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신명기 25장] 곡식 떠는 소와 공정한 도량형에 관한 규례(신 25:1-19)

기혼샘 2022. 11. 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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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 떠는 소와 공정한 도량형에 관한 규례(신 25:1-19)

 

신명기 25장에서는 악인에 대한 태형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사십대까지 때리고 그 이상은 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는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장사하는 하는 사람은 두 종류의 저울추를 넣지 말라고 했습니다. 공정한 저울추를  가지고 공정하게 저울을 달라고 했습니다.

[1-3]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 . . .

모세는 또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거든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죄의 경중대로 여수(如數)이 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이 법은 몇 가지 내용을 가진다. 첫째,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면 시시비비를 밝히 가려야 한다.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 선과 악은 분별되어야 하고 판단되어야 한다. 재판장은 의인은 의롭다고 선언하고 악인은 정죄해야 한다. 둘째, 악인은 그 악의 경중(輕重)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죄에는 크고 작음이 있다. 죄인은 판사 앞에서 분명하고 공정하게 벌을 받아야 한다. 태형은 죄의 정도에 따라 수를 정하고 시행해야 한다. 셋째, 그러나 40대까지만 때리고 그 이상은 금지되었다. 40대는 태형의 최대의 수이며 그것을 넘으면 그의 인격을 천시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모세는 또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고 말한다. 이 법은 짐승이라도 일을 시킬 때 먹이면서 시키라는 것이다. 이 법은 짐승에게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되며, 또 세상일뿐 아니라 교회일에도 적용된다. 구약시대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사도 바울은 이 법을 인용하면서 전도자들이 생활비를 받는 것이 합당하며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고전 9:9-14).

[5-10]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 . . .

모세는 또 수혼(嫂婚) 제도라고 불리는 법을 말하였다.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이 법은 옛시대에, 결혼한 아들이 아들 없이 죽음으로 대가 끊어지는 것을 방지한 법이다. 아들이 없이 죽은 자의 아내는 그 형제와 결혼해야 했다. 형제가 이미 결혼한 자이면 그는 부득이 두 아내를 얻는 것이 될 것이다. 남편이 죽은 여인이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낳은 첫 아들은 죽은 남편의 대를 잇는 자가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죽은 남편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모세는 또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를 행하기 싫어하는 자는 신 벗기운 자라는 호칭을 듣고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였다.

[11-12]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 . . .

모세는 또 말한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남편을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 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

그 여자가 상대방 남자의 음낭을 잡는 것을 이렇게 엄하게 정죄한 것은, 남자의 생식기를 잡는 것은 그의 급소를 치는 것으로 그에게 큰 해가 되며 더욱이 남자의 생식기를 손상시키는 것은 자녀 출산의 기능을 막는 큰 잘못이기 때문이며, 또 남자의 존엄성을 짓밟으며 여성으로서 가져야 할 단정함을 저버리는 악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13-16]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 . . .

모세는 또 말한다.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무릇 이같이 하는 자,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이 법은 공정한 상거래를 명한 법이다. 장사하는 성도는 물건을 팔 때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사용해야 한다. 공의와 공정은 성도의 생활의 기본 규칙이다.

[17-19]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 . . .

모세는 또 말한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모세는 아말렉의 악행에 대해 보응을 명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본다.

본장의 중요한 교훈으로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성도 간에 분쟁이 생기면 시시비비를 가리고 악을 행한 사람을 합당하게 징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리적인 문제나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판단해야 한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 작은 오류를 포용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제거할 수 없을 정도로 두루 퍼지게 된다. 권징의 성실한 집행은 바른 교회에 필수적인 일이다.

둘째는 공정한 상거래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는 항상 정직하고 진실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 물건을 파는 성도에게는 다른 저울추나 다른 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성도는 모든 일을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해야 한다. 성도는 세상의 법에도 저촉되지 않게 살아야 한다.

오늘날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재벌들은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데 일반 서민들은 경제생활이 더 어려워지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고 청년 실업자들은 늘어만 간다고 느끼는 데서 이런 문제가 많이 거론되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 경제불황에서 오는 세계적 문제인 것 같다.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이 함께 번영하고, 대형마트들과 재래시장들이 함께 잘 되는 길은 없는가 하는 것도 이런 논의의 중심에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경제민주화는 경제평등화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화는 우리 사회에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재산의 차등이 없이 평등하게 되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평등화는 사회주의 이념에 불과하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재산권을 부정하고 국가가 땅이나 노동력이나 자본을 소유한다고 보고 국가가 그것을 임의로 계획하여 나라 경제를 운영하는 제도이다. 그것은 칼 마르크스가 주창한 사상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생산 수단을 공동소유하여 경제적 평등사회를 세우자고 주창하였다. 그 이념을 혁명적 방식으로 이루려 했던 것이 레닌이 시도했던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운동은 지난 약 백년 동안 구소련과 중국 등에서 약 1억명의 사람들의 피를 흘리며 시행되었으나 그 결과는 실패했다고 평가된다.

대한민국의 경제체제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헌법 제23, 1191). 자본주의는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노력과 경쟁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적 개념이다. 또 이런 자유경쟁은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재벌해체, 부자세 등을 통한 급진적 혹은 강제적 평등화의 시도는 오히려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 부자들이 돈을 풀지 않으면 시장이 원활히 움직이지 못하고 결국은 가난한 자들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단지 법을 악용하는 행위들 즉 소위 불공정 거래 행위들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고 공정거래를 실천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투명한 경영을 하고 이중장부를 없애고 대기업들은 하도급 중소기업들에게 현금결제의 원칙을 지키고 독점이나 가격담합 등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기업들과 개인들의 자발적인 구제 활동은 권장되어야 한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은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자유로운 상행위를 인정하지만, 동시에 자발적 선행과 구제를 교훈한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다.

교육에 있어서도, 공정성은 학교추첨제나 3불정책 같은 사회주의적 발상보다는 자유로운 선택과 경쟁이 훨씬 더 성경적이고 학력향상과 사회적으로도 고급인재 양성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또 불필요한 획일적 평준화 교육과 값비싼 대학교육보다 처음부터 취미와 재능에 따라 실업계 학교나 기술학교나 예체능학교 등의 특기 교육은 차라리 사회진출과 개인적 생활안정에 도움이 되고 오늘날처럼 대졸출신 실업자들을 양산하는 국가적 손실과 불행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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