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골로새서 3장 강해설교말씀] 위의 것을 찾으라(골 3:1-25)

기혼샘 2021. 6. 22. 09:52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골로새서 3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위의 것을 찾으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땅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구하면 이 땅에 매이게 됩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것을 구하면 하늘에 소망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을 밟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 땅에 것을 구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궁극적인 것은 하늘의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가야 할 곳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천국의 것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위의 것을 찾으라 Seek above” (골 3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골로새서 3:1-25

 

요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If ye then be risen with Christ, seek those things which are above, where Christ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골 3:1)

주제: 성탄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을 항상 기다리며 찾아 예배드리자

 

오늘은 대림절(강림절) 네 번째 주일이면서 성탄 주일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마지막 초를 켭니다.

① 첫 번째 초는 보라색 초(purple candle)인데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입니다.

② 두 번째 초는 진보라색 촛불로 회개와 화해, 평화의 촛불입니다.

③ 세 번째 초는 분홍색 촛불(pink candle)로 사랑의 기쁨의 촛불입니다.

④ 오늘은 흰색의 촛불(one white candle)을 켭니다. 이 의미는 만남과 화해, 사랑의 촛불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과 죄 많은 모든 인류와의 만남과 화해, 회복과 그리고 사랑을 의미하는 촛불입니다.

 

Merry Christmas! 성탄절을 맞이하여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기원합니다. 첫 성탄 캐롤(carol)은 천군천사들이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떼(주로 예루살렘 성전 예배 제물용)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성탄의 목적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요, 사람에게는 선의(선한 뜻)가 있으리라 δόξα ἐν ὑψίστοις Θεῷ καὶ ἐπὶ γῆς εἰρήνη, ἐν ἀνθρώποις εὐδοκία”입니다. 킹제임스역은 개혁자들이 사용한 전통사본[다수사본, 수용본문Textus Receptus, 안디옥사본]에 근거한 헬라어를 정확히 번역하고 있습니다. ① Glory to God in the highest, ② and on earth peace, ③ good will toward men. 현대번역 성경(개역, 개역개정, RSV, ESV, NIV, 개정 헬라역 Nestle판)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를 혼용해서 번역해 정확하지 않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 and on earth peace to those on whom his favor rests.” 그래서 바른 성경번역이 중요합니다. 원문에 천,지,인(天地人) 성탄 메시지를 회복합시다. 영광, 평화, 선의! 성경적 성탄 메시지입니다.

영어로 성탄절 인사 “Merry Christmas! 메리 크리스머스!”를 서로 나눕시다. 메리는 “즐거운, 기쁜, 유쾌한” 뜻입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Mary)가 아닙니다. 크리스머스를 영어 약자로 X-mas라고 하는데 여기서 X는 그리스도의 약자입니다(ὁ Χριστὸς = The Christ). 그래서 이를 엑스-마스로 읽지 마시고 반드시 크리스머스(영어로 Christ-mas, 여기서 t발음이 묵음(silent)되어 발음하지 않음)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미사(mass 예배)라는 말입니다. 더 좋은 인사는 “임마누엘” 혹은 “축복의 성육신(Blessed Incarnation)”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요 1:14에 있는 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 사 7:14)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합시다.

 

4년 전까지 미국에서 공식 성탄 인사를 “Happy Holiday!”로 한 적이 있습니다. 유대인, 이슬람인, 사탄교 등 반기독교 사람들에게 반감을 준다고 명절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할러데이(일반적 공휴일)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공식 연방 공유일을 모두 할러데이라고 부릅니다. 성탄절도 그런 일반 이름으로 부르니 성탄 기분도 나지 않고 성탄절 의미가 점차 사라진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까지 영향이 미쳐 요즘 한국에서도 성탄절 분위기가 많이 죽어 있습니다. 올해 코로나 재앙으로 더욱 성탄절 분위기가 없습니다. 적어도 교회 다니는 우리들이라도 성탄절 장식(tree, decoration), 카드, 선물, 행사, 등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계절이 되어야겠습니다. 올해 아내로부터 성탄절 카드를 받고 사랑의 글들을 몇 번 읽었습니다.

 

세계 선교를 다니면서 성탄의 인사와 예수님 연호(AD, 서기)는 전도에 큰 도움이 됩니다. 1980년대 초에 중국에 가서 성탄절이 예수님의 생일로 가르쳐주니(Happy Birthday to Jesus) 전도가 쉬웠습니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연호 2020년은 예수님 탄생 이후 몇 년(AD=Anno Domini 주님의 해, 주후, 기원후)이며, BC(Before of Christ, 주전, 기원전)는 그리스도 이전의 연도라고 가르쳐 주니,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슬람 지역에 가서 선교를 했는데 이를 가르쳐 주니 모두 놀랐습니다. 이슬람은 622년 헤지라(Hejira, 모하마드Muhammad가 메카Mecca에서 메디나Medina로 이주하던 해)부터 연호를 사용하지만 모든 이슬람 나라들도 공식적으로 2020년을 사용합니다. 동남아 불교국에도 불기(佛紀, 석가모니가 입적한 해로 AD에 600을 더함, 2020년은 불기 2600년)가 있지만 예수님 연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합니다. 북한도 김일성 출생년도 1912년을 1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사용하지만 반드시 예수님 연호를 병기합니다. 올해 주체 108년(2020년)이라고 사용합니다. 한국도 올해가 단기 4353년이나 2020년을 공식으로 사용합니다. 성탄절과 연말연시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중요하게 여기며, 성탄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고 싶어 합니다. 1960년대 70년대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성탄절 이브에 와서 행사에 참석하고 성탄선물을 받고 나누는 행사가 유행이었고, 새벽송에서 받은 선물을 군부대, 경찰서, 교도소, 양로원에 가서 나누었습니다. 이 성탄절은 전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지난 추수감사절 때 감사인사를 나누었듯이 각 나라 성탄 인사를 함께 나눕시다. 각국에서 섬기시는 선교사님들이 인사말을 도와주세요(보충, 수정, 추가).

 

*일본: 메리 쿠리스마스 Merii Kurisumasu [クリスマス]

*중국: 솅탄지에 (쿠와일러) Shèngdànjié [圣诞节]

*인도: 숩 나야 바라스 Shub Naya Baras

*러시아: 스로체스토봄 크리스토빔 Srozhestvom Khristovym

*이스라엘: 모아딤 레심카 차나 토바 'Mo'adim Lesimkha. Chena tova'

*그리스(헬라): 칼라 크리스토게나 Kala Christougena

*아랍지역: 잇미라드 사이드와 사나사이다 I'd Miilad Said Oua Sana Saida

*터키: 노에리니즈 베 예니 이리니즈 쿠트루 올선 Noeliniz Ve Yeni Yiliniz Kutlu Olsun

*아프리카 스와힐리: 에엔 프레시리게 케르페스 Een Plesierige Kerfees

*스페인: 펠리쓰 나비닷 Feliz Navidad

*브라질, 폴투갈: 펠리쓰 나딸 Feliz Natal

*독일: 프뢸리히 베인아크텐 Frohliche Weinachten

*프랑스: 조이유 노엘 Joyeux Noel

*헝가리: 볼록 카락소니 Boldog Karacsony

*이탈리아: 부옹 바딸리 Buon Batale

*스웨덴: 글래드 율 Glad Yul

*노르웨이: 곳 줄 God Jul

*아이스랜드: 그레디렛 졸 Gledileg Jol

*루마니아: 사르바토리 페리시테 Sarbatori Fericite

*폴란드: 베소리치 스위앗 보제고 나롯제니아 Wesolych Swiat Bozego Narodzenia'

*세르비아: 흐리스토스 세 로디 Hristos se rodi

*필리핀 따갈로: 말리가양 빠스코 Maligayang Pasko

*인도네시아: 사라맛 하리 나탈 Selamat Hari Natal

*베트남: 니언지엡 노엘 쭉 지앙신 쭉 뭉 지앙신 nhan dip noel Chuc Mung Giang Sinh

*태국: 쑥싸-ㄴ 완 크릿쓰마아쓰 ssuk ssan oan Christmas

사와디 피 마이 Sawadee Pee Mai'

*체코: 베셀레 바노체 Vesele Vanoce!

*미얀마: 뾰쉰 차미엣바세 Pyawshwen chanmyeitbazay

*하와이 원주민: 메레 카리키마카 Mele Kalikimaka

*나바호 인디안: 메리 케쉬미쉬 Merry Keshmish

(스코틀랜드: 놀라익 크릿헤일 휘브 Nollaig chridheil huibh

 

“1. 탄일종이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곡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2.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다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오늘은 골로새서 3장을 강해합니다. 골로새서는 옥중서신으로 1-2장에서는 복음[교리]을 가르치며 3-4장에서는 복음의 생활화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윤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늘의 진리를 찾아 진리 가운데 삽시다.

 

1. 위엣 것을 찾으라(골 3:1-4)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1절의 그러므로(therefore = οὖν)란 1-2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비밀로 그분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에 3-4장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위에 것을 찾으며 새로운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찾는다 seek’는 원어(제테오 ζητεῖω zeteio)는 ‘얻기 위해 애쓴다, 열망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살 동안 무엇을 찾아야 합니까? 1974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CCC 엑스프로 74(8월 13~18일) 성회의 주제가 “나는 찾았네 I found”였습니다. 4 영리 전도훈련받아 서울시에 나가 종일 전도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전도 훈련받으면서 설명 듣기를 그리스의 철학자요 수학자요,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212)가 시라큐스 왕 히에로 2세(Hiero II)로부터 “이 금관이 순금으로 제작된 것인지 아니면 은을 섞어 만든 것인지를 알아내라”는 명령을 받고 고민에 빠져 있던 중 어느 날 목욕탕에서 물이 넘치는 현상을 보고 그 숙제를 풀 아이디어를 찾아내어 Eureka(유레카, εὕρηκα 나는 찾았네 I have found it)를 외치며 너무 기뻐 알몸 그대로 목욕탕을 나서 집으로 유레카, 유레카, 유레카라고 하면서 뛰어갔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당시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말씀을 듣고, 복음송가인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I’d rather have Jesus” (찬 94장)을 부르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찾은 것”에 대한 기쁨을 세상에 나가 전하며 전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인 예수님을 찾고 생각하며, 땅엣 것을 찾거나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엣 것’이란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6:29). 또 전도의 일이 예수님의 사명이며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막 1:38; 요 4:34). 또 우리의 거룩한 삶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4:3). 그러므로 우리가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주된 관심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두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순종하는 데 두고 천국에 두고 믿음의 일, 구원의 일, 전도하는 일, 거룩한 삶을 사는 일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땅엣 것’이란 세상 일, 육신의 일, 의식주에 관한 일, 직장 일, 세상 나라의 일,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일, 돈, 건강, 쾌락, 명예, 권세 등입니다. 땅엣 것을 찾거나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일시적이며 지나가는 것이고 불경건과 부도덕으로 더럽혀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땅엣 것을 찾거나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기 때문입니다.

3-4절에서 우리가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며 우리의 생명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고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2.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11)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covetousness, which is idolatry). 6 이것들로 말미암아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이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이라.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5절 ‘그러므로’라는 말은 우리의 생활이 그리스도의 구원 진리에 근거함을 나타냅니다. ‘땅에 있는 지체 your members which are upon the earth’는 우리의 몸을 가리키지 않고 우리 몸의 죄성을 말합니다. 그것은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등입니다. 단순히 몸의 학대인 금욕(禁慾)과 고행(苦行)은 성화를 위한 바른 방법이 아닙니다(골 2:18-23). ‘음란’은 정당하지 않은 모든 성행위를 가리킵니다. 성(性)은 정상적 부부 관계에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부정’(不淨)은 생각과 말과 행실에 있어서 더러운 것을 말합니다. ‘사욕’(邪慾)과 ‘악한 정욕’도 정당치 않은 감정과 욕망을 가리킵니다. 이 네 가지의 말들은 주로 성적인 죄악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음란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음란한 풍조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남녀관계를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탐심’은 주로 물질에 관한 말이다. 10 계명에서 탐심을 금합니다. 탐심은 이미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마음인데, 탐심은 하나님 대신 물질을 최고 가치로 두는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는 탐심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환경여건에 감사하고 자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6절에서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on the children of disobedience) 임하느니라”라고 합니다. 개역성경 혹 개역개정에서 ‘불순종의 아들들에게’란 번역을 생략했는데 이를 회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들’은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말합니다.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성도는 이런 죄악들을 회개했지만, 회개치 않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음란과 탐심의 죄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7-8절 우리도 과거에는 거듭나지 못할 때 음란과 탐심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 믿고 죄 씻음을 얻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옛 죄악성들을 다 죽이고 그 행위들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8절은 우리가 버려야 할 죄악들을 또 열거합니다. “곧 분과 노와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악의’(惡意)는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리키고 ‘훼방’은 말로 남을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끄러운 말’이라는 원어(아이스크로로기아 αἰσχρολογία aisxrologia)는 더러운 욕설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9-10절 ‘거짓말’도 버려야 합니다. 거짓은 매우 나쁜 악입니다. 거짓말은 마귀가 사용하는 것으로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속일 때 사용했습니다. 마귀의 근본적 특징은 거짓과 속임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특징은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하면 마귀에 속한 것이 됩니다. 9절의 ‘옛사람’은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정죄되었던 옛 자아를 가리킵니다. 10절의 ‘새사람’은 구원받은 새 자아를 말합니다. 그 새사람은 ‘우리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입니다.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을 때, 즉 거듭나서 새 생명을 얻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을 때입니다. 새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11절에 ‘거기’는 ‘새사람의 세계’를 말합니다. 거기는 이방인이나 유대인, 할례 받은 자나 할례 받지 않은 자, 야만인이나 문명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와 의(義)가 충족하며 그 외에 무엇이 필요치 않다는 뜻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구원의 충족한 원인이시요 조건이십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치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 하나님의 최대 선물이십니다.

 

3. 복음 안에 사는 사람의 모습(골 3:12-17)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2절,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성도들이 옛사람을 벗어버렸고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즉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생활화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구원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가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에 있습니다. 천하 만민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그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들은 먼저 ‘긍휼과 자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긍휼(mercies)과 자비(kindness)는 멸시, 학대, 악행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그것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또 이웃을 향해 긍휼과 자비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또 ‘겸손 humbleness of mind과 온유 meekness’를 가져야 합니다. 겸손과 온유는 긍휼과 자비의 심정을 가진 자에게서 볼 수 있는 덕입니다. 겸손과 온유는 교만, 높은 마음, 자랑, 과장, 이웃에 대한 멸시와 거친 말과 마음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며(딤전 3:6) 멸망의 선봉입니다(잠 16:18). 겸손과 온유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또 ‘오래 참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내해야 열매를 맺고 구원을 받습니다(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 13:4에서 사랑의 첫 번째 성격이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13절에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개역에서 ‘주’로 번역한 단어가 개혁자의 성경에서는 ‘그리스도’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혐의’라는 원어(몸페 μομφή momfe)는 ‘불평거리, 원망거리’를 말합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그것을 없었던 것처럼 간주해 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치 않는 자를 용서한다면 그것은 혼란만 초래할 것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8:15-17).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는 것은 12절에서 언급한 긍휼과 자비와 오래 참음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사랑의 첫걸음이요 기초입니다. 용서 없이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14절에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새 계명이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롬 13:8-10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하십니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 charity, which is the bond of perfectness’입니다. 사랑이 완전함의 띠라는 말은, 사랑 자체가 완전한 덕이라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랑을 통해 완전한 일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말합니다(벧전 4:8).

 

15-17절에서 복음 안의 새 생활은 감사하는 삶입니다. 15절 시작을 개역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인데 개혁자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평강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4:27).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말씀은 때때로 우리의 마음이 평강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염려하며 근심하며 불안해하고 심지어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즉시 우리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은혜를 간구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케 됩니다. 빌 4:6-7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하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살롬으로 채워지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서로 간에 원망과 불평을 가지는 대신에 하나님을 향해 또 서로를 향해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생각과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서로를 향해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16-17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성탄의 소식은 말씀이 우리 가운데 성육신 된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모든 지혜로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입니다. 시 119:98-100,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이 지혜가 있는 자는 남을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충만함과 지혜를 얻어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은 교회 생활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는 구약 시편을 가리키고, ‘찬미’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찬송 시들을, 또 ‘영적 노래들’은 기타 회개와 간증과 권면의 내용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찬송가의 노래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내용들뿐만 아니라, 또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며 믿음에 유익을 주는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라는 말(엔 카리티 ἐν χάριτι en xariti)은 ‘은혜로’라는 뜻입니다.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 곧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은혜에 관한 것이며, 그 은혜를 받은 자들만이 참으로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성도들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십니다(시 22:3). 시편은 우리가 ‘새 노래’ 곧 구원의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가르치며(시 96, 98편) 또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시 150:6). 히브리서 13:15은,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합니다. 또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며 그의 이름으로 기도도 찬송도 올리며 선한 봉사의 일도 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와 생명이시며 기쁨과 힘이십니다.

 

4. 복음의 생활화(골 3:18-25)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님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18-19절에서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의 의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submit)입니다. 그것이 주님 안에서 마땅합니다. 엡 5:22에 보면,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되 주께 하듯하라고 합니다. 남편의 위치는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위치에 비유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아내들도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엡 5:25에 보면,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가지셨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에 대한 의무는 훨씬 무겁고 중요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죽도록 희생하며 도우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괴롭게 하다 bitter’는 원어(피크라이노 πικραίνεσθε pikrainesthe)는 ‘가혹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의 대상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가혹한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괴롭게 해서는 안됩니다. 아내는 남편의 가장 귀한 몸의 일부분, 곧 갈빗대 하나로 만들어진 자로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입니다. 그는 남편이 사랑의 품으로 품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아내를 학대하는 것은 결국 자기 몸을 학대하고 자기 행복을 깨뜨리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자기 몸을 사랑하고 자기 행복을 위하는 지혜로운 일입니다.

 

20-21절은 부모와 자녀의 의무를 말합니다. 자녀의 의무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일, 즉 죄 되는 일 외의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주님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 순종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5 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부모를 멸시하고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였습니다. 신 21:18-21은, 그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은 그 부모가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성읍 장로들에게 고발하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돌로 쳐 죽임으로 그들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합니다. 신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라고 합니다.

21절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부모의 의무는 자녀를 격노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비들아’라는 말은 자녀 교육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아버지에게 있음을 보입니다. 물론 어머니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를 격노케 말라 provoke not your children to anger’는 것은 교육을 전제한 것입니다. 무관심하면 격노케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를 교육시키려고 할 때 그를 격노케 해서는 안 됩니다. 격노케 한다는 것은 성질을 나게 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보통 부당한 명령이나 처분에서 일어납니다. 부모의 정당한 명령과 처분에 화를 내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그러나 부모라고 해서 자녀에게 부당한 명령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리하게 또 감정적으로 대하면 자녀의 마음이 상하며 그것은 자녀 교육에 유익보다 해가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마음이 상하면 낙심하고 의욕을 잃고 열등의식을 가지고 자포자기하기 쉽고 반항적이게 되고 심지어 자살 충동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교육은 유익보다는 해가 됩니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는 책망하고 또 필요하다면 체벌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잠 13:24; 20:30; 22:15; 23:13-14; 29:15). 그러나 그때에도 무엇이 잘못인지, 왜 잘못인지, 자녀에게 충분히 이해시킨 뒤 매를 들어야지, 감정적으로 자녀를 다루어서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22-25절은 주인과 종의 의무를 훈계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시대에는 가정에 종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종들이 있었고(창 12:16), 욥에게도 종들이 있었습니다(욥 1:3). 예수님의 비유에도 종들이 등장합니다. 사람이 빚을 많이 졌을 때나, 전쟁 포로가 되었을 때, 흔히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들을 위해 안식년이라는 법을 주셔서 히브리 종은 6년간 일한 후에 제7년에는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출 21:2). 또 여종을 취한 주인은 평생 그에게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을 끊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출 21:10). 또 종의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아주게 하셨습니다(출 21:26). 잠 12:10은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라고 합니다. 오늘날 옛날 같은 종의 제도는 없지만, 새로운 형태의 주종(主從)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계약관계입니다. 직장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들 간에는 약속된 복종 관계가 있습니다.

 

종들은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일, 즉 죄짓는 일 외의 모든 일을 말합니다. 그 일은 합리적인 일일 수도 있으나 때때로 무리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종들은 주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육신의 상전들’이라는 말은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대조됩니다. 우리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세상에서 종들에게는 육신의 주인이 있습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거역하지 않고 잘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순종에는 말대꾸나 말대답이 합당치 않고 ‘예’만 필요합니다. 종은 자기의 잘못에 대해 많은 변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시정하는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23-25절에 종들은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쉬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나, 합리적인 일이나 무리한 일이나, 죄짓는 일만 빼놓고는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해야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해 준 소식 “큰 기쁨의 좋은 소식 good tidings of great joy”인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성탄의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복음의 사람은 새로운 생활을 살아가며 위에 것을 찾고, 새 사람 되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사랑, 평화, 감사, 순종, 희생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Merry Christmas! 임마누엘의 성탄!

 

[오늘의 기도]

오늘 베들레헴에 마리아의 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 기쁨으로 경배드립니다. 복음을 선물로 받은 이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새사람으로 거듭나 성탄의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게 하옵소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찬양하여라.” (찬 115장) Joy to the world! the Lord is come; Let earth receive her King; Let every heart prepare him room, And heaven and nature sing, And heaven and nature sing, And heaven, and heaven, and nature sing.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베드로 고백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마 14:28-33)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베드로 고백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마 14:28-33)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베드로 고백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 있

kihonsam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