 믿음은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항상 선택에 직면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벳느고 이들은 왕의 신상에 절을 해야 될까? 아니면 지옥 같은 풀무불에 들어가야 될까? 밤을 새워도 해결될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기도를 해도 해결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밤을 새워도 해답이 없고 누구를 찾아가도 응답이 없고, 아무리 신앙상담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택의 고통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주께서 십자가를 진 것처럼 아픈 쪽을 택하면 주께서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둘째, 믿음은 항상 모험을 수반합니다.

알지 못하고 가는 그 길이 인생길입니다. 누구도 내일 아니 10년 후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만은 알고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향으로 가고 있고 하나님의 섭리대로 쓰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에는 항상 모험이 따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믿음에는 모험적인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없는 신앙은 매일 그 자리이고 성장이 없습니다. 체험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심령 속에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나와 항상 함께하시고 내 인생의 지팡이가 되고 길잡이가 되어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이 자리를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 걸은, 두 걸음을 옮기는 믿음의 발자국에 역사를 일으킵니다.

 

셋째, 믿음은 항상 반대에 부딪칩니다.

믿음의 길은 화려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눈물과 상처로 얼룩져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보면 시험에 또 시험, 환난에 또 환난, 고난에 또 고난, 그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믿음의 길이 온통 잘되는 길만이 축복받는 길인 줄 알고 잠시 잠깐 오해하는 믿음들은 문제입니다. 밤하늘이 항상 맑고 반짝이는 별만 떠오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믿음도 늘 아름답지만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길을 보십시, 모세, 요셉, 바울에게 얼마나 고난과 연단이 많았습니까? 수많은 연단과 시련의 징검다리를 거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길에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고난의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시련에서 즉각 구출되는 것이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최상의 방침도 아닙니다. 만일 꿈 잘 꾸는 요셉이 감옥에 갔을 때 즉각 구해 주셨으면 언제 꿈을 풀 수 있었겠습니까? 그 시간에 응답받는 것이 최상책은 아닙니다. 오늘 당장 무엇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염려하지 말고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시련을 피하지 않고 시련을 견디는 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 불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고난 속에서 참 믿음의 역사의 진가를 나타내는 것을 나타내는 것을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도깨비방망이처럼 나와라 뚝딱하면 무엇이든지 주는 정도로 알아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가 무속 종교로 떨어지고 맙니다. 영적 소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고 내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안 되는 것 같아도 지내 놓고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더 큰 뜻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뜻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충성스러운 믿음, 생명보다 귀한 믿음만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에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내길을 간다. 이 믿음을 갖고 달려 나갈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때 당시는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한정적인 곳에서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으나,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조금만 더 높게 올라가도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더 높이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제한적인 눈을 갖지 말고, 여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하는 생명보다 귀한 믿음만을 충성스럽게 지키겠다는 이 믿음 속에서 고난의 불을 막는 역사가 계속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것을 너희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충성된 믿음은 꼭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풀무불 같은 고통 속에서도 "죽으면 죽으리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충성스러운 믿음을 지키겠나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이 믿음으로 살겠나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이 믿음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이런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이러한 믿음 갖고 나가는 믿음의 행군 속에 왕이 벌떡 일어났고 신하들이 벌떡 일어났고 저들이 깜짝 놀라서 오히려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이 믿음을 갖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내 믿음을 갖고 나간다는 믿음 속에 우리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고 우리를 향하여 의심을 하고 저주를 하고 핍박을 하던 저들이 이 왕처럼 벌떡 일어날 테니 그런 위대한 믿음 역사적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처해있는 곳을 흔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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