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창세기 11장 설교 말씀] 바벨탑 사건과 아브람의 등장(창 11:1-32)

기혼샘 2023. 8. 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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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은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다. 인간의 교만이 최고로 올라갔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바벨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왔다. 창세기 11장에서는 구속사의 출발인 아브람이 등장하고 있다.

 

바벨탑 사건과 아브람의 등장(창 11:1-32)

 

바벨탑을 쌓음(1-4)

11: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바벨탑을 쌓기 전까지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이었다. 구음은 언어()를 의미한다. 그때는 노아 홍수 후 얼마 되지 않았고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인종이 퍼졌으므로 그 언어가 하나일 것은 확실하다.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홍수가 끝날 때 방주가 머문 아라랏산 지방에서부터 그들은 점점 동진(東進)하여 살다가 넓고 비옥한 시날 평지를 만나서 거기에 정착하게 되었다. 시날 평지는 바벨론 지방이다.

11:3-4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사람들이 큰 성을 쌓고 하늘에까지 닿는 대를 쌓아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것은 앞으로 홍수가 또 나더라도 대를 높이 쌓아 홍수의 화를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도 내려고 한 것이다.

성은 도시를 의미하고, 대는 탑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기 위하여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고 벽돌을 쌓기 위한 접착제로는 역청을 사용하였다. 역청은 아스팔트와 같은 물질이다.

그들이 바벨탑을 쌓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었다. 하나님이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무지개를 두어 약속하셨으나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다시 홍수가 날까 봐 두려워하였다.

인본주의이다. “, 벽돌을 만들어”, “, .성과 대를 쌓아”,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들의 지혜와 힘으로 건설하려고 한 것은 분명히 인본주의이다.

명예 영광주의이다. 이것은 우리 이름을 내고라는 말이 증명한다. 사람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터인데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한 것은 교만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죄이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정신과 역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 없이 자기들의 지혜와 단결된 힘으로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들의 생각대로 계획하고 처리하는 것과 인간의 공로와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바벨탑을 쌓는 일이다.

바벨탑에는 정치적인 바벨탑과 과학적 바벨탑과 종교적 바벨탑이 있다. 첫째, 정치적(국가적) 바벨탑은 하나님을 떠나 정치를 잘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대전 후에 만든 국제연맹이나 U.N.(국제연합) 같은 것은 하나의 바벨탑이다.

둘째, 과학적 바벨탑은 과학 만능(科學 萬能)을 믿고 하나님보다 과학과 기술을 더 의지하여 과학의 힘으로 인간을 행복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련에서 제일 처음 우주선을 우주에 쏘아 올렸을 때 그 안에 타고 있던 우주인 가가린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천당이 없다고 발표했었다. 이렇게 하나님보다 과학을 더 높이고 의지하는 것은 과학적 바벨탑이다.

세째, 종교적 바벨탑이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양심을 양보하고 종교적 연합과 단결로 큰 단체를 만들어 큰 연합 사업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단적 바벨탑이 있다. 교단적 바벨탑이란 진리를 양보하면서라도 교단만 크게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단은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은 하지 않고 큰 교단 만드는 일에만 열중한다. 또 여러 교단이 진리를 양보하고 서로 연합하여 거대한 세력 단체를 만들어 큰 세력을 쓰는 것도 종교적 바벨탑이다. 신신학이나 그릇된 신비주의, 심지어 이단적인 단체까지 연합하여 세계적인 운동을 하는 W.C.C.와 같은 것이 종교적 바벨탑이다.

말세에는 모든 면에서 바벨탑을 높이 쌓는 시대가 되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 인본주의로 나아간다. 이러한 바벨탑을 높이 쌓아 정상(頂上)까지 올라가면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바벨론의 멸망이 기록되어 있다. 그 바벨론은 인본주의 세상을 가리킨다. 세상의 인본주의와 속화된 교회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을 때에 참된 신앙의 길을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요한계시록 18:4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 안에 있으면 신앙을 지킬 수 없고 그 바벨론이 멸망할 때 같이 멸망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18:7에는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고 하였다. 바벨론에 있는 자들은 말하기를 나는 여황(女皇)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며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루 동안에 재앙들이 임하게 하여 모두 멸망시킨다(18:8).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과 그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여호와의 심판(5-9)

11: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인생들이 성과 대를 높이 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보시고 마침내 그들의 인본주의 바벨탑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강림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살펴보시고 심판하시기를 착수(着手)하셨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인본주의 바벨탑을 높이 쌓는 것만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떠나고 하나님 없이 살게 된다. 인본주의의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을 떠나고 진리를 불순종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불가불 바벨탑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다.

11:6-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바벨탑 쌓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그러므로, 언어가 소통되지 않아서 바벨탑 쌓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을 가지고 오라하면 불을 가져오고, “돌을 가지고 오라하면 나무를 가져오고, “오라하면 가고, “가라하면 오니 더 이상 바벨탑을 쌓을 수 없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의사소통이 잘되어 바벨탑을 계속 쌓아 그것을 의지하고 살며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멀리 떠나 향락주의로 기울어지고 자기들을 영화롭게 하다가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여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더 이상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이 세계 각 민족의 방언이 달라지게 된 근본 원인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신다. 오늘날 언어를 혼잡케 한다는 것은 서로 의사 소통이 안되고 의견이 서로 맞지 않고 충돌되는 것을 가리킨다. 의견이 엇갈리고 의사 소통이 안되고 충돌하여 단합이 되지 않으므로 연합된 일은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때에는 바벨탑 쌓는 것을 중지하고 회개하여 겸손히 하나님께 돌아가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진리만 세워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세워 나가면서 창성하고 견고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가서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의논하신 것이다. 인간창조나 구원이나 심판에 대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동으로 역사하신다.

11:8-9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언어가 서로 달라졌으므로 사람들이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고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 바벨하나님의 성문이라는 뜻이다.

셈의 후예(10-26)

11:10-26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 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사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 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 삼십 년 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 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 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 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셈의 후예를 기록함에 있어서 본 장에서는 특히 아브람(아브라함)조상들을 기록하였다. 10:21- 30에 있는 셈의 족보와 다른 점은 벨렉까지는 같으나 10장에서는 벨렉의 아우 욕단의 후예를 기록했고, 11장에서는 벨렉의 후예를 기록하여 아브람(아브라함)까지 기록한 점이다. 그러므로 본 장의 셈의 족보는 신앙 계통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셈의 후손이다. 이것은 노아가 셈의 하나님이라고 예언한 대로되었다.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의 수명이 현저하게 짧아졌다. 특히 벨렉(18) 이후에는 사람의 수명이 더욱 짧아졌다. 또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고 족속들이 흩어졌다(10:25). 이렇게 수명이 짧아진 것은 홍수 후에 죄악이 세상에 많아졌기 때문이요, 그때부터 육식을 한데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데라의 후예(27-32)

11:27-32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 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데라의 아들과 손자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아브람(아브라함)은 데라의 맏아들이며, 롯은 아브람의 아우 하란의 아들이다.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그 자부 사래와 그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가던 중 하란에 거할 때에 데라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데라는 본래 우상을 섬겼으나(24:2-3), 가나안 땅에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명령한 그 말씀(12:1 참조)을 따라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데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란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는 우상 섬기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아브람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다가 죽었으니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신령한 가나안(하나님의 나라)에는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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