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고린도전서 9장 설교 말씀] 상 받을 복음 사역자(고전 9:19-27)

기혼샘 2024. 9. 1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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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9장 설교 말씀은 상 받을 복음 사역자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받을 상을 위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 목: 상 받을 복음 사역자

 

성 경: 고전 9:19-27

 

<서론>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고 싶다면 오늘 바울의 자세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1. 바울은 자유자 이면서도 스스로 종이 되어 성도들을 섬겼습니다(19).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권과 자유를 가졌을 뿐 아니라, 복음 안에서 참 자유를 소유하였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종이 되어 형제들을 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너희를 섬기고 종이 되어줄 그런 사람이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가르침대로 사도로서 모든 사람에게 자유할 위치에 있었으나 모든 사람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보다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한 영혼이라도 더 복음으로 섬김으로 구원받고 나아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변화시키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본체시요, 창조주 이신 그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로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6-7), 공생애 기간 중에서도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시며 섬기는 자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일부 직분자나 성도들이 섬김을 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섬김을 받기 위하여 자기의 직분을 과시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섬기는 자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가진 자는 오히려 남들보다 더 많이 섬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직분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평신도들도 항상 남을 섬기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아 남을 섬길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서로 섬길 때에 교회 안에 다툼은 사라지고 서로 믿고 사랑하는 평화가 생겨날 것입니다.

2. 바울은 모든 사람과 같이 됨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20-23).

바울은 베드로 앞에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정도로 강한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갈 2:5).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유대인에게도, 이방인에게도, 약한 그리스도인에게도 각각 저들에게 맞는 태도를 취할 줄도 알았습니다. 다시말해,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의 어떤 관습들을 지켰으며(행 21:24), 동시에 이방인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의 모든 관습들을 포기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행 21:21).

그렇다고 하여서 은혜의 양보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갈 1:6-9). 그리고 하나님의 도덕법을 파기하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무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다만 다양한 사람들을 복음으로 얻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과 같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약한 자들'(22)이란 약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약한 그리스도인들이란? 어린아이와 같이 젖을 먹는 단계의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이 성숙하였다고 하여서 신앙이 약한 자들이 상처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8장에 언급된 바와 같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 믿음이 강한 자는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들은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8:9절에서 "너희의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약한 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구원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약한 자처럼 되고, 유대인처럼 되고 이방인처럼 되는 것은 그들을 복음으로 구원코자 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8:13절에서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로 실족치 않게 하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이들의 마음을 얻어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해외 선교사들의 선교 전략에서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선교지역의 언어를 배우고, 그곳의 문화에 동참함으로 그들과 동일하게 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내 선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빈민가에 있는 사람들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곳에 살면서 희망을 잃고 사는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먼저 필요한 것입니다. 도시민이, 촌사람이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백인이든 유색인종이든, 약자든 강자든, 혹은 사무직에 종사하든 기능직에 종사하든 간에 우리는 이 모든 이들과 같이 되어(22절)<"여러 모양이 된 것"> 그들의 필요를 알고 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야 말로 바로 이 같은 일에 뛰어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도 죄인들과도 함께 식사하셨으며, 세리와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셨으며, 심지어 창기들과도 교제를 나누었습니다.(막 10:45 요 20:21)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얻어 구원코자 함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주변의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면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여 섬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의 열쇠입니다.

마음을 얻지 못하고는 전도의 문이 열어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능력이 모자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 한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능력 이전에 사랑이요, 관심이요, 희생이요, 섬김으로 복음의 놀라움을 입술의 말로만이 아니라 몸의 언어와 가슴의 언어로 접근하므로 더욱더 강력한 능력이 흘러가게 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보여주는 지혜요, 리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입술의 말 만의 문제가 아니요, 섬김과 희생으로 동일시 전략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러분 중에 아무리 전도해도 난공불락 같은 한계성 앞에 용기를 잃고 그 대책을 알지 못하여 이제 전도는 엄두도 못 내는 무력함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섬김과 희생의 동일시 전략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바울은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로서 자기 훈련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24-27)

고린도에서는 3년마다 열리는 이스무스지협 경기가 있었는데 이 경기는 올림픽 경기에 버금가는 대회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 사는 사람들은 운동선수들이 엄격하게 자신이 절제하며 식사나, 잠이나, 오락등을 조절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24,26). 강렬한 승부욕의 집념을 지닌 선수일수록 그 훈련의 강도도 강합니다. 우승을 위해서는 목표를 세워 그 목표 달성을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운동경기의 훈련은 시들어버릴 일시적인 면류관을 위한 것이지만 하늘나라를 목표하여 경기하는 자들은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상급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25절)

하늘나라의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과 상급을 얻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철저히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절제하며 육신적인 욕망을 누르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날마다 자기 훈련을 거듭하였습니다(26-27a)

바울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하여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교만과 정욕과 더불어 날마다 씨름을 하였는데, 쳐서 복종이 될 때까지 싸웠던 것입니다. 27절 하반절의 바울의 두려움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을 흡족하게 해드리지 못하여 수고는 하였지만 땅에서 그 상급을 다 받아 버려서 부끄러운 수고가 될까? 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값싼 칭찬과 상급에 치심우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칭찬과 상급을 받기 위해 날마다 바울처럼 자신의 교만과 정욕을 쳐서 자신에게 이겨서 복음의 사역에 참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결론>

이제, 복음을 위해 새로운 각오로 밖으로는 자세와 행동이 바뀌어 섬김과 희생의 동일시 전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안으로는 자신을 날마다 쳐서 복종시켜 철저한 자기 훈련으로 넘치는 열매가 맺히며, 그 열매가 모두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으로 인정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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