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누가복음 15장 하나님 말씀] 탕자의 비유(눅 15:11-32)

기혼샘 2020. 10. 3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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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15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탕자의 비유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두 아들과 아버지 비유(눅 15:11-32)

 

설교 내용

본문의 비유를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탕자 비유라는 이름이 충분하거나 꼭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적절하게 이름을 붙이자면 두 아들과 아버지 비유라고 할 것입니다. 이야기의 기록된 분량은 짤막한 것이지만 그 속에 함축되어 있는 메시지는 다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풍부하고 보배롭습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감동과 은혜가 항상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 시간 본문을 상고하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둘째 아들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나아가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하였습니다. 아마도 지독하게 졸라대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어코 목적을 달성하게 되자 며칠이 못되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아버지의 눈길이 닿지 않고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먼 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둘째 아들을 통하여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 하여 멀리 떠났던 둘째 아들에게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게 되며 여러분과 저의 본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진실한 의미에서의 독립이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창 3:1-6)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부터 마귀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뱀의 말에 솔깃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되자 그날부터 인간은 마귀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말았습니다.(엡 2:2)"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하나님만이 독립적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3,14)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은 방탕한 나날을 보내며 쾌락을 즐기었습니다. 이제는 그의 행동을 제한하고 간섭할 자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던 무엇을 하든 제 멋대로 할 수 있으니 자유분방한 생활을 만끽했습니다. 그리하여 한동안은 방탕한 생활의 쾌락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방종의 생활 다음에는 흉년과 궁핍이 필연적으로 다가옵니다.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니 드디어 무일푼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사방을 헤매며 호구지책을 구한 결과 겨우 얻게 된 것이 들에서 돼지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로 얻은 것으로는 주린 창자를 메꿀 수 없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여도 그 조차 허락되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짐승보다 더 비참한 지경에 처한 자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이란 실은 흉년과 궁핍 그대로입니다. 인간은 변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과 평안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이유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삶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은 심령의 공허와 피폐함을 삶의 연륜이 더해 갈수록 심각하게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둘째 아들을 통하여 동물적 삶으로 전락한 인간에게 회복의 길이 있음을 계시하셨습니다.

 

그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을 통하여 참된 회개의 자세를 보여 주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의 실상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5:17) 그리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15:18,19) 드디어 결단을 내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15:20) 그리고 아버지가 그를 용납하고 베풀어주는 사랑과 은혜를 전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15:22, 23)

제일 좋은 옷, 가락지와 신, 그리고 잔치 이 모두는 아들 됨을 나타내는 분명한 표시입니다. 우리가 취할 합당한 태도는 회개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신의 비참한 실상을 깨닫고, 자신의 추악한 죄악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결단을 내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감격하며 받아 드려야 합니다.

 

먼저 제일 좋은 옷을 받아 입습니다. 제일 좋은 옷은 의의 옷을 가리킵니다. 인간 행위의 옷은 추하고 냄새나는 누더기 옷입니다.(사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롬 10:2,3)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의의 옷은 하나님께서 거주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는 길뿐입니다.(사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가락지를 끼고 신을 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됨을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잔치에 참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사로 풍성한 잔치를 맛볼 뿐 아니라 장차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께서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용서와 은혜를 감격하며 받아 드린 것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와 은혜를 기쁨과 감격으로 받아들이고 누리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맏아들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맏아들이 종일 밭에서 일하다가 땀 투성이,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가까이 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몹시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종을 불러 무슨 일인가를 물었습니다. 종이 대답하기를 "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그의 눈에서 불꽃이 번쩍 튀었습니다. "원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담" 하고 노하여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달려 나와서 맏아들의 손을 잡고 어서 들어가자고 권했습니다. 맏아들은 볼멘소리로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15:29,30)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매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맏아들은 즐겁고 만족한 마음으로 살아가며 잔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십시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몹시 인색한 아버지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하였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절제와 희생만 강요하는 분으로 오해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오해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종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 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4-2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생과 봉사만 요구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오해를 불식하도록 하십시오.

 

맏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없었습니다. 기대가 없으니 또한 요구가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부유하였으므로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는 품꾼 조차도 양식이 풍족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인데도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실제로 무엇을 요구해 보지도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맏아들에게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 하였습니다. 만약 맏아들이 자기 친구들과 즐기기 위해 염소 새끼를 기대하고 구했더라면 기꺼이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부요하고 풍성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의 광대함과 다양함과 풍부함. 구원으로의 무제한적 부르심.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13) 천국의 아름답고 찬란함.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크고 많은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시 81:10,11)

 

맏아들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보다 율법적인 판단이 앞섰습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15:30) 동생을 배척하거나 처벌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용서와 은혜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백하는 아들에 대한 것이지 자기 타당화하고 나서는 뻔뻔스러운 아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자를 용서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긍휼 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맏아들은 동생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이 있었습니다. 시기, 질투란 그릇된 자존심과 경쟁심에서 비롯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삶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 가인의 불행

맏아들은 아버지의 권위와 뜻을 받아들일 줄 몰랐습니다.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15:28-30) 맏아들이 아버지에게 따지고 항의한 것은 아버지를 자기중심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대로 사용하는데 맏아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알아야 합니다.

 

* 포도원 주인과 품군들 (마 20장) 이른 아침 : 오전 9: 정오 : 오후 3: 오후 5

"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 20:10-12)

"주인이 그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3-15)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의 권위와 뜻을 좇아 행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맏아들은 어느 면에서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깝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아버지의 뜻과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게 허락된 특권을 향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맏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즐겁고 만족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울하고 불만족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잔치석에 참예하는 것을 거부하는 문 밖에 서서 투덜대는 맏아들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복과 은혜를 온전히 향유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아버지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비유 가운데 계시된 아버지의 진실한 모습을 네 가지 방면에서 말씀하여 드리겠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를 강압적으로 머물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적으로 살도록 만들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택의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창 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택은 자유지만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신 30: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가면 반드시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아버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 사랑과 섬김이 자발적인 것이 아닌 강압적인 것일 때 이는 더욱 큰 고통과 불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원하십니다.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길이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사랑.(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루가 천년 같고 :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천년이 하루 같고 : 지치지 않는 열심으로 기다리는 마음.

 

돌아온 아들을 기꺼이 맞이하시고 잔치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은혜와 사랑이 지극하신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방탕한 아들은 자기의 죄와 어리석음을 깨닫고 아버지의 집을 사모하여 아버지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과연 그를 용납해 주실 런지 알 수 없어서 아버지를 만나서 할 말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15:18,19) 탕자는 최소한의 용납을 기대하며 돌아오나 아버지는 노하지도 않고 질책도 하지 않았습니다. 방탕한 아들이 돌아올 때 이를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십시다.

 

사랑의 눈길이 있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사랑의 마음이 있습니다. 측은히 여겨

사랑의 발길이 있습니다. 달려가

사랑의 팔이 있습니다. 목을 안고

사랑의 입이 있습니다. 입을 맞추니

아들이 저를 품군의 하나로 삼아주소서라는 말을 마저 할 필요가 없도록 급히 소리쳐 종들에게 아들에게 행할 일을 지시하였다.

사랑의 선물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눅 15:22)

사랑의 잔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용서할 때 그 사람의 과오를 지적하고 한 마디 교훈이라도 하기 마련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왜 너는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와 함께 기거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 는 꾸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가 지은 모든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완전하고 철저한 용서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 7:19)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하나님은 이토록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평소에 아버지를 잘 섬긴 맏아들을 위하여 최상의 배려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참 좋으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이 성실하기는 하나 이해력이 좀 부족하여 동생의 일로 속상하게 생각하고 아버지의 처사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매우 부드럽게 대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자상하게 설명했습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지금까지 우리는 아버지와 두 아들에 대한 비유 속에 계시된 은혜와 진리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며,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한 분이신가를 배웠습니다. 이 보배로운 지식이 여러분의 삶 속에 적극적으로 적용되므로 정녕 복 있는 사람이 되고, 또한 그 모든 행복을 향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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