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요한계시록 3장 설교말씀] “흰 옷을 입어라”(계3:1-6)

기혼샘 2020. 11. 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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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3장 설교말씀 중에서 흰 옷을 입으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흰 옷을 입으라는 말씀은 사데 교회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죽어있는 교회입니다. 겉사람은 살았지만 속 사람은 죽어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극소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육적으로는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하여 죽어있다면 주님께 책망을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혼이 깨어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흰 옷을 입어라”(계 3:1-6)

 

명제: 흰 옷을 입은 자는 선택받은 자이다.

목적: 육으로는 살아있지만 영으로 죽은 자는 흰 옷을 입을 수 없다.

 

주님께서 밧모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시면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영적인 상황과 형편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편지를 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데 교회는 다섯 번째 교회입니다. 숫자 5는 은혜, 기적, 고통을 의미하고 있는 숫자입니다.

사데 교회는 처음에는 에베소 교회처럼 복음의 열정이 뜨거웠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영으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던 교회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교회가 부흥되고 돈이 많아지면서 영적으로 힘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육신적 쾌락과 향락에 취해 살아가는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영적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 영적으로 죽은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데는 ‘남은 자또는 남은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두아디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65Km정도 떨어진 도시입니다. 사데 도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과 은으로 동전을 만들어 사용했던 곳입니다. 사데 보다 더 문명이 발달한 나라들도 동전을 만들어 쓰지 못했는데 사데 도시는 왕위 표시인 사자 머리가 새겨져 있는 동전을 사용했습니다.

 

사데 도시의 주된 신앙대상은 키벨레 여신이었습니다. 사데 도시도 에베소와 같이 크게 아데미 신전을 세웠습니다. 사데 도시도 우상을 섬기던 장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황을 아시고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1세기 중반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의 제자이며 일곱 집사 중의 한 명인 클레멘트가 사데 교회의 처음 감독이 되었습니다. 2세기경에는 사데 교회의 감독으로 멜리톤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의 상황을 아시고 진단하시며 깨우치라고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에 편지를 쓰는데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7이라는 숫자적 의미는 완전과 성령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이며 성령님과 함께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별은 무엇입니까? αστηρ(아스테르 792) 별을 말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별을 신성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분인 것을 말합니다. 고대 사람들이 별을 경배했듯이 예수님은 경배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별은 כוכב(코카브 3556)입니다. 그럼 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십자가에서 양손에 못 박히시고 복음의 말씀을 주셔서 영적으로 죽었던 자들을 살리시고 하나님과 혈연의 관계를 맺게 해 주신 예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권세 자이신 예수님께서 편지를 보내시면서 너희들의 모든 행위를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두려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눈을 피하여 숨길 수 있지만 주님의 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아노니’ ειδω(에이도 1492) 알다, 경험하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완료, 능동태, 단수, 1인칭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사데 교회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처음 시작은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영적으로 풍성했던 교회입니다.

 

하지만 사데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 같이 처음에는 뜨겁게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영적으로 죽어가는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물질의 풍성함으로 인해 결국 죽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완료를 써서 나는 너희가 지금까지 신앙생활한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단수를 써서 주님이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데 교회의 신앙 상태와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이미 주님은 아셨습니다. 복음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쾌락을 기뻐하였고 향락과 물질만능주의에 흠뻑 빠져 흥청망청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이유가 돈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신앙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1인칭은 주님과 1:1로 구원을 받아야 할 인생들이 주님을 버리고 세상을 선택한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데 교회는 육신적인 것을 채우기에 바쁜 교회가 된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말씀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씀이 난무했던 교회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를 표현하기를 살았다고 말하는 이름은 있지만 죽은 교회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죽은 교회라는 것은 주님과 상관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 단절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뱀의 미혹에 빠져 따먹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육으로는 930세까지 자식을 낳고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은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입니다. 관계성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면 개인으로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작은 아들이 유산을 가지고 먼 타국으로 떠난 것을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로 보았던 것입니다.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떠나는 순간 죽었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미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영적으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육으로는 살고 있지만 영으로는 주님과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주님과 같은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잡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뜻은 사데 교회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당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빠져 우상을 섬기면서 설렁설렁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 주님을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일사각오의 마음을 가지고 헌신하던 성도가 결국 순교당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이미 알고 계시고 사데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순교당한 자들이 붙잡았던 복음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의를 붙잡고 회개하여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의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온전하지 못함으로 옳은 행실을 찾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주님 앞에 서야 합니까? 부와 명예가 하늘을 찌를 때에 정말 순수한 마음을 갖고 주님을 섬겨나가야 합니다. 세상의 쾌락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고 매일 나를 죽여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자신의 명예와 지식을 모두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었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낮추고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했던 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 오직 주님만을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자랑을 죽이고 교만과 오만을 매일같이 죽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을 높이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주님께서는 네가 어떻게 복음을 받았는지 생각하고 들었는지를 깨닫고 말씀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받았으며’ λαμβανω(람바노 2983) 취하다, 받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완료, 능동, 단수, 2인칭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주신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완전히 취하고 내 것으로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영접하다’ δεχομαι(데코마이 1209) 영접하다, 받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손님을 모셔 들인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님은 언제라도 떠나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구원을 완전하게 완벽하게 나의 것으로 취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도둑같이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온전한 회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회개를 할 때에 행동의 변화와 삶의 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회개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로만 하고 행동으로 열매가 없는 것은 회개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회개는 행동의 열매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쾌락에 빠져 살았다면 다시 주님께로 온전하게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도둑같이 임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알지 못하는 시간에 와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와도 세상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만 빠져 살다가 자신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죽는 것입니다. 한심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결국 심판받고 불 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주님은 사데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 몇 명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숫자가 아주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데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옷을 더럽히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적은 숫자들이 복음을 붙잡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오직 주님을 위해 죽고 사는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을 말씀합니다.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의로운 행실을 하면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데 교회에 이렇게 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극소수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이 시대도 구원받은 백성들이 아주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두가 세상에 빠져 인생을 살아가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옳은 행실을 따라가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적은 숫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적은 숫자에 들어가 선택받아 구원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주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즉시 따라가는 것이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리더가 명령을 내리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살아있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우리는 즉시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3:5-6)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의 흰색의 개념은 순결, 정결, 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속죄의 개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결하게 아무 흠이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은 흰 에봇을 입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흰 옷을 입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죄가 사라지고 정결케 된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대속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과 함께 세마포 옷을 입고 영원히 생명 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백성의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주님이 직접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님이 직접 대리자가 되어 나의 이름을 대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귀가 열린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구원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결국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나의 신앙은 오직 주님을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행실을 온전하게 하여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께 기쁨이 되는 신앙이 되고 주님을 높이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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