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요한복음 1장 하나님 말씀] 나를 따라 오라(I) (요 1:43-51)

기혼샘 2024. 9. 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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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장 하나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불렀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I) (요 1:43-51)

 

1. 오늘 우리가 봉독 한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1) 갈릴리로 (2) 나가려 하시다가 (3) 나를 좇으라] 예수님은 소년시절에는 목수인 육신의 아버지를 도와서 목수의 일을 하셨고 30일 되어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주어진 사명을 다하다가 죽는 것, 그것이 사람들의 올바른 생활태도입니다.

얼마 전 어떤 신문에 우리나라에 왔는 어떤 대사 부인의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얘기는 이런 것입니다. 몇 해 전 어느 여자가 서울에 와있는 외국대사 부인을 인터뷰하러 갔습니다. 이 여자가 외국 대사의 집에 가서 놀란 것은 고물딱지 같은 재봉틀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국대사 부인은 그 재봉틀이 자기가 결혼할 때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외국대사 부인은 자기 집의 커튼을 가리키면서 저 커튼도 이 재봉틀로 손수 만들었고 자기가 입은 옷을 가리키면서 이 옷도 재봉틀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여성들은 재봉틀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한국사람 같으면 외국에 대사로 가는데 몇십 년 된 고물 같은 재봉틀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가져간다고 해도 새것으로 사가지고 갈 것입니다.

나부터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저는 이사를 무척이나 많이 다닌 사람인데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하나도 버리는 것이 없이 너저분한 것까지도 다 챙기시고 낡은 것이라도 버리는 것이 없이 다 가져가시려고 하면 나는 의례히 버리라고 말씀드렸고 어떤 때는 강제로 버리고 새것을 장만한 때도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대개 [그것 버리기가 아까운데] 하시면,

젊은 사람은 [구질구질하게 그런 것을 가지고 가느냐]고 하면서 어른들은 궁상맞다고 합니다. 요즈음도 이사 가는 사람들을 보면 쓸만한 것들을 그냥 버리고 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럽사람들은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은 살림을 알뜰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할 일이 없어서 재봉틀질하고 있는 것 아닙니다. 심심풀이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또 옷사입을 돈 없어서 손수 재봉틀로 지어 입는 것 아니고 돈 없거나 돈 있어도 커튼집 몰라서 재봉틀로 커튼 해서 다는 것 아닙니다. 저들은 부지런하고 알뜰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을 보면 낭비가 너무 많습니다. 뷔페집에 가면 먹다 남는 음식이 수두룩하고 사실은 우리가 가정에서도 음식찌끼가 나가지 않아야 합니다. 버리는 음식이 없어야 합니다. 한편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의 수고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직장을 버리고 나와서 더 좋은 직장이 없나 찾고 조금 힘만 들어도 어려워서 그일 못하겠다고 그만두는 예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땀 흘리고 구정물에 손 넣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주부들도 아예 시집갈 때에 모든 것을 자동화된 것 사가지고 가기 때문에 조금의 수고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살후 3:8).

남에게 누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누를 끼친다는 말을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아무에게도 공밥을 얻어먹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일 안 하고 돈 벌고 힘 안 들이고 돈 벌고 출세하려니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병들어 썩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고 대학에 가려니깐 부정 입학. 시험답안지 유출 같은 사건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정치계. 경제계. 교육계. 종교계. 군인, 민간 할 것 없이 어느 한 부분도 썩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우리 모두가 공범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병들어 썩고 없습니다. 또 우리 모두가 공범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병들어 썩고 있는데서 같이 병들고 같이 썩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는 원했지만 땀 흘리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성도들은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근면하고 더 진실하고 더 정직하고 더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갈릴리로 출발하시는 모습을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갈릴리라 하면 주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사렛동리가 있는 곳이고 또한 공생애 사역의 주요 무대였습니. 그 당시 갈릴리는 주로 사회적으로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거하던 곳이고 주로 어업이나 목축업에 의존해서 생활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수입이 있었다면 국제적인 통로였기 때문에 그 지역을 통행하는 이들로부터 통행세를 받아서 그지역생황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리고 헤롯시대에는 주민들에게서 많은 세금을 거두어 목욕탕, 체육관, 경기장 같은 헬라적인 문화를 반영하는 건물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는 이방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라고 순수한 유대인에게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 46절에서도 나다나엘이 빌립으로부터 주님을 소개받고 하는 말이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쓰레기에서 장미가 필 수 있느냐?"]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곳으로 취급받던 곳이 갈릴리 지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소외받는 계층이 많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 주로 저들의 병을 고쳐주고 저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 저들의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희망과 평강과 은혜와 사랑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갈릴리에 대해서 잘 예언했습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그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9:1-2)

주님은 고통하는 자를 찾으셨습니다. 지금도 고통의 어두움 속에서 빛을 갈망하는 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죽음의 길에서 헤매는 자들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가 잘 부흥되지 않는다는 뉴욕중심가에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목사님입니다. 그분은 말하기를 기도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될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인생은 변화되어질 수 있는 유연한 것이라고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변화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람들이 모이지 않는 곳에 차고 넘치는 모임이 있게도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모든 문제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결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쉬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으로 여러분들 앞에 놓여있는 모든 불가능한 것들

을 가능케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축복이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빛이 있습니다.

이 주님은 여러분들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죽음 고통, 생활의 고통, 자녀의 고통, 남편의 고통, 아내의 고통, 사업의 육신의 고통 그 무슨 고통이라고 기도하면 들으시고 평강 중에 해결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날을 앞에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곳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2). 이것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3. 이제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주님께서 갈릴리로 향하여 가시려고 할 때에 빌립을 발견하십니다.

1) 주님께서 빌립을 먼저 발견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먼저 알고 믿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먼저 보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는 항상 감사가 있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동리 벳새다 사람이라"라고 했습니다. "벳새다"란 [고기잡이 하는 집][그물의 집]이란 뜻입니다.

2) 예수님은 빌립을 보시고는 대뜸 하시는 말씀이 - 그의 사정이나 형편을 묻지 않으십니다. - "나를 쫓으라""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지금 당장 머뭇거리지 말고 좇으라고 강한 결단을 촉구하는 명령을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는 "아니요" , "글쎄요, "가 없습니. 모든 말씀에 아멘만 있을 뿐입니다. ""만 있고 "아니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그러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를 좇으라""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한 이 말씀이 신약 성경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1) 첫째는 제자로 따라오라는 의미로 쓰였고(4:20,22, 8:22,막1:18,눅 9:59,요21:19).

(2) 둘째는 [본받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마 10:38,마6:24, 요12:26)

우리는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 속에서 진실한 기독교인의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자신을 예수의 말씀과 행동에 복종시켜서 그분의 완전한 제자가 되어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를 본받겠다고 하는 자세 그리고 예수를 따라 살겠다고 하는 자세가 없이는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신비는 이렇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 제자가 되겠다고 결단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요한복음 1:43절 한 말씀 속에서(1) 부지런하게 일하시며 사명을 완수하시는 주님을 발견했습니다. (2) 그리고 주님이 가시는 곳에는 흑암이 빛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고통이 기쁨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어지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3)그리고 참 신앙이란 주님을 본받는 것이요 그 말씀과 행동에 복종시키는 것이요 그를 따르는 제자가 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이 말씀으로 여러분들의 오늘의 생활을 변화시켜서 복되게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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