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로마서 3장 성경 주석 설교말씀] 칭의(稱義)의 방법(롬 3:1-31)

기혼샘 2022. 1. 2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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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에서 바울은 칭의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방법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자기의 행위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칭의(稱義)의 방법(롬 3:1-31)

 

1-8, 유대인의 특권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1-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여러 특권들 중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을 통해 온 세계 모든 족속에게 전달되었다. 시편 147:19-20,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유대인이었고, 예수님과 사도들도 그러했다. 성경 저자들은 주로 유대인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진리들을 계시하셨고 그것들을 기록하고 보관하며 전달하게 하셨다. 그것은 유대인들과 그들의 언어의 특권이었다.

[3-4]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또 어떤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 보관의 특권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은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에 폐해지지 않았다. 사람은 다 거짓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참되시다. 그는 그의 말씀과 심판에서 의로우시다.

[5-6]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하여서 그 불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불의하실 수 없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가 불의하시다면, 어떻게 심판자가 되실 수 있겠는가? 의롭지 못한 심판자는 참된 심판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일지라도, 또 그들의 부도덕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 할지라도, 그들이 범죄하는 한 그들은 마땅히 정죄(定罪)되어야 한다.

[7-8]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定罪)받는 것이 옳으니라.

본문은 5, 6절을 보충 설명한다. 사람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드러났을지라도 그의 거짓말이 어떤 선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며 선으로 간주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지 목표가 선하고 옳을 뿐만 아니라, 방법도 선하고 옳아야 한다.

이 말씀은 전도를 위해 자유주의 교회들과 천주교회들과 협력하는 복음주의 전도자들의 오류를 잘 증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선한 목표를 가질 뿐만 아니라, 선한 방법도 사용해야 한다. 선한 목표를 위해 비성경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유대인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을 감사하며 열심히 읽고 듣고 실천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짓말할 수 없는 신실한 분이심을 알고 그의 모든 말씀을 다 믿자. 셋째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목표도 바르고 선해야 하고 방법도 바르고 선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것이다.

9-18, 모든 사람이 죄인임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이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인임을 증거하였다. 그는 1장에서는 주로 이방인의 죄를, 2장에서는 주로 유대인의 죄를 증거하였다고 보인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특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이 죄인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구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10-12]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단지 하나님과 사람(神人)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예외이시다. 사람들 중에서 그는 유일하게 죄가 없으시다(4:15; 벧전 2:22; 요일 3:5). 그 외에 하나님의 계명에 완전히 일치하게 산 자, 참으로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다. 의인 노아나 욥이나 다니엘도(6:9; 1:1; 14:14) 완전한 의인은 아니었다. 또 깨닫는 자도 없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누구이시며 인간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며 또 장차 어디로 갈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 또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모든 사람은 인생의 정로(正路)를 알지 못함으로 이리 저리 치우쳤고 그들의 삶은 헛되고 무가치하다. 사람들이 쌓은 선한 업적이라는 것도 실상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영원히 가치 있고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13-15]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사람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이 구역질 나는 나쁜 냄새를 낸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이처럼 더럽고 악취 나는 것들뿐이다. 또 사람들의 혀는 속이는 혀이다. 사람들은 거짓말에 숙련되어 있다. 또 그 입술에는 남을 죽이는 독이 있고 그들의 말은 남을 저주하는 악독으로 가득하다. 또 그들의 발은 남을 죽이기에 빠르다. 참으로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되었고 무능력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씀하셨고(17:9),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절망적인 말씀을 하셨다(13:23).

[16-18] 파멸과 고생[불행]이 그 길에 있어 평강[평안]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또 죄인인 사람들의 길에는 파멸과 불행이 있다. 그들은 평안의 길을 알지 못한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또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죄인들의 죄악 된 삶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불경건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된다(16:6).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자들에게 의도, 선도 없다. 그러한 자들에게 파멸과 불행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의 현실이며, 우리가 구원받기 전의 상태이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세상에 예수님 외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구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둘째로, 사람들의 심령은 심히 부패되어 있어서 더러운 냄새가 나고 온갖 종류의 죄악을 범한다. 셋째로, 죄인인 사람들의 길에는 파멸과 불행이 있고 그 심령에는 평안이 없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여기에 죄인들에게 구원과 의()가 필요하다.

19-31, 칭의(稱義)의 방법

[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사람은 율법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율법의 역할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악 됨을 깨닫게 하여 온 세상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죄받게 하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판정되므로 하나님 앞에서 항변할 말이 없다. 율법을 행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코리스 노무)[율법과 별개로, 율법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기독교 복음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에 대한 소식이다. 사람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으므로 구원이 필요했다. ‘이제는이라는 말은 구약시대와 대조하여 신약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약시대에 증거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행위의 의, 즉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의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율법과 별개로 주시는 한 의가 복음 안에 나타났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은 의이다. 이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 즉 구약성경에 이미 증거된 바이었다. 구약성경은 행하라는 도덕법을 강조하지만, 제사들, 유월절 어린양, 성막 제도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도 증거하였다. 그 은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밝히 증거될 것이었다.

구약성경은 또 메시아의 속죄사역으로 인한 의()를 직접 예언하기도 하였다. 이사야 53:11,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영원히 속량]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믿는 모든 자 안으로(에게) 그리고 모든 자 위에](전통본문)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이다.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의()가 아니고 구주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의()인 것이다. 신약시대의 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누구나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의()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구원을 위해 참으로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23-24]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되었음이니라].

본문은 모든 믿는 사람이 차별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까닭을 보인다. 그 까닭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단지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본절은 기독교 복음의 요약이다.

믿음으로 얻는 이 의()는 행위로 얻는 의()와 대조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값없이 거저 얻는 의이다. 이러한 의가 가능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구속(救贖)을 이루셨기 때문이었다. ‘구속’(救贖)이란 값을 주고 산다는 뜻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 즉 죄의 책임(죄책 罪責)과 형벌을 지시고 건져내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의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25-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그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유화제물(宥和祭物)]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앞절의 말씀을 좀 더 설명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의 속죄사역을 믿는 것이고 그의 보혈을 믿는 것이다. ‘화목제물’이라는 원어는 유화제물(宥和祭物)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제물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끓어오르는 진노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누그러지셨고 가라앉으셨고 제거되셨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속죄의 성경적 의미이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라는 말은 예수님 믿기 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심으로라는 뜻이다. 물론, 사람이 예수 믿고 난 후에 짓는 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씻음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무조건 의롭다고 간주하신다면 그러한 판단 자체가 불의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죄인들의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 근거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셨으므로, 그것은 의로운 판단이시요 의로운 행위이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인한 의롭다 하심 곧 칭의(稱義)의 원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수님 믿는 자들이 받는 의()의 정당함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 전가(轉嫁)시키셨으므로 그들을 의롭다고 정당하게 선포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받은 이 칭의는 성도가 실제로 의인으로 변화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단지 법적으로 의인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법정적(法廷的) 의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 법정에서 성도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심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또한 새 생명을 받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도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산다. 그러나 성도는 법적으로는 완전한 의인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아직 불완전하고 부족이 있다.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성도의 의가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하기 때문에, 성도는 자랑할 것이 없다. 율법과 별개로 나타난 의, 복음 안에 나타난 의,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는 받는 사람 편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는 의이다. 왜냐하면 이 의는 사람의 행위의 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는 원어는 율법의 행위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인정한다는 원어(로기조마이)는 ‘간주한다, 결론을 내린다는 뜻이다. 본절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기본 원리를 다시 결론적으로 단언하였다.

[29-31]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 진리는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나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 구원 진리는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에게나 동일하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효력 있는 진리이다. 오늘날도 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약의 복음이 구약의 율법을 폐지시키는 것은 아니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율법과 복음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은 그림자와 실체요 예언과 성취이다.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여 복음으로 이끄는 선생 역할을 한다. 사실,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죽음은 율법의 저주를 받으신 죽음이었고 율법의 의를 이루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복음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소식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율법 즉 십계명과 별개로 사람에게 주신 의의 방법이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에 근거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 안에 그리고 모든 믿는 자 위에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이것이 모든 죄인들에게 기쁘고 복된 소식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믿고 그 안에 거하고 그 의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민수기 히브리어 성경 강해]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아셀 납달리 지파(민 2: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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