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로마서 4장 성경 주석 설교말씀] 아브라함의 믿음(로마서 4:1~25)

기혼샘 2022. 5. 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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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인이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된 것을 말씀합니다. 할례를 받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도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제목: “아브라함의 믿음” (롬 4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로마서 4:1~25

 

요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롬 4:3)

 

주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히 믿어 의롭다 여김을 받자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희망의 초 The Candle of Hope”(보라색)를 켜서 밝은 세상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기억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초를 켭니다. “평화의 초 The Candle of Peace”(보라색)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메시야 오심을 예언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다음 주일은 성경 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로마서 4장을 강해합니다. 3장 24-28절에 있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의 뿌리가 창 15:6에 있는대로 아브라함이 아무런 자식이 없어도 하늘의 별들처럼 많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에 있음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인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 시작되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이 1-4장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과 의인화 (롬 4:1-3)

 

(1) 그러면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우리가 말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느니라. (4)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5)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 (6) 이것은 또한 다윗이 행위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를 인정하시는 사람의 복됨에 관해 묘사하여 (7) 이르되, 자기 불법들을 용서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8) 주님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1-3절.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실에 대해 아브라함을 예로 들며 창세기 15:6을 인용합니다. 율법의 행위란 할례, 안식일 준수, 계명 순종 등을 말하는데 이중에서 특히 할례를 지칭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주시며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창 12:2)고 하실 때 그는 매우 기뻤고 희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새로운 땅에 대한 약속과 복의 기업에 대한 관심보다 자식을 낳게 되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이 제일 귀에 번쩍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자녀는 금방 주시지 않고 아브라함도 인내의 한계를 느낄 즈음에 어느 날 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하시니 아브람이 대답하시를, “주 하나님이여, 무엇을 제게 주려고 하시나이까? 저는 아이가 없사오며 저의 집의 청지기는 다마스커스에서 온 이 엘리에셀이니이다, 보소서, 주님께서 제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은즉, 보소서, 제 집에서 태어난 자가 제 상속자이니이다,”(창 15:2-3) 합니다. 창세기 12-14장에서 아브라함이 직접 하나님과 대화한 기록이 없으나 15장에서 처음 하나님께 묻는 질문과 건의입니다. 그만큼 그동안 그가 마음 고생한 속내를 드러내는 발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방패와 상급이 되실 것이라는 말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가 가장 원하던 자식에 대한 약속은 언제 주시렵니까?는 말속에 섭섭함과 조급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와 아내가 나이가 들수록 자녀에 대한 희망을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풍습은 부인에게 자식이 없으면 집안에서 대표적인 종이 상속자가 됩니다. 그래서 다마스커스(다메섹, 시라아의 수도)에서 온 종인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까?라는 건의는 불신과 불만과 불평의 발언처럼 보입니다. 육체적으로 자식을 낳은 가능성이 사라진 아브람과 사래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갑니다. 여기서 ‘엘리에셀 Eliezer’이라는 단어는 그 뜻이 ‘나의 하나님은 도우심’ 혹은 ‘나의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이란 말입니다(창 15:2, 24:2) 신앙고백적 이름으로 보입니다. 아마 아브라함 집안의 가훈(家訓)인 듯합니다. 이 이름이 너무 좋아 모세도 자기의 둘째 아들 이름으로 지었고(출 18:4, 대상 23:15, 26:25), 드라와후의 아들로서 여호사밧 시대의 선지자의 이름이었고(대하20:7), 베냐민 지파의 한 가장인 베겔의 아들 이름이었고(대상07:8), 다윗왕 때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실 때의 제사장의 한 사람 이름이었고(대상15:24), 르우벤 지파의 한 방백인 시그리의 아들 이름이었습니다(대상27:16). 에스라 시대의 족장 이름이었습니다 (스 8:16). 히브리어 알파벳 한자 한자에는 숫자의 가치가 있습니다. 숫자에 의한 문자 풀이법은 바벨론의 사르곤 2세(B.C.723-705) 시대의 비명을 통해 알려져 있는데 이를 게마트리아(gematria, 數秘學)라고 부릅니다. A.D. 1세기경 유대교 랍비였던 엘리에셀은 게마트리아의 본질적인 요소는 문자가 수를 나타내고 수가 문자를 나타낸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22자인데, 처음 10자는 차례로 1부터 10까지의 수를 나타내고, 다음의 8자는 차례로 20부터 90까지의 10단위 숫자를 나타내며, 나머지 4자는 차례로 100부터 400까지를 나타냅니다. 히브리어 철자를 보고 숫자를 계산하여 뜻을 알아내는 방법입니다. ‘엘리에셀 אֱלִיעֶזרֶ’의 알파벳 6글자를 합산하면 318이 나옵니다[1+30+10+70+7+200=318]. 아브라함의 종이 왜 318명인지(창세 14:14)의 비밀이 풀립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이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요, 오직 네 배속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창 15:4).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창 15:5) 4000년 전 당시 밤하늘에는 공해도 요즘보다 적은 시절 별이 많이 보였을 것입니다. 육안으로 별이 몇 개나 보일까요? 갈릴레오(Galileo Bonaiuti, 1370~1450)는 망원경을 발명하여 30배 확대해서 우주를 관찰했습니다. 중세 때 팡세를 쓴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육안으로 최대 약 2,200여개 별이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더 많은 별들을 관측하였을 것입니다. “네 후손이 이와 같이 많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람은 믿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자식이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100%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이를 의(義righteousness)라 여기셨습니다(창 15:6). 아무것도 없지만 믿음의 눈으로 밤하늘의 찬란한 별들을 바라보니 자기의 자손으로 보인 것입니다. 여기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 기원된 것입니다(롬 1:17, 갈 3:10, 히 10:38).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진리는 성경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진리대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법칙은 교회의 전통적 교리나 어느 사람의 교훈이 아니고 오직 성경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성경의 교훈대로 살아야 합니다.

 

4-5절.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 ‘일’이라는 말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일하는 자가 받는 삯은 은혜가 아니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이 사람의 의로운 행위에 근거하였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닐 것이지만, 의로운 행위가 없었을지라도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믿음이 의로 간주되었으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과 행위는 서로 대조되고 구별됩니다. 믿음은 행위와 다릅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에게 의로운 행위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참 믿음은 경건하고 의로운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위는 불완전하므로 사람이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행위로 말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고 구원을 받을 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구속(救贖)의 은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와 구별되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율법의 행위와 별개로 얻은 의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라는 말(코리스 에르곤 coris ergon)은 ‘행위들과 별개로’라는 뜻입니다.

6-8절. “이것은 또한 다윗이 행위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를 인정하시는 사람의 복됨에 관해 묘사하여 이르되, 자기 불법들을 용서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주님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행위와 별개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증거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합니다. 시 32:1~2에 “자기 범죄를 용서받고 자기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영 안에 간사함이 없고 주께서 불법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말씀합니다. 사람은 죄가 없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죄의 사함과 가리움을 받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칭의(稱義)는 사람의 의로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2. 믿음의 의는 할례와 무관하다(롬 4:9-)

 

(9) 그러면 이 복됨이 할례자에게만 임하느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 임하느냐? 이는 그분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의로 간주하셨다고 우리가 말하기 때문이라. (10) 그런즉 그것을 어떻게 의로 간주하셨느냐? 그가 할례 받은 때였느냐, 할례 받지 않은 때였느냐? 할례 받은 때가 아니요, 할례 받지 않은 때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적 곧 아직 할례 받지 않은 때에 그가 소유한 믿음의 의를 봉인한 표적을 받았으니 이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는 아니하였으나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어 의가 그들에게도 인정되게 하려 함이요, (12) 또 할례자들에게 속할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 받지 않은 때에 소유한 그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자들에게 할례의 조상이 되려 함이라.

 

9-10절.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할례 받기 전이기에 할례와 칭의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창세기 15장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건이 나오고, 창세기 16장에는 그가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라고 증거하며, 창세기 17장에는 할례에 대한 언약이 나오고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이 99세 때라고 증거합니다(17:24).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때는 그가 할례를 받기 전, 적어도 13년 전이었습니다.

 

11-12절. “그가 할례의 표적 곧 아직 할례 받지 않은 때에 그가 소유한 믿음의 의를 봉인한 표적을 받았으니 이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는 아니하였으나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어 의가 그들에게도 인정되게 하려 함이요, 또 할례자들에게 속할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 받지 않은 때에 소유한 그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자들에게 할례의 조상이 되려 함이라.” 아브라함의 할례는 그의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자의 조상이라고 할 때, 그 할례자는 육신적 할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고 그 후손이 온 세계에 충만하리라는 약속은 그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할례를 받았든지 받지 아니했든지 문제가 아닙니다.

 

3. 믿음으로 성취된 약속(롬 4:14-25)

 

(13)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나 그의 씨에게나 율법을 통해 주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의 의를 통해 주어졌느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가 되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그 약속은 효력을 잃게 되느니라. (15) 이는 율법이 진노를 이루기 때문이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죄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그것이 은혜로 되게 하려고 믿음에서 나나니 그 목적은 그 약속을 모든 씨에게 확고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은 곧 율법에 속한 자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에게 그 약속을 확고하게 하려 하심이니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 (17) (이것은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았느니라,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그것들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 믿었으니 이것은,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그가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되려 함이라. (19) 그가 백 세쯤 되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이제는 죽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20) 믿음이 없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이 강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또한 능히 이행하실 줄로 온전히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23)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다고 기록된 것은 이제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24) 우리가 예수 우리 주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을 믿을진대 그것을 의로 인정받을 우리도 위한 것이니라. (25) 그분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13-16절.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나 그의 씨에게나 율법을 통해 주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의 의를 통해 주어졌느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가 되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그 약속은 효력을 잃게 되느니라. 이는 율법이 진노를 이루기 때문이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죄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것이 은혜로 되게 하려고 믿음에서 나나니 그 목적은 그 약속을 모든 씨에게 확고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은 곧 율법에 속한 자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에게 그 약속을 확고하게 하려 하심이니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 율법은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그로 하여금 진노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만으로라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16절의 ‘은혜로 되게 하려고’라는 원어(카타 카린 kata carin)은 ‘은혜에 의거하기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율법과 은혜, 행위와 믿음은 다시 대조를 이룹니다. 그것들이 모순되도록 대립되는 것은 아니나 혼동되지 않도록 대조됩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물론, 믿는 자는 율법에 순종하며 의롭게 행할 것이나 믿음 그 자체는 율법 순종의 행위와는 구별됩니다.

 

17-18절, “(이것은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았느니라,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그것들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부르시는 이시니라.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 믿었으니 이것은,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그가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되려 함이라.” 17절에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된 것을 인용하고 있습니다(창 17:4-5, 16, 20, 25:1-34, 28:3).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즉 그는 부활의 하나님, 전능의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믿음은 믿는 자신의 무엇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믿음의 대상만 바라며 의지합니다. 성도의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무(無)로부터 창조하신 자이시며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과 그의 약속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라는 말은 직역하면 ‘소망을 거슬러 소망 중에’(against hope in hope)라는 역설적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 소망은 없었으나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인간적 소망을 거슬러 하나님께 대한 소망 중에’ 이것이 참 믿음의 성격입니다. 다른 말로, 자신에 대한 부정과 하나님께 대한 긍정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태도입니다. 자기에게 무엇이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을 섬기다가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될 때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에 자기 자신을 신뢰한 것입니다. 그러나 참 믿음은 하나님을 그저 믿는 것입니다.

 

19-22절, “그가 백 세쯤 되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이제는 죽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이 없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이 강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또한 능히 이행하실 줄로 온전히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은 늙었으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고, 어느덧 나이가 백세가 되어 자신의 몸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았으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상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불신앙은 요동하고 비틀거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요동치 않고 하나님을 바라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의지하거나 환경을 염려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의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이 믿음은 인간의 무엇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I am nothing, but God is everything).

23-25절.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다고 기록된 것은 이제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가 예수 우리 주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을 믿을진대 그것을 의로 인정받을 우리도 위한 것이니라. 그분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우리의 구원도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셨고 우리의 의롭다 하심 때문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믿는 자는 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며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모든 내용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의 무엇을 의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단순히 전능의 하나님, 부활의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은 아브라함처럼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4장을 요약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진리는 옛날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서도 증거됩니다. 아브라함은 할례 받기 전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믿음과 행위는 명백히 대조됩니다. 믿음은 그저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부활의 하나님, 전능의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이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믿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우리는 바로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읍시다! 우리 자신이나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주신 그분의 약속만을 붙듭시자. 그것이 진정한 구원 신앙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대림절 둘째 주일에 주시는 로마서 4장을 통해 은혜와 축복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날의 아브라함, 사라가 되게 하시며 아브라함이 아무 것도 받지 못했을 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것을 기억하며 우리도 이런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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