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시편 150편 히브리어 주석 강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시 150:1-6)

기혼샘 2021. 5. 7. 16:22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150편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시편 150편은 호흡 있는 자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복 받은 사람은 구원받고 난 이후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 죽어 있었을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고 난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항상 주님만을 찬송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시 150:1-6)

 

1절 할렐루야 할렐루 엘 베카드쇼 할렐루후 비르키아 우조

시 150: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150:1

시편 전체에서 처음과 마지막 시편은 둘 다 같은 수의 절(6절)로 되어 있고, 둘 다 짧으며, 매우 기억할 만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매우 다르다. 처음 시편은 우리의 의무에 대한 정교한 교훈이며, 예배의 위로를 위해 준비하도록 가르쳐준다. 이 시편은 큰 환희와 기쁨을 나타낸다. 아마도 이 거룩한 노래들의 결론이 되도록 목표를 세우고 기록된 것 같다. 

모든 시편이 무슨 목적으로 기록되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온 세상이 찬양으로 충만하기를 원했다. 계속 반복해서 그는 외친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를 찬양하며, 그를 찬양하라.” 그 짧은 여섯 절의 시편에서 13회 이상이나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다.

1. 무엇 때문에, 무슨 일로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인가?(1-2).
2. 어떻게 즐거움을 표현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3-5)
3. 누가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사람의 과제다(6).



우리는 이 시편을 찬송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감동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모든 세대에 걸쳐서, 전 세계를 통해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한다.

그 성소에서(베카드쇼) - 문자적인 뜻은 '그의 성소에서'이다. 이것은 땅 위의 성소 혹은 하늘에 있는 성소를(11:4 참조)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하반절에 '그 권능의 궁창에서'라는 말이 나오므로, '성소'란 땅 위의'성소'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는 단지 '성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모든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도 무난하겠다. 그렇다면 본절은 땅과 하늘을 포함한 모든 곳으로부터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진지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자극된다.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이 시편이 주로 레위인들이 찬양하는 자와 악기 연주자들로서― 여호와의 집에서 저희의 직무를 행하도록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된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영적인 제사장들인 우리에게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같이 반복해 강권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그것이 위대하며 필수적인 의무임을 나타내 준다. 그것은 우리가 전념하고 크게 확대시켜야 하는 의무다. 우리는 본래 그 의무에서 물러나며 냉담하다. 그러므로 율례마다, 구절마다를 통해 그 의무로 우리가 이끌리며 거기에 붙잡힐 필요가 있다.

2절 할렐루후 비게부로타이브 할렐루후 케로브 게델로

시 150: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150:2

그의 능하신 행동 -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구원 및 보존의 섭리뿐만 아니라 구속사의 전개 과정 주에 보여주신 크신 권능들을 통틀어서 지칭하는 표현이라 하겠다(106:2; 145:11,12). 찬양하라고 했는데 피엘 강조능동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해야 할 것을 말한다. 시편 기자는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그의 성소에서.” 거기에서 그를 찬양하라. 거기에 참여하는 그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찬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라. 그가 특별한 방법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의 은총을 전달하신 곳을 제외한다면 그가 어디에서 찬양받으실 것인가? “그 성소”로 인해, 그리고 우리 가운데 가지고 있기를 즐기는 특권으로(겔 37:26)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라”(어떤 이들은 이렇게 읽는다). “그의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성화된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주목해야 하며, 그 형상을 위해서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찬양할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 권능의 궁창에서.” 궁창에서 나타나는 그의 권능과 영광을 인해, 그 광대함과 밝음과 찬란한 모습을 인해,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이 이 땅에 미치는 권세 있는 영향을 인해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 권능의 궁창에” 거하는 자들과 거룩한 천사들도 이 선한 일에 인도된다. 어떤 이들은 “그 권능의 궁창”은 물론 “그 성소”를 가장 높은 하늘, 즉 그의 영광의 거처로 이해한다. 그것은 실로 그의 성소이며, 그의 거룩한 성전이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우리가 그를 찬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찬양을 받으신다. 우리가 찬양을 빈약하게 하지만, 거기에서는 훌륭하게 찬양됨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3절 할렐루후 베테카 쇼파르 할렐루후 베네벨 베키노르

시 150: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150:3

본절에서부터 5절까지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할 것인지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는 관악기(나팔)와 현악기(비파, 수금) 그리고 타악기(소고)등이 총동원되었는, 이는 단순히 악기들을 총동원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암시적인 뜻을 나타낸다 하겠다(Kidner).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의무가 이루어져야 하겠는가? 우리가 전에 성전 예배에서 사용한 모든 종류의 음악 도구로 해야 한다(3-5절). 특정한 종류의 도구가 요청되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들은 당시 충분히 잘 알려져 있었다. 우리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것을 아는 데 있다.

시편 저자의 마음이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얼마나 충만했으며, 그가 이 선한 일을 계속하려고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값비싼 희생이나 고통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귀에 가장 좋은 음악은 경건하고 열심 있는 감정이며, 즉, “곡조가 아름다운 현이 아니라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마음이다”(non musica chordula sed cor). 굳건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거룩한 사랑과 즐거움으로 그를 찬양하라.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신뢰로 그를 찬양하라.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는 신앙의 개가로 그를 찬양하라.

하나님을 향한 진지한 갈망과 그 안에서의 완전한 만족으로 그를 찬양하라. 그의 모든 명령에 대한 우주적인 존경으로 그를 찬양하라. 그의 사랑에서 기뻐하며, 그의 크신 인자하심에서 우리를 위안하면서 그를 찬양하라. 그의 은총의 나라의 관심사들을 촉진시킴으로써 그를 찬양하라. 그의 영광의 나라에 대한 생동적인 소망과 기대로 그를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사용되는 여러 가지 악기는 정확하고 완전한 하모니를 이루어야 한다. 그들은 서로 방해하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도와주어야 한다. 신약의 합창은 이것 대신에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롬 15:6)이다.

4절 할렐루후 베토프 우마홀 할렐후 베미님 베우가브

시 150:4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150:4

소고 - 손으로 쳐서 소리를 내었던 이 악기는 흔히 춤을 출 때 동반되었던 악기로 알려져 있다(149:3; 15:20; 11:34; 삼상 18:6).

현악(미님) - 구약 성경에서 1회만 등장하는 이 용어는 시리아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일반적인 의미의 줄이 달린 악기를 의미한다(Anderson).

퉁소(우가브) - '목동의 피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이 악기는 세속적 음악 활동에서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창 4:21; 21:12; 30:31)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종교적 배경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 사실 심령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다면 그 어떤 세속적인 악기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5절 할렐루후 베칠르첼레 솨마 할렐루후 베칠르첼레 테루아

시 150: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 지어다 

=====150:5

큰 소리 나는 제금...높은 소리 나는 제금 - 전자는 '칠르첼레 솨마', 후자는 '칠르첼레 테루아'이다. 전자는 작지만 맑고 높은 음이 나는 심벌즈이고, 후자는 낮고 큰 소리가 나는 심벌즈를 가리킨다. 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재번역하면 전자는 '맑은 소리 나는 제금', 후자는 '큰 소리 나는 제금'이 되겠다.

6절 콜 하네솨마 테할렐 야흐 할렐루 야흐

시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하느솨마 테할렐 야흐) - 직역하면 '호흡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를 찬양하'이다. 앞서 언급된 것과 같은 악기들을 연주함은 물론이고 온갖 기예(技藝)를 동원한 음성으로써 또한 지정의(知情意)의 모든 인격의 정성이 담긴 영혼의 소리로써 아름다운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을 가리킨다. 위대한 '찬양의 책' 시편을 마감하는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누가 이러한 찬양을 돌려야 하는가?(6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그는 그의 성소에 거처를 갖고 성전 예배에 종사하는 자들을 부름으로써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들이 교회로 들어와서 “각처에서” 예루살렘에서와 같이 “분향하며 제물을 드리는 것”(말 1:11)이 용납되는 때를 바라보면서, 모든 인간의 자녀들을 부름으로 결론을 맺는다. 어떤 사람들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라는 말에서 우리가 열등한 동물, 즉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창 7:22) 모든 것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새들이 노래하는 것도 일종의 하나님 찬양이다. 짐승들은 인간에게 실제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우리를 위해서 너희가 찬양할지어다.” 요한은 환상 중에서 “하늘 위와 땅 위, 땅 아래 있는 만물”에게서 찬양의 노래가 울려 나는 것을 들었다(계 5:13).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단지 인간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사람에게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기 때문이다(창 2:7).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모든 인간 피조물에게 선포하라고 명령되었다. 모든 인간 피조물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요청된다. 우리가 호흡과 우리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쓰이고자 함이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더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기도는 “우리의 호흡”(애 3:56)이라고 불린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로 숨 쉬는 모든 자와 그 은택을 발견하는 자들은 그의 찬양으로도 숨을 쉰다. 호흡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우리 호흡의 향기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활동과 같이 이 일에 참여해야 한다. 찬양은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와 같이 여겨야 한다. 우리의 콧구멍에 호흡이 있지만, 순식간에 사라지고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러면 위로를 갖고서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죽음이 호흡을 끊을 때 우리는 공기보다 더 자유로운 곳에서 하나님의 찬양을 숨 쉬며 사는 더 좋은 상태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시편 다섯 권 중 처음 세 권은(히브리 원전의 구분에 따르면) “아멘 아멘”으로 결론을 마치며, 제4권은 “아멘 할렐루야”로, 마지막 제5권은 전체 시편을 단지 “할렐루야”로만 결론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여섯 편의 시편이 전체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쓰였으며, 거기에는 탄식이나 간구가 한마디도 없기 때문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에 이르면 이를수록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충만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마지막 시편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찬양하며, 영화롭게 된 성도들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용하라고 한 음악 도구들은 새 예루살렘을 단장하라고 한 금과 진주와 값진 보석들처럼(계 21:18-19) 문자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이 가장 뛰어난 영광임을 나타내 주듯, 이것들은 성도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찬양이 가장 뛰어난 찬양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거기에서 기도는 영원한 찬양 속으로 완전히 흡수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는 중단이 없으며, 지치는 일도 없다. 할렐루야는 영원히 반복되며, 계속 새로운 노래로 울려 퍼질 것이다. 영광 중에 있는 성도들이 하늘에서 찬양을 계속하며, 우리가 땅에서 잘 알던 자들이었으나 우리보다 먼저 간 자들이 계속 행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즐거움을 취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 가운데 오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는 자들이 행하는 것같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의 이러한 부분을 행하도록 소성시켜 준다. 거기에서 우리가 보낼 기쁨의 영원을 소망하기 때문에, 이 선한 일에 많은 시간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는 하늘의 말씀이다(계 19:1, 3). 지금 곧 거기에 참예하기를 소망하는 자들로서 할렐루야를 울려 퍼지게 하자.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누가복음 10장 설교말씀] 누구를 만날 것인가?(눅 10:30-3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