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수기 33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에담과 이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에담의 지역과 마태복음 이삭을 연관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에담 – 이삭”(민33:6, 마1:2)
♣명제: 에담은 주님이 함께 동행하시는 곳을 상징한다.
♣목적: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에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현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과 신앙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이 진을 쳤던 장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모형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숙곳을 지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숙곳은 거처를 준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의 족보에 아브라함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영적으로 죽었던 자들이 살아난 것입니다. 노예의 생활에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인의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들도 원죄의 죽음에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처를 준비하러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숙곳을 지나 에담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33:6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마지막 종착지도 천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면서 돌아다녔던 것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인도 하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광야는 술 광야로서 비옥한 땅의 끝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부터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가야 할 광야가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노예의 근성들을 버리고 앞으로 전진해야 할 장소가 바로 에담입니다.
‘끝’ קצה(카체 7097 전치사. 명사, 남성, 단수) 끝, 경계, 가장자리, 종말, 이라는 뜻이며 קצה(카차 7096) 잘라내다, 베어내다, 끊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쳤다는 것은 육적으로는 가장 좋은 땅의 끝에 와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앞으로 나가면 고통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죄악의 노예의 삶이 끊어지며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시는 광야의 길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의 노예의 근성들을 모두 잘라내고 율법의 사고를 모두 끊어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인생을 살았던 것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마지막 종말의 때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모두 베어 불에 던지는 것입니다. 율법의 삶을 살았던 자들을 심판하셔서 구원의 자리에 서지 못하도록 잘라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재 에담에 있다는 것은 광야 끝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광야의 가장자리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이유가 ב(베이트) ~안에, 라는 전치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광야 끝과 같이 종말 안에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종말은 아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종말의 때에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하나는 심판받을 인생과 하나는 천국으로 들어갈 인생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선택받은 자들은 구원의 자리에서 잘리지 않지만 그렇지 않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 자들은 마지막 날에 구원의 자리에서 끊어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담에 진을 친 것을 통하여 영적인 진리를 깨달아 보겠습니다.
‘에담’ אתם(에탐 864) 에담,이며 이 단어는 애굽어에서 유래되었고 ‘그들과 함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에담은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술 광야의 끝에 있는 곳입니다. 또한 에담에는 ‘망대’라는 뜻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에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셔서 망대에서 지키듯이 보호하심을 나타내는 장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합니다. 430년 동안 노예의 삶을 살다 보니 자신들 스스로 해본 것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인도가 없이는 자신들 스스로 일을 할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구원받은 기쁨은 있지만 막상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니 막막한 것입니다. 마지막 종말 때까지 내가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처럼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나타나셔서 인생의 길을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종말입니다. 이 종말의 때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광야의 삶을 살아갈 때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에담은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말씀하시는 곳이며 망대와 같으신 분이 나를 지켜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61: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예수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가 되어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원죄에서 해방되어 이제 교회에 처음으로 들어왔다면 고민하게 되고 걱정하게 됩니다. 한 번도 교회에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망설여지고 한편으로 가족들 때문에 핍박받을 것을 생각하니 앞날이 걱정되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럴 때에 나의 망대가 되어 주시고 원수를 피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고통당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때에 위로받을 곳이 없는데 주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어주셔서 위로해 주시고 나와 함께 하셔서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담에서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종말 때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13:20-22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들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이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생기고 백성들 앞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에담에 진을 쳤을 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셔서 마지막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때까지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לא(로 3808) 아니다, 라는 뜻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온전하게 함께 하시고 절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될까요?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시고 거처를 준비하시러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주님이 이 세상의 끝 날에 오실 때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끝’ קץ(케츠 7093) 끝, 종말, 끝날, 이라는 뜻이며 קצץ(카차츠 7112) 잘라내다, 베어내다, 끊다, 파괴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아 선택된 자들에게는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때가 언제입니까? 주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이날에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모두가 심판을 받아 구원에서 잘라지고 끊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영적으로는 파괴되어 비참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의로 이 세상에서 큰소리치면서 살았던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 모욕했던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인간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자신의 행위를 주장하던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자들이 성경에서 어떠한 자들입니까? 바로 가인과 같은 자입니다. 그리고 노아 때에 홍수로 심판을 받은 자들입니다.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이전에도 가인과 아벨은 계속해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세월이 지난 후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요?
여기에서 ‘지난’이라는 단어가 קץ(케츠)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가인과 아벨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종말의 제사를 받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마지막 제사에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가인은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대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받으려고 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제사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벨과 같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에 힘입어 제사를 드린 자들의 대표입니다.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제사를 받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사람은 마지막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나의 예배를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주님과 함께 하고 있었으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벨도 주님과 함께 하는 목축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자신의 욕심에 빠져 자신의 의만 주장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제사 가운데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들은 주님이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으니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복음의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 됩니다.
창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가득 찼고 그 끝 날이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땅과 함께 타락한 자들을 멸망시켜버리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끝 날이’라는 단어가 קץ(케츠)입니다. 그렇다면 홍수 심판은 마지막 종말의 심판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상징하는 방주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모두가 숨을 쉬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방주’ תבה(테바 8392) 방주, 상자,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종말의 날에 노아에게 상자를 하나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 상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의 행위로 나갈 수 있는 기구가 아닙니다. 노를 만들지도 말고 돛을 만들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움직이는 상자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만이 노아의 가족들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테바’의 상형적 의미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집 안에 들어와 숨을 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죄를 지은 모든 인간들은 숨을 쉬지 못하고 죽지만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 안에 들어와 숨을 쉬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종말의 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날에 숨을 쉬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늘 입으로 시인하고 주님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마지막 재림의 날에 숨을 쉬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세상 종말 때까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담에 진을 쳤는데 이것은 마태복음의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에담과 이삭을 통하여 영적 진리를 깨달아 보겠습니다.
에담이라는 장소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장소라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은혜 가운데 탄생이 된 사람이 바로 이삭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고 약속된 자녀로 탄생하였습니다.
창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고 육적으로 아들을 얻었다고 기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라도 자신의 양자로 삼아서 대를 세우려고 했는데 하갈의 몸에서 자신의 아들을 보았으니 얼마나 기쁨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사라의 몸에서 나올 약속의 씨를 준비하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99세에 나타나셔서 이삭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 יצהק(이츠하크 3327) 이삭, 이라는 뜻이며 צחק(차하크 6711) 웃다, 뛰놀다, 재주를 부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럼 이삭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약속의 씨로 나오게 됨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넘치는 자가 되었고 주님과 함께 뛰면서 먹고 기뻐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후손들에게도 이와 같이 언약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이삭의 후손들입니다. 영적으로 이삭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스마엘과 같은 자들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니 약속의 씨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과 같은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원을 받고 나니 기뻐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옛날의 선조들은 마을에 기쁜 잔치가 있으면 농악놀이를 통해서 그 기쁨을 표출했습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들은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악기를 부르고 어떤 이는 재주를 부리며 돌면서 춤을 추게 됩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영원한 원죄에 빠져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과 같이 선택하여 주셔서 약속의 씨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함께 하셔서 이제는 내가 웃을 수 있고 춤을 추면서 예배에 나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에담의 장소와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적인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에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셔서 앞으로 긴 광야의 여정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이삭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약속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에담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광야의 끝 에담에 진을 친 것입니다. 세상의 끝에 놓여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까? 지금부터는 광야의 교회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에 내 힘으로 광야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길을 인도하셔서 함께 걸어가실 것입니까? 광야는 낮에는 뜨거워서 구름 밑에 들어가지 못하면 힘들어 죽습니다. 또한 밤에는 날씨가 너무나 추워서 불기둥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런 생활에서 주님의 보호하심을 거부하면서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구름과 불기둥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것을 아시고 미리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살아가면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오늘 열심히 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은 에담의 장소를 통하여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나와 동행하는 자들은 이삭과 같이 천국의 약속을 받고 항상 웃을 일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이삭과 같이 하나님께서 웃을 일들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믿음으로 받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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