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출애굽기 5장 성경 강해설교] 가중된 이스라엘의 고난(출 5:3-23)

기혼샘 2022. 11. 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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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중된 이스라엘의 고난(출 5:3-23)

 

모세와 아론이 애굽의 바로 왕을 찾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라고 했다. 광야에 나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다. 바로 왕은 거절했다. 세상 왕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으니 응답하지 않는다. 지금도 세상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을 돌려보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큰 고역을 주었다. 이것이 세상 백성의 왕이 하는 짓이다. 바로가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자, 모세와 아론은 바로가 이스라엘에 대해 동정을 베풀어 줄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제사드리러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재차 겸손하게 간청했으나 허사였다.

 

Ⅰ. 그들의 요구는 매우 겸손하고 정중했다(3절).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이 받는 가혹한 학대에 대해서는 원망하지 않았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이 원하는 여행은 자신들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일이라고 간청했다. 그들은 복종의 태도로 간구했다. “우리가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억압하는 제왕들에게 항복을 요구하시지만, 가엾은 자들은 간청할 뿐이다. 힘없는 자들은 간청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나님은 압제하는 군왕들에게 항복을 요구하실지 모르나 우리는 그들에게 간청하고 탄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광야를 다녀오는 데 겨우 사흘간의 짧은 휴가를 원했다. 더군다나 선하고 상식적인 목적이 있는 요구였다. 다른 백성들이 그들의 신을 숭배하듯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모세와 아론은 대단히 좋은 이유를 내걸었다. 즉 “만약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지 않으면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니, 그렇게 되면 바로 왕도 당신의 종들을 잃게 될까” 한다고 했다.

 

Ⅱ. 바로는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매우 난폭하고 부당하게 거절했다(4-9절).

 

1. 바로의 생각은 매우 부당했다.

 

(1) 히브리 백성은 일하기 싫어 제사 핑계를 댄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들이 바로를 위해 지은 도성들과 일한 자취들은 그들이 게으르지 않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바로는 그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구실을 찾기 위해 근본적으로 나쁘게 평가하는 것이었다.

(2)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공연한 말로 히브리인들을 게으르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9절).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에서는 공연한 말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사명을 띠고 있는 모세와 아론은 그들을 게으르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사탄의 궤계는 종종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은 한가로운 자들에게나 적합한 일이요 게으른 자들만의 일거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배와 봉사는 세상에서 가장 분주한 사람들까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인 것이다.

 

2. 바로의 결심은 매우 야만적이었다.

 

(1) 왕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의 역사”나 하라고 했다(4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구별해 세우셨으나 바로는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은 민족이 똑같이 당하는 종살이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박해자들은 교회의 사역자들을 멸시하고 곤경에 몰아넣는 것을 특별한 쾌락으로 삼는다.

 

(2) 그는 진흙에 섞을 짚과 벽돌을 구울 짚을 주지 않으면서 벽돌의 평소 생산량을 산출하도록 엄명했다. 이제 그 일을 감당하려면 몇 배로 고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스라엘은 고역으로 인해 쇠약해질 것이고, 그 일을 수행치 못한다면 무서운 처벌이 내려질 것이었다.

 

가중된 이스라엘의 고난 (2)(출 5:10-14)

 

Ⅰ. 바로의 명령은 즉시 시행되었다. 짚을 주지도 않으면서 생산량을 조금도 감해 주지 않았다. 애굽의 현장 감독들은 매우 잔혹했다. 바로는 불의한 법령을 포고했고, 감독들은 왕이 명령한 무거운 부역을 즉시 기록했다(사 10:1). 감독들은 짚이 공급될 때와 같은 업무 성과를 매일 강요했다(13절). 잔인한 왕들에게는 언제나 부리기 좋은 잔악한 도구들이 있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의 도구된 자들은 자신들의 잔학 행위가 가장 합당한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우리를 무리하고 사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살후 3:2).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적대심은 이성과 명예와 인간애와 공의의 모든 법을 짓밟는 것이다.

 

Ⅱ. 이스라엘 백성은 곡식 그루터기를 모으기 위해 애굽 전역에 흩어졌다(12절). 따라서 바로가 이스라엘을 불의하고 포악하게 이용한다는 사실이 나라 전체에 알려졌고, 이웃 민족들은 불쌍한 백성들을 동정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바로의 정권은 신하들로부터 별로 신임을 못 얻게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선의는 결코 박해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Ⅲ. 애굽인이 뽑아 놓은 이스라엘 노동 간부들은 특히 더 심한 곤욕을 당했다(14절). 이스라엘의 패장들이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직책 때문에 막대한 희생을 지불했다. 애굽인들은 직접적으로는 그들에게 일을 시켰고,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는 그 간부들을 매질했기 때문이다.

 

1. 노예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 우리가 압제받지 않는 자유민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새삼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자. 독재 권력의 수하에서 일하고 재산까지 바친 자들에게는 자유와 번영이 최대의 진귀한 보석이다.

 

2. 큰 기대를 한 후에 종종 실망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음을 깨닫자.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한창 해방의 꿈에 부풀어 있을 때 더 큰 실망이 안겨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언제나 떨리는 마음으로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3. 하나님은 때로 매우 특이한 절차를 밟아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깨닫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곧 나타나실 준비를 갖추고서도, 그의 백성들을 가장 어려운 길로 인도하신다. 큰 만조가 되기 전에 간조가 온다. 대체로 아침에 안개가 많이 끼면 청명한 날이 된다(신 32:36).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때는 만사가 최악의 상태에 놓일 그 때다. 하나님의 섭리는(외적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더욱 좋다는 역설적 사실을 입증하신다.

 

가중된 이스라엘의 고난 (3)(출 5:15-23)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학대하지 않을 수 없고, 자기 윗사람에게 학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노동자 간부들이 당하는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대개 남을 학대하기보다는 자신이 학대를 받으려 한다. 그들도 그렇게 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19절).

 

Ⅰ. 이스라엘의 패장들이 바로를 원망한 것은 정당했다. 그들은 “바로에게 호소했다”(15절). 최고의 권력자 외에 어디에 가서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겠는가? 바로는 비록 사악한 자였지만, 그들의 압제받는 신민들은 그에게 나가 호소할 자유가 있었다. 탄원의 길을 막는 법률이 애굽에는 없었다. 그들의 탄원은매우 정중했고 강압적이었던 그들의 사정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16절).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나이다(만사가 소란했던 터라 틀림없이 매우 잔인하게 맞았을 것이다). 이는 왕의 백성의 허물이니이다. 즉 우리가 일하는 데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 그 감독들에게 잘못이 있나이다”라고 했다. 가장 비난받아야 마땅한 자들이 항상 남을 비난하는 일에 가장 맹렬한 법이라는 것을 알아 두자. 그러나 그들이 불평함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그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다.

 

1. 바로는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17절). 이스라엘 백성이 일에 시달려 거의 죽게 되었는데도 바로는 게으르다고 했다. 그들은 고역으로 몹시 피로했으나 게으르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우리가 가서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는 말 외에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었다.

가장 훌륭한 행동도 때로는 가장 추한 이름으로 더럽혀지는 것이 다반사임을 기억하자. 가장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한 경건한 근면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세상일에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심판관이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니 실로 다행한 일이다.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는 일에 힘쓰는 자는 나태한 종이 될 운명에서 하나님과 함께 탈출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사람과 더불어 탈출하는 것은 아니다.

 

2. 바로는 그들의 짐을 더욱 무겁게 했다. “이제 가서 일하라”. 악한 자에게는 악한 것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자. 불의한 자에게 기대할수 있는 것이 불의 이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Ⅱ. 이스라엘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은 부당했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21절). 이것은 정당하지 않았다. 모세와 아론은 진정으로 이스라엘의 자유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증거를 충분히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원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을 노예로 만든 공모자라는 식으로 비난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자기들에게서 축복을 앗아 갔던 죄악을 부끄러워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가장 훌륭한 친구들에게 정면으로 대항하고, 그들을 해방시킬 일꾼들과 다투었던 것이다. 저들의 해방을 이루는 데 약간의 어려움과 장애물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동포들을 위한 공적 사명에 부름 받은 자들은 시련을 겪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교만한 원수들의 사악한 궤계가 곳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외모로만 판단하며 자기의 바로 앞일만 생각하는 사려 없는 친구들의 불친절하고 터무니없는 비난으로 시련을 당하게 마련이다.

모세는 이 시련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들이 기대한 사건이 이루어지지 않자 모세는 가슴이 아팠다. 그보다는 마음의 갈등이 생겼다. 게다가 백성들의 비난은 뼈를 깎는 듯한 괴로움을 주었다.

 

1. 모세는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사정을 고했다. 모세는 자기가 말한 것과 행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지시에 따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때문에 자기가 비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호소했다. 예레미야 20장 7-9절과 비교해 보라.

우리가 만일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다가곤란과 좌절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앞에 모든 사정을 아뢰어 충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물러나야 될 경우에는 하나님께로만 물러나자. 결코 다른 길로 가지 말자.

 

2.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22, 23절). 모세는 하나님의 현재의 섭리와 그가 받은 사명과 약속 사이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려는 하나님의 강림이란 말인가? 그들에게 축복이 임하기를 희구해 왔던 내가 오히려 그들을 더 괴롭게 만들어야 하는가? 그들을 함정에서 구하려는 계획 때문에 그들은 더 함정 깊숙이 빠져 버리게 되었도다.” 이제 그는 질문한다.

 

(1)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막 자비의 길로 인도하시려 할 때도, 백성들은 사태가 더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을 쓰기도 하신다. 그들이 도움을 구할 때 구원의 방편은 뒤로 숨겨지고, 평안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올가미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이런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끊는 것을 배우고 하나님 이외의 것을 의존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불친절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 때는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 그 시련이 하나님의 자비를 만나게 되는 관문이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2)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① 이와 같이 모세는 일의 실패에 대해 하나님께 탄원했다.

“바로는 이 백성에게 악을 여전히 행하고 있으며, 백성의 구원의 징조는 조금도 보이지 않나이다”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본의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해가 되었음을 알게 될 때는 심히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자.

훌륭한 사역자가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오히려 더 타락하고 고집이 세지고 완악해져 그들을 불신앙 속에 봉인하고 말 때는 마음이 괴로워진다. 이 때문에 에스겔 선지자의 말과 같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영혼의 고통 속에서 행하게 된다(겔 3:14).

② 모세는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질문했다.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하는 것은 “나의 사명을 수행하려면 어떤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합니까?”라는 뜻이다. 우리의 수고에 대한 실망이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무엇을 위해 보내졌는가에 대해 숙고해야만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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