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후서 9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에게 은사를 허락해 주십니다. 자신이 은사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에게 맡는 은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특출 난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은사를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오늘도 성령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해 주신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데 활용하면서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 (고후9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고후 9:1~15
요절: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인하여 그분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주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을 생각하며 헌금을 즐겨 자원하며 드리자
이번 주 금요일은 6.25 전쟁 발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4시에 38선 이북의 조선인민군이 남한을 침공하여 삼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3년 1개월 동족상잔의 전쟁이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남한이 먼저 침공했다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1951년 12월 러시아어로 펴낸 “북침설”은 북한과 소련이 전쟁 발발 책임을 미국과 남한에 떠넘기기 위해 국제사회에 배포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에서 “조선 동란을 일으킨 자들의 정체를 밝히는 자료”라는 제목으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박헌영이 발간사를 발표하여 북한의 교과서가 된 것입니다. “6.25 전쟁은 미국의 사주를 받은 이승만 정권이 도발한 북침”이란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자료에는 가장 중요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군사작전 명령서”가 없습니다. 전쟁이 진행된 상황을 보면 이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측에 불과합니다. 북침설에 대해 반증을 하면,
1)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의 동의를 구해 스탈린은 처음에 반대하다가 1950년 2월 9일 허락했고, 마오쩌둥은 5월 14일에 남침을 허락받은 문서가 발견되었다(시트코프 대사의 일기). 50년 5월 29일 김일성은 소련이 지원한 무기와 장비가 북한에 도착했음을 밝히고 6월 중순까지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추겠다고 보고하였다. 1994년 6월 당시 옐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옛 소련의 비밀문서 300여 종의 극비문서를 넘겨주었다. “6.25가 철저하게 준비된 남침”임을 확인했다.
2) 남한은 전쟁 준비를 거의 한 적이 없었다. 6.25 전날도 전방의 많은 부대들이 주말 휴가를 가졌다. 북한은 1946년부터 전쟁 준비를 구체적으로 했다.
3) 주일날 새벽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되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남침설을 부인해오고 있다.(조선대백과사전) 만약 북침이었다면 어떻게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할 수 있었는가에 명확한 답변을 해야 한다.
4)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북진 통일주장”에 대해 미국의 공식답변은 “절대 불가”였다(부루스 커밍스교수 회고록, ‘한국전쟁의 기원,’ 1981)
5) 미국의 “극동 방위선(ACHESON LINE)을 1950년 1월 12일에 일본으로 철수시켰다.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올해로 71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전쟁 발발일에 다시는 한민족끼리 전쟁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날이 되어야겠습니다. 6월 한 달 동안 ”애국의 달“로 지내며 한민족의 평화와 안보를 기도합시다.
오늘은 고린도후서 9장을 통해 온전한 헌금의 생활을 전하겠습니다. 고린도 후서 8-9장은 풍성한 헌금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8장에 풍성한 헌금과 헌신에 이어 9장에서는 “즐거움으로 바치는 헌금”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재물로 성도들을 섬기는 일(고후 9:1-5)
1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 너희 마음의 열심을 내가 아노라. 그것으로 인해 내가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너희에 대하여 자랑하기를 아가야는 일 년 전에 준비되었다 하였거니와, 너희의 열심이 참으로 많은 사람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3 그럼에도 내가 그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관하여 우리가 너희를 자랑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고 또 내가 말한 것 같이 너희가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 혹시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되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가 (우리는 너희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같이 확신 있게 자랑한 일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당할까 염려하노라. 5 그러므로 그 형제들을 권면하여 그들이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후한 선물 곧 전에 너희가 통보받은 적이 있는 그 후한 선물을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줄로 내가 생각하였나니 그리하여야 바로 그 일이 후한 선물답게 준비되고 탐욕에서 난 것 같지 아니하리라.
1-2절. 헌금의 용도 중 성도를 섬기는 일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설명한 대로 연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전도자 후원(선교비)과 구제를 가리킵니다. 여기에 구제란 일반적 자선 행위가 아니고, 교회 안에 있는 가난한 성도를 위한 구제를 말합니다. 아가야(Achaia) 지방이란 그리스 반도 남부지역을 말하는데 아테네, 고린도, 스파르타 등의 도시 국가가 있습니다. 고린도는 아가야의 수도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1년 전부터 구제헌금을 준비하였다는 사도바울의 자랑이 마케도니아(그리스 반도 북부 지역)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글라우디오 황제(A.D. 41-54) 때 몰아친 심한 기근으로 인해 생활이 몹시 궁핍해졌기에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한 사도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부지런히 연보를 권면해 왔습니다. 바울은 새삼 이 일에 대하여 쓸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2절에서 언급합니다. 구제 헌금(연보)을 모금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일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자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연보를 준비하였다고 자랑했다는 사실입니다(고후 8:2, 6, 10).
사도 바울이 8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헌신을 고무시키기 위해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모범에 관해 말한 것처럼 9장에서는 과거에 마케도니아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분발하게 하였느니라’에 당하는 헬라어 ‘에레씨세’(ἠρέθισε)은 보통 나쁜 의미로서 '자극하다', '분내게 하다'를 뜻인데 여기서는 좋은 의미로 '건전한 경쟁의식을 조장(助長)하다'로 이해하면 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연보를 먼저 시작한 것은 사실인 듯하며(고후 8:10) 이 소식이 마케도니아에 전해졌을 때 그들에게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8:2, 3).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모범을 보고 늦게 시작한 마케도니아인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8:2) 불구하고 이미 연보를 마쳤던 반면, 먼저 시작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으며 이제는 도리어 마케도니아인들에 의해 자극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선한 열심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줍니다. 물론 감동치 않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감동을 받아 선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선한 행위를 본받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5절. 사도 바울이 디도와 다른 두 형제를 고린도에 먼저 보낸 것은 그들이 1년 전에 작정한 헌금을 준비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아직 구제 연보를 끝내지 못한 사실을 마케도니아인들이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바울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3-5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바울이 마케도니아인들과 함께 고린도에 갈 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헌금의 한 원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헌금은 미리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억지’라는 원어(플레오넥시아 pleonexia)는 ‘탐심’이라는 뜻인데, 헌금할 때 탐심의 영향을 받으면 아까운 마음이 들고 억지로 하는 헌금이 된다는 뜻입니다. 헌금은 미리 준비해야 하고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지 않습니다.
3절의 ‘이 형제들’에 디도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고후 8:23). 디도는 바울의 대리인 자격으로 간 것이고 두 형제는 연보가 아무런 의혹을 일으키지 않고 공정하게 관리되도록 파견된 일종의 증인들입니다. 4절에서 예상했던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시작과는 달리 연금을 다 모으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두 가지로 걱정을 합니다. 첫째는, 만약 바울이 마케도니아인들과 함께 고린도를 방문할 때까지도 구제금 사업의 성과가 낮다면 마케도니아인들이 보기에 고린도 교인들은 형제 된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주님께 대한 헌신이 없는 형편없는 성도들로 보일 것입니다. 둘째는, 마케도니아 성도들에게 바울의 신뢰가 실추되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며 더 나아가 고린도 교인들을 믿었던 바울 자신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일이 현실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5절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마케도니아 교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바울의 의지가 다시 드러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 일행을 보내서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권고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8-9장에서 '연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기안'(εὐλογίαν, eulogian)는 '좋은 말', '찬양', '후한 선물', '축복'의 의미를 가집니다. '축복'으로서 '참연보'는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됩니다. '참연보'는 의무에 의해서나, 체면 때문에, 또는 자랑이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에 대한 책임 의식과 신앙적 사랑에 의해서 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참 연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었으며, 이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헌금의 원리(고후 9:6-15)
6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 7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가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풍성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이것은 기록된바, 그가 널리 재물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지속되는도다, 함과 같으니라. 10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제공하시는 분께서 이제 너희 양식으로 빵도 제공하시고 너희가 뿌린 씨도 번성하게 하시며 너희의 의의 열매도 늘어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서 부요하게 되어 온갖 후한 선물을 넘치게 하면 그것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하느니라. 12 이 섬김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제공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인하여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의 실행을 통해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인하고 복종하며 또 그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너그러이 나누어 주었으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 또 그들이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로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며 직접 너희를 위해 기도함으로 영광을 돌리느니라. 15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인하여 그분께 감사하노라.
6-7절.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 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헌금을 씨를 뿌리는 일에 비유합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며, 전혀 심지 않으면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는 자연의 이치와 같이, 헌금도 그러합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많이 낼수록 복되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헌금을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고, 억지로, 아까운 마음으로 내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헌금의 정신이 제시됩니다. 그것은, 헌금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선한 결심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헌금은 헌금답지 못하고 복된 헌금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헌금을 받으실 정도로 가난한 분이 아니시며, 마음의 중심을 아시는 주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최선의 것, 최상의 것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을 최상의 대접을 드려야 합니다(마 7:12). 즐겨내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데 어찌 인색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빈손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제공받았습니다. 생명, 시간, 재물, 자연, 가족, 공동체, 운명 등 모든 것을 선물로 받은 우리가 제공받은 극히 일부를 주님께 드리는 일에 인색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나의 소유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것이란 실상 없습니다. 이 세상 만물의 참된 소유자는 이 세상을 홀로 만드신 하나님뿐이십니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왕은 성전건축을 위해 자신과 온 백성이 바친 헌금과 헌물에 대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님의 것이로소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님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님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 모든 물건이 다 주님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님의 것이니이다.” (대상 29:11, 14, 16)고 고백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신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더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내가 거듭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재물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요? 그것으로 내가 나의 죄를 씻을 수 있었는가요? 그것으로 내가 영생을 살 수 있나요? 그것으로 내가 천국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있나요? 나의 돈은 나의 세상 생활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도록 내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마땅히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8-9절. 하나님은 충만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충만한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주셔서 우리로 선한 일에 풍성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또한 선행과 구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는 일이므로 의(義)입니다. 선행과 구제에 힘쓰는 자는 의로운 자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는 자는 다른 이들에게 많은 선을 행하고 가난한 형제들을 너그러이 돌아보는 자가 됩니다.
10절.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제공하시는 분께서 이제 너희 양식으로 빵도 제공하시고 너희가 뿌린 씨도 번성하게 하시며 너희의 의의 열매도 늘어나게 하시리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돈은 두 가지 용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먹을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심을 종자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풍성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물질적으로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에게 심을 것도 풍성하게 주십니다.
11-12절. “너희가 모든 일에서 부요하게 되어 온갖 후한 선물을 넘치게 하면 그것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하느니라. 이 섬김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제공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인하여 넘쳤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범사에 풍성함을 주셔서 우리로 헌금도 풍성하게 할 수 있게 하시며, 그 헌금을 통해 하나님께 풍성한 감사가 돌려지게 하십니다. 특정한 대상을 위해 바쳐지는 풍성한 구제 헌금(연보)은 가난한 성도의 부족을 보충할 뿐만 아니라, 구제받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많은 감사를 드리게 만듭니다.
13절. “이 직무의 실행을 통해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인하고 복종하며 또 그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너그러이 나누어 주었으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헌금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는, 헌금이 헌금하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선한 행위는 진실한 믿음의 증거입니다. 입으로는 순종을 말해도 마음으로 순종치 않는 자는 참으로 의와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알고 소망을 내세(來世)에 두는 자가 아니고서는 물질 사랑과 탐심을 참으로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과 돈과 재물의 미련을 포기한 자만이 전도와 구제를 위해 후한 헌금을 즐거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즐거이 드리는 후한 연보는 참된 믿음의 표입니다.
14-15절. “또 그들이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로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며 직접 너희를 위해 기도함으로 영광을 돌리느니라.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인하여 그분께 감사하노라.”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이며 증거입니다. 우리는 헌금을 통해 헌금한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즐거이 드리는 후한 연보를 드리면서 ‘오 주님, 저에게도 그런 은혜, 그런 믿음, 그런 사랑을 주소서!’ 기도합시다. 실로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습니다(Thanks be unto God for his unspeakable gift).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땅 위에 곳곳에서 나타났고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처럼 9장도 헌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① 헌금(연보)은 미리 준비해야 헌금답습니다.
② 헌금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내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③ 헌금은 우리에게 의가 됩니다. 하나님 사랑의 표입니다.
④ 하나님의 주신 재물은 두 가지 용도를 위한 것인데, 하나는 먹을 양식이며 다른 하나는 심을 씨이다. 궁핍하다고 심을 씨를 먹지 않듯이, 심을 씨는 먹지 말고 반드시 심어야 합니다.
⑤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에 많이 심어야 합니다. 풍성한 연보를 드립니다.
⑥ 헌금은 헌금자의 진실한 믿음과 순종의 증거입니다.
⑦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입니다. 받은 은혜를 감사해서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전한 헌금과 헌신의 자세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나의 보화 드리니 주님 받아주셔서, 하늘나라 위하여 주님 뜻대로 쓰소서” (찬 213장 4절).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살과 피와 생명을 주셨건만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물질의 헌신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드립시다. 이 물질에 나의 사랑과 정성과 믿음을 담아 미리 준비한 헌금을 주님께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해 연보를 풍성히 드린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코로나로 말미암아 주변의 이웃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하옵소서. 남을 먼저 대접하는 지혜를 배우게 하시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하옵소서. 6.25 발발 71주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든든하게 하사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주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나라로 축복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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