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3장에서는 에서와 야곱의 화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장정 400명을 이끌고 야곱에게 왔을 때 야곱은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풀어주니 야곱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얼굴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하나님의 얼굴로 변화기 시작합니다.
에서와 야곱의 화해(창 33:1-20)
에서가 야곱을 환영함(1-7)
• 33:1-2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형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을 야곱이 눈을 들어보고 다시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때에 두 여종과 자녀들을 앞세우고 그 다음에 레아와 그 자식들을 두고 맨 뒤에는 라헬과 요셉을 두었으며 야곱은 맨 앞에 나아갔다.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둔 것은 그들을 제일 귀중히 여기고, 만일 에서가 죽이려 하면 먼저 도망치게 하려는 심사였다. 야곱이 이렇게 한 것은 벧엘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인본주의 수단이다.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승리자)이라는 이름을 주셨으나 야곱이 또 다시 옛날 야곱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렇게 된 것은 야곱이 이스라엘의 신앙에 굳게 서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는 자리에 돌아간 것과 같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운 것과 같다(벧후 2:22).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길은 하나님께서 명령한 길이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길이다(31:3,13). 야곱이 이것을 믿었다면 인간의 유치한 수단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33: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야곱이 형을 향하여 땅에 몸을 일곱 번 굽힌 것은 아부하는 태도이다. 이것도 너무 지나치고 간사한 행동이다.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형을 영접하였더라면 이와 같은 아첨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에서는 전에 야곱에게 품었던 복수심을 다 버리고, 동생 야곱을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에서가 동생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고 환대한 것을 보면 야곱보다 인간성이 훨씬 낫다. 또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감동시켜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품게 해주신 것이다.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려고 출발할 때는 야곱을 해하려는 심정이었을지 모르나 도중에 하나님이 감동시켜 야곱을 해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징계하려고 하다가도 그 사람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그 원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여 해하지 못하도록 역사하신다(잠 16:7). 사울도 다윗을 죽이려고 3000명을 거느리고 찾아왔다가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도리어 다윗을 축복하고 돌아갔다(삼상 24장). 또 잠언21:1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洑)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했다.
• 33:5-7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때에 여종들이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레아도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야곱이 처자들을 형 에서에게 차례로 나와 절하게 하고 요셉과 라헬은 맨 나중에 나가서 절했다. 형에게 가족들을 인사시킨 것은 좋으나, 자기는 조금 전에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혀 절한 것은 너무 지나치게 아부한 것이다.
야곱이 에서에게 예물을 드림(8-11)
• 33:8-11 에서가 또 가로되 나의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가로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가 야곱을 만나기 전에는 야곱이 선물로 보낸 짐승의 떼들을 사양했다. 그러나 야곱이 형에게 은혜를 입기 위하여 예물로 드리려는 것이라고 말하며 강권하므로 받았다.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이 말은 아첨하는 말이요, 형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 매우 잘못된 말이다. 형 에서가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터인데 야곱이 하나님께는 감사하지 않고, 계속 형에게 아첨하였다.
에서의 호의와 야곱의 사양(12-16)
• 33:12-13 에서가 가로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에서가 야곱의 길잡이가 되어 길을 인도하겠다고 했으나, 야곱은 자식들이 유약(幼弱)하고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 33:14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야곱이 세일로 가서 형 에서에게 나아가겠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다. 사실 야곱은 세일로 갈 생각이 아니었다. 에서가 떠난 후에 숙곳으로 간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야곱은 형이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호의를 베풀어주었으나 여기서 또 형을 속였다. 이스라엘의 신앙(32:28)은 다 내어버리고 여전히 야곱의 옛 생활을 계속했다.
• 33:15-16 에서가 가로되 내가 내 종자 수인을 네게 머물리라 야곱이 가로되 어찌하여 그리 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회정하고
에서가 야곱에게 호의(好意)를 베풀어 자기 종 몇 사람을 남게 하여 야곱을 보호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야곱이 또 거절했다. 야곱이 형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형이 떠나자마자 숙곳으로 간 것은 형을 속인 간사한 행동이었다.
야곱이 숙곳과 세겜에 머무름(17-20)
• 33: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야곱이 속곳에 이르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것은 형과의 약속을 어겼을 뿐 아니라, “가나안 땅 곧 네 조상의 땅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다(31:3, 13). 야곱의 출생지는 브엘세바였으므로(26:23, 33)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떠날 때, 그 부모가 거기 거했고, 지금은 이삭이 헤브론에 거하였다(35:27). 야곱이 그곳으로 가서 부친을 뵈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숙곳에서 집과 우릿간을 짓고 정착한 것은 그곳이 양치기에 좋은 곳이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나아가다가 도중에 그 말씀을 어기고 세상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야곱이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산 것이 큰 잘못이다. 조부 아브라함은 장막 생활을 하며 천성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야곱은 세상을 바라보고 집을 지었다. 야곱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 나아가다가 자기 형편에 따라 육신의 좋은 대로하였다. 이것은 롯이 소돔, 고모라 땅의 좋은 것을 보고 그곳을 택하여 간 것과 같다.
• 33: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로 밧단아람에서 평안히 가나안에 도착하여 장막을 쳤다. 야곱이 아마 숙곳에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 을 깨달았던 것 같다. 야곱이 세겜까지는 왔으나 아직도 부친이 계신 곳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리하여 34장에서 또 한번 큰 징계를 받게 된다. 잠언 29:1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다(시 49:20 참조).
• 33:19-20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 백 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세겜성 앞에 장막을 치고 그 밭을 은 100개를 주고 산 것은 잘못이다. 그 이유는 ① 숙곳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으며, ② 야곱이 아직도 부친이 있는 곳에 가려면 좀 더 가야 되며, ③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신 바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겜은 야곱이 정착할 곳이 아니다. 야곱은 그곳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야곱은 자기가 이스라엘 생활은 하지 않으면서 이 제단 이름을 이렇게 부른 것은 알맹이 없는 피상적 명칭(皮相的名稱)이다. 야곱의 신앙생활은 아직도 의식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장(34장)에서 징계를 받았다.
[마태복음 7장 산상수훈 강해 설교 말씀] 티와 들보(마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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