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3장에서는 욥의 결백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욥은 지금까지 정직하게 살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갈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에 탄식하고 있습니다.
욥--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욥 23:1-17)
[1-5절]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 . . .
욥은 대답하여 말한다.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그의 손](NASB, NIV)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 앞에서 호소하며 변백[변론]할 말을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라.”
욥은 극심한 재앙의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 나아가 호소하기를 원하며 또 고난의 이유를 알기를 원한다. 우리는 고난 중에 낙심치 말고 하나님과 멀어지지 말고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환난 때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시편 50:15에 약속하셨다. 야고보서 5:13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교훈한다. 고난당할 때가 곧 하나님께 기도할 때이다. 또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말한다(약 4:8).
주께서는 불의한 재판관 비유에서 우리가 고난 중에 낙망치 말고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눅 18장). 그러나 기도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믿음이 있어야 고난 중에 낙망치 않고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굳게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6-7절]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어 다투실까? 아니라. . . .
욥은 말하기를,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어 다투실까? 아니라.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영히 벗어나리라”고 한다. “내 말을 들으시리라”는 원문(야심 비)은 “내게 [힘을(KJV) 혹은 관심을(NASB)] 주시리라”는 뜻이다. 욥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이 많으시지만 무조건 피조물들과 그 권능으로 다투며 위협하지 않으신다. 그는 겸손히 그에게 나오는 자를 용납하신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감히 전능자 하나님과 변론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뢰었다(창 18:23, 27).
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셨다(사 1:18).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과 변론하기를 원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37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셔서 그에게 나오는 자들을 용납하시고 회개하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정직한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시편 34:8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였고, 시편 65:2는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말했다.
[8-9절]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 . . .
욥은,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섬길 때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요 4:24). 영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16에서 하나님을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라고 표현하며 증거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무한하신 영이시다.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다(렘 23:24).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않는다”고 고린도후서 5:7에서 말하였고, 히브리서 11:27은 모세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다”고 증거하였다.
신자는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지금 보이지 않는 내세의 영광의 천국을 믿고 소망한다. 이사야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로마서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고린도후서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 . . .
욥은 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한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이라는 원어(베카나니)는 단순히, ‘그가 나를 시험하셨으니’라는 뜻이다(BDB).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신다”고 말한다. ‘나의 가는 길’이란 그가 이제까지 생각하고 소원하고 뜻한 것, 그가 이제까지 걸어온 길, 그가 지금도 걷고 있는 길을 가리킨다. 욥의 친구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를 오해하고 그릇되이 비방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과 그의 길을 정확히 아신다.
또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한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이라고 번역하면 그가 그 시련을 통해 그의 인격이 단련된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환난과 시험이 성도의 인격을 단련시키며 온전케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로마서 5:3-4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문은 단순히, “그가 나를 시험하셨으니(혹은 시험하셨다면)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뜻이라고 본다. 그것은, 그가 앞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 그의 당한 환난의 일에 대해 하나님께 묻고 공정한 판단을 받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친구들의 비난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증거해 주시기를 원한 내용에 이어진다고 보인다(Matthew Poole, Matthew Henry, 재미슨-포셋-브라운 주석). 욥은, 그의 마음과 그의 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셨으니, 그가 정금 같은 자로 인정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11-12절]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 . . .
욥은 또 말한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욥은 자신의 발이 그의 걸음 곧 하나님의 명하신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그의 길 곧 하나님의 명하신 교훈을 지켜 치우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걸음’ ‘그의 길’은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가리킨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교훈대로 살아야 한다. 잠언 6:23은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말했고, 시편 119:105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증거하였다(딤후 3:16).
욥은 또 그의 입술의 명령 곧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아니하였고 일정한 음식 곧 날마다 그에게 필요한 양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양식에 비교하였다. 우리가 육신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일정한 음식을 먹듯이, 우리는 영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야 한다.
주께서는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4:4).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며 그 말씀을 묵상하고 힘써 지켜야 한다. 주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고(마 28:20), 사도 바울은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교훈하였다(살후 2:15).
[13-17절]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 . .
욥은 또 말한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뜻이 일정하다’는 원어(베에카드)는 ‘한 마음을 가지신다’(in one mind)(KJV) 혹은 ‘유일하시다’(unique)(NASB)는 뜻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한 마음, 변치 않는 마음, 일정한 뜻을 가진 유일하신 자이시다. 그와 비교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의 뜻을 돌이킬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을 다 행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시편 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그는 욥을 향해 작정하신 것을 다 이루실 것이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다.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 . .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사 46:10-11).
욥은 또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며 전능자가 나로 두렵게 하시나니 이는 어두움으로 나를 끊지 아니하셨고 흑암으로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셨음이니라.” 17절은 다시 번역하면, “이는 내가 어두움 앞에서 끊어지지[죽지] 아니하였고 그가 어두움을 내 얼굴에서 가리지 아니하셨음이라.” 지금 욥은 주권자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며 또 낙심한다. 그는 죽기를 원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고 그 대신 이 혹독한 고난을 경험케 하셨다.
욥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았다.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는 자,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를 결코 물리치지 않으실 것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의 가는 길을 아신다고 확신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일정한 뜻을 가지셨고 그의 작정하신 것을 다 이루실 것을 믿었다. 욥은 지금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연단의 기회이었다. 그는 그것을 통해 정금같이 성화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길로 가고 있음을 믿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우리도 고난을 통해 정금같이 나올 것을 믿자.
욥은 평소에 하나님의 교훈을 따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일정한 음식보다 귀히 여겼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을 힘쓰자. 매일 성경 읽는 일을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자.
[신약 히브리어 성경 마태복음] 산상수훈 기도 예수님 말씀(마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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