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셨을 때에도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눅 24:1-53)
1-12절,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심
[1절]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전통본문)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안식 후 첫날’(테 미아 톤 삽바톤)이라는 말은 ‘주간의 첫 날에’라는 뜻이다(KJV, NASB, NIV). 주간의 첫 날에 이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과 함께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다. 본문 10절은 이 여자들의 이름이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그들과 함께한 다른 이들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은 그 여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라고 말하고(마 28:1), 또 마가복음은 그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라고 말한다(막 16:1).
[2-3절]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무덤이 돌로 막고 인봉되었다고 증거한다(마 27:66).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그 여자들이 누가 우리를 위해 돌을 굴려 주리요 하며 걱정하였다고 말한다(막 16:3). 그런데 그들이 무덤에 가 보니, 돌이 이미 굴려 옮겨져 있었다. 마태복음은 큰 지진이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마 28:2). 마가복음은 그 돌이 심히 컸다고 말한다(막 16:4). 그들은 그 무덤에 들어갔다.
그런데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않았다. 본문은 예수님을 ‘주 예수’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주님’이라는 말은 높은 존칭어이다. 그 말은 헬라어 70인역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의 여호와의 번역어로 쓰였다. 그 말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 것은 그런 높은 의미를 가졌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다.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않았다. 그 여자들은 그 빈 무덤의 증인들이었다. 빈 무덤은 복음서들이 공통적으로 증거하는 내용이다. 빈 무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증거이며 중요한 증거이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정들을 하였다. 어떤 이는 예수께서 기절하셨다가 다시 기운을 차리신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빌라도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 시체를 내어주었다고 증거한다(막 15:44-45). 또 기진맥진하였을 그가 그 무거운 돌을 굴려내셨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또 그의 제자들이 그런 예수를 부활하셨다고 속여서 전파하였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 나중에 그 예수는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도적질하였다고 가정하였다. 마태복음은 유대 지도자들이 군병들에게 그런 거짓말을 퍼뜨리라고 했고 그런 말이 유대 사회에 퍼졌다고 말한다(마 28:11-15). 그러나 선생님의 시체를 감추어 놓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전파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런 것이었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시하셨고 예수께서는 마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요 8:44).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증거하였다. 그들은 그 일 때문에 핍박을 받았고 순교까지 하였다. 그들이 거짓을 위해 그런 고난을 받고 순교를 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들은 진실한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빈 무덤을 증거하였고 그 증거는 예수님의 부활 외에 다른 말로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
[4절] 이를 인하여 근심할(디아포레오)[당황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그 여자들이 이를 인하여 당황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 있었다. 그들은 확실히 천사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태복음은 주의 천사가 나타났고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었다고 증거한다(마 28:2-3). 마가복음도 흰옷 입은 청년이 나타났다고 말한다(막 16:5).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도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 곁에 나타났었다(행 1:10). 또 고넬료가 제9시 기도를 하다가 환상을 볼 때에도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홀연히 나타났었다(행 10:30).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천사들의 존재를 믿는다. 천사들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었고 롯에게 나타났었으며 야곱에게도 나타났었다. 주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 새벽에 천사들이 그 여자들에게 나타났다.
[5-8절]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여자들은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었다. 마태복음은 수직하던 자들도 죽은 자같이 되었다고 말한다(마 28:4). 천사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며 갈릴리에 계실 때에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밝히 증거하였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 계실 때에 세 번이나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은 이 일들을 잘 증거한다. 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17:22-23,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20:18-19,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3일에 살아나리라.” 마가복음도 비슷하게 증거하고(막 8:31; 9:31; 10:33-34), 누가복음 9:22도 한 번 기록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였고 그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 여자들도 천사들의 말을 듣고서야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
[9-12절]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고하니라.)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듯이(호세이 레로스)[쓸데없는 이야기같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여자들은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들에게 고하였다. 마가복음은 그들이 처음에는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말한다(막 16:8).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들이 무덤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일에 대해 증거한다. 28:8-10,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은 이 모든 일, 즉 예수님의 빈 무덤과 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갈릴리에서의 그의 말씀을 기억나게 한 천사들의 말과 돌아오는 길에서 예수님을 뵈온 일을 다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제자들에게 고하였을 것이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쓸데없는 이야기같이 뵈어 믿지 않았다. 그들은 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께서 세 번이나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지 않았고 기억하지 못했고 주님의 부활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아침 여자들의 빈 무덤에 대한 증언과 천사들의 증거를 직접 듣고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참으로 마음이 어둡고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 여자들의 말을 확인하려 하였다. 베드로는 확실히 믿음이 있었고 그의 믿음은 그의 인간적인 불신앙과 회의를 극복하게 하였고 빈 무덤의 사실을 확인하게 하였다. 그가 무덤에 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였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요한도 같이갔고, 그들은 무덤에 들어가 몸을 쌌던 세마포만 놓인 것을 보았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은 것도 보았다(요 20:6-7). 베드로는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본문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증거로 빈 무덤과 천사들의 증거에 대해 증거한다. 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음을 보았고, 또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천사들의 증거하는 말을 들었고, 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그들에게 이 일을 이미 예언하셨음을 기억하게 하는 말을 들었다. 또 그들의 말이 쓸데없는 이야기 같았으나 베드로는 직접 무덤에 가서 그 무덤이 비어 있고 시신을 쌌던 세마포만 있었음을 보았다. 예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다. 복음서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장사되신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음을 증거한다.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첫 번째 강력한 증거이다.
또 부수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그의 예언의 성취이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예언하셨었다(7절). 그는 이 말씀을 세 번이나 하셨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세 번씩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예언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둘째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을 나타내신 것이었다. 하나님만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 그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1:25). 그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열두 살된 외동딸과 나인성 과부의 죽은 외아들과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를 살려주셨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한다. 사도행전 17:31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증거하였다(행 17:31). 또 그는 로마서 1:4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선언, 확정] (BDAG)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말하였다.
넷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속죄사역을 확증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25에서,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3-4에서,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우리 위해 이루신 대속사역과 의(義)와 영생과 천국을 확증한다.
13-35절,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13-17절]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너희가 길 가면서 슬픈 얼굴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전통본문).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25리(원문에는 60스타디아, 약 11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는 마을이었다(1스타디온은 184.9미터임). 그들은 길에서 ‘이 모든 된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였다. ‘이 모든 일들’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신 일, 삼일 후에 여인들이 그의 무덤이 비었음을 발견한 일,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일, 베드로가 그 빈 무덤을 확인한 일 등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토론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길에서 슬픈 얼굴로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가 무어냐고 물으셨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하고 빈 무덤과 천사의 전한 말도 믿지 못했던 그들에게는 오직 슬픔과 근심만 있었다.
[18-20절]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그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글로바이었다. 그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요즈음 거기서 된 일을 혼자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말했다. 이스라엘 땅에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셨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고 마셨다. 그것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큰 슬픔과 낙심과 공허함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21-24절]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救贖)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救贖)할 자라고 바랐다. 그들이 생각한 구원은 예수께서 유대 나라를 로마 제국으로부터 건져주시고 또 백성들을 가난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포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기대는 예수의 죽음으로 산산이 다 깨어졌고 절망이 그들을 덮쳤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그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또한 제자들 중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님은 보지 못했다. 글로바는 이와 같이 그 동안 되어진 일들에 대해 자세히 증거했다 그의 증거한 말들은 후대의 사람들이 성경이 진실하게 증거하는 내용들을 믿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5-27절]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께서는,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셨고, 그런 후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들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해 증거했다(요 5:39; 딤후 3:15). 구약성경의 제사 제도와 유월절 규례와 성막 제도 등이 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증거하고 있다. 특히, 시편 22편이나 이사야 53장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잘 예언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죽으신 후 영광 가운데 들어가실 것이다.
[28-35절]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축복]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변화된 몸이었다고 보인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것은 연약한 인간들의 환각 작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제자들, 즉 두 증인들이 증거한 확실한 객관적 사실들이었다. 부활의 증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단순히 환영이 아니셨다. 그는 두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으셨다. 그는 그들과 대화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성경을 자세히 풀어 주셨다. 그는 그들과 한 집에 들어가 저녁 식탁에 앉으셨다. 그가 떡을 떼어 축복하시고 그들에게 주셨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들은 그가 부활하신 주님이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셨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몸을 가지신 것 같다. 그는 결코 환영이 아니셨다. 예수께서는 확실히 다시 살아나셨다. 두 사람이 동시에 생생하게 부활하신 주를 보았고 그와 대화하였고 그를 체험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들이 부활하신 주를 뵈온 것을 고하였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성에도 맞고 성경대로 된 것이었다. 죽음은 죄 때문에 왔다. 죄가 없는 자는 죽지 않아야 이치에 맞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다. 단지 그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그는 부활을 통해 자신의 죄 없으셨음을 증거하셔야 마땅하다. 또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광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광의 주님이신 이가 무덤에 머물러 계신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메시아의 죽음은 아담이 범죄한 직후부터 계시된 바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다. 아벨은 어린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그러했다. 율법에 명시된 제사 제도와 성막 제도는 메시아의 죽음을 암시하였다. 이사야 53장은 메시아의 죽음을 예언했다. 그러나 메시아의 부활은 합당하였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지 않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부활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는 두 제자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아닌 것을 믿는 것은 미신이지만, 사실인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미련함이다. 우리는 미련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추가적으로, 본문은 예루살렘에 있는 열 한 사도들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했음을 증거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자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많은 증인들이 그의 부활을 증거하였다. 예수께서는 과연 살아나셨다.
36-53절, 제자들에게 나타나심과 승천하심
[36-37절]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유령]으로 생각하는지라.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셨다. 그가 죽으신 후 슬픔과 낙심과 불안 가운데 있었을 제자들에게 그는 평안을 기원하심으로 위로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유령으로 생각하였다.
[38-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의심’이라는 원어(디알로기스모이)는 ‘생각들, 변론들, 의심들’이라는 뜻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단순히 영이 아니셨다. 그의 몸은 손과 발을 가진 몸, 살과 뼈가 있는 몸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히셨던 바로 그 몸, 그러나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었다. 우리의 연약하고 누추한 몸도 장차 강하고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고전 15:42-44).
[41-43절]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과 벌꿀집](전통본문)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음식까지 잡수시므로 자신의 부활, 곧 그의 육체적 부활을 확실히 증거하셨다. 부활하신 그는 단순히 영이 아니시고 음식을 먹으실 수 있는 몸을 가지고 계셨다.
[44절]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하셨듯이 다른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부활이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구약성경에 메시아에 관해 예언되고 예표된 모든 내용들은 다 이루어져야 했다.
[45절]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주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본절에 ‘마음’이라는 원어(누스)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일깨워주실 때 우리는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이해하려 할 때에 우리는 성경책이 필요하고 또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사역이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성경을 사용하여 우리의 생각을 깨우치셔서 우리에게 진리의 지식을 주신다.
[46-47절]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회개와 죄사함이 그의 이름으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또 그것이 합당하니](전통본문).
메시아에 관해 성경이 기록한 바는 두 가지이었다. 첫째는 그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그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많이 예언하고 또 암시하였다(짐승 제사들, 이사야 53장, 시편 22편 등). 또 그의 부활에 대해서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암시하였다(시 16:10; 110:1; 호 6:2). 둘째는 회개와 죄사함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회개와 죄사함을 목표로 한다. 회개와 죄사함은 예루살렘이나 유대 땅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고 모든 족속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이다. ‘그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죄사함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죽음과 그의 중보 사역에 근거하여 그의 권위로 전파될 것을 보인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증거하여 그들로 확신에 이르기를 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 회개와 죄사함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다. 증인에게는 자신의 달변이 중요하지 않고 단지 증거해야 할 내용에 대한 충실한 증언이 중요하다. 그는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성실히 증언하면 된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부여된 임무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달변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하지 말고 오직 그들이 보고 들었던 바를 성실히 증거해야 했다.
[48-49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예루살렘](전통본문)에 유하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그의 증인으로 그들이 해야 할 바는 그에 대한 사실들을 충실히 증거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1-2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했다.
증인들은 용기와 능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증거할 내용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며 주께서도 성령의 오심에 대해 많이 증거하셨다(요 14-16장). 주께서 친히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요 15:26).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성령과 능력을 받기까지 예루살렘 성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하셨다(행 1:4, 8).
[50-51절]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전통본문).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셔서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셨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2-3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요 11:18). 그곳은 감람산 기슭이었다(행 1:12). 예수께서는 베다니에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셨고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 종말에 관해 교훈해주셨었다(요 11장; 마 24장). 그는 베다니에서 제자들에게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리우셨다. 이것은 그가 부활하신 지 40일 후의 일이었다(행 1:3, 9). 부활하신 주께서는 승천하셨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그가 이전에 쓴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고 말한 후,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 증거하기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고 말하였다(행 1:9).
[52-53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전통본문)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찬송하며 찬양하니라](전통본문). [아멘](전통본문).
제자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스승으로 섬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하였다. 그는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시다(요 1:14). 그들이 늘 성전에 있은 것은 성령을 기다리라는 주의 명령 때문이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자. 예수께서는 확실히 부활하셨다. 그는 단순히 영으로가 아니고 손과 발이 있는 몸으로 부활하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만져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과 꿀벌집을 잡수셨다. 그것은 그의 부활이 몸의 부활임을 증거하기 위하심이었다. 그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한다. 우리는 그의 부활을 확신함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자.
둘째로, 예수께서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신 자이셨다. 주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의 예언을 이룬 일임을 제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또 회개와 죄사함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도 기록되어 있다. 또 제자들은 이 일에 증인이며 약속대로 오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능력을 입혀주실 것이다. 우리도 이 죄사함의 복음 진리를 만민에게 증거해야 한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우셨다.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성령의 강림을 기다렸다. 요한계시록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며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며 또 오른손으로 일곱 별[지상 교회의 목사들]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지상 교회들] 사이에 다니시는 자라고 증거하였다(계 1:17-18; 2:1). 또 신약성경은 승천하신 주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시고 중보사역을 하신다고 증거한다. 로마서 8:34,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고(히 7:25) 또 참 하늘에 들어가셔서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고 증거하였다(히 9:24). 그는 지금도 온 세상과 만국 교회를 통치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누가복음 19장 예수님 말씀] 예루살렘에 올라가심(눅 1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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